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할 일
김동수 지음 / 창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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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 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과자 봉지, 음료수 캔. 그리고 검은 비닐봉지? 강가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린다면, 물고기여야 마땅할 것 같은데, 건지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모두 쓰레기다. 쓰레기가 떠다니는 강에서 쓰레기를 건지며 놀고 있다는 건, 말 그대로 동심 파괴다.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이렇게 짖밟아도 되는 걸까.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지금의 강, 그리고 우리의 자연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각종 물건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강에서도 물고기 대신 쓰레기를 건지는 현실이라면, 여러 말이 필요 없는 상황이란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어떤 경험을 선물해줄 수 있을까.

쓰레기를 건지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 아이는, 비닐봉지인 줄 알았던 검은 머리카락을 건지고 되고, 되려 머리카락에 이끌려 강물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건 말 그대로 공포!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는 그 마음이 어떨까. 무섭고 떨리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게 우리의 물귀신들을 만났다.

"반가워요, 오늘의 어린이.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우리는 물을
깨끗하게 해요.
오염이 갈수록 심해져서
늘 일손이 부족하답니다."

물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물귀신들은 노력한다. 하지만 늘, 일손이 부족하다. 왜일까? 당연히, 깨끗하게 하는 작용보다 더럽히는 속도가 훨씬 빠르니까. 이런 빠른 속도로 자연은 점점 더 오염이 되어가고, 그런 오염을 사람들은 나몰라라 완전 뒷전이다. 그러니, 물귀신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물이 깨끗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의 어린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인 것이고.
이때 '오늘의'라고 이야기한 건, 이미 이전에도 또 그 전에도 '오늘의' 어린이가 있었다는 뜻일 거다. 기념 사진을 찍은 듯 다른 어린이의 사진이 여럿 보인다. 그렇다면, 강물의 오염을 줄이기 위해서는 내내 어린이의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다. 물귀신들의 힘만으로 안 되니, 반드시 어린이의 손길과 힘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연은 힘을 가지고 있다. 누구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제 스스로 자신을 지킬 줄 아는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자연이 제 속도대로 자신을 지켜나갈 수가 없다. 결국 어린이의 힘을 빌려 깨끗하게 만드는 일에 소홀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아이는 '오늘'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이 아이와 물귀신의 이야기를 읽고, 우린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는 지구에서 사람만 없어지면 다시 자연이 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쉽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환상은 지금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이런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게 바로 사람이고, 자연의 노력에 사람의 노력이 보태져야 우리의 자연이 다시 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해야 할 '오늘의 할 일'이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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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회색빛 웅진 세계그림책 264
로라 도크릴 지음, 로렌 차일드 그림, 김지은 옮김 / 웅진주니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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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회색빛이에요."

회색빛이 어떤 색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아주 깜깜한 검정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밝은 은빛도 아니다. 아주 깜깜하지는 않지만 또 그렇다고 밝지도 않은. 회색빛은, 생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마치 아무 감정도 없는 색같은 느낌도 든다. 그런 빛으로 자신을 설명하다니. 자신에게서 어떠한 생기도 느낄 수 없을 때, 자신의 기분을 '회색빛'이라 말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만약 내 앞의 아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나는 과연 무엇이라고 대답해 주어야 할까. 첫 페이지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내가 나같이
느껴지지 않을 때......

그런 게 바로 회색빛이에요."

가끔 나 스스로 나를 부정하게 되는 때가 있다. 내가 아닌 것 같고 뭔가 무겁고 두꺼운 불편한 옷을 껴입고 있는 듯한 느낌일 때. 누군가에게 다가가기도 어렵고 고개를 똑바로 들고 있기도 힘들어 내내 땅만 바라보며 눈을 반쯤 감게 될 때. 주변의 모든 것이 온통 귀찮고 누군가가 어깨를 무거운 힘으로 내리누르는 듯한 무게감에 마음까지 땅으로 내려앉는 기분일 때. 아마도, 회색빛의 때가 바로 그런 때인 것 같다.

이런 아이에게 어떤 현명한 말이 필요할까. 어떤 훌륭한 말이 어울릴까. 이 아이를 회색빛에서 다양한 빛으로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떤 방법으로 이 아이의 기분을 다채롭게 만들 수 있을까. 방법은?
이 아이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 그런 마음마저도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것. 그래서 그런 마음마저도 사랑스런 마음이어서 무척 감격스럽다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더 따뜻하고 소중한 마음이 있을까.

"그 빛깔 하나하나가 네 마음에 여전히 남아 있는 거야.
어디로 가 버린 게 아니고요?
그럼. 마음은 아무 데로도 가지 않아."

마음은 늘 있다. 어디 가지 않는다. 다만 잘 보이지 않을 뿐. 가끔 혹은 자주 숨바꼭질하듯 구석에 잘 숨어 있을 뿐이다. 그러다 문득, 그 빛깔이 필요하지 때 조심히 등장한다. 그 등장이 반갑기도 하지만 때론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색은 그 색대로의 의미가 가치가 있다. 그러니 어떤 색도 소중하지 않은 색이 없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은 모두 아이의 마음 안에 담겨 있으며, 매일 어떤 색이 다르나 나타나더라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한결같을 것이다. 그 마음이 늘 같은 온도일 것이므로, 내일 또 아이가 다른 어떤 빛깔의 마음을 갖게 되더라도 이 아이는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음날 다른 빛이 이 아이를 찾아와도 늘 일정한 사랑의 온도가 따뜻하게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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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를 삭제할까요? 도넛문고 10
김지숙 지음 / 다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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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이를삭제할까요 #김지숙소설 #다른출판사 #미스터리가제본 #다른미스터리서평단 #파란나라의비밀 #서평단 #서평 #책추천

이럴 줄 알았다. 이렇게 이야기가 끊기면 어쩌란 말이냐! 그래서, 결국 그 암호는 무엇이고, 이제 파랑이는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하게 되는 건데? 이 파란 나라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또 파랑이와 남은 아이들에겐 또 어떤 일들이 앞에 놓이게 된다는 걸까.

방법은, 상상을 해보는 수밖에.
우선, 제목은 '이 아이를 삭제할까요?'일 것 같다.(상상이 맞았다!) 마을 위원장의 결정에 따라 지금까지 많은 아이들이 삭제되었다. 우령이가 삭제되었고 우주도 삭제될 것이었다. 문제는, 이 삭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다는 거냐에 있다. 지금까지 다른 마을로 이사하고 전학을 간 아이들은 모두 삭제되었을 것이다. 진짜 이사를 갔을까, 전학을 가서 다른 마을 다른 학교에 있을까. 헌데, 이주의 단어가 아니라 삭제의 단어를 썼다. 보통, 지울 때 쓰는 말. 온라인 상황에서라면 'Delete' 키를 누르면 되는 상황이 삭제다. 그렇다면, 어쩌면 이 '파란 나라'는 사실 현실 공간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알고보면 이 마을에 살고 있는 부모들은 원래 자신이 살고 있는 다른 현실 공간에 존재하며 다만 아이들을 이상적으로 키우려고 이 가상 공간을 만들고, 현실에서의 아이들은 잠재우고 가상 공간에서만 살아가도록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른들만이 들어가는 '그 방'은 그런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이어주는 장치가 되고...
그리고, 마지막 '암호의 비밀' 다음이 '진실의 날'이다. 파랑이는 분명 암호를 해석했을 것이고, 이 파란 나라의 진실을 밝혔을 것이다. 암호 내용에 있는 '엄마'와 관련된 이야기는 분명 교장선생님을 포함한 이 마을의 엄마들에게 그 비밀의 단서가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하게 되고, 이런 엄마들의 비밀을 파랑이 알게 되면서 아이들과 힘을 합쳐 지금의 파란 나라의 비밀도 풀고, 잊었던 기억들도 되찾게 되고, 삭제되었던 친구들도 다시 만나게 될 것 같다. 우령이, 우주와 다시 만나게 되는 파랑이의 모습을 기대해보게 된다.

꿈과 사랑이 가득한
천사들이 사는 나라
맑은 강물이 흐르는
울타리가 없는 나라

동화책 속에 있고 텔레비전에 있고
아빠의 꿈에 엄마의 눈 속에 언제나 있는 나라
아무리 봐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
누구나 한번 가 보고 싶어서 생각만 하는 나라(117쪽)

파란 나라 노래의 가사를 다시 읽어 보면, '파란 나라'는 어디에도 없는 나라다. 환상의 공간이고 아빠의 꿈과 엄마의 눈으로 만든 나라이고, 가 보고 싶지만 누구나 쉽게 갈 수도 없다. 그러니, 이 파란 나라는 어디에도 없는 나라가 맞다. 운영자의 설정에 의해 여러 조절들이 가능한 공간.

어른들의 착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은, 특히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을 자신의 뜻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마치 자신의 분신 혹은 소유물처럼, 아이의 성장과 생각과 행동을 자신이 조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개입하고 간섭하고 또 바꾸려고 드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에 대해 부모가 제멋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는 하나의 독립된 개체이며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다.
아이들은 스스로 제 생각과 행동을 이끌 힘을 가지고 있다. 또한 외부의 힘에 자신을 스스로 지키기 위한 힘 또한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대단한 존재인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번 깨달았다. 파랑이가 또 우주가 자신이 극복해내야 할 문제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를 보면서.

그런 의미에서,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다. 이 아이들이 파란 나라의 작은 세계를 깨고 더 큰 세계로 나가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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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 - 폐 끼치는 게 두려운 사람을 위한 자기 허용 심리학
이지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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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내 얘기인 줄 알았다. 한 장 한 장 읽으며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관찰해서 쓴 글 같았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었구나,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안심도 됐다. 이 정도라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무척 많다는 것일 테니까. 어쩌면 이런 마음과 생각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을 것이고, 그렇다면 오히려 이런 마음이 더 일반적인 거라고 우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런 마음이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헌데, 이렇게 괜찮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라는 걸 책에서 읽었다. 읽었으면서도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를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구나. 책에서 방법을 알려줬다고 해서 당장에 이랬던 사람이 저렇게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아마 이 책의 저자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을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이런 모습을 이해해주는 것 같아서, 이해받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럴 수 있다는, 우리가 다 그런 사람들이라는 공감의 메시지로 읽혀 책 속에 빠져들 수 있었다.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마음에 어떤 것이 필요한지 몸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감정을 느낄만한 상황이 아니라서, 그런 감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로 틀어막지 않으면 좋겠다.(27쪽)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화가 나지 않으면 상대가 우리를 계속 함부로 대하도록 두게 될 수 있다. 무심결에 끓어오른 냄비 손잡이를 잡았을 때 강렬한 통증을 느낄 수 있어야 곧바로 손을 뗄 수 있다. 그래야 피부가 보호되는 것처럼, 우리 마음 역시 누군가의 심리적 침범에 분노라는 통증을 느껴야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다.(39쪽)
숨은 무용한 시간이 아니라, 산만하게 흩어졌던 마음을 모으고 재정비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이 시간을 통해 내면을 성찰하고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고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184쪽)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딱하다. 자기 눈에 부족하고 창피해 보이는 부분은 스스로에게조차 감추려고 한다. 그리고 자기에게는 그런 면이 아예 없는 것처럼 무시하며 지낸다. 그러나 이는 마치 호주머니 속에 날카로운 송곳이 있는데 없다고 부인하는 것과 같아서, 언제든 자신이나 가까이 다가오는 타인이 찔리게 마련이다. 당장 송곳을 빼낼 순 없다 하더라도 송곳을 존재를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265쪽)
공명의 경험은 전염이 된다. 누군가가 내 마음 속 일렁이는 우물을 가만가만 들여다봐 주고 길어 올려줬을 때 안도했던 경험은 몸 어딘가에 각인되어 있다. 그리하여 나 역시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내가 경험했던 눈길로 바라봐 주고 또 공명하려는 태도로 고쳐 앉게 만든다. 그 선순환의 고리를 따라갈수록 공명의 파장은 더 깊고 더 넓어질 것이다.(361쪽)

끝도 없이 책의 귀퉁이를 접고 글을 옮겨 적을 수 있다. 모든 마음이 다 내 마음과 닮아있어서,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공감이고 위로이며 조언이었다. 가만히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나의 생각과 행동과 태도를 대입하여 그 다음 어떤 마음이 되어야 하는지를 스스로 생각하게 됐다. 이게 이 책이 갖고 있는 가장 큰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읽더라도 자신의 이야기와 같이 내용을 흡수하고 자신에게 투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절대, 잘못된 생각이니 고치라고 다그치지 않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토닥여주는 느낌이었다. 자연스레 내가 나를 들여다보게 다시 나를 찾을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는 책.

지시적 마음책김, 내사, 감정지도, 참자기, 의식의 흐름 글쓰기,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진실한 공감자, 자기자비, 삶에 틈입할 기회, 정향반사

몇 가지 꼭 기억해둬야지 싶은 말들이다. 그리고, 이 중 세 페이지 글쓰기는 당장 해봐야겠다. 과연 나는 나의 감정에 거짓없이 솔직한 수 있는지, 그런 솔직한 속에서는 어떤 말과 생각들이 쏟아져 나올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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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V양 사건 초단편 그림소설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고정순 그림, 홍한별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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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펼치자 연달아 나오는 고정순 작가의 그림이 인상적이어서 그 페이지들에 시선을 멈추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마치 얼굴이 일그러져 보이는 듯도 한, 혹은 검은 그림자를 한껏 뒤집어 쓰고 있는 듯도 한 한 여인으로부터 어둡고 혹은 밝고 또는 고요하고 내지는 복잡한 듯한, 그늘진 느낌을 주었다. 괜히 마음이 심난해진다고나 할까. 이런 느낌을 뭐라고 정의내려야할까, 알 수 없는 오묘한 기분으로 드디어 글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군중 속에서 혼자라고 느끼는 것만큼 쓸쓸한 일은 없다고들 말한다. 이런 주제가 소설에도 종종 나오는데 역력한 비애감을 담곤 한다.(...) 이들과 비슷한 자매를 누구나 바로 여남은 명은 술술 읊을 수 있을 것이다.(17쪽)

아, 군중 속의 고독. 아무도 없어 외로운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어 더 외롭다는 것을 모르지 않기에, 이 이야기는 시작부터 우울감을 가득 안고 있었다. 처음은 가볍게 시작할 수도 있으려만, 강한 무게감을 끌어안고 시작하는 느낌이었고, 나도 이런 이들을 몇 명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전히, 아직도. 그리고 어쩌면, 이들에 나도 포함일 수도.

지금 의자를 쳐서 바닥에 쓰러뜨려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러면 적어도 아래층 사람은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알겠지.(22쪽)

누군가의 시선과 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적당한 선에서의 수준이겠지.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 있다면, 이 V양을 소개시켜주고 싶다. 그 방법을 매우 잘 알고 있는 V양일 테니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가벼워지고 투명해지고, 얼마나 더 잘 사라질 수 있는지를 알려줄 것이다. 물론, 매우 슬프고도 우울하게.

사라진 것이 그 사람임을 알았다고 과장해서 말하지는 않겠다. 그렇지만 '무언가'라고 말하는 데는 조금도 거짓이 없다.(32쪽)

그러니까. 어느 누구에게도 순간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존재'도 아니었을 것이며, 그저 '무언가' 정도의 아주 희미하고도 사소함만을, 그것도 겨우 갖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 적 단 한 순간도 단박에 '누구' 하고 떠올릴 수 있는 부류에는 평생 한번도 들지 못했을 것이 뻔하고, 그저 언제라도 그랬던 것처럼 그저 그렇게, 집 안에, 숨죽인 채, 조용히, 아주 작은 움직임도 만들지 못한 채, 그렇게 평생을 지냈을 것이다. 그렇게 지내고 난 후, 과연 가장 최후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떤 기분과 어떤 생각으로 가장 마지막의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얼마나 이상하고 재미있고 미친 생각이었던가! 그림자를 쫓아가서 어디에 사는지 보고, 만약 살아있다면 그 그림자가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라도 한 양 말을 걸다니!(39쪽)

가만히 생각해보게 된다. V양과 같은 처지의 내가, 마치 가구처럼, 거실 한 가운데의 의자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는 어느 날, 누군가로부터의 방문을 받고 그자가 건네는 말을 듣는다면 과연, 현실감이 있기는 할까. 기쁠까, 행복할까, 혹은 그런 나도 덩달아 이상할까. 이런 상상마저도 미친 짓이라고 혼자 속으로만 웅얼거리다 꼼짝도 못한 채 집 안에서 더 안으로, 구석으로 벽으로 스며 들어가버리고 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그 이름을 부른 바로 그 순간이었다.(42쪽)

어쩌면 유일할 수도 있었던, 누군가에게 이름이 불려진 바로 그 순간이었을 텐데, 모든 게 사라지는 순간에라도 이름이 불렸다면, 마음에 조금은 위로가 될 수는 있을까. 이제 그만, 그 집에서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덧-
<부록> 이름이 되어_고정순

나는 '여자애들'의 흔적을 접착제의 역한 내음으로 지웠다. 사측 사람의 말속에 어떤 비하의 의도가 담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 그가 그들을 뭉뚱그려 부른 '여자애들'이라는 이름에는 그들을 향한 관심이 삭제되어 있을 뿐이다.(54쪽)

누군가에게는 관심조차 둘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이름도 없이 뭉뚱그려도 충분한 이들의 존재였을 수 있다. 하지만, '송민아', '박수영', 그리고 또 다른 이름, 그리고 그 이름들의 얼굴들은 관심 밖에서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을 상상했다.(...) 나와 같은 공간에서 불리고 불렀을 이름들을.(55-6쪽)

그리고 본 적 없어도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그들의 얼굴을 상상하며, 여기에 머물렀고 또 어딘가에 머물고 있을 누군가를, 이상하게도 생각한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름을 불러주는 그 순간, 그들에게도 이상하게 누군가의 방문을 받거나 혹은 건네는 질문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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