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엮음.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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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스스로 글을 쓴 지 3년이 넘었다. 어느 날, 읽었던 책을 다시 보았을 때 익숙하면서 동시에 낯선 느낌을 받았고 '이 책은 완전히 내 것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에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의 독후감보다는 수준 높다고 생각하였기에 나는 이 글들을 '서평'이라고 불렀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대부분의 서평들이 단순한 글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평을 쓰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어떻게 서평을 쓸 수 있을까?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은 우리에게 <데미안>,<수레바퀴 아래서>로 잘 알려진 헤르만 헤세가 쓴 3천여편의 서평 중 73편을 엮어 만든 책이다. 헤세는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 고전 문학의 대가들의 작품은 물론 공자, 노자의 작품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독서를 즐겼다. 살아 생전 헤세는 책더미에 파묻혀 있을 정도로 책에 대한 사랑이 넘쳤던 작가였다. 

 

 

 

이 세상 모든 책들이 그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아.
하지만 가만히 알려주지. 그대 자신 속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_헤르만 헤세

 

  헤세는 수많은 서평과 에세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독서의 안내자 역할을 했다. 이 모든 것은 책에 대한 그의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책의 줄거리, 특징, 그리고 작가에 대한 평가만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헤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경험을 끌어내 책과 작가를 바라본다. 그의 서평에서 묻어나오는 책과 작가에 대한 애정들은 서평을 읽는 이들이 책을 읽고 싶어하도록 유발한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을 읽는 내내 조금은 후회했다. 이 책의 목차를 미리 읽어보고, 그에 맞게 미리 책을 읽었더라면 그의 서평을 조금 더 음미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훗날,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된다면 이 곳에 소개된 책들을 먼저 집어 읽어도 될 것 같다.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에서 헤세 스스로가 자신의 책에 대한 서평을 썼다는 것에 가장 눈길이 갔다. 가끔 작가들이 자신에 대한 책에 직접 평을 쓸 때, 스스로 도취된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도취되어 좋은 평가를 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에 대한 애착이 그대로 책으로 전달되어 독자들에게 '내 책은 좋아!' 라는 무언의 강요를 하기도 하는데, 헤세는 비평가로서의 헤세와 작가로서의 헤세를 구분지어 평가한다. 
  헤세의 대표작인 <데미안>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헤르만 헤세라는 이름이 아닌 에밀 싱클레어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전쟁이 끝난 다음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젊은이들은 이 작품이 자기들과 같은 젊은이가 쓴 작품이라고 믿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곧 헤세의 작품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그는 <데미안>에 대해 말을 아꼈다. 자신 스스로를 비평가, 작가로 구분지어 이야기하면서 독자들이 그 작품에 대해 판단하도록 만드는 점이 인상깊었다.

 
평론가는 멋대로 작가를 분석할 권리를 지니며, 또한 작가에게 중요하고 거룩한 것을 멍청한 짓이라고 선언하거나 공개토론의 장으로 끌어낼 권리도 있다. 하지만 평론가의 권리는 여기까지다. 평론이 캐내지 못하는 비밀들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작가에게도 혼자서만 아는 작고 소중한 비밀을 지킬 권리가 있다. _p.192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를 읽으면서 아무래도 나의 서평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 책을 소중히 기억하고자 가볍게 시작했던 서평 쓰기는 어느 순간 나에게 묵직한 글쓰기로 다가왔다. 책을 재밌게 즐길 수 있던 행위가 오히려 책을 즐기는 데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새로이 마음을 먹기로 했다. 최대한 힘을 빼고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더해 서평을 쓰자고. 서평을 쓰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 지금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를 읽게 되어 다행이다. 헤세가 서평을 통해 책과 작가들에 대해 애정을 보냈듯이, 나도 나만의 서평을 통해 책과 작가들에게 애정을 보내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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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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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에는 유독 1980년대를 그려내는 영화들이 주목 받았다. 1980년 5월의 광주를 담은 <택시운전사>나 1987년의 명동, 서울을 담은 <1987>이 그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그 격동적인 시대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에는 아마 1년 전, 광장을 가득 채웠던 주홍 불빛들의 영향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자리에서 내려오도록 만들었던 의미 있는 일.
  1987년, 서울 명동, 종로, 을지로 거리에는 100만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거리 곳곳 최루탄의 연기가 자욱하던 시대에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울부 짖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이 민주주의의 역사는 빠뜨릴 수 없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최루탄 연기 속의 상황에 주목했다. 한치 앞도 볼 수 없었던 최루탄 연기 속에서 끊임없이 외치던 영웅들만을 기억했다. 연기 밖 사람들도 같은 1987년을 버텨왔음에도.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는 88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시간을 계산하는 이상한 1987년대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일상화된 최루탄과 깨어진 보도블록의 시대(p.31)에 질려버린 이 윤은 도망치다시피 군입대를 한다. 최전방에서 근무하게 된 이 윤은 임 병장, 하치우라는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내무반에서 알아주는 배짱을 가진 임 병장과, 정치에 대한 견해를 노출하지 않고 하치우는 군 제대를 하게 된다. 이후 들어온 자신의 후배 85학번 김영수를 만나게 된 이 윤은 운동권에서 활동했던 그가 강제로 군에 징집돼 부대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알게 된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이 윤은 혼란스러웠던 그 시절을 정리하고자 한다. 격동의 1987년이 지난 후, 하치우와 김영수의 소식을 듣게 된 이 윤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다. 이데올로기의 끝과 함께 그들의 순수했던 청춘들 역시 1980년대에 갇혀버리게 된다. 우리는 1980년대를 역사의 현장으로만 바라봐야 하는지, 이정서 작가는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를 통해 전하고 있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의 '김지영'이란 이름이 흔한 여자아이들의 이름이고, 대한민국 여성들을 의미하는 것처럼 '85학번 영수'는 역사적 상황이 아닌 그 시절을 겪어야만 했던 대한민국의 청춘들을 의미한다.

  그 시절 영수라는 이름은 사실 아주 흔한 이름이었다. 내가 아는 이만 해도 몇 명 되었다. 그에 대해 화제를 삼은 적도 있다. 아마 우리 부모님들이 우리를 건강하고 오래 살라는 뜻에서 그런 이름을 지어준 게 아닐가, 하는 것이 중론이었다. 나는 그 시절의 영수가 단지 그곳에서 만났던 그 김영수 하나가 아니었을 거라는 의미로 그렇게 제목을 붙이기도 한 것이지만 그런 얘기까지 하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_P.177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는 굉장히 현실적인 소설이었다. 소설의 인물들은 단순히 그 시절을 기록한 책 속의 인물들이 아니었다. 특히 '하치우'라는 인물은 자신의 정치 의식을 드러내지 않은 채 제대를 마치고 이 윤과의 연락이 끊기게 된다. 이후 이 윤이 하치우의 소식을 다시 접했을 때, 그는 정치권에 뛰어 들었고, 이름까지 바꿔 가며 젊은 시절 자신과는 다른 행보를 보인다. 결코 이 인물이 소설 속 인물이라는 사실은 독자들 모두가 깨달을 수 있다. 그 깨달음에서 오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국민들 사이에 요즘 비판적 지지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정권은 교체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공감대가 서 있다는 것이죠. 국민들이 정말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누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힘써 왔는가를 나름대로 평가하고 제대로 투표를 하지 않을까요? _p.166

  1987년, 민주주의를 애타게 울부짖던 대한민국은 어느덧 30년이란 시간이 흘러 2018년에 도착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공간은 어떻게 변했는가? 그 사이 국민들은 말도 안되는 정책에 속상하기도 했으며, '개, 돼지'라며 무시당하기도 했다. 또 다시 무력해지는 것 같았지만, 2017년 광장에 모인 주황 불빛들은 다시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당당히 이야기했다. 특히 10대, 20대들의 많은 참여가 인상깊었다.  그럼에도 순수해야 할 청춘들이 또 다시 절망을 감당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더 이상 청춘들이 아파야 하는 시대가 다시 찾아오지 않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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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기 - 우석훈의 국가발 사기 감시 프로젝트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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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서른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미래 지도를 설계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뤼트허르 브레흐만 작가의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2017,김영사)> 대담회에 참석했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이룩하기 위해 우리가 사회 전반적으로 찾아야 할 해결책들을 제시했다. 그 때, 우석훈 박사를 처음 알게 되었다. 우석훈 박사는 독자들을 대신해 저자에게 날카로운 질문들을 하고 질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을 최대한 '대한민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맞추어 해석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의 모든 대답들을 '대한민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빗대어 생각하기에 두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대한민국은 '유토피아'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뤼트허르 브레흐만이 제시한 해결책은 작은 한반도에 적용하기엔 다소 광범위해 보인다.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 우석훈 박사의 ≪국가의 사기≫를 읽게 되었다.

 

 

 

  1년 전, 광장에 모인 수 만개의 불빛들은 대통령의 고개를 떨구도록 만들었다. 비어 있는 청와대를 채우기 위해 장미 대선이 이루어졌고,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많은 후보들이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공약'들을 들고 나왔다. 처음으로 대선 투표권이 생긴 나는 수많은 공약들에 대해 이런 생각을 했다. 과연 이 중에 제대로 지켜지는 공약은 얼마나 될까?
  대통령 임기의 절반 이상을 보내게 되면, 언론사에서는 대통령이 지킨 '공약 이행율'에 대해 언급한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그들은 국민들에게 분명 '더'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공약들을 지키기 위한 올바른 정책을 펼쳤다면, 대한민국은 과거에 비해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러나 여전히 대한민국은 '아이고~ 서민들 죽네!' 라는 곡소리와 '이래서 나랏일 하는 놈들이 문제야!' 라는 비난의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대체 무엇이 잘못 되었길래?

  국가가 하는 일은 크다. 그러나 크다고 해서 늘 우수한 것은 아니고, 또 언제나 안전한 것도 아니다.
_p.33

  우석훈 박사는 ≪국가의 사기≫를 통해 "그동안 우리는 국가에 속았다!" 라는 재치있는 시각으로 대한민국의 문제점들을 짚어낸다.  금수저, 흙수저로 나누었던 개인의 문제들은 국가의 속임수에 의한 것이며, 그동안 국가가 하는 일들이 모두 실패처럼 느껴지는 원인들을 고찰한다. 집값부터 교육, 원전, 자원외교, 도시재생까지 사회 전반에 널려 있는 문제점들을 하나씩 끄집어 내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꺼내진 문제점들의 민낯은 참으로 부끄럽다.

 

 

 

 

 

  흔히들 사기꾼들은 '약점'을 파고들어 사람들을 속인다고 한다. 사람들의 가장 큰 약점은 무지(無知)에서 온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선 취약할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똑똑해지면 된다. 그러나 개인의 관계에서는 그게 통할지 몰라도, 국가라는 거대 구조 앞에서는 쉽지 않다. 구조를 바꾸면 해결될 문제가 아닌가. 그 전에 우리는 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알아야 한다. 우석훈 박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거대 구조를 '클랜(clan)'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조선의 특징은 여러 문파로 갈린 패권세력 사이의 갈등과 견제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클랜' 현상이다. 영어 클랜은 '집단'을 뜻하지만, 그 어원인 프랑스어 형용사 클랑데스탱에는 '숨어서 하는' 혹은 '비밀스러운'이라는 의미가 있다. _p.119

조선 시대의 클랜은 '붕당'이었다. 당시 많은 학자들은 당파를 형성하고 끊임없는 논쟁을 통해 조선이라는 나라를 이끌어 갔다. 그러나 50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클랜들은 국가 여기저기에 '은밀하게' 숨어 국민들을 속이고 있었다. 우석훈 박사가 ≪국가의 사기≫를 통해 찾아낸 사회 곳곳의 클랜들이 저지른 일들에 기가 막힐 수 밖에 없다. 그동안 국가가 자랑스럽게 말했던 것들은, 사실 클랜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일들을 가리고자 했던 속임수였다는 것을.

 

 

 

 

  친구의 장난에 '당했다!'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굉장히 억울하고 분함을 느낀다. ≪국가의 사기≫를 읽기 전만 해도, 나는 내가 국가에게 속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나 ≪국가의 사기≫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억울하고 분했다. 국가에게 속았다는 사실에 억울했고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해왔다는 것에 분했다. 나의 눈 앞에 놓인 것에 집중하다 보니 더 큰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1년 전, 광장에 모인 주황 불빛이 물꼬를 터뜨렸다. 이제 우리는 국가가 하는 일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더 이상 국가의 사기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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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하이든
사샤 아랑고 지음, 김진아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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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비밀을 숨기다 보면 자연스레 거짓말을 하기 마련이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최대한 상대방의 눈을 피하기 위해 사실에서 멀어지기 위해 반복적인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다.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순간, 그리고 더 이상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을 때가 되었을 때

  헨리가 그 소설 중 단 한 문장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 자신과 마르타뿐이었다. _p.18

  헨리는 유명한 베스트 셀러 작가로, 그의 처녀작인 『프랭크 엘리스』는 망해가던 한 출판사를 살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소설을 한 문장도 쓴 적이 없었다. 아내 마르타는 헨리가 몇 번이고 출판을 권유해도 오로지 글을 '쓰는' 일에 집중했다. 헨리는 마르타를 드러내지 않는 조건으로 그녀의 책을 출판사로 보낸다.
  한 편, 헨리의 작품을 한번에 알아본 편집자 베티는 이내 헨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된다. 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긴 사실을 알아차리자 헨리는 마르타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기로 한다. 그러나 마르타를 보는 순간 그는 오히려 베티와의 관계를 정리하고자 한다. 베티에게 이별을 말하기 위해 약속 장소로 나간 헨리는 충동적으로 베티가 타고 있는 차를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온 헨리는 마르타의 방이 환하게 켜져 있는 사실을 보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내 초인종이 울리고 현관 앞에는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베티가 서 있었다. 베티는 마르타가 이미 그들의 사이를 알고 자신을 찾아왔으며, 차를 바꿔타고 약속 장소로 대신 나갔다고 했다. 헨리는 집 안에 마르타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이내 혼란스러워진다. 그녀가 없다면 자신은 더 이상 베스트 셀러 작가로 남아 있을 수 없기에.

 

 

  잠이 오지 않아 가볍게 읽을 소설을 찾기 위해 책장을 보다 눈에 띄어 읽게 된 ≪미스터 하이든≫. 초반부터 그의 가장 큰 비밀을 드러나고 전개될수록 그는 비밀을 감추기 위한 다른 비밀들을 만들어낸다. 아내가 대필해주는 베스트 셀러 작가, 베티와의 부적절한 관계, 마르타를 죽인 범행 사실 등 그는 계속해서 비밀들을 숨기기 시작한다. 너무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밝혀지기는 마련이다.
  ≪미스터 하이든≫은 심리 스릴러 소설답게 속도감 있는 전개를 자랑한다. '페이지 터너'라고 소개될 만큼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초반부터 주인공 헨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치부를 드러내고, 베티와의 관계를 숨기기 위해 살인을 선택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그가 분명 범행에서 실수를 했음에도 그가 '범인'이라는 사실은 쉽게 밝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실수는 그에게 자극제가 되고 그가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소설은 마지막으로 치닫는다. 형사들이 추리한 용의자의 정황이 헨리와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만 그 누구도 그가 범인일 것이라고 확신하지는 않는다. 결국 그 무엇도 남지 않는다. 또 다른 반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100페이지의 여분을 남겨 놓고도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초반의 흥미진진함은 결말을 향해 갈수록 떨어지고 너무 활짝 열린 결말은 독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책을 다 읽고 이처럼 활짝 열린 결말은 처음이라 검색을 해보았더니, 다들 작가의 뒷심이 부족했는지 결말이 탐탁치 않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었다.) 킬링 타임용으로는 적절한 책이었다.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는 것보다는
항상 혼자인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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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여자들 - Dear 당신, 당신의 동료들
4인용 테이블 지음 / 북바이퍼블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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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학생회장이나 부학생회장, 과 대표 같이 큰 직책들은 남학생들만 뽑는거예요?"
  처음 대학교에 들어가서 학생회장을 투표하면서 나는 선배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 여학우의 비율이 월등하게 높은 유아교육과를 제외하고 학교 내에 있는 대부분 '학생회'들은 모두 남학생이 주요 직책을 맡았다. "여자보단 남자가 더 체력이 좋으니까. 행사를 진행하려면 밤샘하는 경우도 많은데,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여러모로 더 낫지." 선배는 그렇게 답했다. 

  "우리 과는 여학생 비율이 많지요. 그렇지만 여학생들이 방송 쪽으로 진학하기엔 좀 힘들겁니다. 여학생들이 하기에 좋은 직업은 라디오 작가, 프로그램 모니터 요원 등이 있습니다. 특히나 라디오 작가는 생방송 2시간만 집중하면 되기 때문에 결혼하고 육아와 병행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겁니다. "
  2학년이 되고 처음으로 듣게 된 전공 수업에서 교수님은 이런 말을 하셨다. '여'학생이 가지기엔 좋은 직업. 물론 교수님이 '여자'라는 젠더에 대한 어떤 견해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셨다. 아직은 '남성의 분야'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방송 분야의 시스템을 염두하셨던 것이다. 

 

 

 

  2017년 한국 사회를 핫하게 만들었던 키워드는 '페미니스트'였다. (여전히 그 키워드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또 하나의 작은 사회라고 불리는 대학교에서도, 다양성을 추구하고 시도하는 방송과 영화,미술,음악 등을 비롯한 예술 산업 분야에서는 아직까지도 '남자들만의 영역'이 존재한다. 여전히 여성들에 대한 유리천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4인용 테이블의 ≪일하는 여자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나름 흔적을 남기며 일해왔고, 지금도 일하고 있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항상 나오는 주제 중 하나인 '멋있는 커리어우먼'은 바로 그녀들을 지칭한다. 4인용 테이블은 총 11명의 여성들은 인터뷰했다. 그리고 저마다 자신의 영역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일하는 여자들≫은 마침표보다는 물음표에 가까운 책이다.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질 수 있기를 원했고, 그 질문들은 우리 안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비슷하고 또 다른 고민을 하며 오늘도 일하고 있는 여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 경험을 들어본 삶과 아닌 삶이 다르다는 것만큼은 확신한다. _p.14

 

 

 

 

인터뷰이들을 그들의 위치에 오르는데 도움을 준 물건들에 대한 페이지들. 그들의 노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가장 좋았던 부분.

 

  사실 예술 산업 분야에서는 여성들이 크게 주목받는 일은 드물다. 드라마 PD, 영화 감독들만 해도 여성보다는 남성의 비율이 높다. (본인이 알고 있는 여성 PD나 영화 감독의 이름을 말해보라. 나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이 분야에서 남에게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여성들은 특별하게 그려진다. 똑같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일하고 인정받는 것인데, 어째서 여성의 이야기가 더 특별하게 보이는 걸까?
  여전히 사회는 '젠더'라는 틀에 박혀 있다. 여성이라서, 여성이니까…'여성'이라는 젠더는 '남성'이 가지지 못한 또 다른, 조금 더 하등한 속성을 가진 것처럼 그려진다. 사람들은 사회 구성원을 개개인의 '나'라는 독립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성', '남성' 과 같은 두 가지의 젠더로 나누어 보는 듯하다.  그래서 ≪일하는 여자들≫이 들려주는 11명의 인터뷰이(interviewee)들은 '젠더'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오해와 편견, 상처들과 그를 극복하기 위해 '더' 노력했던 이야기들은 마냥 편하게 받아 들일 수 만은 없었다.

 

 

 

 

 

  하지만 장애, 인종, 젠더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약자의 길도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는 찬성 혹은 반대로 논할 문제가 절대 아니다. 여기서부터 생각하는 것이 시작이다. _p.173 '지이선 극작가 인터뷰' 中

  부디 이 책을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인터뷰이들이 종사하는 예술 분야 외에도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는 유리 천장이 존재한다. "여자들은 아무래도 힘들지." 라고 사회는 강요하고 있었고, 어쩌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수긍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 생각을 깨버릴 때가 되었다.

  조금 더 들어간다면 사회가 정한 시간에 꼭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한국은 그게 워낙 심하니까. 각자 때가 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유학을 다녀온 나도 있고. 최근의 변화들이 고무적이고 좋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사회의 젠더 감수성 면에서도 이전에 비하면 확언할 수는 없지만 바뀌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어려운 것도 있고 어렵지 않은 것도 있으니까 우선 우리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_p.35 '백은하 배우전문기자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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