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편집 후기 - 결국 책을 사랑하는 일
오경철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6월
평점 :
아주 진한 남의 사랑 고백을 들은 기분이다. 헌데 몰래 들은 느낌이라기 보단, 대놓고 광고하듯 떠벌리는 이야기를 기분좋게, 그것도 아주 흐뭇하게 들은 느낌이다. 무슨 사랑 고백을 이렇게 대대적으로 하나 싶겠지만, 이 정도라면 더 크게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작가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에 제대로 사랑의 감정을 실을 줄 아는지, 확실하게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건 두말할 것도 없이, 책이었다.
나도 책이라면 무척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어떤 것보다도 책에 대한 욕심도 과하게 부린다. 책이라면 몸도 따라 움직일 정도. 헌데 그렇다고 내가 책과 아주 밀접한 관계자는 아니다. 늘 그것이 내 인생에 아쉬운 점 중 하나이긴 하다. 그래서 작가가 이정도로 대놓고 하고 있는 사랑 고백이 조금은 배가 아프다. 내 속이 좀 좁다.(물론, 지금 나의 일이 책과 아주 동떨어진 일은 아니지만, 난 책과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은 것이 오랜 꿈이며 로망이니, 그런 점에서는 이 작가가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처음부터 이 책에 마음이 쏠렸다. <편집 후기>라고 해서 책을 편집한 진짜 후기를 들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예전에 읽었던 <출판하는 마음>(은유)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이 책을 읽고 싶었던 마음에는 책에 대한 궁금증보단, 책을 편집하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훨씬 더 컸다. 편집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 대한 선택은 옳았다.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몇 가지 느낌이 있다. 우선, 단호하고 확실했다. 작가의 뚜렷한 소신과 확고한 신념이 느껴졌다. 책에 대한 자신만의 고집이 있겠구나, 싶었다. 그만큼 문장에도 힘이 실려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경우라도 자신의 관점이 분명하지 않으면 명료하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어려워진다. 쉽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 그대로 관철될 수 있는 당당함이 문장 전체적으로 느껴졌다. 아, 이 정도는 되어야 그 숱한 편집자로서의 길과 출판사에서의 우여곡절을 다 견디고 극복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참 한결같았다. 책에 있어서만큼은 과거나 현재, 어느 때에도 변함없이 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더이상 좋아질 수 없다고 하지만, 작가에게는 예외인 듯했다. 뭔가 지치고 힘들고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다고 하소연하고 있는 듯싶지만, 사실은 그 모든 이야기가 다 사랑하고 있다는 고백으로 들리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자신의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를 푸념처럼 계속 늘어놓고는 있지만, 정작 그 푸념이 누군가를 무척 사랑하고 있어 행복하다는 다른 표현임을 누구나 쉽게 눈치챌 수 있는 것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편집자가 된다. 편집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나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자기소개서는 선언 같기도 하고 고백 같기도 한 이런 문장으로 시작될 때가 많다. '저는 책을 좋아합니다.' 표현은 달라도 골자는 같다.(25쪽)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독서를 좋아한다는 말로 알아들을 것이다. 하지만 독서는 책 애호의 ABC 같은 것이다. 책을 좋아하면서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26쪽)
시작부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보다 더한, 책에 대한 사랑 고백이 또 있을까. 너무나 단순하지만 정확한 말이었다. 나 역시 그러니까. 그러니 이 책에 시작부터 빠져들지 않을 재주가 없었다.
또한 책이란 물성이 갖고있는 신기한 매력을 편집자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어, 그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책을 사랑한다는 건 그 모든 시선과 관점을 통틀어 좋아한다는 것이구나, 싶었다. 이 정도라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지. 책을 좋아한다고. 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만큼의 책사랑의 마음가짐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