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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기담
전건우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8월
평점 :

고시원 기담 - 전건우
장편소설 / 공포 / 스릴러 / 캐비넷 / CABINET
흩날리는 핑크색 무언가의 효과인지 얼핏 보면 표지가 참 예뻐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좁디 좁은 곳에 한 소녀가 잔뜩 웅크린 채 누워 있다.
숙이할머니 원조연탄구이가 불에 탄 그 자리에, 번듯하게 세워 놓은 성인 나이트. 그러나 개업 당일 불이 나서 오픈조차 하지 못하고, 그 곳을 보수해 '공문고시원'을 만들었다. 한 때 장사가 되던 고시원은 간판에서 떨어진'ㅇ'이 날아가며 초등생이 사망하자 영업 정지, 고등 중퇴한 아이 셋이 옥상에서 벌인 일로 인해 영영 문을 닫는가 싶었는데... 사채업자 백사장이 재개발을 노리고 인수를 한다. 떨어진 'ㅇ'을 다시 붙이지 않아 '고문고시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이 곳. 백사장의 의도와는 다르게 재개발 소식은 들려오지 않자 돈을 아끼려고 사람들을 몽땅 3층으로 몰아 넣었는데 방음이라고는 전혀 되지 않는 곳에 살면서도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 피한 덕분에 어디에 누가 사는지 모른 채 살아간다.
고문고시원 303호에 살고 있는 홍. 그녀는 우연히 옆 방 남자와 대화를 하게 되고, 얼굴도 모르는 그에게 어떤 감정이 생겨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그 남자. 그 남자를 찾기 위해 고시원을 들쑤시고, 그 과정에서 한 명씩 정체가 드러나며 기묘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오케이맨 깜, 노란머리, 고향을 떠나 온 편,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남자 최, 교복을 입은 정, 그리고 뱀 사나이... 그들 본연의 모습은 무엇일까?
고문고시원 인근에 있는 광선천에서 변사체가 발견된다. 수법이 매우 엽기적인데, 그 수법을 미리 경험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경험자는 살아있다. 그것은 단지 체험일 뿐이었으니까. '굿바이 스트레스'에서 VIP고객들에게만 제공하는 살인체험. 그 체험에서 있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살인자는 누구이며, 그자의 최종 목적은 무엇인지... 책을 읽을수록 궁금한 것만 참 많아진다. 홍의 앞에 나타난 '검은 고양이'는 또 무엇이며, '죽음의 천사'는 누구일까? 물론 끝까지 읽고 나면 다 해소되는데 참으로 다양한 스토리가 한 권에 담겼다. 살아있는 사람도 나오고, 살아있지 않은 사람도 나오고, 사람 말을 하는 고양이도 나오고, 사람들의 미래를 보는 용한 무당도 나오고...ㅋㅋ
고문고시원에는 얼음장, 괴물, 뱀 사나이도 있었지만 거기에는 사람들도 있었다. 각자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서로 마주치지 않고, 존재감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던 그들이 힘을 합쳐 서로를 구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서로 도와가며 탈출하는 광경이... 변두리 시장통에 있던 고문고시원은 사람냄새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살던 그들도 서로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기도 하고, 혼자가 아닌 함께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고시원 기담>은 작가와 출판사 캐비넷이 모두 마음에 들어 내용도 모르고 선택한 책이다. 전건우 작가의 소설이 재밌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작 <소용돌이>를 읽었는데 표지부터 소재까지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작품 역시 기대하고 읽었는데 강한 반전이나 울림은 만나지 못했지만 다양한 맛을 보여준 소설인 것 같다. 최근엔 전건우 작가님이 방송 출연도 많이 하시던데 신간을 또 언제쯤 만날 수 있을지... 소용돌이 이전의 작품도 좋았다고 하던데 <밤의 이야기꾼들>도 만나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