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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1 - 제자리로!
사토 다카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성장 소설을 읽다 보면 질투가 난다. 워낙 무미건조한 학창 시절을 보낸 터라 그들처럼 풋풋한 생활도 꿈도 없었기 때문이고, 이제는 아무리 용을 써봐도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육상을 하는 남자 고등학생의 이야기는, 여자 중학교, 여자 고등학교를 나오고 체육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내게 전혀 생소한 분야였으니 성장 소설보다는 탐험 소설에 가까웠다.
가미야 신이치는 중학교 시절 축구를 했으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축구 대신 달리기를 선택한다. 여기에는 중학교까지 단짝 친구였는데 학교 때문에 잠깐 멀어졌다가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나게 된 이치노세 렌의 역할이 컸다. 렌이 달리는 모습을 보고 달리기의 매력에 빠졌던 것. 중학교 2학년때 관동대회 출전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렌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육상을 그만두었었다. 그러다가 가미야 신이치와 함께 육상부에 입부하고, 이들의 우정과 경쟁은 빛을 발한다.
육상부는 단거리반, 중장거리반, 투포환과 원반던지기반으로 나뉜다. 신이치와 렌은 단거리반으로, 여기 속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주로 나오고, 중장거리반의 다니구치와 네기시도 꽤 비중을 차지한다. 아이들이 1학년일 때가 1권, 2학년이 2권, 3학년이 3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선배와 동기, 후배의 이야기가 골고루 들어 있어서, 정말 아이들과 함께 학년이 올라가는 기분이 든다.
달리기는 전적으로 혼자 뛰는 운동이다. 신이치가 했던 축구처럼 모두가 힘을 합해서 하는 이어달리기도 있지만, 이어달리기에서도 배턴을 주고받는 순간을 제외하면 혼자 힘으로 헤쳐나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외롭게 싸워야 하는 것이다.
100미터 달리기가 진행되는 그 10초 동안 그처럼 많은 생각이 펼쳐질 수 있음을 처음 알았고, 경기를 하기 전의 숨막히는 긴장과, 달리기를 마친 후의 개운함과 허탈함과 아쉬움이 어떤 기분인지 마치 내가 전력 질주를 하고 난 것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어달리기를 할 때 더 힘을 내는 렌과 신이치의 모습에서 함께 하는 기쁨과 보람을 새삼 알게 되었으니, 스타트 블럭 조정에서부터 골에 닿을 때까지 자신만을 위한 빨간 트랙 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우리네 인생과 닮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 12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신이치의 모습은 언급되지 않는다. 덕분에 이 이야기는 일반적인 고등학생의 이야기와 많이 다르다. 이 아이에게는 자나깨나 달리기, 더 빨라지는 것만이 목표이다. 그 굳건한 목표를 향해 한눈 팔지 않고 정진하는 신이치의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처럼 목표를 이루어내는 과정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이들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더 많은 것을 성취하고 이루어낼 거라 믿는다.
신이치와 렌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왠지 해리 포터와 론 위즐리를 떠올렸다. 항상 주목과 각광을 받는 해리 포터를 옆에서 지켜보는 론 위즐리의 상대적 박탈감과 뿌듯함이 마치 렌 옆의 신이치 같아서였다. 론의 도움과 지원 위에서 해리가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듯, 렌과 나란히 달리고자, 따라잡고자 하는 신이치의 모습과 노력 덕분에 렌과 신이치 모두 성장할 수 있었다는 미와 선생님의 말씀에 동감이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아주 멋진 버디무비가 될 듯하다. '빌리 엘리어트'처럼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정정당당한 스포츠의 세계에서 얻어지는 소중한 성취의 과정, 그 과정을 함께 해서 책을 읽으며 참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