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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프스튜 자살클럽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 지음, 이은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브라질의 작가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의 책을 이로 두 권째 읽는다. 첫번째는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으로 밀실살인을 다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의 오마주였고, 두번째는 바로 이 책 ‘비프스튜 자살클럽’이다. 우연인지 둘 다 주인공이 살인 사건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사건의 흐름을 서술하는 그런 방식으로 진행된다.
현실에서 그렇게 성공하지 못한 고향 친구들이 매달 모여 식도락을 즐기는 비프스튜 클럽이 있다. 이들의 모임은 알베리 바에서 튀긴 바나나와 쇠고기 스튜를 먹는 것으로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다가 수수께끼의 인물 라모스와 사무엘이 등장하면서 알베리 바에서 벗어나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다. 그러다가 주인공 다니엘이 와인 바에서 또다른 수수께끼의 인물인 요리사 루시디오를 만나게 되면서 이들의 자살 행렬이 시작된다. 제목에서부터 이미 ‘자살클럽’이라고 공공연하게 명시해 두었기 때문에, 한 명씩 죽어간다는 설정은 더 이상 스포일러가 아닐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클럽 만찬의 특징은 죽을 순번인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만찬의 메인 디시라는 것.
후에 스펙터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죽는 것은 ‘자비로운 살인’이자 ‘편안한 죽음’, ‘시한부의 쾌락’, ‘기쁘게 해방되는 것’, ‘한 방에 가는 것’, ‘인간적이면서도 이상적인 방법’의 안락사라고도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가 ‘천사들의 클럽 the club of angels’인지도 모르겠다.
클럽의 회원이 열 명이고 그들의 연인 또는 아내, 여자 친구, 또 요리사인 루시디오의 이야기까지 얽히다 보니 처음에는 누가 누구인지 따라가기도 쉽지 않다. 이름도 세 글자가 많아서 헷갈린다. 서로 다른 인생 여정을 겪은 이들은 죽음의 행진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자신의 죽음을 더 준비하고 생애를 돌아보는 과정을 거치고, 그러면서 회개하고 정화되는 듯 보인다.
난 처음 두어명이 죽었을 때, 그리고 그 죽음이 마지막 남은 한 접시의 음식에 달려 있음을 깨달았을 때 더 이상 클럽의 만찬이 이어지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죽음의 행진이 계속된 것은 성욕 만큼이나 강한 식욕 때문인지, 아니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인생의 허무함 때문인지 모르겠다. 우리의 정서와는 다른 그들의 허무와 인생관에 대해 새삼 이질감이 느껴진다.
만찬이 끝날 때마다 사무엘과 루시디오가 언급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어왕’의 대사를 음미하다 보면 언젠가는 죽는 우리들도 이런 비프스튜 자살클럽에 속해 있는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덮을 때는 그리 좋은 느낌이 아니지만, 곰곰이 씹어볼수록 삶과 죽음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죽을 때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당장 며칠 후라면 나는 그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