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희의 밥과 숨
문성희 지음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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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매일 아침밥을 거르지 않고 챙겨 먹었다. 잠도 깨지 않은 채, 입 안 가득 밥을 욱여넣었다. 밥알을 하나하나 씹으면서 잠을 깨웠다. 늦잠을 자더라도, 하루의 원동력은 '밥심'이라는 엄마의 철학 때문에 적은 양이라도 먹고 등교를 했다. 내가 아침밥을 잘 먹지 않게 된 건 대학교 1학년 자취를 시작하고서부터였다. 아침밥을 먹는 것보다 1시간 더 자는 것이 중요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아침을 거르기 시작했다. 집에서 조금 일찍 나오는 날이면, 편의점에 들러 인스턴트를 사 먹는 정도가 전부였다. 하루의 시작인 아침밥부터 부실했던 자취생의 밥상에서 '건강함'은 늘 빠져 있었다. 
  ≪문성희의 밥과 숨≫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어렸을 적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밥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시장에서 가장 좋은 재료들을 골라와 하나하나 손질하시고 따뜻한 흰쌀밥과 함께 밥상에 올려주신 다양한 맛의 반찬들. ≪문성희의 밥과 숨≫은 그만큼 따뜻한 책이다. 자연요리 연구가 문성희의 삶과 요리에 대한 철학을 담은 첫 에세이로, 그녀가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된 사연, 자유롭고 평화로운 일상의 회복을 위한 방황과 탐구, 그동안 그녀만의 법칙으로 체득한 소박한 밥상이 주는 삶의 숨결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에게 세상은 나와 딸이 살아가는 바다다. 살아간다는 것은 이 넓은 바다에서 먹을 것을 구하는 일이었다. 한 생을 살아내는 것은 사람됨의 의무이며, 이 의무를 잘 이행하려면 먹고 숨 쉬는 일을 잘해야 했다. 나는 이 일들을 열심히 해왔다. 한생을 살면서 자신의 생존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과제다.(p.188)

 

 

 

 

  나는 오늘도 나의 숨결을 헤아리고

한 그릇의 밥을 먹는 것으로 살아간다.

 

  저자 문성희는 자신이 살아가는 것을 위한 증거로 '먹기'와 '숨쉬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매일매일 숨을 쉬는 것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숨결을 헤아리는 동안 오로지 나를 위한 밥 한 끼를 마련한다. 그래서 저자 문성희가 택한 방식은 다름 아닌 '생식'이다. 가장 좋은 재료를 골라내어 햇볕에 말린 후 고운 가루를 내어 자연의 숨결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 또, 몸이 좋은 방식으로 가기 위해 고기와 생선을 끊고, 파와 마늘을 먹지 않는 식습관을 보여준다. 정성 가득한 그녀의 한 끼는 그녀의 몸에 새로운 에너지를 주어 그녀를 깨운다.
  그동안 나의 식습관은 어땠을까? 세 끼를 차려 먹으려고 했지만 아침밥을 건너뛰는 식습관이 자리 잡혀 하루에 두 끼 정도를 먹고 있다. 그마저도 귀찮아서, 시간이 없어서 등등의 이유로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을 선택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나는 더욱 자극적인 맛을 찾고 있었다. ≪문성희의 밥과 숨≫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식습관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몸을 위한 음식이 아닌 혀를 위한 음식으로 인해 나 스스로가 몸을 망치고 있었다는 것을, 저자 문성희의 소박하지만 정갈하고 건강한 음식 이야기들로 깨달았다.

  매일매일 밥상을 차리며, 먹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한다. 그 단순한 행위에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생명의 가치를 발견한다. 나 자신을 비롯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관계망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호 간에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p.56)

  매일매일 숨을 쉬고 소박하지만 건강한 밥 한 끼를 먹는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이보다 간단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감사하는 태도. 오늘도 밥 잘 먹고 숨 잘 쉬는 나에 대해 감사하는 태도라면, 충분히 내가 살아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수한 찰나를 지나는 과정일 뿐이다. 그 순간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느낌을 갖는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나의 느낌과 생각은 나 스스로의 결정에 달려 있다. (p.154)

 

 

 

 

 

 

  저자 문성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그녀가 만든 밥상이 궁금해졌다. 물론 책의 2부에서는 저자 문성희와 그녀의 딸 김 솔이 들려주는 요리 레시피가 나오긴 하지만 내가 그들의 정성을 따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누구보다 자연의 숨결을 담기 위해 노력한 저자 문성희의 건강한 밥상. 그녀의 손길이 닿은 요리 공간에 방문해 그녀가 만든 음식을 직접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요리 공간에 들어서는 것부터 건강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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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런하우스 - 너에게 말하기
김정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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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감정을 타인에게 쉽게 말하지 못했던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가끔 길을 걷다 어린 친구들의 대화를 들을 때가 있다. 너무도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귀여우면서 혹시나 그 말을 듣는 친구가 기분이 상해버리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해진다. 그러나 대게 그 걱정은 오로지 나의 성급한 판단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툭 터놓고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그 누구 하나 심히 불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타인에게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모든 감정을 '괜찮다'라는 말로 포장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괜찮다'라는 세 글자는 타인과의 감정 상호작용을 방해하는 나의 큰 단점이 되었다.

  오늘날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하며 사는 도시의 삶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에 치료공동체를 구상하게 되었으며, 뉴런하우스란 이름은 신경 세포처럼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 살아 있는 공동체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지은 것이라고 했다. (p.14)

  ≪뉴런하우스≫는 8명의 사람들이 모여 살며 정기적으로 '창문 닦기 대화모임(창모)'를 열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독일에서 살고 있던 심리치료사 영민은 메일 한 통을 받게 된다. 한국에서 '뉴런하우스'라는 셰어하우스 형식의 치료공동체를 운영하고자 하는데 그곳의 담당 치료사로 1년간 머물러 달라는 제안이 담긴 메일이었다. 평소 한국 사회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영민은 뉴런하우스 프로젝트를 굉장히 흥미롭게 여기고 그 제안을 수락한다. 
  뉴런하우스에는 영민을 제외하고 남자 4명, 여자 4명이 입주했고 영민의 제안에 따라 그들은 이름이 아닌 서로의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평화, 바위, 오아시스, 새벽, 봄비, 수선화, 햇살, 바람의 이름으로 불리는 그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묻어둔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창모를 통해 자신의 속마음들을 하나씩 드러내던 그들은 가족, 형제처럼 끈끈한 공동체를 완성해가기 시작한다.

  나부터 창문을 다시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입견을 갖고서 한 인간을 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니 천박한 일인지 새삼 옷깃이 여며지는 느낌이다. '서릿발같이 깨어 있어야만 하겠구나.'란 생각이 든다. (p.104)

  ≪뉴런하우스≫는 저자 김정규가 심리치료사로서 만난 환자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집필된 팩션(faction) 소설이다. 소설을 통해 물질주의와 경쟁 사회의 어두운 이면인 인간 소외 문제를 다루고, 나아가 대안적인 삶을 제시해보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은 ≪뉴런하우스≫에 고스란히 녹아져있다.

  사람들이 '뉴런하우스'라는 셰어하우스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으로 들어와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면서, 그리고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아픔을 해결하기를 바랐다. (p.6 '작가의 말' 중에서)

  그래서 ≪뉴런하우스≫에서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삶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지만 이 공동체적 삶을 이루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창문 닦기 대화모임'이 따른다. '창문 닦기'란 자신에 대한 이해로, 타인을 이해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이해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심리치료사 영민의 질문에 따라 차근차근 자신의 감정을 내뱉었던 8명의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자신을 먼저 이해하게 되고 더 나아가 타인의 감정까지 공감한다. 그것을 시작으로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 삶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감정을 쉽게 터놓지 못했다. '힘들다'라는 말을 꺼내면 '너만 힘드냐, 나는 더 힘들다'라는 답변을 받는 게 익숙해지자 사람들은 그저 감정의 응어리들을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게는 한국인만의 독특한 질병인 '화병(hwa-byung)'이 있다. 미국 정신의학회에 우리나라 말 그대로 등재될 정도로, 감정의 응어리를 풀지 못하는 한국인들은 유독 마음이 아프다.

  뚜렷한 이유가 없는 막연한 불안처럼 경험되므로, 타인으로부터 증상을 쉽게 공감 받을 수 없다. 또한 현대인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 다 겪고 있는 현상이므로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무척 심각한 문제이며, 발병하면 치료가 쉽지 않다.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개인의 삶이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채 목적 없이 표류함으로써 발생한다. 따라서 무너진 공동체를 복원하고, 그 속에서 타인들과의 유기적인 연결성을 경험하면 근원적으로 치유가 될 수 있다. (p.357 '마음 들여다보기(작품 해설)' 중에서)

  그래서 영민의 질문에 머뭇거리면서도 솔직하게 감정을 털어놓는 8명이 굉장히 용기 있는 사람들로 보인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타인에게 주저 없이 보여주고 상대방의 공감을 통해 위로받으며 서서히 치료한다. 그 모습에서 뭉클하면서 따뜻함을 받을 수 있었다. '괜찮다'라는 말만 연신 하는, 쉽게 자신의 진짜 감정을 털어놓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뉴런하우스≫를 읽고 나면 내가 그동안 숨겨왔던 감정을 조금씩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다'라는 말 대신에, 나는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고 왜 그런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지 후련하게 털어놓고 싶다. 내가 먼저 용기 내서 이야기한다면 타인도 용기 내서 그 이야기를 들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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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Blu 냉정과 열정 사이
쓰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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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돌아가고픈 사람을 찾고 있다. 그것이 바로 연애다. _츠지 히토나리  

  연애가 끝난 후 바쁜 일상을 지내다 보면 문득 연애 시절이 떠오른다. 가끔은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라고 가정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에 그칠 뿐이었다. 이미 모든 시간은 다 지나갔고 나는 현재에 남겨져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가끔씩 이별 이후에 짧게 떠오르는 연애의 순간들로 돌아가고 싶은 경우가 있다. 그리고 때로는 순간이 아닌 사람에게 돌아가고 싶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슬프게도 나는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 Blu ≫는 돌아가고픈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나는 아오이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늘 마음에 두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녀가 보려 하는 것을 보고 싶은 바람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녀에게 좀 더 다가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물 같은 여자였다. (p.39)

  미술품 복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쥰세이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여자친구 메미와 함께 살아간다. 조반나의 공방에서 미술품을 복원하는 일을 하게 된 쥰세이는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지만, 마음 한편에 놓인 아오이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못한다. 아오이와는 정반대의 메미를 사랑하면서도 쥰세이는 그녀에게 쉽게 정착하지 못한다. 서른 살이 되면 함께 피렌체 두오모에 오르고자 약속했던 아오이의 모습이 계속 떠오르던 그는 그녀와의 향수를 찾아 도쿄로 돌아가기로 한다. 도쿄에 돌아온 쥰세이는 다카시를 만나게 되고 아오이의 주소를 받게 된다. 아오이에게 연락을 할지 고민하던 쥰세이는 그녀에게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는다.

    결국 아오이가 내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상,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난 아직 아오이를 가슴속에서 내몰아버릴 정도의 연애를 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p.16)

≪냉정과 열정 사이 Blu ≫에서 쥰세이는 '복원'에 관심이 많고 좋아하는 자신의 모습을 많이 드러낸다. 그림이 덮어쓰고 있는 시간을 걷어내고 그림의 원래적인, 그림이 그려질 때의 순수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복원하는 일을 좋아하는 쥰세이가 가장 복원하고 싶은 존재는 '아오이'이다. 8년 전, 자신의 오해로 떠나보낼 수 없었던 아오이를,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그 시절의 아오이를 쥰세이는 매우 그리워한다.

  유적과 역사적 유산을 끌어안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세계 최첨단 패션 발신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거리에는 피렌체와 같은 통일감이 없어, 오히려 최첨단 문화가 인간을 오염시키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런 느낌도 내가 과거를 다루는 복원사라는 직업을 가진 탓이리라. 미래를 향하여 활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화를 내겠지만, 복원을 거부하는 강인함과 야심적인 새것에 마음을 빼앗긴 도시적인 분위기에는 늘 차가움이 감돈다. (p.80)

  쥰세이에게 과거의 아오이와 대비되는 것은 미래를 바라보는 메미이다. 메미는 쥰세이와 함께 지내며 그에게 익숙해지고, 자신의 인생 한 부분에 쥰세이를 그려 넣는다. 그러나 메미의 미래에는 쥰세이가 있을지라도, 과거에 얽매인 쥰세이에게는 그 어떤 미래도 없다. 그는 오로지 과거에 얽매여 있을 뿐, 미래에 대해 생각할 힘조차 없다.

  "응, 우리의 미래를 위해."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말하는 메미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미래를 위해? 마음속으로 나는 자문했다. 미래를 위해 살아본 경험 따위는 없었다. 메미가 바라는 미래를 함께 엿본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공포였다. 이제 어떤 행동으로든 이런 교착 상태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람은 모두 미래를 향해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p.132)

 

 

 

  나의 광장.
  예전에 그렇게 부르며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다. 세상에 녹아들지 못하고 혼자 떠돌며 살아가던 내게 있어 그녀는, 막다른 골목길에서 갑자기 나타난 도시의 광장처럼 시원스러운 존재였다. 별다른 용건도 없이 나는 시간이 남아도는 노인처럼 매일 그곳을 찾아갔다.
  그녀의 품에 안겨 있을 때, 나는 자신이 고독하지 않고, 행복한 존재라 생각할 수 있었다. (p.168)

  ≪냉정과 열정 사이 Blu ≫를 읽으면서 나는 왜 쥰세이의 아오이에 대한 절절한 그리운 감정보다 사랑을 갈구하는 메미에게 더 위로를 하고 싶은 걸까. 쥰세이에게 아오이가 광장이었듯이, 메미에겐 쥰세이가 광장이었을 것이다. 이탈리아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메미는 마음의 안식처라고 할 곳이 없었다. 이탈리아에서도, 도쿄에서도 쉽게 정을 붙일 곳이 없었던 메미에게 쥰세이는 유일하게 정을 붙일 수 있던 존재였던 것이다. 그의 품에 안겨 있을 때, 메미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고 행복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난 몰라. 잔인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말해두겠어.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도 나를 곁에 두고 마치 대용품처럼 여겼어. (생략) 나는 나야,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 절대로 그런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 (p.158)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아픈 일이기도 하다. 적어도 메미에게는 그렇다. Rosso의 마빈에게도 그렇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할수록 쓰라린 자신의 감정을 감추기 어렵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에 대해 굉장히 자세하게 그려낸다. 이미 그 과정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래서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와 ≪냉정과 열정 사이 Blu ≫를 모두 읽고 나면, 그저 그들처럼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 남는다. 잊을 수 없는 사람, 그래서 때로는 돌아가고픈 사람을 만나 열렬히 사랑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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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Rosso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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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만남이 있겠지만 잊을 수 없는 것은 잊을 수 없다. _에쿠니 가오리

  '연애'는 참 많은 것들을 남겨준다. 만남과 이별 사이에 놓인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다. 때로는 그 과정의 흔적이 짙게 남기도 한다. 새로운 만남으로 짙게 남겨진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간혹 있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기도 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가타 쥰세이는, 내 인생에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터무니없는 무엇이다.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은 먼 옛날 학생 시절의 사랑으로 끝나지 않을 무엇이다. (p.91)

  아오이는 밀라노에서 마빈과 함께 동거하며 살아간다. 매일 저녁식사 전 목욕과 나른한 오후의 책 읽는 시간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일과 중 하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아오이는 잊히지 않는 쥰세이에 대해서 생각한다. 마빈과 보내는 이 시간이 매우 좋음에도 그녀의 마음 한편에는 쥰세이가 남아있다. 그러던 중, 도쿄에서 대학시절을 보내면서 친해진 다카시가 아오이를 찾아온다. 아오이는 다카시가 쥰세이에게 자신의 주소를 알려주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며칠 후 쥰세이의 편지가 도착한다. 쥰세이의 편지를 읽는 순간, 아오이는 그를 향한 그리움에 휩싸이게 되고 쥰세이에게 전화를 걸게 된다. 

  아오이.
  그 한 마디에 쥰세이의 목소리가 되살아난다. 쥰세이는, 늘 쥰세이밖에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 이름을 발음했다. 모든 언어를, 성실하게, 애정을 담아. (p.181)

 

  ≪냉정과 열정 사이≫는 Rosso와 Blu, 총 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Rosso는 에쿠니 가오리가, Blu는 츠지 히토나리가 집필했다. '연애'에 대한 남녀 두 사람의 입장을 다루고 있어 그 어디에 치우치지 않은 채 두 사람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에쿠니 가오리가 집필한 Rosso는 아오이의 입장을 다루고 있다. 아오이는 자신의 옆에 누구보다 자상하고 친절한, 무엇보다도 아오이를 사랑하는 마빈이 있음에도 마음 한편에 외로움을 느낀다. 마빈과 함께 지내는 일상이 좋지만, 때로는 그곳이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는 것이란다."
  페데리카는 내 얼굴도 보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거의 혼자 중얼거리듯. (p.197)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KBS 드라마 <연애의 발견>이 떠올랐다. 마빈과의 사랑을 시작하고 행복하지만, 한편으로는 잊을 수 없는 쥰세이를 그리워하는 아오이의 모습은 하진과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지만 자신의 청춘을 바쳐 사랑했던 태하를 그리워하는 여름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연애의 발견>은 방영 당시에 사람들의 공감을 사는 대사로 '현실 연애'를 보여주는 드라마로 손꼽혔는데, 이 점도 ≪냉정과 열정 사이≫에 대한 독자들의 평과 유사했다.
  식어버린 태하의 마음을 알아버린 여름은 그와 헤어지고 하진과의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여름의 앞에 태하가 나타나고 여름은 그에게 또다시 흔들리게 된다. 잊은 줄 알았지만 잊지 못했던 거다. 여름의 대사 중에서 "이 사람의 체온이, 이 사람의 눈물이 그리고 이 사람의 진심이 나를 안심시켰어요. 어딘가를 막 헤매다가 이제야 다리를 뻗고 누워서 자는 그런 느낌. 편하게 자고 된다고.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는…그런 느낌이었어요."는 마치 갈 곳을 잃어버린 듯한 아오이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에서는 쥰세이보다 아오이와 마빈의 대화가 주를 이루게 되는데, 아오이를 통해서 듣는 마빈의 말들만으로도 충분히 마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마빈은 <연애의 발견> 속 하진과 매우 닮아 있다. 하진은 흔들리는 여름을 이해하면서도 그녀를 붙잡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그녀의 중심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은연중으로 드러나는 아오이의 행동에서 마빈도 그런 감정을 느낀다.

  "아오이는 항상 그래. 무슨 일이든 혼자 결정해버리지. 나는 당신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해." (p.135)

  쥰세이에게 전화를 걸던 아오이의 모습을 발견한 마빈은 그녀에게 설명해주기를 바란다. 아오이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그를 떠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마빈은 그녀에게 찾아간다. 그에게 아오이는 소중한 존재다. 하진이 여름을 대하듯이. "그 사랑을 위해서 손해를 봐도 좋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시작이야. 손해 보는 게 하나도 아깝지 않을 때, 계산기 자체가 두드려지지 않을 때, 속이는 걸 아는 데도 속아주고 싶을 때."

 

  알고 있다. 과거 나는 그 하나하나를 사랑했고,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사랑하고 있다. (p.232)

  아오이는 그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다시 어루만진다. 아오이의 감정이 섬세하게 묘사된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를 읽다 보면, 우리들의 연애가 고스란히 그려진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 놓인 그 연애의 과정은,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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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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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본래 외롭고 고독한 존재이다. 그 특성을 메우기 위함으로 '사랑'은 가장 좋은 소재이다. 그럼 인간이 사랑을 얻기 위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살아간다. 서로가 우호적인 관계에는 '사랑'이 전제된다. 나도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도 나를 사랑한다면 좋은 상태의 관계는 오래 유지될 수 있다. 결국,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얻은 사랑으로 인간은 외로움과 고독함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인간은 외로움과 고독함에 빠져 절망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해라." 참, 그게 바로 그녀가 한 일이었다 ㅡ 항상 남들을 생각하는 것. 조앤은 자신을 생각해본 적이, 자신을 우선해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이타적이었다. 아이들을, 로드니를 항상 먼저 생각했다. (p.141)

  조앤은 언제나 가정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녀에게는 변호사 직업을 가진 남편 로드니와 에이버릴, 바버라, 토니라는 두 딸과 아들이 있었다. 딸 바버라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은 조앤은 바그다드에 있는 딸의 집에 다녀오던 중,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기차가 운행하지 않아 사막 한가운데에서 발이 묶이게 된다. 호텔의 직원과의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혼자 놓은 조앤은 한 번도 갖지 않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타인이 아닌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시간을. 
  바그다드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기차역에서 동창 블란치를 만났던 조앤은 그녀가 했던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던 중, 자신을 중심으로 남편과 자식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행복한 가정'이라고 여겼던 그곳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기억의 재구성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그 어디에서조차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조앤은 자기혐오를 느끼며 사막 한가운데에서 무너지게 된다.

 "몇 날 며칠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자신에 대해 뭘 알게 될까?"
  그 말에 그녀는 얼마나 우월감 넘치고, 얼마나 의기양양하고, 얼마나 멍청하게 대답했던가.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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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에 나는 없었다≫는 추리 소설의 대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이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헤세가 데미안을 다른 필명으로 내놓은 것처럼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처음 독자들에게 이 작품을 선보였다. 그녀의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혼란스러움을 안겨주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추리소설의 대가'라는 타이틀 뒤에 숨어 있던 그녀의 불행한 가정사로 인해 방황하던 애거사 크리스티는 그 감정들을 모두 ≪봄에 나는 없었다≫에 녹여냈다. 그녀는 ≪봄에 나는 없었다≫를 통해 인간의 내면과 고독함에 대해서 그려낸다.
  사람들은 때로 자신의 눈앞에 놓인 행복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로 기억을 재구성하기도 한다. 그 행복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더 나아가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었던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 과정에서 진실이 묻히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조앤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사랑의 오만함에 갇혀 타인에게 '사랑'이란 이름 아래로 타인의 삶을 통제하려고 한다. 남편 로드니가 변호사를 그만두고 농장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녀의 생각 속에 로드니는 없었다. 가정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넉넉한 수입을 가지고 있는 남편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로드니를 사랑한다고 그녀는 생각했겠지만 그 속에 로드니는 없었다. 또, 큰 딸 에이버릴이 잘못된 사랑의 길을 걷고자 했을 때 조앤은 에이버릴의 감정보다는 그녀가 행한 부정적인 행동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내가 그대에게서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사랑이란 이름으로 타인을 통제해 온 조앤이 그들의 곁을 떠나자 그들은 해방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모든 이에게 자부할 수 있도록 사랑받아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고 믿었던 조앤에게, 그 사실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봄에 나는 없었다라는 제목은 이렇게 조앤의 삶과 이어진다.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모두가 ''을 느끼고 있을 때, 조앤은 그들의 삶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거사 크리스티는 조앤을 결코 새 인물로 다시 태어나도록 만들지 않는다. 그 사실을 깨닫고 절망감에 빠졌지만, 조앤이 그 절망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선택한 것은 다시 '기억에 대한 왜곡'이었다. 행복함에 빠진 자신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조앤은 다시 한 번 더 진실을 묻어버리기로 한다. 그렇게 타인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고 자신을 위로한다.
  외롭고 고독한 인간은 사랑을 갈구할 수밖에 없다. 타인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사랑이 나온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 어떤 사랑이라도 좋으니, 이 외로움과 고독함을 없애달라는 처절한 절규를 애거사 크리스티는 조앤을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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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에 나는 없었다≫를 알게 된 것은 한창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 당시 나는 흔히 말하는 '관태기'에 놓여 있었고 이 모든 관계가 부질없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사고에 빠져 있었다. 아마 그 시기에 내가 이 책을 읽었더라면, 조앤보다 더 한 절망감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 읽은 ≪봄에 나는 없었다≫는 나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나도 조앤처럼 살아오지는 않았을까. 이미 사랑이 없어진 관계에서 나의 외로움과 고독함을 해소하기 위한 이유로 질척거리고 애쓰며 붙잡으려 노력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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