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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조선 - 우리가 몰랐던 조선인들의 성 이야기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평점 :
조용한 아침의 나라, 선비의 나라, 은자의 나라, 동방예의지국……. 모두 조선을 수식하는 표현이다. 이 미사여구들을 뒤집어 보면, 조선은 유학의 탈을 쓴 양반들만의 폐쇄적인 나라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가장 폐쇄적인 사회였다는 사실로도 확인된다. 특히 성(性)에 대한 폐쇄성은 가히 폭력적이었다.
오랜 한국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한반도에 터를 잡았던 나라 중 조선의 폐쇄성은 두드러진다. 불교가 아닌 유교를 국교로 삼아 시작된 나라는 사대부의 예의를 강조하며, 유학을 공부하는 양반들 중심으로 사회를 끌어간다. 그래서 조선이 풍기는 이미지는 한반도에 터를 잡았던 다른 나라와는 달리 조용하고, 정적이다. 이런 이미지 때문인지 '조선'이라는 나라와 '성(性)'이라는 단어는 전혀 상관없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정말로 조선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성욕을 금기시하며, 굳은 선비의 절개를 고스란히 지켜냈을까?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으로 알려진 박영규는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조선인들의 성 이야기를 《에로틱 조선》에 풀어낸다. '에로틱'과 '조선'이 결합된 제목은 그 자체만으로도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지조와 절개를 강조했던 이 나라에서 에로티시즘은 상상하기 다소 어려운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영규는 이 모든 생각을 뒤집어 놓는다. 가두고 누르고 가려도 완전히 봉쇄할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인 성욕을 당시의 조선 역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는 사실을 역사적 기록에서 찾아내면서 말이다. 겉으로는 도덕군자를 자처했던 선비들이 속으로는 음탕함의 극치를 내달리며,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장치를 만들기까지 했다니.
첩 제도는 남성 중심 사회가 낳은 차별의 산물이다. 대를 잇는다는 핑곗거리가 있었지만, 명분을 만들기 위해 둘러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첩을 두는 본질적인 목적은 남성들의 성욕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첩 제도는 시대가 만들어낸 합법적인 성폭력의 일환이었고, 첩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희생된 존재였다.
도덕군자의 나라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요구당한 것은 여성이었다. 《에로틱 조선》에서는 남성들의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또 다른 희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생, 궁녀, 의녀, 첩의 삶들을 조명하며 그들이 남성들의 에로틱 심벌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분위기를 짚어낸다. 고려와 조선 초의 여성들이 과거 시험을 제외하고 남성들과 비슷한 지위를 가졌던 것에 비해 조선의 여성들의 삶은 억눌리고 고통받는 삶을 살았음을 《에로틱 조선》에서는 성적인 관점에서 설명한다.
이 역설적인 상황에서 더 많은 폐단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기생 하나를 놓고 서로 차지하겠다며 다투는 사대부의 모습은 말 그대로 '양반'인 셈이다. 시주를 받기 위해 돌아다니던 중은 일반 아낙네와 정을 통하는 것도 다반사였으며, 첩 제도에도 모자랐던 선비들은 그들의 여종들에게까지 손을 뻗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여성들 사이에서 질투는 살인이라는 처참한 결과까지 불러온다. 이처럼 조선 사회 이곳저곳에 단편적으로 흩어졌던 에로티시즘을 모아놓은 《에로틱 조선》은 조선이라는 한 사회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가뭄이나 홍수가 극심하거나 궁궐에 우환이 이어질 때에도 궁녀들을 내보냈다. 이 경우에는 대개 젊은 나인들이 출궁되었는데, 나라의 재난이 혼인하지 못한 처녀들의 원한이 모인 결과라는 속설 때문이었다. 지금 보기에는 우습고 미신적인 이 믿음이 조선 시대에는 뿌리 깊게 자리했다. 남성도 예외가 아니어서 나라가 어지러울 때마다 환관들도 부인을 들이고 가정을 이루도록 했다.
조선의 에로스가 마냥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다. 모든 것을 감추려고 했던 그 폐쇄성은 결국 많은 여성들에게 희생을 강요했고, 오히려 부적절한 관계들을 양산했다. 청렴할 것만 같았던 선비들의 가면 뒤에는 다양한 스캔들이 난무했다. 그 민낯을 보고 나니 오히려 그 폐쇄성이 더 문란해 보였고, 부끄러웠다. 무엇보다도 그 속에서 마주한 여성들의 가련한 삶들이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과거 조상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에로틱 조선》에 대한 탐독은 그렇게 씁쓸함을 안겨주며 끝난다. 모든 역사가 아름다울 수 없듯이, 이 이야기 역시 그리 아름답지는 않다. 지나간 역사 속의 아픈 페이지, 그것을 들춰봤을 뿐인데. 무언가 허탈감이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