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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판매학
레이 모이니헌.앨런 커셀스 지음, 홍혜걸 옮김 / 알마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제약회사와 제약회사가 후원하는 학자와 의사들이 약을 팔기 위하여 질병을 만들어내고 선전하고 시장을 일구어내는 과정과 사례들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다룬 질병은 고콜레스테롤, 고혈압, 골다공증, 과민성 대장증후군, 우울증, 월경 전 불쾌장애, 폐경, 사회불안장애, 주의력 결핍장애, 여성 성기능장애처럼 요즘 많이 회자되며 급격히 환자층이 두터워지고 있는 것들이다.
나는 제약회사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것에 공감하기도 했지만 많은 면에서는 과장이 꽤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제약회사들이 의사와 학회에 판촉을 많이 하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회사의 실정을 보아도 의사들에게 간식을 제공했다거나 심한 경우는 의사 부인의 심부름을 대신 해 주었다는 말까지 들린다. 학회에서는 공공연하게 물품 제공과 금액 지원을 요구하고, 제약회사는 고객 만족 차원에서 당연히, 또는 울며 겨자먹기로 지원한다. 그럼으로써 제약회사와 의사, 학자와의 관계는 공고해진다.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 소설로 로빈 쿡의 ‘메스’가 있는데, 참으로 극단적으로 양심을 속이는 제약회사가 나온다.
실제로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제약회사와 의사, 학자와의 커넥션이 아주 검고 부당하며 환자의 이익을 무시하고 그들만의 이익을 챙기는지는 모르겠다. 우리 회사는 신약을 개발하는 회사가 아니고 선도약을 복제하는 수준이라 의사, 학자와 직접적인 연계가 없기 때문에 내가 실상을 파악하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예전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질병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도 맞다. 진단 기술과 기계, 의학, 임상병리학, 분자생물학, 유전공학 등이 발달하면서 질병에 대한 원인 파악이 가능해지고 진단과 치료의 감도가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예로 든 것처럼 고혈압에도 여러 유형이 있기 때문에 비싼 신약보다 이뇨제가 가장 비용 대비 효과적이라는 말은 사실일 수도 있지만, 너무 단순화시킨 맹점이 있다.
의사와 제약회사가 약을 선전하고 처방하기 위해 긍정적인 면만 보고자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정도가 도에 지나치지 않는다면, 그리고 약을 복용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득에 비해 무시할 만큼 적은 수치의 부작용이 발생한다면 삶의 질을 위해 충분히 처방 가능하다고 본다.
질병에 대해 너무 겁을 주며 시장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약효가 입증되지 않은 약을 FDA에 줄을 대어 승인받는 것은 범죄 행위나 다름없다.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 제약회사와 의사의 목적이기는 하지만 양심과 진실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합리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황 우석 사태처럼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