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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길
김철순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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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길. 김철순 시/김세현 그림. 문학동네. 2025.
사과의 길을 따라 간다. 엄밀히 말하면 시작은 사과의 껍질을 깎아내려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껍질이 만들어놓는 길을 따라가다보면 사과를 알게 된다. 사과가 어디에서 어떻게 어느만큼, 그래서 어디까지 와 있는지에 대해서. 그걸 알아나가는 길이 제법 험난하기도 하다. 매끄럽게 슝, 타고 내겨갈 수 있는 쉬운 길은 아니다. 생각만큼 부드럽고도 새콤한 기억만을 알려주는 길도 아니다. 하지만 그 길이 있었기에 지금도 있을 수 있었을테니, 그 길이 싫지 않다. 오히려 아름답고 향기롭다. 그래서 사과의 길을 따라 가고, 갔다가 다시 돌아와 또 따라 가고, 그렇게 따라가는 여정이 기분을 새롭게 만들어준다. 어디에서도 쉽게 느껴볼 수 없었던 상큼하고 아삭한 기분을 만들어준다. 그래서인가 자꾸만 사과의 길을 따라 가고 또 가고싶어진다.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그 감각을 새롭게 느껴보고 싶어서.
<사과의 길>이란 제목을 보고 또 표지 그림을 보고는 우선, 먹음직스런 사과를 한입 베어물었을 때의 새콤함이 입안에 도는 느낌이었다. 저 빨갛게 잘 익은 사과의 껍질을 돌돌돌돌 깎아 내려가면서 껍질이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애쓰던 기억까지 덩달아 소환이다. 지금은 껍질을 깎지 않고 껍질째 먹는 게 습관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과를 왼손에 과도를 오른손에 쥐고 꼭지 부분 가까이에 톡, 칼집을 낸 뒤 껍질을 깎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사과의 길이 어떤 길일지, 궁금증 가득으로 책장을 넘긴다.
엄마가 사과를 깎아요
동그란 동그란 길이 생겨요
맞다! 사과가 동그라니 그런 사과의 껍질을 깎으면 껍질도 동그랗게 된다. 동글동글한 길을 따라가면 어떤 동그란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과의 길은 매끈하지 않다. 오히려 울퉁불퉁의 느낌이다. 예쁜 꽃이 피는가하면 또 꽃은 금방 진다. 금방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생기고, 때부터는 해, 비, 바람이 가만 놔두지 않는다. 이리 휘청 저리 휘청, 하지만 그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그렇게 새파랗던 열매가 붉은 기운 가득한 잘 익은 사과가 되었으니 말이다.
가끔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지금 내 손에 쥐어진 이 사물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나에게까지 올 수 있었을까. 어떤 시간을 거치고 견뎌야 지금의 이 모습으로 나에게 올 수 있게 된 것일까 하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괜히 뭉클해지는 순간이 있다. 이 사과만 해도 그렇다. 사과가 나에게 오기까지 어떤 시간과 과정을 거쳐야 가능했을지를 생각해보면 그 긴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격스럽다. 내가 마치 사과가 되어 그 과정 속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다고 상상해본다면 결코 만만하지 않은 기간이었을 것이다. 그런 기간을 감내하고 또 잘 견뎌서 이런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와 주었으니, 그 사과가 감격스럽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길이 툭, 끊어졌어요
나는 깜짝 놀라
얼른 길에서 뛰어내렸죠
사과의 동그랗고 동그란 길을 따라가면서 아이가 사과에 닿게 되는 그 시간도 소중하고 예쁘다. 엄마가 깎아주는 사과의 길을 따라가며 사과를 기다리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그 사과를 먹게 되기까지, 껍질이 깎이는 그 시간을 기다리며 입안에 슬며시 침이 고일 것이다, 엄마는 손을 따라 발을 까딱이며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깎아주는 사과 한 조각을 입에 물었을 때 그 모든 기다림이 농축되어 입안 한가득 사과의 향긋하고 달콤 새콤한 과즙이 흘러내릴 것이다. 그 과정이 마치 하나의 파노라마 영상을 보는 듯 느껴지며 이 아이가 사과를 먹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마지막 장면으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
나도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진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