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 - 공감부터 설득까지, 진심을 전하는 표현의 기술
정문정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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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언어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국립국어원에서 제작한 영상이 있어 함께 봤는데, 극 중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나중에 말하는 직업은 안 되겠다." 친구의 능력을 낮게 평가하고 미래(직업 진로)를 저주하는 말이었다. 이 세상에 말하지 않는 직업보다 말하는 직업이 훨씬 많을 건데, 이런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리고나서 곰곰이 혼자 생각해봤다. 그러고보니 나도 말하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나는 학창시절 말을 잘 하는 학생이었나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았다. 늘 숨어있길 좋아하고 수업시간에 꼭 해야할 대답이 아니고는 묵음으로 대답하기 일쑤였다. 나도 때에 따라 이런 말을 많이 들었을 건데도 지금 이만큼의 말하기(누구 앞에서 말할 때, 가끔 말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를 할 줄 알게된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아무래도 대화에서 논리적으로 이기고 싶다는 욕심이었던 듯.
4년 째에 접어들었다.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쓰기 시작한 지. 책 읽기는 꾸준히 했지만 쓰기를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휘발되는 기억과 생각을 붙잡고 싶어졌다. 그래서 시작했다. 또 하나, 내가 갖고 있는 부정적이고 삐딱한 마음을 긍정적이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꾸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한결같이 나만 잘난 것처럼 생각하고 공격하기 좋았했던 나를 바꿔보고 싶었다. 이건 쓰면서 어느 정도 교정된 듯하다.

이 책은 말하기와 쓰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언어가 표현하기 위한 음성과 문자이니 당연할 수도 있다. 물론 이 두 가지를 모두 잘하기가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자의 능력이 한편으로는 부럽다. 그리고 그런 부러움 이면에는 인정하는 마음이 있다. 말하기 위해 또 쓰기 위해 거쳐왔던 그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런 말과 글이 가능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그저 쉽게 그 노하우와 팁을 공유받고 싶은 생각으로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내가 저자도 아니면서 감히!). 이건 잠깐의 시간으로 축적될 수 있는 기술(부제에서 말한 표현의 기술)이 아니고 깊은 성찰과 노력과 실천이 바탕이 되었을 때 가능한 수준이다. 그러니 책 한 권 읽고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될 거라는 욕심은 금물. 대신 오랜 시간 공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시도해도 좋을 듯.

그런 면에서, 꼭 기억해두고 싶은 내용들이 있었다.

글은 어떤 '척'에서 벗어나야 쓸 수 있는데 말, 특히 강의를 할 때는 '척'의 오라를 뒤집어쓴 뒤에 연기하듯 눈빛과 손짓, 호흡과 발성을 조절해야 하죠.(21쪽)
_'척'은 솔직하지 않아 배척해야한다고 생각했다. 헌데 가만히 보니, 사실 나도 말할 때 '척'을 참 잘 하는 것 같다. 지금껏 '척'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늘 '척' 하면서 말했던 것 같다.

글이란 게 원래 결론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지.(58쪽)
_뻔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돌고 돌아 길게 늘려 써야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생각한다. 그냥 결론만 말하면 더 간단할텐데.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거다. 맞다. 그게 아니다.

일상 상황에서, 특히 친분이 없는 사람과는 대화를 원활하게 이어가는 그 자체가 중요합니다. 조금은 밋밋하고 무난한 대화가 계속되더라도 말입니다.(91쪽)
_내가 참 못하는 것 중 하나다. 침묵이 어색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이야기를 계속 해야하는 건 더 불편하다. 이 불편을 극복해야 한다는 말이구나. 끊기지 않는 대화가 필요하단 말이구나.

어떤 말을 의식적으로 하다보면 생각이 그에 따라 이동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마법의 말은 두 가지입니다.
"그럴 수 있어."/"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183-4쪽)
_이 마법의 말들을 잘 보이는 것에 적어두고 잊지 말아야겠다. 나란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각종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학대와 빈곤을 경험한 아이들에게는 뇌가 빨리 닳는 후유증이 남기 쉽습니다.(...) 눈치보고 생존하는 데에만 에너지를 몰아 써도 부족한 상태니까 뇌가 금세 과부하에 걸려버리고 마는 거예요.(203쪽)
_눈치보고 생존하기 위해 뇌가 과부하가 걸릴 정도라는 걸, 읽어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그만큼 고통을 이기기 위해 우리 몸이 닳아버릴 정도로 애쓰고 있다는 것에 순간 울컥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겪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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