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생각 - 유럽 17년 차 디자이너의 일상수집
박찬휘 지음 / 싱긋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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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렸다. <딴생각>이라고 하니 뭔가 정형화되지 않은 독특함이 묻어날 것만 같았다. 딴생각은 '미리 정해진 것에 어긋나는 생각.', '주의를 기울리지 않고 다른 데로 쓰는 생각'이란 뜻을 갖고 있다. 가끔 책상에 앉아 딴생각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약산 매직아이 같은 상태가 된다는 느낌이 이거구나 싶기도 하다. 해야할 일을 잔뜩 펼쳐놓고도 하는 딴생각의 시간이 참 달콤하고 소중한데, 그런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 풀어낸 이야기들일 것 같아, 딴생각에 매력이 느껴졌다.
또 끌렸던 이유는 부제에 있다. 유럽 17년 차. 뭔가 해외 생활자에 대한 동경과 로망이 아직 좀 남아 있는지, 우리나라에서와는 다른, 일상 생활에서 얻게 독특함이 묻어있을 것만 같았다. 해외 생활이란 것이 특별할 것도 없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듯도 했다. 특히 디자이너라고 하니, 결국 내가 가보지 못한 길, 그래서 잘 알지 못하는 세계에, 더욱 예술적인 생활 속 딴생각이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재밌겠다, 싶었다. 다른 사람의 다른 생각을 엿보는 데에 묘한 매력이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책을 거꾸로 보고 싶어지는 표지도 한몫 했다. 글씨를 보려면 똑바로, 그림을 보려면 거꾸로. 이것이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담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꼭 바로 보려고만 하지 않아도 되는, 뒤집어 보고 거꾸로 매달려보는 그런 딴생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읽기 전 생각이 어느정도 맞아 떨어지면 더 신나게 책을 읽게 된다. 나와 동갑 저자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 더욱 재미있게 몰입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동시대에 비슷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끼리 통하는 공감대가 있었다. 자식을 키우면서 얻게 되는 생활의 깨달음부터 직장생활 하면서 주변 동료들의 행동과 생각에서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는 부분까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피식 웃게되는 지점도 생겼다.
전지자동차의 발전으로 아버지와 함께 차 밑에 들어가 수리하는 추억이 사라질 것을 염려하는 부분에서 살짝, 우리가 날로 발전하는 최첨단의 시대에서 아직도 잊지 말아야할 지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 저자와 아버지가 함께 찍은 사진에서는 뭉클하기도 했다. "고맙다, 아들아. 꿈에 그리던 도나우강 옆에 내 아들이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114쪽)라고 말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이 사진에서 함께 연상되어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딴생각이면서 같은 생각이었고, 공감되는 생각이었으며 고개 끄덕여지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런 딴생각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우리 일상이 이 딴생각으로 조금 더 풍요롭고, 멋질 수 있도록.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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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4 - 마케팅 전문가들이 주목한 라이프스타일 인사이트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이노션 인사이트전략본부 지음 / 싱긋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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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 괜히 피식 웃곤 했다. 이 책에 소개된 트렌드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도 2024년에는 트렌드 좀 아는 사람이 되는 건가, 싶어 혼자 웃었다. 지금껏 마케팅이니 전략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가끔 언론이나 매체를 통해 전달되고 또 전달되어 지금 식상해질 때쯤, 뒤늦게 그런 게 있었어, 하고 뒷북일 경우가 잦기도 했다. 시대의 흐름을 잘 따라야한다고 하지만, 생각만큼 다양한 매체의 소식을 발빠르게 습득하여 나의 것으로 녹여내는 능력이 내게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노력하지도 않았고, 또한 노력해도 안 된다고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이 책을 접하고 조금은 자신감이 붙었다고 할까. 트렌드, 생각보다 별거 아닐 수도 있겠다는 자만도 약간 포함되기도 했다. 그럴만한 것이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것, 그리고 오히려 더 익숙한 것이 트렌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진작 관심을 보였어도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살짝 들기도 했다. 알려고 하지 않아서 그렇지, 알고나면 나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이를테면, 헤리티지라는 용어가 참 낯설었다. 하지만 유산, 전통 정도의 단어로 생각하면 그다지 낯선 개념도 아니다 싶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원조를 좋아하기도 하지 않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수 있는 우리나라의 정서 상, 헤리티지 요소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조, 혹은 전통의 시작을 강조하거나 과거의 입맛, 패션 등의 추억 소환이 새로운 트렌드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면, 나도 전형적인 옛날 사람의 1인으로서 요즘 세대에 살짝 끼어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로컬에서 맛보는 즐거움은 나도 익히 경험하고 있는 바다. 이 지점에서 뭔가 트렌드에 잘 따르고 있는 사람이 된 듯해 으쓱해졌다. 로컬의 재미를 맛보기 시작는 중이라고나 할까. 우리 동네, 우리 마을이란 용어가 낯설지 않고, 그런 동네의 가게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경험이 생기면, 그 경험들이 쌓여 새로운 문화도 덩달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도 대부분 대형화 기업화되어가고 있는 상업적 흐름 속에서 작은 동네, 마을의 작지만 특색있는 가게들의 성장은 또 다른 건강한 사회적 문화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소셜미디어에 대한 관심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생기기 시작했다. 강한 선입견을 갖고 담을 쌓고 살아왔다. 오히려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사용하면서는 다양한 문화와 분야, 새로운 양식과 가치가 다양하게 오고갈 수 있고, 특히 소통의 편리함이 유독 장점으로 보인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꾸미고 과정하는 시대는 지난 것이 사실이고, 이젠 사용자의 수준이 높아져,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바로 서 있다. 그러니, 덮어놓고 비판하던 시대를 넘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활용하고 내 생활에 녹여낼 것인가를 더 고민하는 방향에 서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어떤 말에든 AI가 포함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인공지능이 주가 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여서, AI 역량을 어떻게 키워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단순히 과거의 사람과 비슷하게 말하고 움직이는 로봇을 넘어서,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만들어낼 줄 아는 AI의 등장은, 우리가 마주해야 할 가장 당면한 시대적 트렌드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방향에서 인간인 우리가 AI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경계의 눈초리는 이제 그만. 서로의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길을 각자의 영역에서 찾아나가야할 때인 것 같다.

이렇게 끝도 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이야기에 이야기를 더하는 힘이 있어, 한 가지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이야기가 숨쉴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었다. 한 꼭지씩 끊어 읽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어졌다.
이제 트렌드 아는 척 좀 할 수 있으려나.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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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위대한 승리일 뿐
김솔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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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십삼 년 전처럼 다시 서로를 사랑하게 됐으니 현재의 몰골과 처지가 뭐가 중요하며, 우리 중 누가 먼저 죽고 누가 나중에 죽는 걸 굳이 왜 따진단 말이냐? 우리 모두 죽음에 이르러서는 사랑의 위대한 승리를 찬양할 뿐인데!(276쪽)

사랑의 모습을 어느 한 가지로 정의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사랑은 그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 각자의 생각과 감정, 경험과 판단이 전제가 되어 각인되는 것이니까. 또 사랑을 항상 맑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랑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음미하다보면 늘 기쁘고 행복한 순간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만큼 아프고 쓰린 상처가 사랑의 이름 아래 포함되어 있고, 그 상처를 어느 한 순간도 잊거나 버리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의 마음과 몸에 각인시키게 된다는 것을 알아채게 될 테니까. 그래서 사랑이 애틋하면서도 무섭고, 겁이 나면서도 끌릴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

이 소설을 읽으며, 순간순간 공포스럽기까지 했다면 내가 소설을 잘못 읽은 걸까. 우선, 전체적으로 소설이 진행되어가는 모든 이야기들과 문장, 표현들이 대단하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들었다. 김솔 소설가의 문장력이나 소설의 흐름을 이끌어나가는 솜씨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이렇게 소설을 쓸 수 있구나 싶고 중간에 쉽게 이야기를 끊고 책을 덮기 어려웠다. 그만큼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 소설이 점점 무섭다고 생각이 든 이유가. 십삼 년만에 마주친 그 '형제님'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소름돋았다. 얼마나 지독한 사랑의 과거를 품고 있기에 현재와 미래를 이토록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있는 것인지. 과거를 쉽게 내보이지 않고 있음에도, 그 십삼 년 전 둘 사이에 있었을 일들의 순간 감정이 전해져 느껴지는 듯하여, 끔찍했다. 아마도 난, '나'의 마음에 공감하며 소설을 읽어나갔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궁금하기도 했다. 그때의 그 '형제님'이 진심으로 '나'와의 일을 쉽게 기억에서 지웠다는 판단하게 된 계기가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 하나였을까. 혹은 대화 속에서 전혀 자신의 처지를 눈치채지 못하는 그 우둔함이었을까. '나'는 이미 모습을 바꾸었고,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지옥의 끝까지 다녀왔다고 본다면, 과연 알아보고 그로 인한 감정을 다시 일깨우는 것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이 소설 어디에서도 그가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갖고 행동하고 이곳을 오고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알 수 없음, 그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음에 더욱 의문도 커지면서 또한 그를 계획의 한가운데로 몰아붙이기 쉽기는 했다.
그리고, '겟세마네'의 누가 '나'인 것인지가 끝까지 미스테리였다. 알고 싶었고 너무 궁금했고, 누구의 모습이어야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가 끝까지 해결되지 않은 숙제였다. 하지만 누구여도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더라도 '나'가 그에 대한 복수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미 모든 계획 속에 그는 들어왔고, 그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를 위한다고 하니 마치 그를 향한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 싶기도 하지만-사실,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만-그를 파괴하기 위한 사랑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이미 자신의 사랑을 어떤 방식으로 정의내릴 것인가에 대해 군더더기 없는 확신을 갖고 있었으니까.

앵무새의 "다섯 시 이십육 분 지브롤터"에서 슬그머니 빠져나가려다가 너는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왜냐하면 십삼 년 전에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는 넋을 놓고 너를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185쪽)

'나'가 그에 대한 복수를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가 이 문장에 숨어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을 것만 같아, 많은 것들 중 하나도 눈치채지 못하는 그에게 화가 나고 원망스러웠다. '나'의 마음을 멈춰세울 수 있는 자는 그일 텐데, 싶었다.

제목을 반복해 읽어보았다. 결국 사랑이 승리한다는 것, 그것 뿐임을 보여주고 있음에 오히려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표지에서 느껴지는 바가 내용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다 읽고나서야 알아챘다. 그 느낌이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보는 수밖에.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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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빛을 따라서
권여름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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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바구니에 담긴 채소와 물건들. 그 아래 종이 뭉치에는 '바라미'를 빨간색 펜으로 지우고 '바람이'라 적힌 종이뭉치가 있고, 연필 한 자루. 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표지. 소설을 다 읽고나니 더 표지를 들여다보게 된다. 이 표지에서 소설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모두 숨어있다는 느낌이 들어 더욱 자세히 보게 된다.

'필성슈퍼'. 그러고보니, 우리 동네에 슈퍼가 어디 있을까 머릿속으로 주변을 둘러보아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가게 이름을 '슈퍼'라 붙이고 있는 집이 거의 없어진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대체로 큰 마트(엉터리 마트, 쌤마트같은 마트도 여럿 있다. 점점 이런 마트의 규모도 커지는 듯)에서 장을 보거나 인터넷 쇼핑을 하기 때문에 더욱 동네 슈퍼를 이용하기도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동네만 해도 걸어서 갈 거리에 대형마트가 있고, 작은 가게들이란 거의 편의점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 '필성슈퍼'가 조금은 더 낯설면서도 애정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물건 담아올 가방을 들고 직접 가서 물건을 사온다. 특히 채소나 과일을 살 때는 꼭 그 가게에 가야지 싶은, 매번 찾게 되는 가게가 있다. 물론 대형마트에 비해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불편한 요소가 분명 있다. 하지만 그렇게 직접 가게에 걸어가 물건을 손으로 만져 찾아 담는 그 수고가 썩 나쁘지 않다. 특히 오히려 큰 매장에 바글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물건에 현혹되는 쇼핑엔 더욱 취미가 없다. 그러다보니, 우리집 앞에 '필성슈퍼'가 있으면 좋겠다. 특히 이런 가족이 운영하는 슈퍼라면 언제든 믿고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더 부럽다. 어쩌면 502호의 주인이 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바구니를 내리는 대신 난 직접 바구니에 물건을 담아오겠지만. 망하지 않을 슈퍼에서 오래도록 한결같이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문을 왜 닫냐?"
엄마는 사과 알맹이를 입에 넣고 사각사각 경쾌하게 씹었다.
"머리를 또 굴려봐야지."
(...)
'우리는 망한 적이 없다는 말.'
그 말을 들은 이루로 폐허 오은동은 자주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나도 망한 적 없다.'(243쪽)

학교에서 시험이 끝나면 쉬는 시간으로 제일 많이 들리는 말이 '망했어'라는 말이다. 시험을 생각보다 못 본 아이들이 속상해서 하는 말일 거라고 생각해 위로하려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체로 '하나 틀렸어요.', '100점을 못 맞았어요.'가 대부분이다. 아, 속으로 탄식을 내뱉게 된다. 물론 100점, 만점만을 향했던 아이들에게 그 하나의 차이는 클 수도 있지만,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그 하나로 인해 함께 망한 경우가 된다는 생각이 조금은 아찔하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아이들로 키우는 곳이 학교가 되는 건 아닐지, 시험 때마다 조금은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바뀌며, 새롭고 다양한 것들을 다채롭게, 그것도 대형으로 만들어 놓아야만 성공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어떨 때는 커져가는 세상의 크기에 압도당해, 작은 나는 갈 곳도 찾지 못해 허둥대기만 하지는 않을지 두려움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오히려 더 동네 가게들을 찾게 된다. 작은 동네 서점, 과일 가게, 떡집 등. 그리고 그런 작은 가게들이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망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나도 작은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런 마음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은동이도 황서은 할머니도, 그리고 '필성슈퍼'도. 망한 적 없다, 그래서 다른 궁리를 또 하려는 저 마음에 응원하는 마음을 보태고 싶어진다. 내 작은 힘과 또 누군가의 정성이 모이고, 그런 사람들의 응원이 쌓여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는 그 마음, 어떤 경우에도 망한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리 없다는 마음이 커질 수 있도록 하는. 그러면 충분한 것 아닐까.

이 가족이 보여주는 마음이 너무도 솔직해, 다 들여다보인다는 것이 매력이다. 그래서 이들이 더욱 반짝일 수 있는 것일 테지. 뭐든 솔직하게 자신을 다 내보이는 사람은 이기지 못하니까. 숨김 없이 다 드러내놓은 이후엔 두말이 필요 없으니까. 그저 지금까지처럼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이니까. 다른 무엇에 눈치보지도 않고. 그게 참, 멋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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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후기 - 결국 책을 사랑하는 일
오경철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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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진한 남의 사랑 고백을 들은 기분이다. 헌데 몰래 들은 느낌이라기 보단, 대놓고 광고하듯 떠벌리는 이야기를 기분좋게, 그것도 아주 흐뭇하게 들은 느낌이다. 무슨 사랑 고백을 이렇게 대대적으로 하나 싶겠지만, 이 정도라면 더 크게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작가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에 제대로 사랑의 감정을 실을 줄 아는지, 확실하게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건 두말할 것도 없이, 책이었다.
나도 책이라면 무척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어떤 것보다도 책에 대한 욕심도 과하게 부린다. 책이라면 몸도 따라 움직일 정도. 헌데 그렇다고 내가 책과 아주 밀접한 관계자는 아니다. 늘 그것이 내 인생에 아쉬운 점 중 하나이긴 하다. 그래서 작가가 이정도로 대놓고 하고 있는 사랑 고백이 조금은 배가 아프다. 내 속이 좀 좁다.(물론, 지금 나의 일이 책과 아주 동떨어진 일은 아니지만, 난 책과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은 것이 오랜 꿈이며 로망이니, 그런 점에서는 이 작가가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처음부터 이 책에 마음이 쏠렸다. <편집 후기>라고 해서 책을 편집한 진짜 후기를 들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예전에 읽었던 <출판하는 마음>(은유)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이 책을 읽고 싶었던 마음에는 책에 대한 궁금증보단, 책을 편집하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훨씬 더 컸다. 편집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 대한 선택은 옳았다.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몇 가지 느낌이 있다. 우선, 단호하고 확실했다. 작가의 뚜렷한 소신과 확고한 신념이 느껴졌다. 책에 대한 자신만의 고집이 있겠구나, 싶었다. 그만큼 문장에도 힘이 실려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관점이 분명하지 않으면 명료하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어려워진다. 쉽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 그대로 관철될 수 있는 당당함이 문장 전체적으로 느껴졌다. 아, 이 정도는 되어야 그 숱한 편집자로서의 길과 출판사에서의 우여곡절을 다 견디고 극복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참 한결같았다. 책에 있어서만큼은 과거나 현재, 어느 때에도 변함없이 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더이상 좋아질 수 없다고 하지만, 작가에게는 예외인 듯했다. 뭔가 지치고 힘들고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다고 하소연하고 있는 듯싶지만, 사실은 그 모든 이야기가 다 사랑하고 있다는 고백으로 들리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자신의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를 푸념처럼 계속 늘어놓고는 있지만, 정작 그 푸념이 누군가를 무척 사랑하고 있어 행복하다는 다른 표현임을 누구나 쉽게 눈치챌 수 있는 것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편집자가 된다. 편집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나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자기소개서는 선언 같기도 하고 고백 같기도 한 이런 문장으로 시작될 때가 많다.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표현은 달라도 골자는 같다.(25쪽)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독서를 좋아한다는 말로 알아들을 것이다. 하지만 독서는 책 애호의 ABC 같은 것이다. 책을 좋아하면서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26쪽)

시작부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보다 더한, 책에 대한 사랑 고백이 또 있을까. 너무나 단순하지만 정확한 말이었다. 나 역시 그러니까. 그러니 이 책에 시작부터 빠져들지 않을 재주가 없었다.
또한 책이란 물성이 갖고있는 신기한 매력을 편집자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어, 그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책을 사랑한다는 건 그 모든 시선과 관점을 통틀어 좋아한다는 것이구나, 싶었다. 이 정도라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지. 책을 좋아한다고. 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만큼의 책사랑의 마음가짐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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