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았더라면
티에리 코엔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안락사의 역사>라는 책을 읽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시작하여 종교와 철학, 과학과 의학, 정치와 시대 상황의 모든 분야가 얽혀서 안락사에 대한 허용과 거부, 정의와 발전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생명은 신이 허락하신 선물이고, 고통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는 것이 의무라고 믿었다. 심지어 육체적인 고통은 속죄의 힘이 있다는 기독교적 믿음이 강했고, 이번 생에서 끝나더라도 그 업은 계속되어 윤회한다는 불교적 관점에서도 자살은 금지되었다. 13세기의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살을 ‘인간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수행해야 할 역할을 거부하는 행위이고, 생존 본능과 자신을 사랑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며,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신을 모독하는 일이므로 자살을 하는 사람은 곧 신께 죄를 짓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맥락에서 종교적인 순교를 제외한 자살은 죽어서도 처벌을 받을 정도로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살았더라면>은 바로 이런 자살의 순간에서 충격적으로 시작된다.

20살, 사랑에 피가 끓는 나이이다. 우리나라 청년들에게는 아직 좀 이른 나이지만, 사랑에 좀더 자유로운 프랑스에서는 맹목적인 사랑에 목숨을 걸 수도 있는가 보다. 10년간 짝사랑하다가 드디어 고백을 하던 날 바로 채여버린 제레미는 결국 순간의 선택으로 음독 자살을 하게 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1년이 후딱 가 버린 것. 이런 현상은 조금씩 더 간격을 두어 극적이고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된다. 몇 년에 하루씩만 정신을 차리다 보니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중에도 가정을 지키고자 제레미는 최선을 다한다. 자신과 가족을 포기하며 자살을 시도했던 제레미가 반대로 가족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참 아이러니하지만, 그의 절박함과 그의 진실은 충분하게 전달되어서 그의 숨가쁘고 절망적인 하루를 함께 하다 보면 기진해지고 다음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정말 궁금해진다.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스크루지는 유령을 따라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그냥 지켜 보았지만, <살았더라면>의 제레미에게는 오로지 현재 뿐이므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아껴 써야 하는 고단함이 있었다.

우리나라 자살율은 전체 사망자의 5%에 육박하여 전체 사망 원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OECD 29개국 중에서 자살 증가율 1위, 자살 사망률 4위라고 하니, 예상보다 높은 수치가 많이 놀랍다. 중세에서 현대로 올수록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으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우리 속담처럼 살아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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