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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이웃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5월
평점 :

<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별을 스치는 바람>의 작가 이정명의 소설
선한 이웃 by 은행나무
작가 이정명님의 소설을 책으로 읽어본 적 없었던 그야말로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무지했던 나.
책을 받아 읽으면서 영화,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고 겁없이 덤빌만한 소설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타이틀이나 책 뒷편의 글을 보고 초반의 김기준이 최민석 검거에 실패한 부분을 읽으면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겠구나 대강 감이 잡혔다(사실은 잡혔다고 생각했다).
짐작이 맞아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사건의 시간적 흐름이나 주인공들의 이면이 드러났을 때
계속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뇌리에 쿡쿡 박히는 유려한 문장들이 줄을 지었으나
중반까지도 큰그림이 머릿속으로 정리되지 않은채 겉돌기만 하더라.
절대로 쉬운 소설이 아닌데다가 1980년대의 시대상을 너무나 모르고 있던 내가 답답했다.
학창시절에도 고조선, 삼국시대,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배우고 또 배웠던 것 같은데
정작 근현대사는 그 옛날 역사보다도 너무나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데 어젯밤 '알쓸신잡'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1984 프락치 사건에 연류되어 형을 받았던 일과 그가 쓴 '항소이유서'가 화두에 올랐다.
그리고 오늘 6. 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이 치러졌고, 이한열 열사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정명 작가는 바로 이 1984 9월 벌어진 대학가 프락치 사건에서 이 글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소설의 등장인물이나 엘렉트라의 변명과 같은 소설 속 주요 소재들은 물론 허구이지만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만큼은 어쩐지 2017년을 살고 있는 나에게 너무나 와 닿았다.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국민들을 힘들게 했던 사건이 오버랩되면서
독제체제에 대응하는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현재가 그 옛날과 다를 것이 무엇이냔 말이다.
신출귀몰한 전설적인 운동가 '최민석'을 잡아넣기 위해 작전을 펼치는 공작요원 김기준.
그는 눈앞에서 최민석을 놓치고 좌천되는데 그는 최민석을 놓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료를 모아 다시 한 번 도전하게 된다.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이태주는 마지막 공연에서 단어 하나를 고쳐 배우들까지 모조리 잡혀가게 되는데
모두 고초를 겪지만 정작 이태주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다가 보름만에 방면된다.
그는 변절자라는 오명을 얻게 되고 새로운 작품을 무대에 올리려고 하지만 계속해 어려움을 겪는데
그러던 차에 배우 '김진아'를 만나고 투자자가 연결되면서 작품을 완성해나간다.
이들이 서로 엮여 만들어진 이 소설은 진짜 연극무대는 어디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정말 기가막힌 극작가는 누구이며, 역할에 푹 빠져 연기한 배우들은 누구일까.
앞만 보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나가는 부역자들은 과연 선한 이웃인가?
끝없는 물음 속에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그렇다면 진실은? 진실은 어디로 사라지는 거지?"
"진실은 사라지지 않아. 그딴 건 애초에 이 세상에 없었어."
선한 이웃 p245 중에서...
중반까지는 이야기를 정리해내기 쉽지 않았지만
기준이 본격적으로 공작을 시작한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정말 소설속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씁쓸하게도 현실에 매우 잘 어울리는 한 편의 연극이었다.
"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건 살인자나 테러리스트 같은 악한이 아니라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선한 이웃들이다.
인간은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지옥을 만드는 것이다.
"
선한 이웃 p246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