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러시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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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공간으로 이주하는 삶은 생각보다 녹록하지가 않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긴장과 설렘보다는 예기치 못한 위기와 난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방인에 대한 경계의 눈빛이 더 강하다. 자신의 공간에 침범해 들어온 이 다르게 생긴 동물의 정체를 살피기 위해 호시탐탐 관찰하고 무시하고 협박하며, 절대 진입을 허락하지 않으며 거리를 둔다. 어쩌면 이것이 동물의 본능이진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 이야기들이 작품 속에 담겨 있었다.
절대 '나'의 나라에 '너'를 발붙이지 못하도록 각서를 강요하는 <입국 심사>, 이주민 안에서도 다시 경계를 나누고 같은 부류로 취급받지 않기 위해 냉정하면서 야멸찬 선긋기의 <캠벨타운 임대주택>, 어떻게든 살아남아보겠다고 아둥바둥 생명을 연장하려하지만 되레 다른 생명을 밟아 나아가려는 <골드러시>, 무엇을 향해 달려가려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뿌옇게 불타오르는 그 곳을 향하는 <졸업 여행>, 이주민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며 때에 따라 자신의 태도조차 자신의 것으로 삼지 못하는 <헬로 차이나>, 뿌리를 찾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인지 어디서 살아갈 시민이어야 하는지 그 정체성이 궁금한 <한국인의 밤>, 편견과 선입견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마음껏 제 이름을 당당히 드러내며 살고싶어 했던 <외출 금지>, 함께하기 위한 간절함과 인연, 하지만 버리기와 갖기 사이에서의 마음 줄다리기하는 <배영>.

'노마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유목민, 유목 민족, 방랑자. 인간은 기본적으로 노마드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고, 자신이 뿌리내리고 싶은 공간을 탐색해나가는 과정이 곧 삶이지 않을까. 자신에게 최적의 공간이라 생각이 들면 과감하게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모두 내려놓고 그 새롭고 낯선 공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 또한 기본 장착되어 있는 것이 인간이지 않을까. 그러니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그 나머지를 기꺼이 감수하고서라도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을 마다하고 굳이 어려운 길을 찾아 떠날 필요가 어디 있을까. 그렇게 봤을 때, 인간은 결국 자신이 있어야할 곳을 찾아 방랑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바로 이 소설 속 인물들처럼.
그리고 그런 곳을 힘겹게 찾고나서는 자신이 무엇을 향해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솔직한 민낯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목적 없이 도착하기 힘든 곳이었고, 험난한 과정 속에서 목표하고 있는 것마저 얻지 못한다면 굳이 지금의 어려움을 감수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어찌보면 무척 솔직하고 적나라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서는 이 낯선 곳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버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인물들 또한 그 역할에 충실했다고 본다. 눈치보지 않고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갈 수 있는 모습들을 보여주었으니까. 다만, 그럼에도 버리지 못했던 마음의 미련은 내내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었지만. 그래서 이 인물들에게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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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데부 - 이 광막한 우주에서 너와 내가 만나
김선우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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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새. 내가 알던 그 새가 맞나 싶어 검색해봤었다. '비둘기목 도도과의 멸종된 새'라는 설명으로 요약되어 설명되는 새. 천적이 없던 모리셔스에 살면서 나는 법을 잃은 새. 그러다 사람에 의해 멸종된 새, 도도새. 그런 도도새를 그리는 작가, 도도새 작가 김선우의 에세이를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든 전체적인 인상은, 따뜻한 시선과 마음이었다. 작가의 시선과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어디에 가 닿아 있는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선과 마음에 담긴 따뜻한 기운도 전달되었다.
아마도 진심이 담겨 있어서 가능한 것이겠지 싶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하고자 하는 일, 그리고 그 일이 향하고 있는 목표와 목적지에는 작가가 얼마나 꾸준히 그리고 성실하게, 그러면서도 열정을 다해 도달하고자 열망하고 있는가가 잘 드러나 있었다. 허름하고 열악했던 첫 작업실에서부터 새벽 5시에 하루를 시작해 12시간을 작업하는 지금 생활의 루틴까지. 작가가 지금까지 향해있는 관심의 지점이 무엇일지를 잘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일과 생활, 그리고 그 일에 쏟는 모든 생각과 행위에 군더더기란 없어 보였다. 아마도 이런 모든 것이 작품으로 발현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겠지, 싶었다.

그러나 작업적으로 비슷한 입장이 되고, 도도새를 고작 십 년 남짓 거쳐왔을 뿐인 저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지겨울 정도로 익숙해져버린 무언가에서 마침내 새로움을 찾아내 세상에 내어놓는 일이야말로 아예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에 비할 바 없이 어렵고 대단한 일이며, 인간만의 숭고한 일이라는 것을요.(205쪽)

예술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어쩌면 많은 새들 중 하필 도도새인가, 도도새를 이 정도 그렸으면 된 거 아닌가,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또한 쉽게 생각하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고작'인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할 말이 많고 더 해야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감동이었다. 'LABOREMUS' 라보레무스. 아마도 작가는 이렇게 스스로를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써 앞으로 밀어내는 것이겠지. '자, 일을 계속 하자'라는 의미의 저 단어를 매일 오고가는 작업실에 걸어두고, 익숙함에 새로움을 더하기 위한 힘을 스스로에게 불어넣어주는 작가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자신이 선택한 업이 가장 나다운 존재로 살아가게 해 준다면,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기꺼이 "라보레무스"라고 읊조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라고 작가는 말했다. 가장 나다운 수 있는 일에 생의 모든 시간을 쏟아내려는 작가의 다부진 모습이 그려졌다.

예술가라는 직업의 세계에서는 세간에 크게 알려지기 이전의 상태를 흔히 무명無名이라고 표현합니다. 생각해보면 참 잔인하면서도 냉정한 호칭입니다.(19쪽)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무명無名. '이름이 없거나 이름을 알 수 없음.' 혹은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음.'의 무명을 우리는 얼마나 쉽게 쓰고 있는 것일까. '없음'과 '않음' 사이에도 큰 간격이 존재해 보였고, 그 사이 어디에서도 이름을 갖지 못하는 많은 예술가들을 이름이라는 잣대로 보게 되는 사회의 시선도 씁쓸했다. 유명해지기 위함이 목표인가, 그 유명을 바탕으로 사람들과 그림을 통해 소통하려는 것이 목표인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가 닿기를 바라며 기울이는 노력과 그 노력의 결과가 예술분야에서는 '유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보지만, 여전히 '무명'이란 단어가 슬프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듯하다.
그래서 어쩌면, 작가의 'LABOREMUS'에 더 강한 다짐과 힘이 담겨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이 책을 읽고 이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을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어졌다. 그들이 향해가는 모든 길이 반짝일 수 있도록.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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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후의 세계 - 다원 패권 시대, 한국의 선택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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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사진에 시선이 갔다. 이미 제목에도 '전쟁'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다. 뭔가 알고싶지 않은 이야기가 들어있을 것 같아 겁이 났다. 몰랐으면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만, 알고나서는 도저히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 같았다. 읽어야하지만 알고싶지 않기도 한, 그런 기분의 책이었다. 왜냐하면 읽는 순간, 지금의 시대와 국가에 실망할 거고, 사람들의 욕망과 이익, 그리고 냉혹한 현실을 마주해야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나 소식 등을 접할 때면 들던 생각이 있다. 사람들을 바보로 아는가보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쩌면 저런 말과 일들을 거침없이 쏟아낼 수 있을까, 귀 닫고 눈 감는 시대가 아닌데 어쩌면 저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처럼 할 수가 있을까. 답답하면서도 속상하고, 결국 그 모든 피해가 고스란히 약자의 몫이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더욱 화가 난다. 나에게 이 책이 그런 답답함과 분노가 동시에 일어나게 만드는 책이었다.

전쟁이라고 하면 사람이 죽고사는 문제라는 인식을 가장 먼저 하게 된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다른 이유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무조건 사람이 죽고 다치는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주의다. 사람이 어떤 이유 중에서도 가장 앞서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거라고 혼자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왔다. 분명 내 주위 사람들은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아직도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는 전쟁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왜 이런 전쟁을 반대하거나 막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을까. 그 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있길래, 이토록 말도 안 되는 전쟁을 내내 지켜보고만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정말 이기적이구나. 경주마도 아니고, 어떻게 자기 눈앞만을 보며 주변으로 시선을 돌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이미 우리나라의 과거 전쟁을 되짚어 보더라도 강대국들 사이에서 이용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데, 이런 패턴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쾌했다. 수십 년이 지나고 또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나 생각의 크기는 퍼졌을 것임에도, 절대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여실히 깨달았다.

하지만 분노하고만 있다고해서 우리가 살아낼 수 있는 방도가 찾아지는 것은 또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이미 이 세상은 이렇게 서로 전쟁도 불사할 정도로 노골적인 다툼(전쟁)이 일어나는 시대가 되었으며, 결국 그런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 나름대로의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놓여있다는 것도 납득이 됐다.
결국 시대의 흐름과 세상이 무엇을 주목하고 어떤 방향성을 갖고 달려나가고 있는가를 잘 판단해야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목청껏 외쳐도 세상으로 그 고함이 퍼지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우리나라는 그래도 나름 목소리를 내고 함께 힘을 합칠 수 있는 대단한 시민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결국 세계의 패권 싸움 속에서 우리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그래서 결국은 다분히 경제적 정치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입장을 잘 세워 대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정말 회의적인 것은 이런 대응 방식이 적절히 잘 이루어지고 실행되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답답하고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헝크러진 실타래를 앞에 두고 어찌할 바를 찾지 못하는 심정이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해답이 썩 내키지 않아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래서 마치 투덜거리는 듯 글이 써지고 있는 건 아닌지. 3월 초의 바쁘고 정신없는 업무의 연속 속에서 이 책의 후유증이 남아있어 더욱 몸도 마음도 무겁다.
책을 다 읽고 다시 한참을 표지 사진 속 아이의 얼굴을 응시하게 된다. 우리가 정말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히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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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고양이 시점 -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매혹하는가
세라 브라운 지음, 고현석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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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참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책을 받아본 순간, 표지의 고양이가 이미 나라는 인간을 매혹했다. 책을 읽기도 전부터 매혹 당했으니, 이 책을 어떤 마음으로 읽게 될 것인가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이 고양이를 어쩌나. 또 나는 또 어쩌냐. 행복한 걱정을 하며 책을 읽어나가지 시작했다.

소설을 시점으로 나누면, 1인칭과 3인칭과 소설이 있다(물론 2인칭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이렇게 둘로 볼 수 있다). 그 중 3인칭 소설 시점에 관찰자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이 있다. 갑자기 소설의 시점 공부를 하나, 싶지만. 이 책은 전지적 '고양이' 시점이다. 이 표지 고양이의 눈빛이 사뭇 날카로워 보였던 것은, 그 이유 때문이겠다 싶었다. 결국 고양이의 관점으로 사람들의 심리까지 모두 꿰뚫어 보고 있는 글이라는 것. 과연 고양이는 어느만큼이나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 있는 걸까.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 첫 번째는, 이러다가 고양이의 매력에 푹 빠져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는 거였다. 이미 고양이의 가족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더할나위없이 유익한 책이 될 것이고. 고양이가 보이는 작은 행위와 표현들을 어떻게 인간이 받아들이면 좋을지에 대해 무척 따뜻하고 친근한 시선으로 전하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 고양이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이 모든 표현들을 통한 다정함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인상이었다.
저자는 오랜 관찰과 연구 등을 통해 고양이에 대해 매우 박식하며, 그러면서 자연스레 고양이와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은 개에 대해서 나름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에 비해 고양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개보다는 고양이를 가족을 맞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고, 그런 면에서 고양이에 대해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조금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든 생각은, 자꾸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처럼 생각하고 읽고 있구나, 였다. 마치 고양이의 행동과 표현, 고양이의 특징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에서 사람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혹시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헌데 이건, 책을 잘못 읽고 있다기보다는 고양이를 인간과 동등한 생명, 존재로 보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후반부에서 고양이를 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서술하고 있는 부분에서도 느꼈듯이, 단순히 인간이 동물을 돌본다 혹은 키운다의 맥락으로 접근하지 않는 이 책의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결국 집고양이가 인간과 어떤 상호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고양이가 인간을 곁에 두어도 좋겠다고 받아들여준 것이란 생각을 했다, 고맙게도. 참 성가시고 귀찮지만 또 참 같이 있을 만한 것이 인간이라고, 고양이가 생각해준 것이 아닐까. 그래서 고양이가 어떤 인간과는 사귀고 곁을 허락하고, 또 어떤 인간은 거부하는. 그렇다면 인간이 고양이에게 잘 보여야할 거 같다.
헌데 그게 너무도 당연한 것은 아닐까. 인간이 지금껏 살아온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물이라고 생각하면, 당연히 고양이 눈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잘 좀 살면 좋겠다는 어른의 마음이 담겨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그런 소중한 마음을 잃지 말라고, 인간 곁에 고양이가 남아주는 것은 아닐지, 혼자 상상하며 이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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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캐나다의한국인응급구조사 #김준일 #한겨레엔 #하니포터8기 #서평 #책추천

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 김준일 지음. 한겨레엔. 2024.
_나를 살리러 떠난 곳에서 환자를 살리며 깨달은 것들

고통과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자를 향해 달려가는 이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누군가의 마지막 대화 상대가 나라는 것을 알고 있을 때,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자의 심정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사망한 환자들과, 그들과 마지막으로 닿았던 내 손, 그리고 그들이 남기고 간 가족들을 번갈아 바라보다 감정이 북받쳐서 머릿속이 하얘졌다가 다시 별의별 생각이 휘몰아치기를 반복했지만, 결국 살아남은 가족 누구에게도 사망 사실을 알리지 않고 끝까지 입 다물고 있길 잘했다.(78쪽)

특히 죽음의 순간에 함께 있게 되는 가족의 심정을 함께 헤아리는 것 또한 중요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저 환자만을 향하고 또 환자를 구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죽음은 어떤 경우든 주변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상처와 아픔을 만들 수밖에 없으며, 그 과정에서 남겨진 이들의 마음까지 보살피는 것 또한 응급구조사가 해야할 몫이겠구나, 싶었다.

경찰과 검시관이 올 때까지 저희는 그곳에 남아 남편과 대화를 이어가려고 최대한 애썼습니다. 저희가 그대로 떠나버리면 홀로 남은 남편이 극당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르니까요.(250쪽)

저자는 누군가에게 먼저 도움을 줄 수 있게 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별 말 아닌 것 같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자신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드는 지에 대해서도. 물론 쉽게 생각하면 직업적 특성에서 비롯된 습관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 또한 흔히 말하는 직업병일 테고, 수많은 직업병들 중 좋은 습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낯선 나라 낯선 언어의 낯선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로 눈을 맞추고 손을 내밀어 그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주겠다고 나서는 이의 모습을 가만히 머릿속에 상상해 그려보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이 없겠구나 싶다. 저자의 캐나다 삶에 대한 시도는 이것으로도 충분히 성공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어디로 가는 길이세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세요?"(168쪽)

이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꼭 위험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만 건넬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누구에게라도 한번쯤 그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면 할 수 있는 말. 내 가족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 그리고 오고가며 마주치는 어느 누구라도,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무엇을 하는 중이며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물어보고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말은 그저 건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힘을 발휘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거꾸로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면, 괜찮다고 대답하면서도 마음이 든든해지고 허리가 조금은 펴질 것만 같은, 위로의 말로 들릴 것 같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봐 준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스스로를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은 고사하고 그래야 한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살았다.(...) 다만 자신에게 친절함으로써, 내 마음의 크기가 더 자라나 그동안 품었던 슬프고 힘든 감정까지 모두 안을 수 있게 되었다.(197-198쪽)

딸의 학교 숙제였던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는 방법을 알아 오기'를 통해 저자가 깨달은 것. 나도 같은 숙제를 받아든 학생처럼,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우선은 자책부터 금지. 무언가의 상황에 놓이면 문제의 원인은 나 자신에게서 찾는 건 오래된 습관이다.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보다 '나 자신'에게 친절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이를 대하듯 나 자신을 대해야겠다는 다짐까지.
새로운 삶을 향한 도전과 그 도전 속에서 값진 삶의 깨달음을 얻게 된 저자의 삶을 조금 들여다보며, 나의 삶까지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 무엇을 향해 달려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저자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 마디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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