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삿갓 - 바람처럼 흐르는 구름처럼
이청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김삿갓이라고 더 많이 알려진 김병연은 왜 우리에게 이렇게 익숙한 것일까? 그의 생애에 관해서는 가수 홍서범이 부른 노래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대략 알고 있을 것이다. 조상을 욕한 죄로 하늘이 부끄러워 삿갓을 쓰고 다녔고,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며 글재주로 못된 양반을 혼내주었다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김삿갓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겨우 200년 전의 사람인 김병연을 전설처럼 묘사하는 것을 반대한다. 대신 ‘전설 뒤에 있던 실제의 김삿갓을 조용히 만나 그의 진정한 모습과 고뇌까지 담아서 보여주려고 애썼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이 책에서의 김병연은 지치고 외롭고 약하고 때로는 현실과 타협하는 한 사람일 뿐이다.

 

김병연을 알려면 그의 조상을 알아야 하므로 책의 초반에는 ‘홍경래의 난’이 자세하게 소개된다. 홍경래의 난에서 성을 빼앗긴 김익순이 바로 김병연의 할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불의에 굴복하는 일은 있을 수 있지만, 위험을 벗어난 후 사실을 은폐하고 보상을 피하려고 별감을 내치려 한 김익순의 행동은 사실 비겁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자신의 친할아버지였기 때문에 김병연은 모르는 사이에 패륜을 저지른 것이고 그 때문에 펼칠 수도 있었던 인생을 마음에서부터 접어버렸다.

그런 다음 방랑의 길을 떠났다. 20대에 시작하여 57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처없이 떠돌며 먹기보다 굶기를 더 많이 했을 것이다. ‘풍자의 효시’, ‘저항의 예술가’, ‘문화 영웅’으로서의 멋진 풍모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구걸하면서도 양반 행세를 하는 마지막 자존심, 쓰지 못할 글을 배우느니 농사일을 배우는 것이 낫다며 훈장을 그만두는 허무주의, 홍경래와 서봉한을 지지하며 썩어빠진 조정과 양반에게 신물을 내는 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뿐이다. 간간이 보이는 그의 시들은 그런 지친 삶에 작은 여유가 되고 때로는 한동안 먹고 살 수 있는 밑천이 되며 자신을 박대하는 사람들에게 따끔한 일침이 된다.

내가 가정을 꾸리고 보니 김병연의 방황 뒤로 그의 아내와 아이들, 어머니가 마음에 밟힌다.  아들이 찾아왔을 때 그를 따돌린 것도 아마 미안해서겠지.

그의 일생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시 한 수로 설명된다.

 

萬事皆有定 만사개유정

세상만사 모두 운명이 정해져 있거늘

浮生空自忙 부생공자망

허공에 뜬 인생들 공연히 헤매누나

 

이 책을 통해 김삿갓의 반항적 이미지의 전설을 잃었으나 살아 숨쉬는 김병연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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