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본래 외롭고 고독한 존재이다. 그 특성을 메우기 위함으로 '사랑'은 가장 좋은 소재이다. 그럼 인간이 사랑을 얻기 위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살아간다. 서로가 우호적인 관계에는 '사랑'이 전제된다. 나도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도 나를 사랑한다면 좋은 상태의 관계는 오래 유지될 수 있다. 결국,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얻은 사랑으로 인간은 외로움과 고독함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인간은 외로움과 고독함에 빠져 절망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해라." 참, 그게 바로 그녀가 한 일이었다 ㅡ 항상 남들을 생각하는 것. 조앤은 자신을 생각해본 적이, 자신을 우선해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이타적이었다. 아이들을, 로드니를 항상 먼저 생각했다. (p.141)

  조앤은 언제나 가정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녀에게는 변호사 직업을 가진 남편 로드니와 에이버릴, 바버라, 토니라는 두 딸과 아들이 있었다. 딸 바버라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은 조앤은 바그다드에 있는 딸의 집에 다녀오던 중,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기차가 운행하지 않아 사막 한가운데에서 발이 묶이게 된다. 호텔의 직원과의 의사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혼자 놓은 조앤은 한 번도 갖지 않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타인이 아닌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시간을. 
  바그다드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기차역에서 동창 블란치를 만났던 조앤은 그녀가 했던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던 중, 자신을 중심으로 남편과 자식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행복한 가정'이라고 여겼던 그곳이 낯설게 느껴지면서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기억의 재구성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그 어디에서조차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조앤은 자기혐오를 느끼며 사막 한가운데에서 무너지게 된다.

 "몇 날 며칠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자신에 대해 뭘 알게 될까?"
  그 말에 그녀는 얼마나 우월감 넘치고, 얼마나 의기양양하고, 얼마나 멍청하게 대답했던가.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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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에 나는 없었다≫는 추리 소설의 대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이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헤세가 데미안을 다른 필명으로 내놓은 것처럼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처음 독자들에게 이 작품을 선보였다. 그녀의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혼란스러움을 안겨주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추리소설의 대가'라는 타이틀 뒤에 숨어 있던 그녀의 불행한 가정사로 인해 방황하던 애거사 크리스티는 그 감정들을 모두 ≪봄에 나는 없었다≫에 녹여냈다. 그녀는 ≪봄에 나는 없었다≫를 통해 인간의 내면과 고독함에 대해서 그려낸다.
  사람들은 때로 자신의 눈앞에 놓인 행복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로 기억을 재구성하기도 한다. 그 행복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더 나아가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었던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 과정에서 진실이 묻히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조앤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사랑의 오만함에 갇혀 타인에게 '사랑'이란 이름 아래로 타인의 삶을 통제하려고 한다. 남편 로드니가 변호사를 그만두고 농장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그녀의 생각 속에 로드니는 없었다. 가정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넉넉한 수입을 가지고 있는 남편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로드니를 사랑한다고 그녀는 생각했겠지만 그 속에 로드니는 없었다. 또, 큰 딸 에이버릴이 잘못된 사랑의 길을 걷고자 했을 때 조앤은 에이버릴의 감정보다는 그녀가 행한 부정적인 행동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내가 그대에게서 떠나 있던 때는 봄이었노라.

 

사랑이란 이름으로 타인을 통제해 온 조앤이 그들의 곁을 떠나자 그들은 해방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모든 이에게 자부할 수 있도록 사랑받아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고 믿었던 조앤에게, 그 사실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봄에 나는 없었다라는 제목은 이렇게 조앤의 삶과 이어진다.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모두가 ''을 느끼고 있을 때, 조앤은 그들의 삶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거사 크리스티는 조앤을 결코 새 인물로 다시 태어나도록 만들지 않는다. 그 사실을 깨닫고 절망감에 빠졌지만, 조앤이 그 절망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선택한 것은 다시 '기억에 대한 왜곡'이었다. 행복함에 빠진 자신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조앤은 다시 한 번 더 진실을 묻어버리기로 한다. 그렇게 타인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고 자신을 위로한다.
  외롭고 고독한 인간은 사랑을 갈구할 수밖에 없다. 타인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사랑이 나온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 어떤 사랑이라도 좋으니, 이 외로움과 고독함을 없애달라는 처절한 절규를 애거사 크리스티는 조앤을 통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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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에 나는 없었다≫를 알게 된 것은 한창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 당시 나는 흔히 말하는 '관태기'에 놓여 있었고 이 모든 관계가 부질없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사고에 빠져 있었다. 아마 그 시기에 내가 이 책을 읽었더라면, 조앤보다 더 한 절망감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 읽은 ≪봄에 나는 없었다≫는 나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나도 조앤처럼 살아오지는 않았을까. 이미 사랑이 없어진 관계에서 나의 외로움과 고독함을 해소하기 위한 이유로 질척거리고 애쓰며 붙잡으려 노력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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