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없는 남자 한국추리문학선 2
김재희 지음 / 책과나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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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없는 남자 - 김재희

한국소설 / 추리소설 / 책과 나무





작가 '김재희'의 소설 <표정없는 남자>.

외국 소설을 읽다가 한국 소설을 접하면 예전에는 뭔가 덜 채워지는 느낌이 있었지만 요즘엔 좀 편안하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그래서 자꾸 찾게 되는 것 같다. 이번에 읽은 소설 <표정없는 남자> 역시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고, 한국소설이라 더 관심이 갔는데 알고 보니 예전에 읽었던 <유랑탐정 정약용>, <경성 탐정 이상>의 작가님이 쓰신 소설이었다. 그래서 더욱 기대가 높았던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유진과 준기.

서로 '아버지'에 관한 상처가 있는 인물들이다. 유진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묻었다가 준기를 만나면서 그 기억을 꺼내고 인정하게 된다. 준기는... 그의 아버지는 실종된 상태이며 한 때 준기는 경찰에게 의심을 사기도 했던 인물이다. 두 주인공 모두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터 놓는 것이 어렵다. 방어적인 태도로 생활을 하지만 늘 외로움을 느낀다. 그런 그 둘이 서로에게 끌린 것은 어쩌면 당연했던 것일지도...


둘이 쭉 행복했다면 좋았겠지만 갑자기 변하는 준기의 모습을 볼 때마다 유진은 그가 무섭다. 강압적이기도 하고, 급기야 폭력적인 모습까지 보인다. 극단적이기도 하다. 그런 그의 주변에 프로파일러와 경찰이 접근한다. 유진은 그들에게 도움을 청해 보기도 하지만 프로파일러 '감건호'는 준기로 인해 위험해지기도 하고, 경찰 '박경식'에게 도움을 받기도 한다. 결국 진실은 시간이 흘러도 드러나게 되어 있고, 이 소설에서도 그러한데 끔찍하기도 하면서 한편 안타깝기도 하다. 모두 다 행복해졌으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데이트 폭력' 그런 맥락이기도 하고, 과거로부터 그의 마음에 남겨진 상처들이 작용하는 것도 같다. 무조건 폭력은 나쁘지만 그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서로 앙숙처럼 보이는 박경식과 감건호의 모습들이 재밌게 그려지기도 하고, 경찰로서 직업 의식이 투철한 박경식과 은근 따뜻한 프로파일러 감건호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보여진다. 앞으로도 김재희 작가의 소설에서 프로파일러 감건호의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을 것 같아 더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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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파이 살인 사건
앤서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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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호로비츠'의 장편소설 <맥파이 살인 사건>을 손에 쥔 순간 묵직한 두께감이 느껴졌다. 페이지는 대략 300대 초반. 응? 내가 숫자를 헷갈렸나 싶어 다시 살펴 보았는데

약 300페이지가 두 번 반복되어 있었다. 소설을 읽고 보니 소설 속에 소설이 담겨 있었다. 작가가 작가를 그려냈고, 그 작가가 탐정을 그려냈다. 독자들은 그렇게 그들을 행적을 따라가다가 소설 속에 끌려 들어간다.


앞쪽에 있는 300여 장은 '앤서니 호로비츠'의 <맥파이 살인 사건>이 아닌, '앨런 콘웨이'가 만들어낸 탐정 '아티쿠스 퓐트'가 등장하는 소설 <맥파이 살인 사건>이다. 하단에 그림이 들어가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 그림이 있는 전반부와 마지막 끝 부분이 '소설 속 소설' 부분에 속한다. 앨런 콘웨이의 소설이, 또 탐정 '아티쿠스 퓐트'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수전 라일랜드'는 클로버리프 북스의 소설 팀장이다. 이 출판사는 앨런의 소설을 출간해왔고, 앨런의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 아홉 번째 작품 <맥파이 살인 사건>의 원고 역시 수전의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소설의 결말이 없다?! 사장인 '찰스 클로버'에게 연락을 했지만 연락이 되질 않고, 수전은 라디오를 통해 앨런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최근 추리, 스릴러를 읽다가 그런 경우는 별로 없었지만 예전에 셜록 홈즈에 빠져 있을 땐 나도 모르게 홈즈처럼 되도 않는 추리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홈즈와 묘하게 닮아 있는 퓐트 시리즈를 읽은 수전 역시 그랬다. 소설의 결말을 추리해 보다가 앨런의 사망 소식을 듣고는 사라진 이 소설의 결말을 찾아 헤매는데... 결국 탐정 못지 않은 무언가를 발휘하는 수전. 수전과 마찬가지로 결말이 없는 <맥파이 살인 사건>을 읽은 나 역시 이 소설의 결말이 너무 궁금했다. 수전의 뒤를 열심히 쫓게 된 이유가 수전의 행동에 흥미를 느낀 것도 있지만 그보다 앨런 소설의 결말이 궁금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수전과 나에게 결말에 대한 집착을 만들어 낸 '앨런 콘웨이'의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 아홉 번째 작품 <맥파이 살인 사건>은 메리 블래키스턴의 죽음과 매그너스 파이의 연이은 죽음에 숨겨진 비밀을 죽음을 앞둔 탐정 '아티쿠스 퓐트'가 파헤치는 스토리다. 동네 사람들은 온통 의심스럽고, 사람들을 조사하는 탐정 퓐트의 뒤를 따라다니며 지켜 보아도 뭐가 어떻게 흐르는 것인지 좀처럼 감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나 퓐트의 조사가 끝나갈무렵 희미하게 진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조사한 사실들이 의미하는 바를 혼자만 알고, 자신이 세운 가설 증명에 필요한 퍼즐 조각을 정확히 찾아내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부분들을 중요한 단서로 탈바꿈 시키는 퓐트의 모습은 흡사 셜록 호움즈를 보는 것만 같았다. 경찰을 도와 사건을 명쾌하게 종료하고는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는 모습 역시 그러하다. 물론 이 소설은 퓐트의 이야기로 단순하게 끝맺음을 하고 있지는 않다. 퓐트의 이야기를 쓴 작가 앨런의 이야기도 풀어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사라진 결말을 찾는 순간 모든 것은 그렇게 해결된다.


읽는 내내 재밌고, 분명 내 취향인 소설이었는데 읽어도 읽어도 진도가 안나가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워낙 읽는 속도가 좀 느리긴 하지만 이 소설은 꽤 오래 쥐고 있었던 것 같다. 총 600페이지가 넘어가는 분량 탓일까? 하지만 앞서 얘기했 듯 재밌다는 내 감상은 변하지 않는다. 전반부를 담당하는 사건과 홈즈처럼 사건을 추리하는 퓐트의 모습도, 사라진 결말을 찾아 탐정 못지 않은 능력을 발휘하는 수전의 모습도 좋았다. 될 수 있는 한 많은 재료를 준비해서 한 번에 딱 알맞게 버무려내는 재미, 매그너스 파이의 최후와 닮은 느낌에 섬뜩했던 수전의 위기... 시간을 오래 들여 읽은 만큼 오래 기억에 남아있기를 바란다!



한 마리면 슬픈 일이 생기고,

두 마리면 기쁜 일이 생기고,

세 마리면 딸이 생기고,

네 마리면 아들이 생기고,

다섯 마리면 은화가 생기고,

여섯 마리면 금화가 생기고,

일곱 마리면 절대

얘기하면 안 되는 비밀이 생기고. (p56)


일곱, 절대 얘기하면 안 되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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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역 폭발사건
김은미 지음 / 제8요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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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역 폭발사건 - 김은미

한국소설 / 제8요일



1900년대와 2000년대를 넘나들며 전개되는 <신주쿠역 폭발사건>. 1900년대의 이야기가 2000년대를 살고 있는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모든 것은 '강복순'으로 이어진다.


과거 일제치하에 놓여있던 시절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 유학생들이 경찰에 체포되어 유치장에 감금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유학생 '동주'를 찾아 경도에 와 있던 복순 역시 동주의 면회를 가다 잡혀 감금되고 만다.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독방에 수감된 그녀는 그곳에서 강압적으로 성분을 알 수 없는 어떤 주사를 반복해 맞게 된다. 그 횟수가 늘어날수록 감옥에서 시체가 되어 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강복순은 무사할 수 있을까?!


코헤이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서류봉투 안의 편지와 사진. 그땐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의아했지만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했고, 잠이든 코헤이는 부모님이 사고를 당하는 꿈을 꾼다. 그 꿈은 곧 현실에서 일어났고, 코헤이는 혼자가 됐다.

국제교류단 활동의 일환으로 일본을 방문하게 된 18세 윤하. 그녀는 누군가로부터 쪽지를 받았고, 그 쪽지에는 <당장 돌아가!>라고 쓰여 있었다. 그 쪽지를 통해 시작된 그들의 인연! 국제교류를 위해 방문했던 일본, 그 뒤 윤하는 코헤이로 인해 일본에 두 번의 방문을 하게 된다. 생각보다 코헤이와의 인연의 끈이 길었나보다. 코헤이는 그녀를 구해주기도 하고, 그녀는 코헤이로 인해 위험에 처하기도 하는데...


도쿄의 신주쿠역 어두컴컴한 공간에 놓인 하얀 종이봉투가 폭발한다. 불길은 금방 사그라들었지만 범인의 행방이 묘연하다. 이것은 소설의 첫 장면이자 절정이다. 이 폭발사건의 범인은 누구이며 왜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폭발을 위험을 무릅쓰고 실행해야 했을까?


"일미회라는 조직은 국가라는 대의를 위해 행동하는 조직이긴 하지만 그 내면을 살펴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 모인 이들에 불과했다."(p243)


가끔 누군가의 의도 혹은 어떤 거대한 세력에 의해 커다란 움직임이나 변화가 나타난다. 하지만 그 정점으로 올라가 이유를 찾아 보면 의외로 대수롭지 않아 허탈할 때가 있다. 어떤 큰 뜻이나 희망을 품은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개인의 아주 사소한 욕심이나 감정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 것도 같으면서 또 독특한 능력이 스토리를 이끌어 가기도 한다. 장르를 딱히 뭐라 할 수 없는 이 소설은 재미도 있으면서 아픈 역사를 기억하게 한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아주 단편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도대체 그들의 나쁜 행동은 어디까지였던 것인지... 정말 저런 일이 있었을까? 싶다가도 얼마전 읽었던 위안부 소설만 떠올려도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 소재나 인물을 독특하게 재구성 한 소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다만 코헤이의 능력에 대한 부분이나, 윤하와의 접점 등이 좀 더 개연성 있게 연결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자꾸 생각나는, 다시 말하자면 더 알고 싶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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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기담
전건우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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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기담 - 전건우

장편소설 / 공포 / 스릴러 / 캐비넷 / CABINET




흩날리는 핑크색 무언가의 효과인지 얼핏 보면 표지가 참 예뻐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좁디 좁은 곳에 한 소녀가 잔뜩 웅크린 채 누워 있다.

숙이할머니 원조연탄구이가 불에 탄 그 자리에, 번듯하게 세워 놓은 성인 나이트. 그러나 개업 당일 불이 나서 오픈조차 하지 못하고, 그 곳을 보수해 '공문고시원'을 만들었다. 한 때 장사가 되던 고시원은 간판에서 떨어진'ㅇ'이 날아가며 초등생이 사망하자 영업 정지, 고등 중퇴한 아이 셋이 옥상에서 벌인 일로 인해 영영 문을 닫는가 싶었는데... 사채업자 백사장이 재개발을 노리고 인수를 한다. 떨어진 'ㅇ'을 다시 붙이지 않아 '고문고시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이 곳. 백사장의 의도와는 다르게 재개발 소식은 들려오지 않자 돈을 아끼려고 사람들을 몽땅 3층으로 몰아 넣었는데 방음이라고는 전혀 되지 않는 곳에 살면서도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 피한 덕분에 어디에 누가 사는지 모른 채 살아간다.


고문고시원 303호에 살고 있는 홍. 그녀는 우연히 옆 방 남자와 대화를 하게 되고, 얼굴도 모르는 그에게 어떤 감정이 생겨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그 남자. 그 남자를 찾기 위해 고시원을 들쑤시고, 그 과정에서 한 명씩 정체가 드러나며 기묘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오케이맨 깜, 노란머리, 고향을 떠나 온 편,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남자 최, 교복을 입은 정, 그리고 뱀 사나이... 그들 본연의 모습은 무엇일까?


고문고시원 인근에 있는 광선천에서 변사체가 발견된다. 수법이 매우 엽기적인데, 그 수법을 미리 경험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경험자는 살아있다. 그것은 단지 체험일 뿐이었으니까. '굿바이 스트레스'에서 VIP고객들에게만 제공하는 살인체험. 그 체험에서 있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살인자는 누구이며, 그자의 최종 목적은 무엇인지... 책을 읽을수록 궁금한 것만 참 많아진다. 홍의 앞에 나타난 '검은 고양이'는 또 무엇이며, '죽음의 천사'는 누구일까? 물론 끝까지 읽고 나면 다 해소되는데 참으로 다양한 스토리가 한 권에 담겼다. 살아있는 사람도 나오고, 살아있지 않은 사람도 나오고, 사람 말을 하는 고양이도 나오고, 사람들의 미래를 보는 용한 무당도 나오고...ㅋㅋ


고문고시원에는 얼음장, 괴물, 뱀 사나이도 있었지만 거기에는 사람들도 있었다. 각자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서로 마주치지 않고, 존재감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던 그들이 힘을 합쳐 서로를 구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서로 도와가며 탈출하는 광경이... 변두리 시장통에 있던 고문고시원은 사람냄새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살던 그들도 서로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기도 하고, 혼자가 아닌 함께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고시원 기담>은 작가와 출판사 캐비넷이 모두 마음에 들어 내용도 모르고 선택한 책이다. 전건우 작가의 소설이 재밌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작 <소용돌이>를 읽었는데 표지부터 소재까지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작품 역시 기대하고 읽었는데 강한 반전이나 울림은 만나지 못했지만 다양한 맛을 보여준 소설인 것 같다. 최근엔 전건우 작가님이 방송 출연도 많이 하시던데 신간을 또 언제쯤 만날 수 있을지... 소용돌이 이전의 작품도 좋았다고 하던데 <밤의 이야기꾼들>도 만나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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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편지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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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편지 - 김숨 장편소설

한국소설 / 현대문학




<흐르는 편지>에 담아낸 일본군'위안부'의 삶.

최근 이렇게 읽기 힘든 책이 또 있었나 싶다. 소설이지만 어떤 소설보다 현실적이었고, 그 참혹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기에 가슴을 부여 잡고 읽어야만 했다. 차라리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너무 자극적으로 쥐어 짠 것이 아니냐가 소리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시대를 살아온 분들께 죄스러워서라도 작가는 허무맹랑한 뻥튀기를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전작 <한 명>을 써낼 때부터 해왔던 취재와 증언을 토대로 그려냈을 이야기라서 그저 아프고 또 아팠다.


금자가 아닌 '후유코'가 되어야 했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자신을 위안소로 데려온 위안소 주인 여자에게 '오카상(어머니)'라고 불러야 했으며,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를 생명을 품어야 했던 소녀. 열 셋에 공장에 취직하는 줄 알고 따라갔던 세계 위안소. 열 다섯엔 낙원위안소에 살고 있었다. 그녀들이 낙원위안소의 영감 오지상의 배를 불려줄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들의 빚은 늘어만 갔고,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어떻게든 살고 싶었던 그 곳의 여인들은 내 가슴 깊은 곳에 눈물샘이 하나 더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너희는 천황폐하가 일본 군인들에게 내린 하사품이다."

천황은 어째서 일본 여자애들이 아니라 조선 여자애들을 하사품으로 내려주었을까. 낙원위안소에 일본 여자애는 없다. 세계위안소에도 일본 여자애는 없었다. 전쟁은 일본 군인들이 하는데.(p115)

일본 군인들이 전쟁을 하는데 왜 우리 나라의 소녀들이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그곳에 있어야 했을까. 그녀들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런 처지에 놓여야만 했을까. 그 작은 몸으로 군화에 치여가며 왜 그런 고통을 당해야만 했을까...


금자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말 못하는 벙어리가 아니다. 오지상은 한국말을 쓰면 화를 낸다. 금자는 세계위안소에 있을 때 일본말도 배웠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대신 물 위에 편지를 쓴다. 어머니에게 흘러가길 바라며... 글자를 쓸 줄 모르지만 손가락을 수면에 살짝 담그면 흐르는 물이 글을 써 준다. 금자가 전하고 싶은 말을.


어머니, 나는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어요.

눈동자가 생기기 전에…….

심장이 생기기 전에…….(p7)

금자의 뱃속에는 아이가 자라고 있다. 하지만 금자는 아기가 죽길 바란다. 열다섯 어린 나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 곳에서 태어난들 어떤 운명이겠는가? 딸을 낳으면 그 딸의 운명도 자신을 닮을까봐 겁이 나지 않았겠나... 하지만 그녀는 살고 싶다. 군자 언니도 꼭 살겠단다. 에이코의 죽음을 보며 그녀들은 더욱 살고 싶었다. 더이상 누구의 죽음도 보고 싶지 않았다.


소설은 금자의 출산도, 그녀들의 운명도 그 어떤 것도 이야기 하지 않고 끝을 낸다. 아마 그 어떤 이야기로도 이 소설의 끝을 맺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들의 고통은 지금도 진행형이기 때문에...


김숨의 <흐르는 편지>는 분명 그다지 감성적이지 않은 나조차 읽는 내내 아프고 힘들었을 정도로 읽기 어려운 소설이다. 하지만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 다시 겪어서도, 겪을 수도 없는 그 현실을 좀 더 체감하고 그녀들의 고통을 많은 분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녀들에겐 죄가 없다. 그 어떤 죄도 없다. 하지만 일본 여자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한국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그 곳에 있었다. 그런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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