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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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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가 있다. 미움 받고 있다는 생각, 주변의 시선이 나를 형편없는 존재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잘나가고 멋지고 훌륭하지만 그렇지 못한 내가 상대적으로 별볼일 없는 존재로 느껴질 때. 그럴 때 과연 난 어떤 생각들로 나를 지켜왔나 생각해보면, 대부분 자책이거나 혹은 숨는 방법으로 내 보호막을 만들곤 했던 것 같다. 그리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었으나 그렇게라도 내가 더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었으니 안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세상의 많은 시선들에 스스로를 지켜나가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방법과 이유를 찾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침없는 표현을 서슴없이 할 줄 아는 것을 보면서도, 나보다 낫다 싶었다.
'등신들 같으니!'
비죽비죽 새어나오던 웃음과 물결처럼 퍼져오던 안도.
이토록 많은 말이 오가는 세상에 말 한마디가 그토록 크게 사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고야 만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버티고 또 흔들릴 만큼 나는 취약했다.(25쪽)
속으로라도 내뱉는 한 마디에 무너졌던 나 자신을 조금은 세워놓을 힘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너무 나의 심정을 그대로 적어놓아서. 딱 나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누군가의 말과 평가, 나를 향해 날아오는 모든 반응에 순간 긴장하고 심장이 두근댄다. 지금까지를 되돌아봤을 때에도, 그 말의 사실 여부나 타당성의 판단은 사라진다. 다만 그 말 속에 담긴 뜻과 감정만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런 순간을 마주하게 될 때의 나. 세상 작아지곤 한다.
몇몇 친척들은 할머니를 흉하게 여겼다. 할머니가 보이려던 기품과 할머니가 사는 곳 사이에 낙차가 있다는 거였다. "노인네가 참 노인네답지 않게 허영이 많아." 그건 엄마가 들은 "미친년, 지하에 사는 주제에"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44쪽)
이런 시선들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주관적인 판단이 사실인 양 너무 쉽게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 그런 판단들을 아무렇지 않게 대놓고 말하는 탓에 이래도 된다는 생각을 세상에 퍼지게 되고, 그렇게 퍼진 생각이 마치 그래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는다. 당연한 건 이 세상에 없다. 그런 당연함으로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것도 옳지 않다. 옳지 않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을 더 위에 놓고 싶은 욕심으로 생각할 줄 모른다. 어쩌면 그들도 그렇게 하는 게 자신을 지키는 방법일 수도 있겠으나, 이런 방법뿐이라면 세상이 너무 험난하기만 한 것이 아닐까.
나는 모니터에서 벌거벗은 나를 만날 날을 각오해왔다. 이 문장을 쓰는 동안 영혼이 저 아래 깊숙이 가라앉는다. 한 여성이 살아가는 데 그런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에. 각오해온 일이 정말 일어났으며 여전히 이런 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여성에게 일어난다는 것에. 그럼에도 각오가 나를 돕는다. 나는 내 삶을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숨고 숨기는 대신 차라리 내가 처한 상황이 나와 함께 드러나기를 원한다.(141쪽)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부분 불쾌한 감정이나 나 자신을 무너뜨리는 상황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을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누군가와의 알지 못하는 관계 안에서도 문제는 발생한다. 그런 문제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일들에 대해서까지도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무척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세상이라는 것이 여전히 그런 사회적 폭력을 상당 부분 안고 있으니 이 또한 이 사회를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이렇게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 더 씁쓸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이럴 때마저도 작가는 자신이 어떤 태도와 생각을 갖고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해 명확히 말할 줄 안다. 이런 태도가 있었으므로 자신을 지킬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참 단단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