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
김유나 지음 / 창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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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수있을만큼의진실 #김유나 #창비 #서평단 #책추천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 김유나 소설집. 창비. 2026.

어떻게 사는 삶이 과연 옳은 걸까. 옳다 그르다는 기준이 있기는 한 걸까. 만약 이 소설 속 인물들에게 그런 무언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이들은 옳은 쪽일까 그른 쪽일까.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소설 속 인물들이 자신의 몫을 향해 꾸역꾸역 잘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때 기반에 깔려있는 의문이, 남들처럼 성공하거나 혹은 돈을 많이 벌거나 아니면 무언가 성과를 거두고 그에 따른 긍정적인 결과물을 얻었는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꼭 그래야만 삶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고 또 꼭 인정을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드는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 속 인물들의 삶에 괜히 더 관심이 가고 또 끌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뭔가 딱 마음에 드는 결론은 없다. 우리의 진짜 삶이 그렇듯 무슨 일이라는 게 무 자르듯 단칼에 서걱 하고 잘려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뭔가 찜찜함이 남기는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또 그럴 수밖에 없지 싶기도 하는 지점인 것이다. 뭔가 그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지만 그 다음을 기약할 수 없을 때, 그리고 문득 그런 삶 안에서 잠시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 때, 사람은 자신이 살 방도를 또 찾게 되어 있으니까. <랫풀다운>의 '석용'을 보며 어쨌든 살아야하니까, 뭐든 살기 위해 몸을 쓰려하고 있구나 싶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이만큼까지 와 있는 지금의 현실을 딱 인지하게 되는 순간, 그 동안의 나와 내 주변이 무척 낯설어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어쩌면 다시 시작해야하는 때. 뭐라도 해봐야겠다고 꾸역꾸역 움직이게 되는 때인 것 같다. 마치 나도 함께 저 바닷속으로 꾸룩꾸룩 공기 빠지는 소리를 들으며 깊게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알 수 없는 마음이 일었다. 이 마음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알 것도 같았고, 모를 것도 같았다.(...) '지겨워'와 '미안해' 사이를 오갔을 현권을 마음, 그 마음만은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것이었다.(35쪽)

생각해보면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싶은데, 왜 늘 이러지 못 해서 안달, 저러지 못해서 안달일까 싶기도 하다. <이름 없는 마음>의 현권을 보내며 나는 한편으로 홀가분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한편으로는 또 반복되는 마음을 부여잡고 이러고 저러지 못해 안달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그 '지겨워'와 '미안해' 사이의 그 마음을 이해하고 인정해보려고 하는 마음이 생긴 것은 사실이니까. 제목처럼 뭐라 이름을 붙일 수 없지만 이름이 없어도 다 알 것 같은, 둘의 마음과 그 마음으로 인해 내내 이어져갈 관계가 무엇일지도 짐작이 되는, 그 마음이 참 마음에 와 닿았다. 이래서 이 소설 속 인물들에게 자꾸 더 마음이 쏠리는 것이다. 너무 잘 알 것 같은 마음이어서.
물론 <부부생활>의 구영수와 오진희가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고 있는, 두 사람의 비밀이 조금은 어이없기도 했고, <내가 그 밤에 대해 말하자면>의 '유영'이 처한 상황은 화도 나고 걱정도 된다. <으름 씨 뱉기>의 '채림'과 '현우'의 계획이 성공할 지에 대해서도 의심의 마음이 더 크다.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기보단 그렇지 못한 쪽으로 마음이 더 기운다.
그래도 이들은 어쨌든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 삶이라는 거다. <물이 가는 곳>에서도 그런 거였다. 물론 모든 일이 다 뜻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공대표'를 협박한 이후 딸을 마추진 그 심정이란 과연 무엇일지. 발의 통증보다 마음의 쓰라림이 더 클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오른발 뒤꿈치로 살살 땅을 딛고 걸음을 떼는 데 성공한 다음 왼발, 또 오른발, 절룩이며 내리막을 향해 갔다.(220쪽)

그럼에도 딛고 딛고, 절룩이면서도 가야하는 것이다. 또 그렇게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살며,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너 하는 그 일>의 '태은'이 가는 길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 다음의 걸음을 내딛는 것일 뿐.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고 태은이 생각했을 땐 이미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속도로 쏟아지는 중이었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내리막을 달려 곤두박질치는 일뿐이었다.(108쪽)

이 문장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지금 우리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아서. 가만히 있기가 더 위험하고 힘들기 때문에 당장 할 수 있는, 곤두박질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우린 이런 속도감을 늘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 속도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그 속도에 휩쓸려 제 의지와 상관없이 가야하는 때가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속도를 이기지 못해 다시 멈춰 서지조차 못하는 것이다.

여운이 남는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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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 - 기후 붕괴 현장에서 마주친 인간과 비인간동물들
남종영 지음, 불키드 그림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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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행성조사반북극곰의파업을막아라 #남종영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서평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 남종영 글/불키드 그림. 한겨레출판. 2026.

우아! 우선 이 책 한 권에 담긴 방대한 내용과 상상력에 감탄했다. 그동안 기후, 환경과 관련한 내용이라면 많이 찾아 읽고 확인했었지만, 이 정도로 한 권 안에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책은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재밌다. 단순히 사실과 내용을 전달하는 데에만 목적을 두지 않고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큰 장점이다. 특히 각 꼭지의 소재들이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내용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어서 더욱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특히, 동양하루살이 이야기나 바나나 멸종설 같은 경우가 그랬다. 아무래도 들어본 이야기에 쉽게 그 이야기를 믿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좀 억울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생각보다 사람들 속이는 건 참 쉽구나, 싶었다.

기본적으로 동물들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잔뜩이었다. 각 동물들과 자연스레 소통하며 그들의 힘겨운 상황과 문제를 직접 듣고 진위여부를 판단하고 이유를 통해 적절한 생각의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흔히 동물들과 관련한 지점에서 가장 크게 봉착하게 되는 문제가 바로 동물의 처지를 직접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봤던 다큐에서도 수의사의 가장 안타까운 지점이, 동물은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못하고, 오히려 야생 동물의 습성상 자신의 약점을 다른 이들에게 들키면 살아남을 수 없어 숨기고 감추는 것이 기본이라고 했다. 그래서 더욱 병이 악화되고 이후에는 치료하지 못할 지경까지 가게 된다고. 지금 우리가 동물들을 함부로 대하고 또 생명으로조차 인식하지 않은 채 그저 흔한 먹거리, 혹은 식재료로만 생각하는 현상이 어쩌면 동물들과 쉽게 소통할 수 없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했다. 과연 이 책에서처럼 동물들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시위에 참여하고, 진짜 현실의 문제점과 위기 상황을 스스로 지적해 알려줄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상상의 사회를 덩달아 그려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지점은, 결국 권력을 쥐고 있는 인간들의 이기심과 욕심이 우리의 지구와 미래를 담보로 끊임없이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흔한 말로, 내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앞도 보지 않고 그저 막무가내의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판적인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세상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거라고! 줍깅이나 텀블러 쓰기보다 더 중요한 건 자본주의 체제와 정부와 기업 정책을 바꾸는 거야. 개인의 실천을 강조하는 건 자신의 책임을 가리기 위한 신자유주의의 술수라고..."(167쪽) 하는 부분에서, 정곡을 찔렀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여러 분야에서 사회적 책임은 감추고 개인의 몫을 더욱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그린워싱도 무척 다방면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 이마저도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에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니, 얼마나 눈 똑바로 뜨고 주변을 잘 살피며 살아야 하는지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잘 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우선은 동물들이 그렇고, 투발루 사람들도 그렇다. 언젠가 투발루와 관련한 그림책과 뉴스 기사를 갖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 했고, 지금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현상과 변화를 맞닥뜨려야만 그제서야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어쩌면 이런 환경, 기후 문제이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자주 접하고 알아서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에 대해 꾸준히 대화나누지 않으면 인식에서 멀어지는 것이 또한 이 문제들이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자주 엄청 강조하며 다루고 말하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았다.

툰베리는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세계를 끝내야 한다면서도,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이 원주민의 권리를 희생하면서 이뤄져선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툰베리의 '변심'이 아니라 '진화'였던 거죠!(232-233쪽)

결국 우리는 함께 공존하는 삶을 추구해야하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누구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향해 공존해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히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무조건이라는 건 없는 것 같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일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꾸준히 지금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속적인 노력을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개인의 노력만이 아닌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력하는 것 말이다. 그래야 그나마, 1.5도를 지킬 수 있을 테니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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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붙게 해 주세요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5
이로아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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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붙게해주세요 #이로아 #미래인 #청소년소설 #서평

귀신 붙게 해 주세요. 이로아 장편소설. 미래인. 2026.

처음 제목에서부터 흥미로웠다. 뭐지? 왜 귀신 붙게 해 달라고 하는 거지? 무섭게. 이유는 있었다. 그리고 진짜, 귀신이 붙었다! 그것도 전교 1등 귀신이!

여기까지 보면, 어떤 면에서는 무섭고 공포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오호! 하면서 이 귀신을 이용하면 뭔가 유리한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무려 전교 1등이니까! 그렇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전교 1등의 실력을 확인하고 그 이득을 볼 기회를 잡아야 한다. 이게 귀신이 무서우면서도 싫지 않은 이유가 될 것이다.

이 소설을 읽은 입장에서 정리해 보자면, 귀신이 나와서 무섭다거나 공포스더운 건 전혀 없다. 오히려 짠하고 안타깝고 속상하고 슬프다. 이 소설은 단순히 고등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가 입시를 위한 성적 고민에서 비롯된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잊고 있는 혹은 외면하고 모른 척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 용기있고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반가웠다.

성소수자라는 말이 옳은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국어 사전의 뜻풀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의 다수가 지니고 있는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으로 정의되어 있는데, 생각해보면 이조차도 차별적 설명이란 생각이 든다.) 성소수자 청소년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청소년에게 가하고 있는 기성세대 어른들과 사회의 폭력을 다루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끔찍하기도 했다. 무엇이 사회를 이토록 편협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다르다는 것이 이토록 위험하고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몰아갈 정도로 중요한 걸까 싶어 무섭기까지 했다. 과연 사회는 어디까지, 어떤 결과를 봐야만 멈출 것인가. 답답했다.

결국 다시 돌아갈 거라면, 이 세상은 주기적으로 누군가가 죽어야만 정신을 차리는 걸까.(154쪽)

곰곰이 잘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많은 사회적 차별과 시선으로 인한 죽음을 많이 겪어봤고 지켜봤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고 계속 반복되고 있는 지금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서 될 것인가 말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가볍지 않다. 오히려 많은 질문과 숙제를 남겨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 속 아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그 아이들이 겪는 개인적인 고민이나 갈등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맞닥뜨리게 된 지금 우리 사회와의 대결이고 극복해야 할 문제 지점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아이들은 직접 부딪히면서 스스로 해결하고 감당하려 노력했다. 물론 주변의 어떤 도움도 기대하지 못하고 말이다.

어른으로서 반성하게 된다. 이 아이들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힘을 실어주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 아이들이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거나 고통받지 않고 떳떳하게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생활할 수 있는 배경을 어른으로서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자신이 그런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결코 부당함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도록.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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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비밀 창비청소년문학 143
강은지 지음 / 창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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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비밀 #강은지 #창비 #창비청소년문학 #서평

소란한 비밀. 강은지 장편소설. 창비. 2026.

제목부터가 역설적이라고 생각했다. 비밀이라면 오히려 더 숨기고 조용하고 감추느라 애써야할 것 같은데, 소란스럽다고 해서. 그렇다면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이런 소란스러움이 오히려 비밀을 비밀로서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일까. 알쏭달쏭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궁금증 유발! 과연 어떤 소란한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읽어서 확인하는 수밖에. 바로 읽었고 단숨이 다 읽어버렸다. 재밌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또 안타깝기도하고 그래서 뭉클해지기도 하고. 소설 한 편을 읽었을 뿐인데 온갖 감정으로 모두 경험한 느낌이었다. 소설을 읽으며 눈에 눈물이 차올라서 혼났다.

사람 마음은 쉽게 변해. 그래서 난 변하지 않는 관계를 갖고 싶었을 뿐이야. 서로가 서로의 비밀을 알고 있으면 함부로 관계를 끊을 수 없잖아.(124쪽)

중2 아이들을 어느 정도는 잘 안다. 이 시기가 친구와의 관계와 학교에서의 소문이 무척 중요한 시기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겪는 문제, 특히 중2 여학생들이 겪는 문제의 90퍼센트는 모두 관계에 대한 고민이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해서 관계를 만들고 싶어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좋은 방식의 시작은 아닌 게 맞다. 하지만 이런 방법 말고 다른 걸 생각해내지 못할 정도의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절실한 거다. 얼마나 소중하고 간절한 지는 직접 그 입장이 되어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그저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힘겨운 시간을 버티고 있다는 걸 잘 알 수 있으니까.
그런데도 이 아이들은 저마다의 진짜, 누구에게 말할 수 없지만 무척 아프고 속상하고 화가 나는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비밀이 되고 혼자 속으로 끙끙 앓을 수밖에 없는 무거운 짐이 된다. 그런 짐을 어린 아이들이 감당하기에는 심히 벅차보이는 것이다. 그런 벅찬 무게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나누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누군가가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한 마디만으로도 그 짐의 무게는 훨씬 줄어들 수 있으니까. 사실, 이 아이들은 그것을 바랐던 것이다. 누군가를 힘들게 하려고 혹은 나쁜 의도로 내지는 진짜 협박의 목적으로 비밀을 써먹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 비밀을 통해 조금이나마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그런 관계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 아이들이 원했던 것은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얘기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비밀이라는 건 뭘까. 비밀은 서로를 아주 멀리 떨어트려 놓기도 하지만 아주 가깝게 붙여 놓기도 한다. 비밀을 공유한다는 건 서로의 약점을 주고 있는 일이라던 유진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서로의 약점을 보살펴 주는 것.(177쪽)

그래서 제목이 <소란한 비밀>인가 싶기도 하다. 사실 꽁꽁 숨기고 있는 편보다 적당히 비밀을 공유하는 편이 관계를 더 공공히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밀이 너무 조용하면 안 되는 거다. 적당히 소란스럽고 적당히 주변에 알려져야 그 비밀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보살펴'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보듬으며 관계는 더 단단해지는 것이다. 비밀이 소란스러울 필요가 여기 있었구나 싶어 살며시 미소짓게 된다.
'선인장을 안은 아이들'에 대한 아이디어가 너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아, 나도 저런 아이디어를 아이들에게 말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사심이 생기기도 했다. 자신의 아픔을 딛고 다른 이들의 상처를 안을 수 있는 아이들이 되었다는 것이 참 기특했다. 아, 이 소설 꼭 내가 아는 중2 여학생들에게 추천해줘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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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길 - 2026 볼로냐 라가치상 어메이징 북쉘프 선정 2026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
김철순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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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길 #김철순 #김세현 #문학동네 #뭉끄6기

사과의 길. 김철순 시/김세현 그림. 문학동네. 2025.

사과의 길을 따라 간다. 엄밀히 말하면 시작은 사과의 껍질을 깎아내려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껍질이 만들어놓는 길을 따라가다보면 사과를 알게 된다. 사과가 어디에서 어떻게 어느만큼, 그래서 어디까지 와 있는지에 대해서. 그걸 알아나가는 길이 제법 험난하기도 하다. 매끄럽게 슝, 타고 내겨갈 수 있는 쉬운 길은 아니다. 생각만큼 부드럽고도 새콤한 기억만을 알려주는 길도 아니다. 하지만 그 길이 있었기에 지금도 있을 수 있었을테니, 그 길이 싫지 않다. 오히려 아름답고 향기롭다. 그래서 사과의 길을 따라 가고, 갔다가 다시 돌아와 또 따라 가고, 그렇게 따라가는 여정이 기분을 새롭게 만들어준다. 어디에서도 쉽게 느껴볼 수 없었던 상큼하고 아삭한 기분을 만들어준다. 그래서인가 자꾸만 사과의 길을 따라 가고 또 가고싶어진다.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그 감각을 새롭게 느껴보고 싶어서.

<사과의 길>이란 제목을 보고 또 표지 그림을 보고는 우선, 먹음직스런 사과를 한입 베어물었을 때의 새콤함이 입안에 도는 느낌이었다. 저 빨갛게 잘 익은 사과의 껍질을 돌돌돌돌 깎아 내려가면서 껍질이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애쓰던 기억까지 덩달아 소환이다. 지금은 껍질을 깎지 않고 껍질째 먹는 게 습관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과를 왼손에 과도를 오른손에 쥐고 꼭지 부분 가까이에 톡, 칼집을 낸 뒤 껍질을 깎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사과의 길이 어떤 길일지, 궁금증 가득으로 책장을 넘긴다.

엄마가 사과를 깎아요
동그란 동그란 길이 생겨요

맞다! 사과가 동그라니 그런 사과의 껍질을 깎으면 껍질도 동그랗게 된다. 동글동글한 길을 따라가면 어떤 동그란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과의 길은 매끈하지 않다. 오히려 울퉁불퉁의 느낌이다. 예쁜 꽃이 피는가하면 또 꽃은 금방 진다. 금방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생기고, 때부터는 해, 비, 바람이 가만 놔두지 않는다. 이리 휘청 저리 휘청, 하지만 그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그렇게 새파랗던 열매가 붉은 기운 가득한 잘 익은 사과가 되었으니 말이다.
가끔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지금 내 손에 쥐어진 이 사물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나에게까지 올 수 있었을까. 어떤 시간을 거치고 견뎌야 지금의 이 모습으로 나에게 올 수 있게 된 것일까 하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괜히 뭉클해지는 순간이 있다. 이 사과만 해도 그렇다. 사과가 나에게 오기까지 어떤 시간과 과정을 거쳐야 가능했을지를 생각해보면 그 긴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격스럽다. 내가 마치 사과가 되어 그 과정 속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다고 상상해본다면 결코 만만하지 않은 기간이었을 것이다. 그런 기간을 감내하고 또 잘 견뎌서 이런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와 주었으니, 그 사과가 감격스럽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길이 툭, 끊어졌어요
나는 깜짝 놀라
얼른 길에서 뛰어내렸죠

사과의 동그랗고 동그란 길을 따라가면서 아이가 사과에 닿게 되는 그 시간도 소중하고 예쁘다. 엄마가 깎아주는 사과의 길을 따라가며 사과를 기다리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그 사과를 먹게 되기까지, 껍질이 깎이는 그 시간을 기다리며 입안에 슬며시 침이 고일 것이다, 엄마는 손을 따라 발을 까딱이며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깎아주는 사과 한 조각을 입에 물었을 때 그 모든 기다림이 농축되어 입안 한가득 사과의 향긋하고 달콤 새콤한 과즙이 흘러내릴 것이다. 그 과정이 마치 하나의 파노라마 영상을 보는 듯 느껴지며 이 아이가 사과를 먹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마지막 장면으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
나도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진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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