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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위대한 승리일 뿐
김솔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10월
평점 :
우리는 십삼 년 전처럼 다시 서로를 사랑하게 됐으니 현재의 몰골과 처지가 뭐가 중요하며, 우리 중 누가 먼저 죽고 누가 나중에 죽는 걸 굳이 왜 따진단 말이냐? 우리 모두 죽음에 이르러서는 사랑의 위대한 승리를 찬양할 뿐인데!(276쪽)
사랑의 모습을 어느 한 가지로 정의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사랑은 그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 각자의 생각과 감정, 경험과 판단이 전제가 되어 각인되는 것이니까. 또 사랑을 항상 맑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랑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음미하다보면 늘 기쁘고 행복한 순간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만큼 아프고 쓰린 상처가 사랑의 이름 아래 포함되어 있고, 그 상처를 어느 한 순간도 잊거나 버리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의 마음과 몸에 각인시키게 된다는 것을 알아채게 될 테니까. 그래서 사랑이 애틋하면서도 무섭고, 겁이 나면서도 끌릴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
이 소설을 읽으며, 순간순간 공포스럽기까지 했다면 내가 소설을 잘못 읽은 걸까. 우선, 전체적으로 소설이 진행되어가는 모든 이야기들과 문장, 표현들이 대단하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들었다. 김솔 소설가의 문장력이나 소설의 흐름을 이끌어나가는 솜씨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이렇게 소설을 쓸 수 있구나 싶고 중간에 쉽게 이야기를 끊고 책을 덮기 어려웠다. 그만큼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 소설이 점점 무섭다고 생각이 든 이유가. 십삼 년만에 마주친 그 '형제님'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소름돋았다. 얼마나 지독한 사랑의 과거를 품고 있기에 현재와 미래를 이토록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있는 것인지. 과거를 쉽게 내보이지 않고 있음에도, 그 십삼 년 전 둘 사이에 있었을 일들의 순간 감정이 전해져 느껴지는 듯하여, 끔찍했다. 아마도 난, '나'의 마음에 공감하며 소설을 읽어나갔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궁금하기도 했다. 그때의 그 '형제님'이 진심으로 '나'와의 일을 쉽게 기억에서 지웠다는 판단하게 된 계기가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 하나였을까. 혹은 대화 속에서 전혀 자신의 처지를 눈치채지 못하는 그 우둔함이었을까. '나'는 이미 모습을 바꾸었고,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지옥의 끝까지 다녀왔다고 본다면, 과연 알아보고 그로 인한 감정을 다시 일깨우는 것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이 소설 어디에서도 그가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갖고 행동하고 이곳을 오고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알 수 없음, 그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음에 더욱 의문도 커지면서 또한 그를 계획의 한가운데로 몰아붙이기 쉽기는 했다.
그리고, '겟세마네'의 누가 '나'인 것인지가 끝까지 미스테리였다. 알고 싶었고 너무 궁금했고, 누구의 모습이어야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가 끝까지 해결되지 않은 숙제였다. 하지만 누구여도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더라도 '나'가 그에 대한 복수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미 모든 계획 속에 그는 들어왔고, 그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를 위한다고 하니 마치 그를 향한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 싶기도 하지만-사실,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만-그를 파괴하기 위한 사랑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이미 자신의 사랑을 어떤 방식으로 정의내릴 것인가에 대해 군더더기 없는 확신을 갖고 있었으니까.
앵무새의 "다섯 시 이십육 분 지브롤터"에서 슬그머니 빠져나가려다가 너는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숨이 멎는 듯했다. 왜냐하면 십삼 년 전에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는 넋을 놓고 너를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185쪽)
'나'가 그에 대한 복수를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가 이 문장에 숨어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마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을 것만 같아, 많은 것들 중 하나도 눈치채지 못하는 그에게 화가 나고 원망스러웠다. '나'의 마음을 멈춰세울 수 있는 자는 그일 텐데, 싶었다.
제목을 반복해 읽어보았다. 결국 사랑이 승리한다는 것, 그것 뿐임을 보여주고 있음에 오히려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표지에서 느껴지는 바가 내용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다 읽고나서야 알아챘다. 그 느낌이 궁금하다면, 직접 읽어보는 수밖에.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