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소설Y
조은오 지음 / 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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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랐다. 소설 속 시대는 지금의 우리를 들여다보게 하는 소설인가보다 싶었다. 특히 전염병의 시대를 거치면서 만들어놓았던 규칙이 이렇게 사람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사용될 줄은 미처 생각도 못했다. 이미 사람들의 삶을 제약했던 그 당시의 방역이 효과적이지 않았겠다는 생각을 한편으로 갖고 있는 지금으로서, 무척 무섭고도 끔찍한 설정이었다.

[오랜 연구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수 세기 전, 접촉 정도에 따라 단계를 나누어 생존을 도모했다는 흔적입니다. 우리는 이 방법에 다시 희망을 걸어 보기로 했습니다.](38쪽)

'중앙'과 '외곽'이라는 용어에서 보이는 반전도 한몫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중앙'이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아마도 그 효과를 통해 사람들을 더 쉽게 통제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의심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더 좋은 삶, 더 나은 삶을 꿈꾸고 그런 삶은 중심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에 대한 의심이지 싶다. 07이 온영이고 싶은, 한결이 126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판단과 가치관의 문제일 것이다. 철저히 개인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단절하고 눈을 감도록 하는 중앙에서의 삶에서 온영은 의심했고 오히려 불편함을 느꼈다. 자신이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비정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스스로 알아낼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원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있는 울타리를 넘어서야 가능하다는 것, 선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은 쉬울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 선을 넘는 것은 많은 두려움과 압박을 이겨내야 가능한 것이다. 특히 강한 힘에 의해 강요받는 삶 안에서는 더욱 그 틀을 깨는 것이 어렵다. 그럼에도 온영과 친구들이 했던 선택과 행동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용기있는 모습이었다. 이들이 보여준 연대의 모습도.

외곽으로 거주지를 옮긴다고 해서 버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내 발걸음을 막는 진짜 버블보다는, 보이지 않는 버블이 더 위험해. 내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버블로 가득한 중앙에도 버블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지. 게다가......(...) 나는 이제 버블을 깨는 방법을 알고 있잖아.(276쪽)

'버블'은 과연 무엇일까. 통제와 감시, 사람들의 자유를 가로막는 강요된 규칙이나 질서, 혹은 거짓과 허위. 어떤 것으로 읽든 결국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버블은 위험하다. 그리고 이런 버블이 지금 현재 내 주변도 감싸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숙제가 남는다. 이런 버블을 어떻게 어떻게 깨면 좋을지,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온영처럼 친구들과 함께면 더 좋겠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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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알아주는 마음
김지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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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까. 얼만큼 알기 위해 노력하는지도 중요할 것이다. 알려고 하고 이해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이 매우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러려면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장애인을 만나야 한다.(75쪽)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공감되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에서 한참을 지켜봤던 경험이 이 이야기들을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얼만큼 우리가 알고 경험해 보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여러 아이들 중 일부 아이들의 경우를 나도 겪어봤다. 물론 내가 직접 개입하여 아이들을 도와주었다고 할 수 없지만, 내가 그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에서는 어떻게든지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적절한 방법이었는지는 다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긴 하지만. 그리고 이 책의 아이들에게 더 마음이 열릴 수 있었던 건 내가 그런 아이들과 지냈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니, 경험이 그만큼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이 아이들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어른이 곁에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이다. 기대로 싶고 보호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같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받아주고 지켜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어른은 우리 사회가 해주어야 할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은 먹고사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행복했던 순간을 반복하고 싶은 욕망은 우리 안에 심어져 우리를 지탱한다.(20쪽)
실수와 실패의 기억이 쌓여 망설이고 있는 별이에겐 차근차근 마음의 준비를 돕고 도전할 용기가 생길 때까지 지지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 누군가를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옆에서 길을 잃지 않게끔 도와주는 것이 나의 본분임을.(50쪽)

이건 꼭 언어치료사인 저자에게만 적용되는 본분은 아닐 것이다. 이 사회의 어른들이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그 책임을 다 해주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그 시기에 꼭 경험할 수 있어야 할 시간들을 만들어줄 책임을 우리 사회와 어른들이 함께 다해주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은 내가 상황을 과장하고 틀린 사실을 진짜처럼 말하면 웃으며 즐거워한다. 맞고 틀리고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 권력자인 어른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기 때문이다.(120쪽)

틀리고 실수하고 잘못할 수 있다. 이건 아이든 어른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틀려도 실수해도 괜찮다는 것을, 잘못한 것을 다시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한번 더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는 어른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마음을 이 아이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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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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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 일기'는 낯 익은 말이다. 이미 최승자의 <어떤 나무들은_아이오와 일기>를 접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이오와'라는 지명도 'IWP' 프로그램도 마치 내가 경험했던 것인양 친숙하다. 뭔가 나도 알고 있다는 반가움 내지는 아는 척하고 싶은 충동이 불쑥 튀어나오는 느낌이라고나할까. 시인이 묵은 낡은 호텔도 30년 전 그때와 연결되며 마치 과거의 시간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신비함을 제공한다. 어쩌면 문보영 시인이 그런 느낌으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 수도. 뭔가 아이오와에서는 무엇이든 과거와 연결될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새로운 곳에서 오히려 익숙한 것을 발견하는 편안함. 이것 역시 시인의 일기를 채우는 문장들의 결과 맞닿아있는 듯하다. 그래서 더 안정적인 느낌이다.
언어도 환경도 낯선 곳에서는 무엇이든 우왕좌왕하기 나름일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침착하고 차분하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도 공간에 적응하는 과정도, 심지어 불편함에 대처하는 자세까지도 모두 예상하고 있던 것을 하나씩 해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 면에서 시인이 아이오와와 참 잘 어울린다는,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시인의 시와 산문을 읽었고, 시인의 근황을 늘 지켜보고있는 팬으로서 시인이 자신의 공간을 이제서야 잘 찾아갔다는 느낌도 들 정도였다. 일기와 편지는 시인의 또다른 정체성을 테니까.

아이오와는 40도다.(...) 아이오와는 너무 따뜻해서 죽어버릴 것 같다. 이것이 아이오와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다.(25쪽)

아마 나라도 최승자 시인의 일기를 전적으로 믿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따뜻해 죽어버릴 것 같은 아이오와를 나도 겪어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아이오와의 겨울은 너무 겁을 주니 싫고, 딱 40도의 저 온도에 있어보고 싶다는 마음. 정말 너무 따뜻해 죽어버릴 것 같을지, 나를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길을 걷다가 종종 놀란다. '왜 빨리 걷고 있지?' 그리고 생각한다. '달팽이처럼 걸어야지.' 풀밭을 가로지르며 휙휙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을 구경한다.(70쪽)
고시원에 살던 시절에 나는 작은 공간에서도 풍부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많은 것이 바뀌었고, 넓은 공간에 살다 보니 부엌도 없는 작은 호텔방이 갑갑하게 느껴질 거라 걱정했다. 예상과 달리 나는 여전히 별거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다.(138쪽)

달팽이처럼 걷는 시간, 작은 공간에서도 별거 없이 잘 살 수 있는 시인의 모습이 좋다. 천천히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을 하루하루 채워나가고 있는 듯해 지켜보는 마음이 편안하다. 어쩌면 이 글이 '일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일기란 과거의 이야기이다보니, 기억은 미화된다고 하지 않나. 현장감은 떨어질 수밖에. 그러다보니 더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시인님, 아이오와 광인 같아요...
나는 왜 편안함을 느끼는 걸까? 글쎄. 사실 난 줏대 없는 인간이다. 거절에 약하고, 갈등이나 싸움의 조짐이 보이면 회피하거나 도망가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강해지는 것 외의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안다. 어떤 따뜻한 곳에서는 내가 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호구처럼 살아도 된다는 걸 안다.(...)
나는 강해지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변하지 않기로 한다.(208-9쪽)

시인이 아이오와에서 했던 경험들이 모두 의미있었겠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스스로 자신을 인정했다는 점이었다. 어떤 것이 자신의 모습인지를 제대로 확인했다는 것, 지금까지의 나와 앞으로의 나에 대해 생각했다는 것. 그래서 나도 그러고 싶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이 일기를 읽어야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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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 - 초대 정책실장 이정우가 기록한 참여정부의 결정적 순간들
이정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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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중이었고, 거실 TV 앞에서 아이를 품에 안아 재우며 한참을 울었다. 그때 그 아이가 지금 고1이다. 그만큼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노무현 대통령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이렇게 오래도록 남을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의 특별함이 있겠지 싶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물론 그 전에도 늘 들어오던 성품으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특별하다는 말보다 지극히 인간적이었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 그 인간적임으로 그 험난한 일들을 해내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시간이 고뇌와 고난 속이었겠구나 싶다. 그리고 이만큼의 그릇이어야 가능한 자리와 위치가 있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노무현이라는 사람과 참 잘 어울렸다는 생각도 들었다.

유서에 나오는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라는 구절이 내 머리를 때렸다.(397쪽)
노 대통령도 독서를 좋아했고, 위원회를 설치해 학자들과 대화했다. 정책을 만들 때도 눈앞의 인기보다 논리적 타당성과 진정 국민을 위한 정책인지를 따졌다.(398쪽)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생각해내지 못하고 답답할 때 책을 찾는다는 것, 책에서 답을 구하고 책을 통해 다른 이들과 소통하며 그 답이 옳은가에 대해 판단한다는 것. 그래서 책 좋아하는 사람들 주변에는 역시나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그런 사람들이 책으로 나누는 이야기 속에 발전적인 비전에 담기게 된다는 것. 그래서 소망하게 된다. 자신의 일이 끝나고 난 후 책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 그 소망을 미처 이루지 못한 노무현 대통령과 그 꿈을 이룬 문재인 대통령이 함께 겹쳐 떠오른다. 봉하책방과 평산책방이 함께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까지.

이 책을 읽고 문득, 정치적이라는 말을 우린 어떻게 쓰고 있나 싶었다. 사전에는 '정치와 관련된 것.', '정치의 수법으로 하는 것.'이라고 나온다. 그리고 정치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가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의 뜻을 갖고 있다.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정치적'이란 말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라든지 권력을 획득하고 행사하는 활동에 초점을 두는 경우와 인간다운 삶 영위나 상호 간의 이해 조정,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에 초점을 두는 경우다. 저자가 때때로 말하던 첫 만남에도 대뜸 반말을 했다는 대통령과 늘 친절했다는 노무현 대통령을 이 두 초점 중 어디에 두고 바라볼 것인가를 생객하봤을 때, 답은 금방 나온다.
지금까지 '정치적'이란 말을 좋은 뜻으로 사용한 적이 별로 없다. 그건 지금까지 보여준 우리나라의 정치가 이유일 것이다. 불신 가득한 국민으로 만들어 준 장본인이니까. 하지만 모든 정치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몇 명의 대통령이 있었고, 그러기 위해 어떤 과정 속 치열함이 있었는지가 이 책에 잘 담겨 있는 것 같다. 이전에 <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 메디치미디어)를 읽고 강연을 들으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단 한 마디도 그냥 나오는 것은 없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우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주 사소해보일 수 있는 단어 하나 표현 하나였다. 모든 결정이 이리도 힘들어서야 대통령 어떻게 하나 싶을 정도였는데, 이 책은 더했다. 그나마 기록이기 때문에 몇 분의 일로 압축하여 적었을 것을 감안한다면 그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과 치열함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 그 숨어 있던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무게감을 유머로 승화시켰던 노무현 대통령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을 생각하고 주변을 돌아볼 줄 알고, 때론 고집을 꺾지 않았던 인간적인 대통령. 그리고 그 옆을 충직하게 지켰던, 믿음직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정치는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당연하지만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을 읽으며 참 극한직업, 삶을 깎아 희생하려는 마음 없이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감의 직업이구나 싶었다. 이들에 대해 쉽게 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정치를 한꺼번에 묶어 비판하곤 했던 나를 반성하면서.

덧-
그 바쁜 와중에 이런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는 것도 대단한 것 같다. 단 몇 줄의 일기를 매일 남기는 것조차 힘들어 가끔 밀리기도 하는 나로서는 더더욱. 아마도 학자이기에 가능한 의무감, 책임감이지 않았을까. 역사의 한 부분을 담당해야한다는 묵직한 마음이 느껴졌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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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 - 공감부터 설득까지, 진심을 전하는 표현의 기술
정문정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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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언어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국립국어원에서 제작한 영상이 있어 함께 봤는데, 극 중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나중에 말하는 직업은 안 되겠다." 친구의 능력을 낮게 평가하고 미래(직업 진로)를 저주하는 말이었다. 이 세상에 말하지 않는 직업보다 말하는 직업이 훨씬 많을 건데, 이런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리고나서 곰곰이 혼자 생각해봤다. 그러고보니 나도 말하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나는 학창시절 말을 잘 하는 학생이었나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았다. 늘 숨어있길 좋아하고 수업시간에 꼭 해야할 대답이 아니고는 묵음으로 대답하기 일쑤였다. 나도 때에 따라 이런 말을 많이 들었을 건데도 지금 이만큼의 말하기(누구 앞에서 말할 때, 가끔 말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를 할 줄 알게된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아무래도 대화에서 논리적으로 이기고 싶다는 욕심이었던 듯.
4년 째에 접어들었다.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쓰기 시작한 지. 책 읽기는 꾸준히 했지만 쓰기를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휘발되는 기억과 생각을 붙잡고 싶어졌다. 그래서 시작했다. 또 하나, 내가 갖고 있는 부정적이고 삐딱한 마음을 긍정적이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한결같이 나만 잘난 것처럼 생각하고 공격하기 좋았했던 나를 바꿔보고 싶었다. 이건 쓰면서 어느 정도 교정된 듯하다.

이 책은 말하기와 쓰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언어가 표현하기 위한 음성과 문자이니 당연할 수도 있다. 물론 이 두 가지를 모두 잘하기가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자의 능력이 한편으로는 부럽다. 그리고 그런 부러움 이면에는 인정하는 마음이 있다. 말하기 위해 또 쓰기 위해 거쳐왔던 그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런 말과 글이 가능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그저 쉽게 그 노하우와 팁을 공유받고 싶은 생각으로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내가 저자도 아니면서 감히!). 이건 잠깐의 시간으로 축적될 수 있는 기술(부제에서 말한 표현의 기술)이 아니고 깊은 성찰과 노력과 실천이 바탕이 되었을 때 가능한 수준이다. 그러니 책 한 권 읽고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될 거라는 욕심은 금물. 대신 오랜 시간 공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시도해도 좋을 듯.

그런 면에서, 꼭 기억해두고 싶은 내용들이 있었다.

글은 어떤 '척'에서 벗어나야 쓸 수 있는데 말, 특히 강의를 할 때는 '척'의 오라를 뒤집어쓴 뒤에 연기하듯 눈빛과 손짓, 호흡과 발성을 조절해야 하죠.(21쪽)
_'척'은 솔직하지 않아 배척해야한다고 생각했다. 헌데 가만히 보니, 사실 나도 말할 때 '척'을 참 잘 하는 것 같다. 지금껏 '척'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늘 '척' 하면서 말했던 것 같다.

글이란 게 원래 결론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지.(58쪽)
_뻔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돌고 돌아 길게 늘려 써야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생각한다. 그냥 결론만 말하면 더 간단할텐데.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거다. 맞다. 그게 아니다.

일상 상황에서, 특히 친분이 없는 사람과는 대화를 원활하게 이어가는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조금은 밋밋하고 무난한 대화가 계속되더라도 말입니다.(91쪽)
_내가 참 못하는 것 중 하나다. 침묵이 어색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이야기를 계속 해야하는 건 더 불편하다. 이 불편을 극복해야 한다는 말이구나. 끊기지 않는 대화가 필요하단 말이구나.

어떤 말을 의식적으로 하다보면 생각이 그에 따라 이동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마법의 말은 두 가지입니다.
"그럴 수 있어."/"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183-4쪽)
_이 마법의 말들을 잘 보이는 것에 적어두고 잊지 말아야겠다. 나란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각종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학대와 빈곤을 경험한 아이들에게는 뇌가 빨리 닳는 후유증이 남기 쉽습니다.(...) 눈치보고 생존하는 데에만 에너지를 몰아 써도 부족한 상태니까 뇌가 금세 과부하에 걸려버리고 마는 거예요.(203쪽)
_눈치보고 생존하기 위해 뇌가 과부하가 걸릴 정도라는 걸, 읽어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그만큼 고통을 이기기 위해 우리 몸이 닳아버릴 정도로 애쓰고 있다는 것에 순간 울컥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겪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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