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든 루스 - 제7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이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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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쳐진 페이지에는 얼굴을 알 수 없는 실루엣만 남은 여인이 담배를 들고 있었다. <담배를 든 루스>. 루스는 에이미이거나 로자여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루스는 담배를 꺼내 들었다. 피우고 싶다, 피우고 싶지 않다. 피워도 된다, 피우면 안 된다. 이것은 담배가 아니다. 루스는 사서다. 루스는 은행원이다. 루스는 제인인이다. 제인은 나영이다. 이것은 그림이다. 이것은 그림이 아니다. 이것은 그림의 형태를 띤 색과 면과 점이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p. 164)

 

익명은 누군가에게 어떤 힘을 빌려주기도 하며, 누군가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만들기도 한다. 7회 중앙장편 문학상 수상작인 이지 작가의 첫 데뷔작 담배를 든 루스익명으로 하여금 청춘들의 이야기들을 그려나간다. ‘의 시선을 빌려 익명이라는 이름 아래에 가려진 개인 하나하나의 삶을 조명한다. 가난에 허덕이며 한없이 암울하지만 그 속에서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위해 달려가고자 하는 모습을 통해 오늘날의 청춘들을 대표한다. 그래서 담배를 든 루스를 읽다 보면 누가 이렇게 산다, 라는 느낌보다는 어쩌면 네 주변의 누군가는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며, 그것이 네 모습이 아니라고는 부정할 수 없을 거야, 라는 느낌을 안겨주기도 한다.


스물셋의 는 여러 알바를 전전하다 시급이 더 높은 날씨 연구소라는 바에서 일하게 된다. 캐스터라는 직업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들어주며, 그들의 감정을 어루만져주는 일을 하는 나는 그곳에서 리즈, 리타, 혹은 유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녀와 함께 일하는 순수언니와 다다 역시 캐스터로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단골손님인 감독에게 연애하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나는 연애하자.’는 그의 말을 신경 쓰게 된다.


날씨 연구소에서 살아가면서 나는 자신의 문제들과 직면하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살 곳을 정하는 것. 나는 웬만한 조건들을 참고 넘어가지만, 자신의 생계가 달린 이유 때문에 무엇보다 집값을 가장 신경 쓰며 집을 구하고자 한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할 때마다 자신이 새롭게 보게 된 세상과 자신의 꿈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꿈은 부사가 아닐까. 낮의 울림을 꾸며주는 밤의 언어. 그러므로 낮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한다 해도 그 의미는 사라져버리게 된다. 하지만 극장 안에서 진짜는 화면 속의 얘기뿐인 것처럼 꿈에서는 꿈만이 진실이다. 그 진짜의 세계는 좀처럼 우리를 놔주지 않는다. (p. 39)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한국 소설을 그렇게 즐겨 읽는 편이 아니다. 가끔씩 현실과도 너무나 닮아있는 소설을 만나게 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감정이 끓어오르면서 책장을 넘기기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다른 외국 소설에 비해 주인공이 왜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는지에 대한 배경을 모두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배경에서 오는 분노는 쉽게 가라앉히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담배를 든 루스는 그런 현실을 굉장히 담담하게 그려낸다. 마치 오랜 친구가 나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것처럼. 더구나 마지막까지 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이름을 밝히는 순간, 그의 문제는 오로지 그에게 국한되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런 것들을 모두 뛰어넘어 이지 작가의 섬세한 문장들은 괜히 마음속에 간직하게끔 만든다. 책을 읽다 보면, 암울한 주인공들의 삶을 지켜보다 우울해지면서도 섬세한 문장들이 콕콕 와 닿으면서 작은 위로를 건네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곱씹으면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믿음은 문장일까. 구조를 가진 하나의 완결체, 끝없는 덧붙임, 그리고 마침표. 하나의 단어에서 시작해 단문으로, 복문으로 그리고 접속사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하나의 문장은 결국 하나의 문장일 뿐이다. 문장은 문장에 끼어들 수 없다. 결합하는 순간 또 다시 하나의 문장이 될 뿐이니까. 도두암도, 백색 믿음도, 스파게티 교도, 영화 학도들이 믿는 그 영화도 모두 하나의 문장이다. 문장이 우리를 홀리고 위로하고 속이고 쉬게 한다. (p.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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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인 내가 좋다 - 불친절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혼자살이 가이드
게일 바즈-옥스레이드 외 지음, 박미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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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곁에 있던 사람의 부재로 생긴 빈자리가 주는 공허함과 외로움은 때때로 사람들을 힘들게 만든다. 꼭 둘이라는 법칙은 없지만, 혹여나 나의 옆자리를 채워주던 사람과의 이별은 때때로 사람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곤 한다. 특히 그 사람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기대고 있었는지에 따라서 그 충격의 강도는 달라진다.

《혼자인 내가 좋다》는 언젠가는 싱글로 돌아갈 우리 모두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저자인 게일 바즈옥슬레이드와 빅토리아 라이스는 자신들의 경험을 살려 독자들에게 ‘싱글 라이프’ 가이드라인을 전한다.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을 한 게일은 마지막 이혼을 끝으로 스스로 두 아이를 케어하며 살아가기로 마음먹고, 쉰이 되던 해에 남편 마이클이 폐암으로 사망한 빅토리아는 그의 빈자리에 대한 쓸쓸함을 느끼지만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된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두 저자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별과 이혼을 겪은 독자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곧 인생의 CEO가 되는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기업을 세워 가꾸는 셈이다. 누군가 더 나은 길로 이끌어주기만을 바란다면, 다음과 같이 자문해보자. 내 삶을 남에게 맡겨둘 것인가? 만약 아무도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몇 년이 걸리든 기다리고 또 기다릴 것인가? 희망은 단기 전술일 뿐, 확실한 전략이 아니다. (p. 26)

‘CEO of Everything’이라는 원제에 맞게 《혼자인 내가 좋다》는 계획된 싱글의 삶으로 들어서는 길을 보여준다. 싱글로 돌아온 자신의 삶을 한탄하기보다는, 앞으로 무궁무진한 방향으로 가꿔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준비들이 많이 필요하다. 우선은 자신의 옆자리로부터 오는 공허함과 외로움에 무너지는 것보다는 자신이 그동안 놓치고 있던 것들을 되돌아볼 것을 게일과 빅토리아는 권유한다. 두 사람의 삶 속에서 자신이 포기하고 놓쳤던 것들에 집중할 것을 말이다.

다시 땅을 딛고 일어서려면, 먼저 내가 넘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마침 가던 길이 고르지 않았을 뿐이다. 흙을 털어내고 일어서면 그만이다. 절망 속에서도 자신을 놓아버리지 않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만사가 귀찮아져서 한동안 집안일을 놓아버릴 수는 있지만 그것이 3주 이상 지속된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p. 50)

싱글로 사는 삶에 익숙해지고 나면, 앞으로 계속될 싱글의 삶에서 올 두려움을 이겨낼 방법을 이야기한다. 혼자로서 해야 될 경제적 자립과 또 스스로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이 무엇이며, 어디서 그것들을 충족할 수 있는지 차근차근 적어 내려갈 것을 권유한다.

싱글이라고 해서 괴로움을 혼자 참고 견디라는 법은 없다. 괴로운 심정을 토로할 친구가 있으면 도움이 된다. 이때 친구의 역할은 열심히 들어주는 것이다. 나의 고통을 대신 떠안으려 한다거나, 내가 놓인 상황을 비난하려 들면 곤란하다. 친구를 만드는 것 말고도, 스스로 편안해질 수 있는 활동을 찾아보자. 일기를 쓰거나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러보는 것이다. (p. 225)

책은 전반적으로 사별과 이혼 후의 홀로 남아 살아갈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가꾸어 나가는 방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혼자인 내가 좋다》를 읽다 보면, 반드시 기혼 여성의 싱글 라이프를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아주 오랜 연인을 두고 있거나, 혹은 내 삶을 놓쳐버린 채 상대만 바라보았던 연애를 하고 있다 이별을 맞이한 여성에게도 《혼자인 내가 좋다》 속의 조언들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철없던 연애가 끝났을 때, 지금보다 많이 어렸던 나는 그 시간을 견디기 너무 어려웠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별로 인해 이 과정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고, 다시 나의 시간을 온전히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에게 집중하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는 과정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고 앞으로 나아갈 미래의 중심에 스스로 서 있을 생각을 하니 뿌듯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전보다는 성숙한 모습으로 내 곁을 내주게 되었다. 그러니 《혼자인 내가 좋다》에서도 말했듯이 이별에 무조건 슬퍼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신의 인생을 바꿀 터닝 포인트가 될지도 모르니까.

지금 서 있는 곳은 출발점도, 도착점도 아니다. 홀로서기가 능숙해질 때까지, 발전을 거듭해야 한다. 당신이 헤쳐온 길을 한 번 돌아보라. 이번엔 눈을 가늘게 뜨고 앞을 바라보라. 앞으로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흥분되면서도 두려울 것이다. 중요한 건 어떤 난관에 부딪쳐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p. 288-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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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 - 전 세계가 열광한 빅히트 아이디어의 비밀
앨런 가넷 지음, 이경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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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생각은 어디서 나오게 되는 것일까. <해리 포터> 신드롬을 일으켰던 J. K. 롤링, 누구나 첫 소절만 들어도 자동적으로 흥얼거리게 되는 비틀스 폴 매카트니의 예스터데이(Yesterday), 새로운 혁신을 주장하며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을 선보인 애플의 스티브 잡스 등 세상에는 창의적인 발상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업적은 끊임없이 회자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한다.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은 이렇게 창의력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인물들의 아이디어들이 IQ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예측 가능한 과학이라는 전제로 전개된다. 이들의 성공적인 업적 이면에는 아이디어를 크게 히트칠 수 있는 어떤 ‘패턴’이 존재한다고 저자 앨런 가넷은 주장한다. 그리고 그 모든 패턴의 공식을 알게 되면 누구나 엄청난 성공을 맛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나는 여러분에게 내가 찾아낸 그 패턴을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이 책은 마케팅 서적도 아니고 자기계발서도 아니다. 이 책은 창의력이 필요한 분야에서 대단한 성공을 낳는 패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지침서다. (p. 35)

흔히 우리는 창의적인 생각들은 주로 천재들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타인에 비해서 더 높은 IQ를 가지고 있거나 혹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그들만이 오로지 창의적인 생각을 하고 눈부신 성공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앨런 가넷은 우리의 통념을 뒤바꾸고자 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브(Creative Curve)’의 공식을 파악하고 자신이 제안하는 4가지의 법칙을 따른다면 누구나 창의적인 발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소비의 일차적 역할은 어떤 것이 갖는 친숙성의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크리에이티브 커브는 적당한 양의 색다름도 ‘만들어내라’고 요구한다. 단순히 색다름을 찾아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색다름을 적당한 양으로 덧붙여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창의력은 의외의 어떤 것에 끊임없이 매달린다. 바로, 모방이다. (p. 197)

많은 사람들이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수 있겠지만 우리는 늘 그런 이야기를 들어왔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앨런 가넷은 자신이 찾는 4가지 패턴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을 성장시키고 활용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시행해야 하는지 다양한 셀럽들의 이야기를 예시로 든다.

넷플릭스와 페이스북은 어떻게 각 업계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는지, 누구나 알 법한 영화와 소설은 어떤 환경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깊게 박혀 끊임없이 작용할 수 있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하나씩 설명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스스로 ‘브랜딩’ 할 수 있는 힘이다.

누군가가 와서 우산을 펼쳐주기를 기다리면 안 된다. 과정을 직접 만들어내야 한다. 알고 싶은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을 만나면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호기심을 가지고, 사정을 봐주지 말고! 왈라치는 자신이 보기엔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기꺼이 나누어주려고 하고 또 그러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 묻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p. 238)

스스로를 브랜딩 할 수 있는 힘은 자신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에 대한 정신,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용기’로부터 시작된다고 느꼈다. 취준생으로서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를 읽으면서 가장 공감되었던 부분이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고, 어필하기 위해서는 우산을 펼쳐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는 것이라고. 스스로 자신에 대한 가치를 평가하고 브랜딩 시킬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스스로의 인생에서 히트를 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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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수를 죽이고 - 환몽 컬렉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0
오쓰이치 외 지음, 김선영 옮김, 아다치 히로타카 / 비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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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외국 문학에 비해 일본 문학이 가진 독특한 문화와 분위기를 좋아해 자주 일본 문학을 읽는 편이다. 현실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으며 꿈을 꾸는 느낌을 자아내는 분위기의 문학을 좋아하는지라 그런 특유 분위기를 많이 지니고 있는 일본 문학들을 찾아 읽곤 한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기묘한 이야기를 가진 일본 문학이라면 너무도 기분이 좋다. 그래서 메리 수를 죽이고를 처음으로 집어 들었을 때, 그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메리 수를 죽이고는 마성의 천재 작가라고 불리는 오쓰이치 외에 나카타 에이이치, 야마시로 아사코, 에치젠 마타로의 작품들을 엮어 만든 단편 소설집이다. 오쓰이치는 호러, 미스터리, 판타지, 라이트 노벨 등 다양한 장르 소설을 창작하면서 경계가 무색한 작품들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그래서 오쓰이치 외 환몽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엮인 메리 수를 죽이고는 다양한 장르인 7편의 소설을 보여준다. 때로는 공포스러우며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며, 때로는 라이트 노벨과 같이 가볍지만 깊은 상상력을 보여주며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우리가 펜과 잉크병으로 낳아온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이윽고 걸작이 완성될 것이다. 이 일기를 누가 읽을지 나는 모른다. 원숭이가 쓴 일기를 누가 읽을지 나는 모른다. 계속될 미래에 이 일기가 영원히 존재할지, 그렇지 않을지도 알지 못한다. 그래도 쓰지 않을 수 없다. 원숭이가 매머드 그림을 그린 것처럼. 다 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린 것처럼. 모차르트가 레퀴엠을 작곡한 것처럼. (p. 25)

 

사실 단순히 메리 수를 죽이고라는 제목만을 보고 선택했기에 이 책이 추리 소설에 그칠 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누군가에 의해 죽는 인물은 메리 수일테고. 그러나 메리 수2차창작 관련 용어 중 하나로, 작가의 소망이 불쾌할 정도로 투영된 오리지널 캐릭터를 가리킨다. 사랑하는 캐릭터가 있던 화자 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소설을 써 내려간다. 모든 이야기는 자신의 메리 수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이야기 해결에 있어서 메리 수의 초능력적인 능력은 필수였다. 그러나 는 자신의 메리 수를 죽이기로 다짐한다.

 

어디서 만났던가요?”

나는 물었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소녀의 눈은 양쪽의 색이 달랐다. 오른쪽 눈동자는 검은색이지만 왼쪽 눈동자는 붉은색. 오드아이.

벌써 잊었어? 네가 나를 죽였잖아.” (p. 202)

 

글을 쓰지 않기로 다짐한 는 꿈 속에서 자신의 메리 수를 다시 만나게 된다. 어린 시절 처절하게 죽일 수밖에 없었던 메리 수를 다시 만난 나는 그녀에게 너 말고도 네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야. 그건 행복한 일이야. 게다가 사실은 너도 그러길 바라고 있어. 다만 두려울 뿐이지. 아니야?” 라는 질문을 듣게 된다.

 

누군가의 세계를 빌려 소설을 썼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첫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자부심이 필요했다. 글을 쓴다는 두려움도 모르고, 무아지경으로 전진했던 옛날의 열정이. (p. 206)

 

이렇게 고백하기는 부끄럽지만 한 아이돌의 팬으로서, 그들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창작했던 적이 있었다. 소설 속에서 그들은 내 곁에서 모든 것을 만능적으로 다 할 수 있었던 메리 수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나는 나의 메리 수를 죽여야 할 수밖에 없었다. 공부가 중요하다는 어른들의 말에, 나는 메리 수를 놓아주기로 했었다. 혹은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메리 수를 붙잡고 있는 것이 타인의 눈에는 유치하기 짝이 없어보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그리고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때때로 지난 날 메리 수를 놓아버렸던 나의 모습을 후회하기도 한다. 메리 수에 대한 상상과 환상만으로 모든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스스로 즐거워했던 모습을 너무도 그리워하기에. 그래서 7가지의 단편 이야기 중에 메리 수를 죽이고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내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것에 함몰되어 향수에 빠지기도 하지 않나.

 

나는 앞으로 자아낼 나의 세계, 아직 보지 못한 이야기가 풍요로운 결실을 맺도록 기도했다. 도중에 포기하는 일이 없이 주인공들의 모험이 계속되기를. 그리고 이 집필이, 즐거운 작업이 되기를.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나는 타이핑을 시작했다. (p. 206)

 

이 밖에도 학교에서 일어난 청소년들의 문제를 그린 <염소자리 친구><소년 무나카타와 만년필 사건>, 드라마 <시그널>을 연상하게 만드는 <트랜스시버>, 과학의 진보와 생명 윤리의 이야기를 담은 <어느 인쇄물의 행방> 등 다양한 매력적인 이야기들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일본 드라마 중 <기묘한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메리 수를 죽이고는 매우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무엇보다도 메리 수를 죽이고의 가장 큰 마지막 반전은, 각각 개인이라고 여겨졌던 모든 작가가 사실은 동일인물이라는 것일지도. 다른 필명을 가지고 각각의 소설 세계를 펼치는 재능을 가진 오쓰이치의 다른 작품을 더욱 기대하며 마지막 장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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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함께한 일 년 살림어린이 그림책 52
한나 코놀라 지음, 김보람 옮김 / 살림어린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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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동화책을 읽게 되었다. 글보다 그림이 더 많은 책을 읽게 된 것이 얼마만인지. 바쁜 일정 중에 읽은 지라 이 동화를 읽는 동안은 잠시나마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사실 이 동화가 더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아이들에게도 좋지만 어른들에게도 좋은 일러스트 때문이었다. 마치 하나의 작은 미술관을 관람하는 기분이었을까.

바람과 함께한 일 년은 새 바람이 태어나는 4월을 시작으로 1년간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삽화가이자 예술가인 한나 코놀라는 정교한 분석에 변칙적인 접근법을 결합하여 더도 말고 덜도 말게, 아주 적당한 만큼의 감수성을 담아낸다. 간단한 선과 도형들로 이루어져 있는 그녀의 일러스트는 책을 읽는 동안 더 많은 것을 상상하도록 만든다. 글보다 그림의 여백이 더 많아 이 빈 공간에는 어떤 모습을 담을지 떠올리는 것이 몹시도 즐겁게 느껴진다.

 

4월이면 나는,

하늘로 연을 살포시 띄웁니다.

 

바람과 함께한 일 년의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의아했다. 한 해의 시작을 1월로 세는 우리와는 다르게 이 책에서는 4월을 첫 시작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책의 겉표지의 설명을 읽고서야 그제야 이해가 갔다. 새 바람은 4월에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때부터 바람의 한 해가 시작된다는 것을.

사계절을 지나는 바람의 여정 속에는 보드라운 입김과 살랑거리는 산들바람, 거센 돌풍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묘사들은 모두 우리가 일상 속에서 흔히 느낄 수 있다. 바람을 실제로 볼 수는 없지만, 누구나 쉽게 느낄 수는 있으니까. 그러기에 바람과 함께한 일 년은 더욱 편안한 느낌을 가진 채 우리에게 다가온다.






1월이 오면

얼음판에서

스케이트 타는 친구들이

쌩쌩 나가도록

등을 힘껏 밀어 주지요.

 

동화책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살아있지 않은 것들도 마치 옆에 있는 친구처럼 느낄 수 있는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것. 바람과 함께한 일 년은 바람을 살아있는 생명처럼 바라보아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그래서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절로 그려진다.




 

3월에 나는,

당신의 뺨을 간질이며

새로운 봄이 오길 기다릴 거예요!

 

추운 겨울바람으로 한껏 웅크리고 다니게 되는 요즘이어서 그런지 바람과 함께한 일 년의 마지막 페이지 속 바람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설렘 가득했다. 더구나 3월에 나의 뺨을 간지럽혀 준다니! 이렇게 귀여운 표현이 또 있을까, 하며 3월에 불어올 따뜻한 봄바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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