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몸의 구조 - 베살리우스 해부도 클래식그림씨리즈 1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지음, 엄창섭 해설 / 그림씨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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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몸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던 것이 언제였을까. 초등학생 때, 엄마와 함께 <인체의 신비>展을 관람한 적이 있었다. 실제 뼈와 근육 등에 특수 용액을 이용하여 더 부패되지 않도록 사후 처리하여 관람자들이 인체의 주요 장기들을 두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전시였다. 근육의 결은 물론이고, 심장이나 폐와 같은 장기들을 직접 보는 것은 어린 나에게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신기함이 얼마나 오래 가는지, 전시가 끝난 후 사온 도감을 몇 번이고 펼쳐 보았다.
  아쉽게도 그 이후로 생동감 넘치는 해부도나 인체의 주요 장기들을 묘사한 그림을 볼 기회가 없었다. 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일반 사람들이 해부도나 인체 주요 장기들에 대한 그림이나 사진을 볼 일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사람 몸의 구조≫라는 책의 출간 소식은 내게 매우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사람 몸의 구조≫가 더 기대되었던 이유는 최근에 만들어진 인체 해부도가 아니라 16C에 그려진 인체 해부도라는 점에서였다. 근대 해부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1514~1564)는 과거, 갈레노스의 교과서에 의존하던 해부학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그는 본인이 직접 해부하면서 강의를 하기도 하며, 해부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갈레노스의 오류들을 바로 잡으려고 노력했다. 또, 그가 해부하면서 발견한 사실들에 대해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사람 몸의 구조≫는 바로 베살리우스가 직접 해부하고 발견한 결과들을 그린 그림을 엮은 책이다.
  16C에 그려진 그림이라고 해서 지금의 의학 서적들보다는 덜 자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근대 해부학의 아버지라고 불려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의 의학 서적들 못지 않게 그는 매우 자세하게 자신이 해부했던 결과들을 매우 자세하고 정교하게 그렸다. 세밀한 관찰이 아니었다면, 표현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사람 몸의 구조≫에 묘사된 인체는 결코 무섭지 않다. 삽에 기대어 손을 뻗고 있는 자세를 연상시키는 포즈는 물론, 연설을 하거나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등 우리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자세들을 연상시키는 포즈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워있지 않고 서 있는 것이 베살리우스 해부학만의 장점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유쾌하게 그림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베살리우스 해부도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인체에 흥미를 느낀 자연과학자나 해부학자가 시신을 해부하여 관찰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일부인 인간, 죽음을 초월하여 살아 있는 인간을 느끼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베살리우스는 의사, 해부학작, 과학자이면서 인간과 삶, 생명을 중시하는 인문의학자이자 예술가라 할 것이다. _p.12

  베살리우스의 해부도를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인체의 부위들을 볼 수 있었다. 사실 그림과 이름을 듣고도 여전히 이 구조물들이 어느 부위에 있는지 가늠되지 않는다. 대개 과학자들은 자신이 발견한 사실에 마치 관례처럼 자신의 이름을 붙히는 데에 반해 해부를 하고 결과를 기록으로 남긴 베실리우스는 그 어떤 구조물에도 자신의 이름을 붙히지 않았다는 것도 두드러진다.

 

 

 

 

    오랜만에 어렸을 적, 인체 도감을 펼쳐보는 동심으로 돌아갔던 것 같다. 그 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인체에 대해 호기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여전한 것 같다. 하나의 구조물도 여러 방면으로 세세하게 기록한 베살리우스의 해부도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누구보다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한 베살리우스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의학이 이 정도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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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스맨
루크 라인하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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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식당에 들어간 나는 새로운 음식에 대해 도전하고 싶은 마음과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골랐을 때 오는 불쾌함 사이에서 갈등한다. 결국 이전에 먹어 보았던 음식과 최대한 비슷한 음식을 고른다. 그 갈등의 과정이 꽤나 길어 나는 스스로 '결정 장애'라고 여긴다. 그래서 때로는 누군가 이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우리는 새로운 문제와 실패의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패턴 속에 가둔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은 지루해진다. 새로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삶이 이렇다.
  실패하라! 패배하라! 나쁘게 굴어라! 놀고, 위험을 무릅써라. _p.150

 ≪다이스맨≫의 루크 라인하트는 색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인생을 결정한다. 그가 선택한 것은 '주사위.' 정신과 의사인 루크는 주사위의 확률대로 선택지를 만들어 놓고 주사위를 굴린다. 주사위가 시키는 대로 아랫집에 사는 알린을 강간한다. 부정을 취한 루크는 주사위로 하여금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고, 이내 주사위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루크는 본인 스스로 '주사위맨'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주사위의 힘을 확인한 루크는 '주사위 치료법'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정신과 환자들에게 주사위를 굴리도록 시킨다. 점차 영향력을 확대시킨 루크는 주사위 센터를 설립한다.

  나는 항상 두 가지 원칙을 따르려고 주의를 기울였다. 첫째, 내키지 않는 선택지는 포함시키지 않는다. 둘째, 언제나 다른 생각을 하거나 핑계를 대지 않고 주사위의 결정을 따른다. 성공적인 주사위 인생의 비결은 주사위의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가 되는 것이다. _p.98

 

  ≪다이스맨≫은 독특한 방식으로 쓰여진 책이다. 책의 저자는 본명이 아닌 소설 속 주인공을 예명으로 사용하였는데, 그 설정에 맞게 소설 역시 '자서전'의 형식을 띄고 있다. 루크에게 주사위는 통제와 규율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해방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재다. 그는 주사위를 통해 자신의 자아를 해체시키고, 새로운 자아들을 만들어낸다. 새롭게 등장한 자아들은 소설의 초반부에 우리가 알고 있던 루크의 모습과 비슷하기도, 거리가 멀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내내 루크 자신을 지칭하는 호칭들이 순식간에 변한다. 때로는 예수가 되기도 하고, 교수가 되기도 하며 다양한 자아들이 등장한다. 처음 그의 '주사위교'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을 때, 소설의 내용을 따라가는데 조금 무리가 있었다.

  보통 소설과 자서전은 3페이지쯤에서 주인공이 울보로 확정되고 나면, 347페이지쯤에서는 책이 완전히 눈물에 잠겨버린다. 주인공이 꽥꽥 고함을 질러대는 사람인 경우에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일관되게 고함을 질러대며 앞으로 나아간다. 주사위맨은 이런 자아, 이런 성격을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그는 안타깝게도 성공적인 자서전의 선행조건을 파괴해버린다. _p.361

  ≪다이스맨≫은 거짓과 가장이 사악하다고 여기는 사회 규범에 대한 반란을 다룬 소설이다. 그동안 사회는 정직과 솔직함을 건전한 것으로만 여기는 윤리의식을 강요해왔다며 루크는 그것을 부정했다. 우리가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서는 새롭고 다양한 자아들을 경험해야 하는데, 사회는 그것을 허용해주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실천하는데 도움을 준 것은 '무작위성'을 지닌 주사위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루크의 주사위교를 믿고 실천한 사람들 중에서는 그동안 사회가 강요했던 윤리의식을 벗어던지고 홀가분함을 느끼기도 했다.
  조지 콕크로프트(≪다이스맨≫ 저자의 본명)은 강요된 윤리 의식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이 성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했는지, 유독 ≪다이스맨≫에서는 성교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물론 성적인 영역은 자유와 쾌락은 많은 사회에서 억압되어 있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상황만 보아도 아직까지는 쉬쉬하는 분위기이니 말이다. 그러나 자유나 쾌락의 해방을 성적인 영역에서만 풀어낼 수 밖에 없었는지, 그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불행의 기원과 대책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문명이 불행을 퍼뜨리는 속도가 더 빠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실수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통일되고 단순하고 안정적이었던 과거의 사회에서 이상적인 규범의 이미지를 가져왔습니다만, 그 규범은 복잡하고 다원적인 오늘날의 문명에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직'과 '솔직함'이 건전한 인관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착오적인 우리 시대의 윤리에 따르면, 거짓과 가장은 사악하다고 여겨지죠. _p.496

  1970년대에 쓰여진 이 소설이 복잡하고 다원적인 오늘날 눈에 띄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떤 억압에 의해 자아를 자유롭게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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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빌스 스타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5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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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휴가를 떠나 평온하고 조용한 여름의 오슬로. 그곳에서 연쇄 살인이 일어난다. 범인이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공통적으로 남긴 특징은, 피해자들의 손가락을 절단하고 피해자 신체에 오각형 별 모양의 붉은 다이아몬드를 남긴다는 것뿐이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해리 홀레는 묄레르의 지시로 이 사건을 맡게 되지만, 동료 엘렌을 죽였다고 의심되는 톰 볼레르와 동시에 사건을 맡는다는 사실이 탐탁지 않다.
  피해자들이 모두 여성인 점을 감안하여 수사를 진행하던 형사들은 살해된 여성들이 성적으로 유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내며 더욱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된다. 해리는 여성들의 검지 손가락이 살해된 순서대로 잘린 것과 오각형 별 모양 사이의 관계가 있을 것임을 의심하게 된다.

  "퀵 서비스 살인마는 우리에게 언제, 어디에서 살인이 벌어질 것인지 말해주는 완벽한 암호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동기는 주지 않았죠.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동기보다는 행동에 초점을 맞추게 한겁니다. 사냥
꾼은 다들 알고 있죠. 어둠 속에서 먹이를 볼 때는 똑바로 바라보지 말고 약간 옆을 봐야 한다는 걸. 사실을 바라보는 걸 멈춰야 비로소 들을 수 있었습니다." _p.582
  
  ≪데빌스 스타≫는 요 네스뵈 작가의 해리 홀레 형사 시리즈 중 다섯번째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시리즈'라고는 하나 단편적으로 사건이 전개되기 때문에 아무거나 골라 읽으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읽게 되었다. 그러나 이왕이면 다른 시리즈부터 골라 읽는 것이 훨씬 좋을 지도 모른다. 작가 스스로가 "내 소설 중 가장 힘들게 쓰여졌으며, 가장 하드보일드한 작품." 이라고 할 정도로 ≪데빌스 스타≫는 해리 홀레의 개인적인 이야기 중심으로 흘러가는 경향을 보인다. 기존 요 네스뵈 작가의 해리 홀레 형사 시리즈를 꾸준히 챙겨 읽었던 독자라면, 그만큼 해리 홀레란 인물에게 사랑이 있는 상태이기에 ≪데빌스 스타≫가 굉장히 재밌게 느껴질 것이다.

 

 

 ≪데빌스 스타≫는 해리 홀레 형사를 중심으로 두 사건을 동시에 진행되는 방식을 갖췄다. 하나의 사건은 퀵 배달 서비스 맨의 연쇄 살인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동료 엘렌의 죽음과 얽힌 톰 볼레르 형사의 비리 사건이다. 이 이야기들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아마 큰 흥미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 네스뵈 작가는 특정 인물들을 중심으로 하여 얽힐 것 같지 않은 이 두 사건들을 얽어낸다. 
  해리 홀레 형사가 두 사건을 동시에 해결하려고 하다보니 아무래도 독자들은 그를 따라다니기 바쁘다. 그래서 읽는 내내 집중력이 필요하다. 연쇄 살인범, 사이코 패스 등으로 생각하며 범인을 추리하는 방식은 다소 고전적인 설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전적인 추리 소설들이 등장 인물들을 모두 범인으로 의심하게 만드는 것을 감안한다면, 한 명이라도 놓칠 수 없는 특유의 스릴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범인은 늘 남편이니까." 해리가 말했다.
  "홀레의 첫 번째 법칙이야." _p.98

 

 

 

 

  셜록 홈즈와 같이 고전적인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입장이라 ≪데빌스 스타≫는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 작가가 주는 여러 단서들을 통해 해리 홀레와 함께 추리하는 과정은 몹시 재밌었다. 아마 해리 홀레 시리즈의 첫 작품인 ≪박쥐≫부터 읽거나 오슬로 3부작이라고 불리는 ≪레드브레스트≫, ≪네메시스≫를 먼저 읽는다면, 해리 홀레라는 인물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셜록 홈즈 다음으로 좋아하는 추리 소설의 캐릭터가 될지도 모른다.

  늘 그렇듯이 연극에는 멋진 결말이 필요해요, 해리. 내가 조용히 퇴장해버리면 관객들은 배신감을 느낄거요, 안 그렇소? 우리에게는 웅장한 피날레가 필요해요, 해리. 해피엔딩 말이오. 해피엔딩이 없으면 내가 지어내기라도 할 거요. _p.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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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흐르듯 대화하는 기술
요코야마 노부히로 지음, 김지윤 옮김 / 김영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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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가 안 통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일이다. 사람과 사람간의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자주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이다. 때로는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표현해내지 못하거나 상대방도 내가 아는 바를 알 것이라는 짐작으로부터 오는 많은 생략들이 이런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 상황이 반복되다보면, 나도 상대방도 모두가 쉽게 피곤해진다.
  책의 저자 요코하마 노부히로는 《물 흐르듯 대화하는 기술》을 통해 우리가 대화를 나누면서 덜 피곤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경영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정리한 내용들을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요코야마 노부히로는 대화가 안 통하는 원인이 개인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사람들마다 각자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오는 차이로 대화가 쉽게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인물의 유형을 세 가지로 정리하고 그에 따른 공략법을 알려준다.

  현장에서 일하면서 제가 알게 된 '말이 잘 안 통하는 사람'은 대체로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
● '지레 짐작'을 하는 사람
● '무조건 거부' 하는 사람
_p.21

  《물 흐르듯 대화하는 기술》을 읽으면서 상대방이 나와 대화하면서 답답함을 느낄 때, 나는 과연 어느 쪽에 속할지 생각해봤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왠지 그 상황 속의 대부분의 나는 지레 짐작하는 타입이었던 것 같다. 상대방이 이야기하기도 전에 멋대로 판단해버리는 그런 타입. 곰곰히 생각해보니 실제로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 사람은 그렇겠지.'라고 상대방의 감정을 판단하고 대화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 스스로가 대화가 통하지 않는 불통의 사람이 되고 있었다니.

 

 

 

  또 요코하마 노부히로는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상황을 '톱니바퀴가 맞물리지 않은 상황'으로 비유하여 이야기한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톱니바퀴는 맞물리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결코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각자가 모두 진지하게 협의를 하고 메일을 주고 받으며 자료도 만듭니다. 각각의 톱니바퀴는 열심히 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톱니바퀴가 너무 많아서 맞물린 톱니바퀴도 있고 맞물리지 않은 톱니바퀴도 있는데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른다고 해봅시다.
  이렇게 되면 조직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헛도는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_p.49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는 상황을 분석한 요코하마 노부히로는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제시한다. 결국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이 맞물리지 않는 톱니바퀴를 맞물릴 수 있는 해결책이었다. 톱니바퀴들이 서로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윤활유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친밀감'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얘기하다보면, 획기적인 방안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학교 수업을 듣다보면, '조별과제'라는 공동의 목표를 이루는데 집중하는 활동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했지만, 최소 시간 최대 효과를 바라고 목표에 대해서 커뮤니케이션 했던 활동과 시간은 상관없고 좋은 결과만 바라며 커뮤니케이션 했던 활동 중에서 후자가 더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았다. '친밀감'이라는 윤활유가 좋은 시너지를 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저자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경영 컨설턴트를 하고 있기 때문에, 《물 흐르듯 대화하는 기술》의 대부분의 예시들이 '직장'이라는 공간적 배경에 갇혀 있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그러나 독자가 요코야마 노부히로가 제안하는 대화의 방법들을 수용하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변형시킨다면, 충분히 일상생활에서도 물 흐르듯 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상대와의 대화를 입체적으로 관찰하고 제대로 맞물리고 있는지, 아니면 이야기의 논점이 흩어지고 있는지를 식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이런 연습을 하다 보면 설령 대화가 맞물리지 않더라도 "이런, 또 대화가 안 통했네. 어쩔 수 없지"라며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됩니다.
  자기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대화'를 논리적으로 맞추기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이전보다 한두 번이라도 대화가 잘 맞물리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할 줄 아는 자세를 가져야 마음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_p.206 《물 흐르듯 대화하는 기술》 에필로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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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 100세 철학자의 대표산문선
김형석 지음 / 김영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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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과 밤이 어우러져 하루가 완성되듯이, 삶과 죽음은 인생을 완성시키는 데에 뗄 수 없는 사이다. '끝'이라고 여겨지는 죽음에 대해여 생각하다보면, 죽음의 반대편에 놓여 있는 삶은 상대적으로 소중하게 여겨진다. 죽음으로 하여금 삶이 빛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빛나는 삶을 더 찬란하게 하기 위해 우리는 늘 '더 나은,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러다보니 사람이 살다보면 한번쯤은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생의 의미를 영구한 것으로 만들며 그 가치를 최선의 것으로 이끌어간다는 뜻이다. 세상의 만물을 모두가 자신을 완성으로 이끌어갈 의무가 있다. 완성을 위한 노력이 삶의 기본적인 원칙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완성을 육체적이거나 자연적인 욕망에서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인간의 운명적인 과정이다. 그것을 거부하거나 무로 돌릴 수는 없다. _p. 76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는 우리에게 ≪영원과 사랑의 대화≫로 유명한 김형석 작가의 작품이다.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길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현재가 최상의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통해 행복을 찾아 누리려는 신념과 용기를 가져야한다. _p.6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는 99세가 된 김형석 작가가 ≪영원과 사랑의 대화≫ 이후로 집필한 글들을 선별하여 모아둔 책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99세가 된다면, 죽음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낼지도 모른다. 언제 나의 숨이 끊어질 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잊어버리고 살아갈 수는 없을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형석 작가는 현재 자신의 시간을 그의 인생에서 가장 최상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행복을 찾아 누리려는 신념과 용기를 글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한 번의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은 얼마나 많은 관계 속에 놓여질까. 그리고 그 관계는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부분의 관계는 '만남'으로 시작된다.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리면서 부모와의 만남을 가지고, 또래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만들어낸다. 가깝게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배우자간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등 수많은 관계들이 시작되지만 그 모든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되지는 않는다. 결국 만남 끝에 있는 '이별'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별을 늘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이별은 훨씬 더 먹먹해진다.
 
  만일 누가 먼저 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때의 허전함과 외로움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어요? 차라리 지금과 같이 떨어져 지내다가 누가 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래도 크게 흔들리거나 허무하게 허덕이는 일은 적을 것 같은데…. 이제 다시 깊은 정을 쌓았다가 다가오는 사태를 어떻게 견디려고 그러세요… _p.33

  그럼에도 우리들은 이별 속에서 오는 허전함과 외로움을 새로운 관계를 통해서 극복해내곤 한다. 그러나 가끔은 이 관계에서 온전히 '나'라는 자신을 찾지 못해 고독함을 느낀다. 타인과의 관계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나'라는 가장 중요한 존재를 잊어버리고 힘들어하기도 한다. 타인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나' 자신과의 대화도 필요한 법이라고 김형석 작가는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의 고독감은 이러한 대내적인 성질의 것만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과의 대화를 가져야 하며 이웃과의 사귐도 불가피하다. 자기의 인견과 영혼이 '너'라고 부를 수 잇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대화를 가질 수 있는 상대는 언제나 '너', '당신'이다. _p.55

 

 

 

 

 

  가끔 나는 20년 후, 30년 후의 나를 그려본다. 현재의 나는 스스로 미숙하다고 여겨지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그리고 지금보다는 더 성숙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기도 하다.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를 읽는 동안 나는 더 시간이 흘러 내가 완전한 수인 100을 앞두었을 때, 나의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 수 있을 '1'을 찾아 채울 수 있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여전히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다. 남은 나의 시간동안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는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노력할 것이다. 나의 삶을 더 찬란하게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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