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Rosso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만남이 있겠지만 잊을 수 없는 것은 잊을 수 없다. _에쿠니 가오리

  '연애'는 참 많은 것들을 남겨준다. 만남과 이별 사이에 놓인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다. 때로는 그 과정의 흔적이 짙게 남기도 한다. 새로운 만남으로 짙게 남겨진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간혹 있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기도 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가타 쥰세이는, 내 인생에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터무니없는 무엇이다.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은 먼 옛날 학생 시절의 사랑으로 끝나지 않을 무엇이다. (p.91)

  아오이는 밀라노에서 마빈과 함께 동거하며 살아간다. 매일 저녁식사 전 목욕과 나른한 오후의 책 읽는 시간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일과 중 하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아오이는 잊히지 않는 쥰세이에 대해서 생각한다. 마빈과 보내는 이 시간이 매우 좋음에도 그녀의 마음 한편에는 쥰세이가 남아있다. 그러던 중, 도쿄에서 대학시절을 보내면서 친해진 다카시가 아오이를 찾아온다. 아오이는 다카시가 쥰세이에게 자신의 주소를 알려주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며칠 후 쥰세이의 편지가 도착한다. 쥰세이의 편지를 읽는 순간, 아오이는 그를 향한 그리움에 휩싸이게 되고 쥰세이에게 전화를 걸게 된다. 

  아오이.
  그 한 마디에 쥰세이의 목소리가 되살아난다. 쥰세이는, 늘 쥰세이밖에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 이름을 발음했다. 모든 언어를, 성실하게, 애정을 담아. (p.181)

 

  ≪냉정과 열정 사이≫는 Rosso와 Blu, 총 2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Rosso는 에쿠니 가오리가, Blu는 츠지 히토나리가 집필했다. '연애'에 대한 남녀 두 사람의 입장을 다루고 있어 그 어디에 치우치지 않은 채 두 사람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에쿠니 가오리가 집필한 Rosso는 아오이의 입장을 다루고 있다. 아오이는 자신의 옆에 누구보다 자상하고 친절한, 무엇보다도 아오이를 사랑하는 마빈이 있음에도 마음 한편에 외로움을 느낀다. 마빈과 함께 지내는 일상이 좋지만, 때로는 그곳이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는 것이란다."
  페데리카는 내 얼굴도 보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거의 혼자 중얼거리듯. (p.197)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KBS 드라마 <연애의 발견>이 떠올랐다. 마빈과의 사랑을 시작하고 행복하지만, 한편으로는 잊을 수 없는 쥰세이를 그리워하는 아오이의 모습은 하진과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지만 자신의 청춘을 바쳐 사랑했던 태하를 그리워하는 여름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연애의 발견>은 방영 당시에 사람들의 공감을 사는 대사로 '현실 연애'를 보여주는 드라마로 손꼽혔는데, 이 점도 ≪냉정과 열정 사이≫에 대한 독자들의 평과 유사했다.
  식어버린 태하의 마음을 알아버린 여름은 그와 헤어지고 하진과의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여름의 앞에 태하가 나타나고 여름은 그에게 또다시 흔들리게 된다. 잊은 줄 알았지만 잊지 못했던 거다. 여름의 대사 중에서 "이 사람의 체온이, 이 사람의 눈물이 그리고 이 사람의 진심이 나를 안심시켰어요. 어딘가를 막 헤매다가 이제야 다리를 뻗고 누워서 자는 그런 느낌. 편하게 자고 된다고.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는…그런 느낌이었어요."는 마치 갈 곳을 잃어버린 듯한 아오이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에서는 쥰세이보다 아오이와 마빈의 대화가 주를 이루게 되는데, 아오이를 통해서 듣는 마빈의 말들만으로도 충분히 마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마빈은 <연애의 발견> 속 하진과 매우 닮아 있다. 하진은 흔들리는 여름을 이해하면서도 그녀를 붙잡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그녀의 중심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은연중으로 드러나는 아오이의 행동에서 마빈도 그런 감정을 느낀다.

  "아오이는 항상 그래. 무슨 일이든 혼자 결정해버리지. 나는 당신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해." (p.135)

  쥰세이에게 전화를 걸던 아오이의 모습을 발견한 마빈은 그녀에게 설명해주기를 바란다. 아오이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그를 떠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마빈은 그녀에게 찾아간다. 그에게 아오이는 소중한 존재다. 하진이 여름을 대하듯이. "그 사랑을 위해서 손해를 봐도 좋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시작이야. 손해 보는 게 하나도 아깝지 않을 때, 계산기 자체가 두드려지지 않을 때, 속이는 걸 아는 데도 속아주고 싶을 때."

 

  알고 있다. 과거 나는 그 하나하나를 사랑했고,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사랑하고 있다. (p.232)

  아오이는 그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다시 어루만진다. 아오이의 감정이 섬세하게 묘사된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를 읽다 보면, 우리들의 연애가 고스란히 그려진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 놓인 그 연애의 과정은,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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