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계절 - 박혜미 에세이 화집
박혜미 지음 / 오후의소묘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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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계절'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봤다. 각 계절은 어떤 색과 느낌, 그리고 어떤 사람과 이야기가 남아 있는지 곰곰이 떠올려봤다. 지금은 겨울이지만 이렇게 시간을 들여 각 계절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각 계절 속으로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봄이라고 또 여름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계절이 품어내고 있는 분위기가 그대로 전달되었다. 어느 지점에서의 바람, 어떤 풍경 속에서 마주했던 인연, 그리고 그 안에 가만히 숨쉬고 있었던 모든 시간. 그런 시간들을 따라가다보니 그 계절들을 고스란히 따라 지나고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이 책만이 갖고 있는 매력인 것 같다.
그냥 에세이가 아니라는 점이 그 매력을 더해주었다. 어떤 책이든 글에 삽화가 더해지면 그만큼 더 시간을 들여 읽게 되어 있다. 글은 설명해주고 있지만 그림은 직접 설명해야 하니까. 나만의 설명으로 만들어 채워나가야 하기 때문에 더 공을 들여 읽게 된다. 그림을 읽는 것이다, 그것도 더 정성스럽게. 이 책이 그랬다. 글에 시선이 머물고, 그림에 시선이 더 오래 머물렀다. 그림과 글을 연결시키고, 또 그림을 따로 떼어놓고 그 그림에 나의 이야기를 연결시켰다. 그저 그림을 생각없이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또 그림 속에 나를 세워두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그림의 글을 천천히 읽었다. 그때 글은 또 다른 느낌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뜨겁고 단 커피로 언 몸을 녹이며,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 쌓인 흰 눈을 봤다. 어느새 내려온 밤에 닿아 투명하게 반짝인다. 차갑기만 했던 바람이 한 발짝 다가와 둥그렇게 휜 등을 쓸어줄 때, 지하철역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이 떠오르며 내내 입속을 맴돌았던 말이 혼잣말처럼 튀어나온다.(11쪽)

빠르게 읽어 내용을 파악해야 하는 문장들이 아니었다. 이 글을 읽으며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 있었고, 아름답게 반짝이는 흰 눈이 보였고, 바람이 등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속으로 혼잣말을 뱉었다. 차가우면서도 따뜻해지는, 허하면서도 따뜻한 옷으로 몸을 감싸며 온기를 가두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가만히 몸을 숙여 풀어진 신발끈을 천천히 다시 묶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서걱서걱 걸을 때마다 어딘가에 붙어 있던 모래알들이 이유 없는 곳에 떨어져 새로 자리 잡는다. 어쩌면 이런 계속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호주머니가 여름으로 불룩하다. 이 계절이 지나갈 때까지 모래알들이 여기저기 기억처럼 떨어질 거다. 어떤 건 지워져서 아쉽고, 어떤 건 잊혀서 아쉽고, 어떤 건 가벼워서 아쉽고, 그리고 어떤 건 사라지길 바라도 털어지지 않아 무겁고.(59쪽)

나의 여름은 어떤 것으로 호주머니가 불룩했을까. 반짝이는 윤슬 사이로 눈이 부시게 빛났던 나의 계절은 어떤 아쉬움과 무거움을 남겨두었을까. 어쩌면 떨어져나가기를 바라지 않고 있어 점점 더 불룩해지는 주머니를 끌어안고 그 시기를 묶어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이런 건가. 누군가의 사적인 계절인 나의 사적인 계절로 넘어오는 것. 소리소문없이 은근슬쩍 나의 비밀한 계절이 되었다.

괜찮다는 말을 내가 하고 나만 듣는 게 외로워, 오늘 밤도 너에게 전화를 건다. 서로의 푸념이 포물선을 그리며 지평선 뒤로 사라지고 잠시 공백이 찾아오면, 수화기 너머 허밍에 가까운 노래를 퀴즈처럼 네가 부르고, 나는 정답처럼 찾은 멜로디에 가사를 넣어 따라 불렀다. 쌓이는 음들이 불안을 차분함으로 메워가고, 조급함은 우리의 웃음에 실려 저만치 흐릿해져 갔다.(85쪽)

마치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 문장들을 가만히 듣고있는 듯했다. 고요하고 차분한 말투를 소리죽여 가만히 듣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온통 마음이 편안함으로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수화기 너머 허밍의 노래가 감미롭게 들려오는 듯한 따스함까지 연성됐다고 하면 과장일까. 그런 바람을 갖고 있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었다. 읽다보면 내 마음이 함께 움직여다녔다. 말 그대로, 감성을 건드리는 책이었다. 이 계절에도 다음 계절에도 어울리는 책이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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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빙허각 창비아동문고 340
채은하 지음, 박재인 그림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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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빙허각 #채은하 #장편동화 #박재인 #창비 #창비아동문고 #서평단 #서평 #책추천

빙허각 이씨. 이런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이 동화를 읽지 않았다면 <규합총서>라는 책에 대해서도 몰랐을 것이다. 조선 유일의 여성 실학자. 대상을 지칭하는 말 앞에 '여성'이란 단어가 붙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조선시대를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감안하고 볼 문제이긴 하다.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어땠을 지에 대해서는 익히 배워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서 '여성'이란 단어가 따로 붙고, 특히 그 앞에 '유일'이란 말까지 함께 쓰이고 있다는 것은, 빙허각이 어떤 삶을 살았을까에 대해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면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면, 대단한 분일 거라는 점은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내가 그 시대에 빙허각을 마주쳤다면 덕주처럼, 한번의 마주침만으로도 충분히 그분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 뜻을 본받아 나의 길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줄 수 있는 분명하고도 힘 있는 분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 눈에는 불이 담겨 있거든. 새벽 언덕에서 마주칠 때부터 알아봤지."(86쪽)

눈에 불이 담겨 있음을 한번에 알아챈 빙허각. 그리고 그런 불을 눈에 담고 있던 덕주. 어쩌면 비슷한 사람을 알아보고 서로 끌렸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말을 붙여보지 않아도, 서로 구체적으로 묻지 않아도 모습과 눈빛만으로도 어떤 사람일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 혜안을 빙허각은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덕주 또한 남들보다 더 적극적인 열정을 갖고 제 삶에 대한 고민을 할 줄 아는 아이이므로, 당연히 범상치 않은 빙허각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런 면에서 이 둘의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단연, 눈에 불이 담겨있는 이들이라는 것. 그런 불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결국 자신이 결심한 것을 끝까지 이루어내는 강단 있는 주체성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갖고 있던 모습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역량이지 않나 싶다. 주체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 나갈 것인가를 스스로 분명히 할 줄 알고 노력하여 끝내 이루어낼 줄 아는 것. 주체적으로 자신의 자아를 확인하고 스스로 미래를 설계해나갈 줄 아는 것. 이것이 특히 지금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자질이니까 말이다.

나는 거꾸로 그 무엇에도 기대지 않는 이름을 지은 거야. 물론 아무 데도 매이지 않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 그때 나는 무척이나 헛헛하고 갑갑했거든. 지금 너처럼.(121쪽)

빙허각이란 호에 담긴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느 것에도 기대거나 매이지 않고 싶다는 갈망이 담겨 있다. 이는 거꾸로 봤을 때 당시 무언가가 매우 강하게 얽어매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덕주의 아버지가 하는 말들만 보더라도 '여인은'으로 시작하는 말들이 무척 불편한 감정을 만들어 낸다. 이는 당시 여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대우가 어땠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덕주와 같은 결심과 실천이 무척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고, 그런 대단한 삶을 가능하도록 도와준 분이 빙허각이라는 것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또 한 명의 인물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이다.

"왜 쓰느냐. 그 답은 네가 한 말 속에 있겠구나. 내가 일평생 해 온 일이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일이니까. 설령 누군가는 고작 여인의 일이라 깎아내리고, 또 그 일이 거칠고 고되다고 외면하더라도 그 속에는 내 경험과 삶이 들어 있으니까. 그건 어떤 책에서 읽는 글귀보다 취하지 않겠니."(151쪽)

나라를 구하는 일이라거나 혹은 대단히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한 일이어야 의미있고 값진 것은 아니다. 남들에게는 별 거 아닌 것 같은 것이라도 자신이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값진 것이다. 빙허각의 말을 통해 그 가치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일평생 해온 일', '가장 잘 아는 일', '내 경험과 삶에 들어 있'는 일이라면 이미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우리가 해 나가야 하는 일이 결국은, 이런 일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 삶을 통틀어 가장 잘 알고 내내 앞으로도 해 나갈 일, 그런 일에 나의 힘과 정신을 모두 쏟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생각을 덕주가 고스란히 배운 것이고, 그래서 덕주는 제 스스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결국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덕주가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빙허각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나는 어떤 삶을 살아오고 있으며 또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됐다. 우리 아이들이 읽는다면 더욱,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재밌으면서도 의미있는 동화를 만나 기분이 좋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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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문경민 지음 / 우리학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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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문경민 #우리학교 #서평단 #서평 #책추천

무언가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어느 무엇도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는 원하는 바를 이루기 어렵다.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는 것이다. 그걸 지금의 이 나이, 시기에도 잘 모르기가 쉽다. 어느 정도의 적당히로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안이한 생각은 잦은 실패와 좌절의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안 된 결과만을 탄식하지 그 과정이 어땠는지는 돌아보지 않는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 그 과정에서의 문제일 때가 더 많은 법인데 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나의 악기를 자신이 원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연주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까. 어떤 과정을 겪고 또 어떤 힘겨운 싸움을 이겨야만 도달하고자 하는 위치까지 갈 수 있는 걸까.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이 소설로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든 과정을 겪고 버티는 것이 어렸웠을 거라는 것도.

"첼로 현의 장력이 엄청나거든요. 그 힘을 버티는 게 버거웠을 겁니다."(30쪽)

보통,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또 어떤 것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를 결심하고 준비하는 시간은 대부분 청소년 시절이다. 어른들은 쉽게 말한다.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어른이 되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곧 청소년 시기를 그 되고 싶은 것을 위한 시간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진짜, 이게 당연한 것이 맞나?
악기사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버티는 것은 버거운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무조건 버티라고 한다. 버텨야 된다고 한다. 인혜에게 또 연수에게 그래야한다고 강요했던 것처럼. 하지만 이렇게 계속 엄청난 힘을 버티다보면, 보거워 휘게 되어 있다. 그렇게 휘어 못 쓰게 될 수 있다. 과연 이게 옳은가?

내가 정말 첼로를 좋아하기는 할까.(33쪽)

인혜가 여러 번 반복적으로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정말, 첼로를 좋아하는 것인지, 첼로가 좋아서 이 모든 것을 버티며 노력하고 있는 것인지 말이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다면 아무리 주변의 도움이 있더라도 소용 없는 것이다. 결국 자기 스스로 답을 찾고 그 답을 갖고 그 다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만, 진짜 성장이 가능한 것이고 또한 제대로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기존의 어른들은 알려주지도 않을 채 강요만 하는 것이다. 마치 어른들은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아이들은 따라오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른으로서 반성하게 되는 지점이었다. 과연, 아이들은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이렇게나 노력을 하는데, 과연 어른들은 그런 노력을 알기는 하는지, 혹은 그런 노력을 응원하지는 못하고 그저 윽박지르거나 어른의 뜻대로 움직이기를 고집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아이들이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자신만의 삶을 살아낼 줄 알게 된다는 것일텐데, 과연 인혜가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어른들의 말과 기대만으로 어른이 되었을 때 과연, 충분히 잘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눈을 감고, 주머니 속의 브릿지를 감싸 쥐고, 인혜는 오랜 고민에 마침표를 찍었다.
할머니, 그래서 나는 첼로예요.(194쪽)

그런 의미에서 첼로 3인방의 결정이 놀랍도록 반갑고 고마웠다. 연수가 반도네온을 선택하게 되는 것도, 대호가 실용음악에 뜻을 품게 되는 것도, 그리고 인혜가 결국 첼로를 결정하게 되는 것도, 모두 누군가의 영향이나 혹은 강요, 기대와 의무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이 아닌, 스스로가 자신을 잘 알고 또 어떤 결정이 후회가 없는 것인가를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한 것들이어서, 그만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선택을 속에 마음으로 혹은 물질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해주었던, 어른이 있었다는 것은 이들에게는 무척 소중한 인연이었던 것이다. 인혜의 할머니가 인혜에게, 대호와 연수에게, 그리고 엄정현 선생님과 주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살펴보면, 결국 자신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조력자로서의 할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이 모든 결심과 변화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한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 것인가의 답도, 이 소설을 읽으며 얻게 되는 것 같다.

휘어진 브릿지를 보며 인혜는 마음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이 브릿지처럼 휘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단하게 잘 지탱해나가야겠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스스로 강력한 힘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쓸모 없는 브릿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브릿지처럼 휘기 전에 자신을 잘 들여다보며 단단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겠다, 라고 말이다.

사랑하는 게 어렵지만 그래도 해 보려고 한다고. 사랑스러워야만 사랑하는 건 아니라고. 사랑은 의지이고 결심이기도 하다고.(...)
인혜가 사랑하며 살아가길(191쪽)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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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시타 호가 곧 출발합니다
비르지니 그리말디 지음, 지연리 옮김 / 저녁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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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속의 세계 일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나도 가고 싶다, 였다. 석 달 동안의 여행, 단 누군가와 함께 갈 수 없고 반드시 혼자 가야하는 여행. 여행이 진행되는 배 위에서 누구와도 사랑을 나누면 안 되고, 철저히 '고독'한 여행을 즐겨야하는 여행.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가고 싶은 이유가 세계 일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독'에 있다는 것이다. 혼자의 시간, 고독한 시간을 오로지 자신의 시간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이 있었다. 물론, 소설 속 인물들처럼 무언가의 상처를 받았다거나 혹은 사랑에 실패하고 아파서, 그런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가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많은 사람들과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런 삶에서 사람들 간의 관계가 때론 힘들고 지치게 할 때가 있다. 내 마음과 달라서 혹은 오해가 생겨서,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거나 자신이 자신이 아닌 모습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을 때, 도망치듯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찾게 된다. 이 소설을 다 읽고나서는 소설 속 인물들이 사랑에 실패하고 혹은 상처를 받았다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생겼고, 그런 질문의 답을 찾으려고 '펠리시타 호'를 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펠리시타 호를 타고 싶은 것이다.
물론 책임자는 잘 몰랐던 것이다. 사람이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사람이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당연히 감정이 생기고, 그런 감정을 서로 주고받으며 그 관계가 돈독해진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을 통해 부당한 지시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많은 시간들을 펠리시타 호의 책임자로 지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그것을 깨닫게 되다니.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깨닫게 된 것이 다행이기도 하다. 어떤 생각과 판단이 옳은 것인가,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마음이 어때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런 마음이 다시 어떤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인가를, 책임자도 결국 알게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앞으로 이 펠리시타 호를 타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규칙을 들이밀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을 다 읽고 떠오른 단어는 '관계'였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일들은 결국 쌓이고 쌓여 관계가 된다는 것. 서로 전혀 다를 것 같은, 그래서 만나고 또 마주칠 이유도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우연히 한 공간에서 만났다. 특히 배라는 공간은 밖으로 쉽게 나갈 수 없으므로 제한된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계속 만나고 마주칠 수밖에 없다. 물론 세계 일주의 특성상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그 도시를 탐험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어쩌면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익숙한 사람들과의 삶을 배 안에서 살다가, 잠깐 낯설고 흥미로운 시간을 새로운 도시에서 경험한다. 그리고는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신이 있어야 하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인물들은 이런 반복을 통해, 진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던 것은 아닐까. 진짜 자기 자신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이런 방식을 통해 경험하며 스스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펠리시타 호가 존재하는 이유가 어쩌면, 이런 이유였던 것은 아닐까, 혼자 짐작해봤다.
그래서 이 배를 더 타고 싶어졌다. 여행에 진심은 없다. 때론 조금 귀찮아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 자신을 알고 관계를 만들고 나의 삶을 찾는 데에는 진심이다. 어떤 삶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의 답이 필요할 때, 펠리시타 호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펠리시타 호에서의 여행을 함께 한 기분이다. 이들과 함께 석 달 간의 시간을 함께 여행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나도, 나의 답이 무엇인지를 찾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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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다시 바다가 된다
김영탁 지음, 엄주 그림 / 안온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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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다시바다가된다 #김영탁_글 #엄주_그림 #안온 #서평단 #서평 #책추천

그녀가 바라보던 섬, 그리고 그 섬의 바깥. 그 밖을 향하고 있던 뽀족했던 눈이 둥글둥글해질 때까지, 그리고 입에 긴 호스를 물기까지. 한 사람의 삶에서 바다는 육지가 되었다가 다시 바다가 된다. 그리고 그 바다 너머 섬이 한 세계가 되는 것을 보지는 못하지만, 그런 바다를 늘 마음에 품는다. 그 마음이 무엇일까. 어떤 마음으로 한평생의 마음에 바다를 품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을 여러 번 곱씹으며 읽었다. 쉽지 않았다. 바다와 그녀 사이의 거리가 멀었다 다시 좁아졌다 다시 섬으로의 길을 막는 바다의 변화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그녀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완벽히 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만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우물에 바다를 채우려 했을지, 그 과정 속에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지 예상할 수는 있었다. 그 우물에 바닷물이 채워지며 바다의 높이가 낮아진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힘과 고통과, 그리고 희망과 기대와 간절함과 사랑을 갖고 있어야 가능한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마실 수도 없는 짠 물이지만 마른 우물에 채우는 것이 그녀에게는 또 다른 삶의 여정이었을 것이다. 나르고 나르고, 또 나르며 그렇게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으며, 그녀가 향하고 있던 섬은 점점 그녀의 삶에서 조금씩 가까워질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바다가 육지가 되어 섬에 갈 수 있었다. 그 섬 너머를 볼 수 있었다. 해마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 섬에서, 그리고 그 너머까지의 삶을 향해 나아갔을까. 해마가 그녀의 왼쪽과 오른쪽 어깨에 늘 자리잡고 있고 그 해마를 내내 보살피는 그녀에게, 그 섬의 세계는 그저 세계일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만 있을 뿐. 그러면서 또 노인이 된다. 노인이 되고 육지는 다시 바다가 되고, 다시 바다가 된 그 바다를 여전히 마음이 품으며, 그 바다를 보지 못하는 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바다를 빌려오는 것 뿐.

한 여인의 생의 주기가 연상됐다. 어린 시절의 그녀, 그녀의 성장과 어른이 된다는 것, 그리고 어른이 되어 마주한 세상과 또 다른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내면서 서서히 잊고 살아가게 되는 것들, 그리고 그 생의 마지막, 그 마지막을 지켜주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 그리고 바다와 섬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자신이 말 딛고 살고 있는 섬, 그리고 육지. 그 육지로 인해 도달하게 된 섬, 하지만 또 다른 섬에 대한 그리움, 발끝에 닿았을 파도의 느낌마저도 그리움이란 단어 안에 모두 담아내는 수밖에 없었을 그녀의 마음을 생각해보게 됐다.

"여자가 말수가 적은 건 긴 세월 너무 많은 혼잣말을 바다에 건넸기 때문이다.
여자가 뱉어낸 힘든 말과 더 힘든 말, 어쩌다의 즐거운 말까지 모두 바다가 들었다."

그녀가 바다에 토해냈던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삶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삶이 바다와 함께여서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한다. 그녀가 가진 많은 기대와 꿈, 그리고 어른이 되고 또 나이를 먹으면서 얻게 된 수많은 생각과 판단들은 또다시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또 다른 동경을 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모든 시간을 다 지나온 그녀에게 딸은, 작지만 큰 바다를 선물한다. 그녀가 바다를 통해 담아 안으려했던 마음을 마지막까지 잊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런 마음이 딸에게도 그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졌다. 바다가 품고 또 바다에 기대 말을 건네고 싶어졌다.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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