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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빙 미스 노마 - 숨이 붙어 있는 한 재밌게 살고 싶어!
팀, 라미 지음, 고상숙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드라이빙 미스 노마 - 팀, 라미
(에세이 / 고상숙 옮김 / 352p / 흐름출판)
삶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지만 누구에게나 마지막이 찾아온다. 그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혹은 내 주위 누군가의 마지막을 어떻게 함께 하고 싶은지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코 앞에 어마어마한 장벽이 놓인 느낌이 든다. 그런데 <드라이빙 미스 노마>의 주인공 노마 할머니와 아들 팀, 며느리 라미는 멋진 삶에 있어서 정말 멋진 시간을 보냈고, 즐겼고,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팀과 라미는 하던 일을 접은 채 라미의 언니 샌디로부터 받은 에어스트림 캠핑카를 타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닌다. 그렇게 다니면서 전기의 소중함, 물의 귀함을 체감했고 예전보다 융통성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 관대해지고 열린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삶을 즐기던 그들의 계획은 한 순간에 틀어지게 된다.
"노화와 질병은 우리의 계획을 봐주지 않는다. 자기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지 않고, 그저 자기들의 때가 되었을 때 찾아와 인생을 휘저어놓는다." (33p)
외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 뒤 부모님을 만나러 갔다가 아버지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몸이 아픈 아버지는 온갖 약으로 버텨왔고, 그 약들이 부작용을 일으켜 서서히 몸이 망가져 갔던 것이다. 거기다 아버지를 간호하며 보내던 중 어머니는 자궁암 진단을 받게 되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팀과 라미는 종종 나이듦에 대해 이야기 하려 했고, 부모님이 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물어봐야지 마음을 먹었었지만 어쩐지 그 화제를 피하고 미뤘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은 그들에게 후회라는 감정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아픈 어머니를 요양원에 혼자 두고 싶지 않았고 그녀에게 사랑과 감사를 분명히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모시고 지금처럼 여행을 다니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가장 중요한 어머니의 의견을 묻게 된다. 바깥 활동을 좋아하시지만 수줍은 성격이었던 노마 할머니는 예상외로 흔쾌히 수락한다. 의사 역시 수술과 치료의 과정이 워낙 힘들고, 90세의 연세에 그 과정을 얼마나 버티실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며 그들의 계획에 긍정을 표시했다. 그렇게 그들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이 여행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지 또 어디로 가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41p)
팀과 라미는 둘이 여행할 때에 비해 신경써야 하는 부분들이 생겼다. 어머니는 누군가의 손실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다 보니 라미는 어머니와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고 생활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과 여행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집에서 보았던 사진에선 절대 볼 수 없었던 환하게 웃는 노마 할머니의 얼굴을 보고 그들은 함께 기쁨을 느끼게 된다. 라미가 좋아하는 사진을 찍고 블로그에 공유하면서 사람들의 댓글을 읽는 것도 그녀의 마음을 말랑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겠지만 아마 아이처럼 기뻐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진심으로 전해진 게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여행을 할 수록 생기를 되찾는 어머니. 그들은 끌리는 대로 자유로운 여행을 했고,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경험을 하며 더 큰 자유와 기쁨을 느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던 그들은 다함께 '행복'이라는 길을 걸어 갔다. 여정 중에 팀은 어머니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노마 할머니가 새로운 세상에 나왔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들이 온전히 미스 노마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였든 그 모습이 좋았고, 그들은 그 모습들을 두 눈에 새겼다. 인디언 마을에서의 어머니의 모습도, 퍼레이드를 보러 갔다가 퍼레이드 카에 탑승하셨던 어머니의 모습도...
사실 암이라는 무서운 병 앞에서 치료가 아닌 다른 방법을 선택한다는 것이 절대 쉽지 않다. 일단 지금보다 나아져야 한다는 생각에 치료나 수술로 이어지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이다. 하지만 노마 할머니처럼 90세의 연세라면 사실 수술과 이후의 과정 혹은 항암치료 등은 상상 이상의 고통을 가져온다. 나의 시외할머니께서는 노마 할머니보다 훨씬 젊으셨는데도 항암치료에 들어가자 엄청난 고통을 호소하셨다. 어떤 치료를 받을 때에는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어떤 치료를 받을 때에는 입 안이 온통 헐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 정정하시던 할머니께서 고통에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 덜컥 겁이 났다. 막연한 두려움이 밀려왔던 것 같다. 진단을 받기 전에는 어떤 통증도 없으셨던 분이 치료에 들어가자 고통으로 힘겨워 하셨던 모습...
반면 노마 할머니는 팀과 라미와 함께 1년여의 시간을 정말 행복으로 가득 채우셨으므로 누구보다 행복한 하루 하루를 맞이하지 않으셨을까? 매일이 즐겁고, 매일이 기대되는 여정이었으리라. 물론 당신의 병이 깊어짐에 따라 고통을 느끼셨겠지만 매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정말 사는 것처럼 살아낸 1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마 할머니는 지금도 새로운 세상을 여행하고 계시지 않을까? 나의 노년도 그냥 흘러가는 세월이 아닌 내가 끝까지 노를 젓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경험도 하찮은 것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는 '단순히 그냥 살아 있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차이가 크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p77)
"어머니, 다음 여행도 행복하고 즐거운 여행이 될 거예요." (p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