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동남아 - 24가지 요리로 배우는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현시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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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 목차를 둘어봤다. 내가 알고 있는 음식에 뭐가 있지? 열심히 훑어보았다. 아! 난 진짜 음식을 잘 모르나보다. 혹은 동남아에 대한 관심이 잘 없었나? 싶기도 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음식이 별로 없었다. 이렇게 무지했구나, 싶어 반성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어떤 음식들이길래, 그리고 내가 먹고 싶어질 음식, 그래서 덩달아 그 나라가 궁금해질 음식은 무엇일까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그나마 친숙하게 다가오는 나라의 음식들이 있다. 바로 베트남의 음식들. 우연한 인연으로 베트남에 잠시 살있다고 베트남의 음식들은 낯이 있었다. 반갑기도 했고. 그래서인가 베트남 음식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베트남 쌀국수 '퍼'나 쌀밥 '껌떰'은 주말 아침 자주 사 먹었던 식사였다. 집 앞에만 나가도 바로 먹을 수 있던 쌀국수 집과 껌떰 집이 있었다. 가서 먹거나 혹은 포장해와서 먹거나. 가끔 저녁으로 동료들이나 혹은 가족끼리 '반쎄오'도 종종 먹었다. 전을 쌈에 싸서 먹는다고? 싶어 신기했던 기억이. 나중에는 쌈 채소를 함께 겯들여 먹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졌던 베트남 음식들이었다.

산업화 정책에 따라 노동자들이 일자리가 있는 도시로 몰려들었고, 이들이 간편하면서도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들이 길거리 상인들에 의해 팔리기 시작했다.(251쪽)

이 말에 동의했다. 베트남음식은 어디에서든 간편하게 길거리 음식으로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베트남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느낄 것이다. 길거리 음식들의 다양함과 간편함을. 그리고 이것이 또한 그 나라를 알아가는 재미라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외국인이나 타지인을 혐오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문화적으로 개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도가도 같은 음식도 다양한 재료를 땅콩 소스로 버무리듯이 혼합성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46쪽)

인도네시아는 생소하다. 가본 적도 없고 그동안 관심을 기울여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이럴 때 참, 무지했구나 싶다. 사실, 채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샐러드에 관심이 제일 먼저 갔다. 어떤 샐러디가 각종 나라의 특징에 맞춰 발달되어 있을까 싶어 궁금하기도 했고. 인도네시아의 '가도가도'. 그 나라의 말을 잘 모르니 이름이 낯설지만 재밌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음식은 결국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구나 하는 생각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결코 그 나라의 방식으로만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 어떤 시간들과 과정을 겪으며 지금의 문화가 형성되었는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이 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다른 나라의 음식에 무엇이 있는가를 흥미롭게만 혹은 신기하게만 보고 지난칠 것은 않겠다는 생각. 우리나라의 음식도 그 나름의 사연이 모두 담겨 있듯이, 음식은 그 나라를 알아가는 좋은 시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을 그렇게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신기한 발견. 팟타이, 미고랭, 빤싯 등. 이 음식들은 사실 우리의 잡채와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사람 사는 곳의 음식이라는 것이 그리 다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재료와 어떤 향신료가 겯들여져 있는가만 다를 뿐, 각 나라의 음식 문화가 그리 동떨어져있는 것은 아닐 것 같았다. 이걸 보편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가끔 여행에서 돌아오면 사람들이 그 나라의 음식이 어땠는지를 물어보고, 사람들은 우리 입맛에 맞았어라는 얘기를 종종 한다. 이건, 우리에게 익숙해져있던 음식에 대한 생각이 그 나라에서도 비슷하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친숙해지는 느낌이었다.

각 나라를 여행한 기분이면서 그 음식들의 맛을 상상해본다. 다음 여행지를 떠올려보거나 길거리에 앉아 음식을 먹어보는 나를 그려보기도 한다. 여행을 즐겨하지 않아 당장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여행을 가게 되는 때 다시 이 책을 펼치고 그 나라의 음식들을 적어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먹어보고 함께 먹는 사람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이제 좀 안다고 아는 척 좀 해봐도 좋겠다는, 웃음이 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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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하우스
전지영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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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하우스 #전지영 #전지영소설집 #창비 #서평단 #서평 #책추천

어, 이 소설들 뭐지? 소설을 하나씩 읽어나가면서 독특하고 때론 괴기하기까지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섬뜩하기도 하고 또 무섭기도 했다. 평범하지 않았고 뭔가 이상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소설이 이렇게 끝난다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뭔가 해결되지 않은 찜찜함을 남긴 채 끝난다고? 그러면서도 자꾸 궁금해 다음 소설을 바로 연이어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집은 이런 식이구나. 사람 마음을 이렇게 끌어당기는구나, 싶었다.

"이유가 뭐든 그냥 버티시라고요."(...)
"할 수 없죠, 뭐. 모멸감도 견뎌보세요. 원장님이 망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잊을 거예요."(144-5쪽)

그리고 생각한 것이, 어쩌면 이것이 우리 세상에 대한 민낯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은 다 알고 있지만 모르는 것처럼, 마치 나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순진한 척을 하고, 사람들은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이 소설들을 읽으면서 불편해지는 마음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소설들에는 편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모두들 한 가지 이상의 문제들을 떠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애써 그 문제들에 신경쓰고 있지 않은 것처럼 겉으로 뻔뻔스러운 모습까지 보인다. 하지만 알고보면 그 문제에서 누구 하나 자유롭지 못하다. 해결할 수 있는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견디고 살아내는 수밖에. 그러다 부딪히는 난관에서 결국 무너진다. 그리고 그 무너짐 안에서 다시 살아낼 궁리를 하는 것. 이게 어쩌면 이 소설에서 얘기하려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봤다.

제목이 <타운하우스>인 이유가 궁금했다. 보통의 소설집은 단편 소설의 제목 중 하나가 책의 제목이기 마련인데, 이 소설집은 어디에도 없는 제목을 새로 붙였다. '타운하우스'라고 하면, 저밀도 주택단지. 많은 사람들이 빼곡하게 살아가는 아파트와는 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 소설들과 '타운하우스' 사이의 관계는 뭘까.

'타운하우스'가 안온함, 여유, 풍요로움을 상징한다면, 그 안에서 사는 나는 대척점에 존재하는 불안과 외롭게 싸워온 셈이다.(298쪽_'작가의 말' 중)

겉으로는 무척 평온하고 안락한 삶을 사는 상류의 상징처럼 '타운하우스'가 비춰질 수 있지만, 그 안에 사는 삶이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사람 사는 건 누구나 비슷할 거니까. 좋고 넓은 집, 어느 정도 안정적인 경제적 사회적 위치, 웬만한 건 모두 갖추고 산다고 느껴지는 삶 속에서도 안고 가야 할 문제와 역경은 있기 나름이니까. 그리고 그게 어쩌면 진짜 우리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들을 읽으며 불안하고 인상이 써지며 무엇 하나 속시원히 해결되지도 않은 답답함이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미심쩍음이 다음 소설을 기대하게 되고 또 읽고 궁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전지영. 소설가의 이름을 기억해두어야겠다. 이 다음 소설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우리가 흔히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다. 이 소설집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면, 다음 소설을 찾아 읽지 않을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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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는 토요일 새벽 - 제1회 아르떼문학상 수상작
정덕시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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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내용이 쉽게 연상되지 않았다. 거미가 주요 소재인 건 알겠는데, 그래서 토요일 새벽이 무엇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럴 때는 직접 읽어 궁금증을 해소하는 수밖에 없다. 제목이 독특하고 직관적이지 않아 이런 제목이 정해진 이유가 궁금해졌다.

오늘 무지개다리를 건넌 두희는 17년을 함께한 나의 반려동물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두희를 마음껏 쓰다듬었다. 빳빳하지만 부드러운 털들이 손끝을 지나갔다.(...) 나의 이십대와 삼십대를 함께한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났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위로할 것이다. 하지만 두희가 거미란 것을 알게 되면 어떤 사람들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두희가 타란툴라라는 것을 알게 되면 질문들이 쏟아진다.(7-8쪽)

소설은 이렇게 시작했다. 타란툴라 반려동물 두희의 죽음. 그리고 그런 죽음을 겪는 수현의 마음. 처음에는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무려 17년이었고 두희와의 시간들 속에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건 단순히 두희를 둘러싼 일들만도 아니고 이때는 수현과 두희를 함께 묶어 그들을 둘러싼 일들이 17년의 시간과 그 이후까지의 시간들 속에서 일어났다고 해야 맞다. 그러니 수현의 삶에서 두희를 빼고는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토요일 새벽마다 두희의 방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출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어둠에 익숙해지면 두희의 움직임을 어렴풋하게 살필 수 있었다. 두희도 눈치챘을까. 유리벽 너머에 함께 지내는 거대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그 무언가는 우호적인 관계를 원하는 개체이며, 토요일 새벽마다 졸음을 참고 자신과 온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137쪽)

누군가와 함께하기 위한 노력이 이토록 일방적일 수 있을까. 수현의 두희를 향한 한 방향의 마음을 과연 두희가 알았을까. 칸이 칭과 교감하기 위해 굶기는 방법으로 겨우 산책을 해나가는 것을 본다면, 수현이 두희와 토요일 새벽을 함께 보내는 것도 어쩌면 인간의 일방적인 짝사랑이며 인간중심의 시각으로 다른 개체를 살피는 것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두희가, 칭이 이런 인간들의 행동이 반가울까. 과연 좋아했을까, 아니 이런 노력이라는 것을 알아채기는 했을까.

J가 말했다. 인간이 아무리 코끼리의 사육 환경을 신경쓴다고 하더라도 야생보다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는 없으며,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가 인간의 욕심 때문에 그곳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203쪽)
"근데, 인간적으로 생각하는 게 뭐가 나쁜 거야? 우린 인간이잖아. 얘네도 타란툴라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이해할 텐데."
"사람들이 가진 힘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너무 강력하잖아."(219쪽)

소리가 제 자식을 위해 거침없이 두희를 내리치려 했던 상황이 떠올랐다. 인간은 너무 강력하다. 한순간 자신이 갖고 있는 강력한 힘으로 다른 동물들을 제압하고 죽일 수 있다. 그런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의 편의와 욕심으로 동물들을 이리저리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분명 문제일 것이다. 그러니 J가 이제 그만하려는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환경과 관련해서도 동물과 관련해서도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국 인간이 끼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은 인간에 의해 자연 혹은 야생의 환경이 바뀌는 것이 사실이니까. 그렇게 봤을 때 불빛을 제거하고 최대한 타란툴라의 삶의 환경을 최대한 맞춰주었던 방에 있었던 두희는 과연 괜찮았던 것일까. 야생에서의 삶과 비교한다면 결국 인간의 보호 안에 주는 먹이를 먹으며 생활했던 동물원의 코끼리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같은 소통 방식을 갖고 있지 않은 동물들 사이의 교감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교감하고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일지도 궁금해졌다. 이건 꼭 다른 동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같은 말을 한다고 해도 인간들 사이 소통도 어려울 때가 많으니까. 어떤 방식으로 나의 환경과 모두의 환경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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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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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없이싫어하는것들에대하여 #임지은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9기 #서평단 #서평 #책추천

그럴 때가 있다. 미움 받고 있다는 생각, 주변의 시선이 나를 형편없는 존재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잘나가고 멋지고 훌륭하지만 그렇지 못한 내가 상대적으로 별볼일 없는 존재로 느껴질 때. 그럴 때 과연 난 어떤 생각들로 나를 지켜왔나 생각해보면, 대부분 자책이거나 혹은 숨는 방법으로 내 보호막을 만들곤 했던 것 같다. 그리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었으나 그렇게라도 내가 더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었으니 안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세상의 많은 시선들에 스스로를 지켜나가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방법과 이유를 찾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침없는 표현을 서슴없이 할 줄 아는 것을 보면서도, 나보다 낫다 싶었다.

'등신들 같으니!'
비죽비죽 새어나오던 웃음과 물결처럼 퍼져오던 안도.
이토록 많은 말이 오가는 세상에 말 한마디가 그토록 크게 사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고야 만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버티고 또 흔들릴 만큼 나는 취약했다.(25쪽)

속으로라도 내뱉는 한 마디에 무너졌던 나 자신을 조금은 세워놓을 힘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너무 나의 심정을 그대로 적어놓아서. 딱 나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누군가의 말과 평가, 나를 향해 날아오는 모든 반응에 순간 긴장하고 심장이 두근댄다. 지금까지를 되돌아봤을 때에도, 그 말의 사실 여부나 타당성의 판단은 사라진다. 다만 그 말 속에 담긴 뜻과 감정만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런 순간을 마주하게 될 때의 나. 세상 작아지곤 한다.

몇몇 친척들은 할머니를 흉하게 여겼다. 할머니가 보이려던 기품과 할머니가 사는 곳 사이에 낙차가 있다는 거였다. "노인네가 참 노인네답지 않게 허영이 많아." 그건 엄마가 들은 "미친년, 지하에 사는 주제에"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44쪽)

이런 시선들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주관적인 판단이 사실인 양 너무 쉽게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 그런 판단들을 아무렇지 않게 대놓고 말하는 탓에 이래도 된다는 생각을 세상에 퍼지게 되고, 그렇게 퍼진 생각이 마치 그래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는다. 당연한 건 이 세상에 없다. 그런 당연함으로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것도 옳지 않다. 옳지 않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을 더 위에 놓고 싶은 욕심으로 생각할 줄 모른다. 어쩌면 그들도 그렇게 하는 게 자신을 지키는 방법일 수도 있겠으나, 이런 방법뿐이라면 세상이 너무 험난하기만 한 것이 아닐까.

나는 모니터에서 벌거벗은 나를 만날 날을 각오해왔다. 이 문장을 쓰는 동안 영혼이 저 아래 깊숙이 가라앉는다. 한 여성이 살아가는 데 그런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에. 각오해온 일이 정말 일어났으며 여전히 이런 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여성에게 일어난다는 것에. 그럼에도 각오가 나를 돕는다. 나는 내 삶을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숨고 숨기는 대신 차라리 내가 처한 상황이 나와 함께 드러나기를 원한다.(141쪽)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부분 불쾌한 감정이나 나 자신을 무너뜨리는 상황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을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누군가와의 알지 못하는 관계 안에서도 문제는 발생한다. 그런 문제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일들에 대해서까지도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무척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세상이라는 것이 여전히 그런 사회적 폭력을 상당 부분 안고 있으니 이 또한 이 사회를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이렇게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 더 씁쓸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이럴 때마저도 작가는 자신이 어떤 태도와 생각을 갖고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해 명확히 말할 줄 안다. 이런 태도가 있었으므로 자신을 지킬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참 단단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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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 창비교육 성장소설 13
보린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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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 #보린 #보린장편소설 #창비교육 #가제본서평단 #서평 #책추천

연우를 큐브 안에 넣었던 선택은 정당했던 것일까. 안전했던 게 맞을까. 큐브가 연우에게 아프지도 다치지도 않게 해주는 보호막은 확실했던 걸까. 그런 보호막이 생겨 고마워했어야 했던 걸까. 젤리곰과의 동거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어떻게 보면 큐브는 연우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장치일 수 있다. 무엇으로부터든 연우를 보호할 완벽한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 외롭고 슬프게 혼자 두지도 않을 거지만, 외부의 어떤 위협으로부터도 모두 지켜줄 수 있는 든든한 장치였던 거니까. 하지만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보호막이, 이런 보호막 안의 삶이, 진짜 옳은가?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큐브의 보호 안에서 사는 삶, 한편으로는 재미가 없기도 하다. 왜냐하면, 삶이란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심사숙고하면서 무언가를 결정하고 그 결과가 또 다시 문제를 만들기도 하는 법이니까. 그 결정에 후회도 하고 또 갈등도 하면서 새로운 그 다음을 꿈꿀 수 있는 가능성도 만들 수 있는 거니까. 어쩌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안전하기만 해서는 삶다운 삶을 살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우는 큐브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미지근한 온실 밖, 심장이 말이 안 되게 뛰고, 땀이 삐질삐질 솟고, 더운 숨결이 귓가에 감기던 그 순간, 불안하고도 외롭지만, 서로 닿으려고 몸부림치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216쪽)

위험 요소로부터 무조건 안전하다는 것이 완벽한 삶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어쩌면 조금은 위험하고 두려운 상황이 펼쳐질 것에 대한 두근거림이, 때론 그 다음을 살아내는 떨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떨림을 서로 보듬어줄 수 있는 손길이 있을 것이고, 그런 손길을 통해 하나씩 스스로 해결해나갈 수 있는 힘도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런 힘이 쌓이고 쌓이면 점점 두려움은 안정되어 갈 것이고, 그런 안정을 통해 삶의 두께는 더 두툼해질 것이다. 그렇게 두툼한 삶으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연우는 기꺼이 해 나갔던 것이다.

이 소설을 다 읽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과연 이 큐브는 지금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의 공간일까. 어쩌면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불안함에 만들어 낸 가상의 공간일 수도 있다. 혹은 사회로 나가기 전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보호막일 수 있다. 때론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구속하는 꽉 막힌 공간을 수도 있고, 그런 공간에서 하루가 또 하루가 되는 반복적인 시간 속에 살아가야하는 우리 아이들이 처한 현실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다 잘 되라고, 안전하게 만들어 주는 거라며 큐브를 만들고 손을 보며 그 밖으로 나가기 못하도록 가로막을 수도 있다. 큐브 밖 세상은 너무 험난하고 무섭기만 한 곳이니까. 나가지 않고도 완벽한 삶의 환경이 갖춰질 수 있다면 굳이 나갈 이유가 없다고, 그러니 큐브 안의 삶을 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일수록 더욱 나가야 하는 법. 그런 세상을 직접 부딪히며 세상 속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는, 본인 스스로가 선택해야 할 몫이니까.

목소리가 젤리 곰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는 젤리 곰을 구석구석 뜯어보았다. 실제로 뜯어보려고도 했지만, 젤리 곰이 울고불고 난리 치는 바람에 디지털 현미경을 사서 확대해 보았다.(69쪽)

웃겼다. 울고불고 난리 치는 젤리 곰의 모습, 그런 젤리 곰을 더 공포로 몰아가지 않으면서 속속들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디지털 현미경을 선택하다니! 현미경 아래 젤리 곰을 놓고 관찰하는 연우의 모습이 상상이 되어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와중에 이런 유머라니.

분명 불안하고 불투명한 삶 안에 놓여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살아내느라 힘겨워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불안함과 공포가 공황과 같은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누군가가 만들어 준 보호막 밖 세상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 소설이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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