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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갱
반시연 지음 / 인디페이퍼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무저갱 - 반시연 장편소설
인디페이퍼
처음부터 내내 편안한 마음을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지독히도 잔혹하여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집중해서 읽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든다. 잔인하고, 소름끼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그런 내용들이 반복되는 소설이라 책장을 빠르게 넘기고 싶지만 도저히 빠르게 읽히지 않았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책장을 넘겨 보니 이 스토리는 더없이 완벽했다.
"고작 열두 살 먹은 애한테 몹쓸 짓을 저질렀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그 어린아이가."
"그런데도 형편없이 낮은 형량을 받았습니다. 말이나 될 법한 일입니까?
애초에 다 잘못됐어요. 술 마셨다고 감형해주고 범죄자의 사회적 지위까지 고려해주고. 코미디입니다."
(p96)
범죄자. 즉 가해자가 인권을 보호받는 세상. 물론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실수를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암흑으로 뒤덮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될 것들이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아동 성범죄라고 하면 피해자와 그 가족은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갈텐데 가해자는 인권을 보호하고, 음주 혹은 정신적인 질병 등에 의해 감형을 받는다면 그게 정말 모두에게 공정하다고 볼 수 있을까?
살인과 강간 등으로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인물 '노남용'. 보통 잔혹한 범죄자들은 성장 배경에 문제가 있다느니,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랄 확률이 높다는 등의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은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범죄자 '노남용'은 매국노의 후손으로 돈 많은 빵빵한 집안 태생이다. 그런 그가 성범죄와 살인을 저지른 전과자이며 폭력적인 것은 물론이요. 새디스트이자 마조히스트라고 한다. 세상을 떠들석하게 여러 번이나 범죄를 반복했는데 살인죄로 들어간 그가 받은 형량은 고작 10년이었다. 이것은 법이 범죄자를 지켜주는 꼴이 아닌가? 10년 뒤에 그가 사회에 나오면 선량한 다수의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어야 할텐데... 그를 다시 감옥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사냥꾼', '파수꾼', '싸움꾼'이 등장한다.
타인에게 지독한 고통을 주거나,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에 대해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하다', '이 사회를 위해 옳은 일이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냥꾼'들은 그들 나름의 기준이 아주 확고하다. 절대 가해자의 의뢰는 받지 않으며, 피해자를 위해서만 움직인다. 그러니까 나쁜 놈을 벌하는 의뢰만을 수행하는 회사이다.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러나 여성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협박하는 남자를 신고했다고 했을 때 그 남자가 철저하게 격리되거나 여자가 철저하게 보호되지 않는다. 결국 신고했다고 더 화가 나서 다시 찾아와 더 큰 위해를 가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피해자들은 법에 기대어 자신들을 보호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사냥꾼'이 존재한다.
선생님이라 불리는 '파수꾼'은 고통 없는 자살을 돕는다. 그들도 나름의 법칙이 있었다. 책임져야 할 부분이나 치루지 못한 댓가가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의뢰는 받지 않는다. 자기만 편해지겠다고 가족에게 고통을 주거나, 어떤 잘못에 대한 댓가를 치루지 않고 손쉽게 죽음을 택하는 이들은 거부한다.
'싸움꾼' 역시 자신만의 기준이 있었다. 폭력과 살인의 대상이 '나쁜놈'이라는 것이다. 나쁜 사람, 죄가 있는 사람, 악한 사람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다만 그 기준을 판단하는 것 또한 자신이므로 주관적일 수 있다.
예전에 나를 가르치시던 교수님이 늘 하셨던 말이 생각난다. "나는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무서워." 그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그 말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떠올랐다. 비록 <무저갱>이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범죄자나 범죄사실들은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났을 법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의식하지 않고 있을 때는 사는 게 즐겁기만 하지만 의식하는 순간 모든 것이 두려워진다. 내 아이들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들이 '노남용'을 다시 감옥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벌이는 일들이 참 기가 막히다. 그는 절대 만만한 인물이 아니기에 그만큼 철저할 수밖에... 마지막 반전은 전혀 짐작도 못했다. 내가 참 어설픈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그 반전이 내겐 너무 잔혹하기만 했던 이 소설을 확 돋보이게 했다. 작가가 마음먹고 날린 회심의 일격이 아니었나 싶다. 그 일격이 내겐 통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