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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2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평점 :

해리 1, 2 - 공지영
장편소설 / 한국소설 / 해냄
사람이 무섭다 한들 모든 이들이 그렇지 않을 것이고, 종교가 타락했다 해도 모든 종교인이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지영' 작가가 쓴 이번 소설 <해리>를 읽고 나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물론 소설은 허구라고 하지만 작가의 많은 취재가 있었고 그만큼 현실감이 있었기에 독자들에게 어떤 개인 사정(누군가가 떠오르면 그건 당신의 사정이라고 하신 작가님...)을 부여하신 것 같다.
나는 어릴적 성당에 다녔다. 시골에 있는 작은 성당... 당시에는 어지간한 동네 교회보다야 훨씬 큰 느낌이었는데 최근 지나다 보니 화려하고 번듯한 교회들에 비해 외관에서 보여지는 어떤 기개는 조금 빛을 발한 듯 보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다녔으니까 꽤 오래 다녔는데 돌이켜 보면 큰 신앙이 있었던 것 같진 않다. 하지만 마음이 편해서 그 곳에 내 발길이 향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냉담도 아니고 내 스스로도 무교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릴적 뵈었던 청빈한 모습의 신부님들, 심지어 내가 다니던 곳보다 더 작은 본당으로 가셔서 당신이 타던 자동차도 팔아 성당을 유지하시던 신부님의 모습은 좀 오래 기억되는 것 같다. 그래서 카톨릭의 부정한 모습들은 단순히 화가 난다기 보다 가슴이 아프다. 카톨릭 신부들은 보통 사유재산을 많이 소유하지 않는다. 소유하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에 봉헌하기도 하고 많은 부를 품에 안고 계시는 분들은 별로 본 적이 없다. 물론 수도회 소속이라면 아예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봉사'와 '희생'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카톨릭은 더욱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사람이 카톨릭이 주는 이미지를 등에 업고 나쁜 짓을 한다면 그건 단순히 잘못된 행동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죄를 짓는 것과 같다. 일종의 기만이랄까...
무진의 카톨릭 교구 외에도 공무원들... 이들은 국민을 위해 일을 하기 때문에 국민들의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데 혈세를 헛된 곳에 쓰고, 정작 국민은 외면한다. 정말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어디 하나 믿을 놈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물론 허.구.라.지.만... (소설의 시작과 끝에 허구를 강조하셨으니 나도...ㅎㅎ)
<해리>를 읽다 보니 도대체 누가 나쁜 사람이고 누가 억울한 사람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억울하다고 울던 사람들도 다들 자신의 치부는 감추고 남의 잘못만 떠들기 일수이고, 카톨릭 교회 역시 어디서도 '청빈'에 어울리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안드레아의 집'은 아닌 것 같았지만 심지어 '민들레 마을'까지도... 그래, 이런 사람도 있지 하고 웃다가 뒷통수를 맞으면 더!! 아프다. 뒷통수가 아닌 가슴이... 그들에게 들리는 하느님의 말씀은 도대체 어떤 것들일까? 의문이 든다.
소설을 읽을수록 점점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하고 당하고 학을 떼 놓고 말 한마디에 금방 흔들리는 사람들을 보며 참으로 안타까웠다. 아니 숨 쉬는 것도 거짓말이라면서 왜 그렇게 쉽게 흔들리는 거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다 싶으면서도 어디 하나 믿을 구석은 있었으면 하는 희망... 작은 끈 하나 정도는 놓지 않고 잡고 있고 싶은 마음. 누구나 그런 거 하나쯤 있을 테지만 살면서 그 끈이 점점 끊어질 듯 위태롭게 느껴저서 속상하다.
"인간은 변하지 않아요. 만일 변한 친구가 있다면 우리가 어려서 그를 잘못 본 거예요."(p92)
"불쌍히 여기는 마음. ……절대로 가지지 마시고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이런 인간들은 대개 끈질기고 뻔뻔하고 부지런하기까지 해요. 필요하면 엄청 비참한 지경이 된 듯 불쌍하게 굴 거예요. 이들은 가면을 쓴 코스프레엔 달인들이에요. 이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 부류가 있어요. 흔히 '상식적으로' 사고하고 늘 '좋은 쪽으로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 이게 이들의 토양이에요."(p159)
"자매님, 화내지 마세요. 전 안타까워서 그래요. 그들은 독약을 먹고 있어요. 그게 독약인 줄도 모르고, 안 죽네, 맛있네, 이러고 있다고요. 그들이 쥐약이 든 빵을 계속 먹고 있는데, 왜 화가 나요? 안타깝지요, 그 사람들이요. 그들이 제 동료고 선배고 우리 아버지 같은 주교님이신데……. 마음이 타요. 제 눈 아픈 것보다 맘이 더 타고 아파요."(p169)
"결국은요, 자매님. 이 세상에 우리가 남기고 갈 것은 우리가 사랑했다는 사실이에요. 그것이 좋은 결과를 맺었든 그렇지 않았든……. 그것도 아니면 삶은 너무 비루하고, 우리는 그냥 고급 먹이를 찾는 짐승에 가깝겠죠. 그러면 너무 비참하잖아요."(p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