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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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 일기'는 낯 익은 말이다. 이미 최승자의 <어떤 나무들은_아이오와 일기>를 접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이오와'라는 지명도 'IWP' 프로그램도 마치 내가 경험했던 것인양 친숙하다. 뭔가 나도 알고 있다는 반가움 내지는 아는 척하고 싶은 충동이 불쑥 튀어나오는 느낌이라고나할까. 시인이 묵은 낡은 호텔도 30년 전 그때와 연결되며 마치 과거의 시간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신비함을 제공한다. 어쩌면 문보영 시인이 그런 느낌으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 수도. 뭔가 아이오와에서는 무엇이든 과거와 연결될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새로운 곳에서 오히려 익숙한 것을 발견하는 편안함. 이것 역시 시인의 일기를 채우는 문장들의 결과 맞닿아있는 듯하다. 그래서 더 안정적인 느낌이다.
언어도 환경도 낯선 곳에서는 무엇이든 우왕좌왕하기 나름일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침착하고 차분하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도 공간에 적응하는 과정도, 심지어 불편함에 대처하는 자세까지도 모두 예상하고 있던 것을 하나씩 해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런 면에서 시인이 아이오와와 참 잘 어울린다는,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시인의 시와 산문을 읽었고, 시인의 근황을 늘 지켜보고있는 팬으로서 시인이 자신의 공간을 이제서야 잘 찾아갔다는 느낌도 들 정도였다. 일기와 편지는 시인의 또다른 정체성을 테니까.

아이오와는 40도다.(...) 아이오와는 너무 따뜻해서 죽어버릴 것 같다. 이것이 아이오와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다.(25쪽)

아마 나라도 최승자 시인의 일기를 전적으로 믿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따뜻해 죽어버릴 것 같은 아이오와를 나도 겪어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아이오와의 겨울은 너무 겁을 주니 싫고, 딱 40도의 저 온도에 있어보고 싶다는 마음. 정말 너무 따뜻해 죽어버릴 것 같을지, 나를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길을 걷다가 종종 놀란다. '왜 빨리 걷고 있지?' 그리고 생각한다. '달팽이처럼 걸어야지.' 풀밭을 가로지르며 휙휙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을 구경한다.(70쪽)
고시원에 살던 시절에 나는 작은 공간에서도 풍부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많은 것이 바뀌었고, 넓은 공간에 살다 보니 부엌도 없는 작은 호텔방이 갑갑하게 느껴질 거라 걱정했다. 예상과 달리 나는 여전히 별거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다.(138쪽)

달팽이처럼 걷는 시간, 작은 공간에서도 별거 없이 잘 살 수 있는 시인의 모습이 좋다. 천천히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을 하루하루 채워나가고 있는 듯해 지켜보는 마음이 편안하다. 어쩌면 이 글이 '일기'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일기란 과거의 이야기이다보니, 기억은 미화된다고 하지 않나. 현장감은 떨어질 수밖에. 그러다보니 더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시인님, 아이오와 광인 같아요...
나는 왜 편안함을 느끼는 걸까? 글쎄. 사실 난 줏대 없는 인간이다. 거절에 약하고, 갈등이나 싸움의 조짐이 보이면 회피하거나 도망가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강해지는 것 외의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안다. 어떤 따뜻한 곳에서는 내가 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호구처럼 살아도 된다는 걸 안다.(...)
나는 강해지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변하지 않기로 한다.(208-9쪽)

시인이 아이오와에서 했던 경험들이 모두 의미있었겠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스스로 자신을 인정했다는 점이었다. 어떤 것이 자신의 모습인지를 제대로 확인했다는 것, 지금까지의 나와 앞으로의 나에 대해 생각했다는 것. 그래서 나도 그러고 싶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이 일기를 읽어야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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