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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죽이기 위한 다섯 가지 테스트
코즈카 토리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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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불안정하다. 기억의 불안정성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기록’을 택한다. 기록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글로 정리하고, 누군가는 그림으로 정리한다. 요즘처럼 좋은 화질의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사진이나 영상을 남기면서 불안정한 기억을 대신한다. 아무리 오랫동안 기억하려고 해도 잊어버리게 되는 순간이 찾아와 속상해지지만 이윽고 기록으로 남겨진 것들을 보는 순간, 잊힌 기억들이 떠오르고 기분이 좋아진다. 사진 한 장, 글 한 편으로 머릿속에서 흐려진 기억을 다시 상기할 수 있으니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하는 것을 선호한다. 특히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연재되었던 <소설가가 되자>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널 죽이기 위한 다섯 가지 테스트》은 '소중한 사람과의 기억'에 대한 가슴 뭉클하고 순수한 러브 스토리를 그려낸다. 우연히 같은 수업을 듣게 된 사진학과생 리쿠와 영상학과생 사요가 서로 가진 상처를 보듬어주는 과정을 보여주며 코즈카 토리는 독자들에게 가슴 설레는 캠퍼스 로맨스를 선사한다.
사람은 카메라 너머로 볼 때 더 알기 쉽다.
그 사실을 깨달은 게 언제였을까. 파인더로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속마음을 접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남들과 거리를 두는 리쿠에게 카메라는 자기 마음대로 다가갈 수도 멀어질 수도 있는 편리한 도구였다.
한 번 더 카메라를 대고 사요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미술대학교 사진학과에 다니는 리쿠는 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우연히 듣게 된 영상 수업에서 자신과 비슷하게 비디오카메라를 꺼내 말없이 촬영을 하는 영상학과 사요를 보게 된다. 친구들과 함께 다니면서도 늘 항상 비디오카메라로 친구들을 촬영하는 사요의 모습을 궁금해하는 리쿠는 자신의 프레임 속에 그녀를 넣고자 한다. 그러나 무슨 영문에서인지 다른 사람을 촬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자신을 촬영하지 말라는 사요의 주의에 리쿠는 더욱 그녀를 향한 호기심이 커져간다. 한편, 한 학기 동안 영상 과제를 촬영하게 된 리쿠는 사요와 짝이 된다. 과연, 둘은 좋은 호흡으로 과제를 끝마칠 수 있을까?
촬영하는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찍은 영상은 본 적이 없다. 그것만 보면 그녀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까. 카메라 렌즈 너머로도 들여다볼 수 없는 본심을 알 수 있을까.
코즈타 토리는 닮은 듯 다른 두 남녀를 주인공으로 하여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아내며, 풋풋하고 설레는 로맨스를 전개한다. 리쿠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 속에서 독자들은 함께 '사요'에 대해 궁금해한다. 그녀는 왜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모두를 촬영하고 있을까? 《널 죽이기 위한 다섯 가지 테스트》은 조금은 느린 호흡으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풀어나간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 나오는 순간, 로맨스 소설답지 않은 《널 죽이기 위한 다섯 가지 테스트》라는 제목의 의미가 와닿게 된다.
《널 죽이기 위한 다섯 가지 테스트》를 읽으며 좋았던 건 나의 대학 시절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한 기분 때문이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며 한 학기 동안 팀 별로 영상을 제작했던 과정을, 서로 의견을 조율해가며 과제를 하는 리쿠와 사요의 모습에서 겹쳐 보였다. (물론 슬프게도 두 사람처럼 로맨스가 펼쳐지며 아름답게 과제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했다는 결말은 내 이야기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영상을 제작하며 끊임없이 가졌던 회의 시간, 콘티와 스토리보드 제작, 그리고 촬영부터 편집까지 당시에는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래서 두 사람의 감정에 더욱 이입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때의 기억은 나의 드라이브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 글로, 사진으로, 그리고 영상으로. 때때로 드라이브를 정리하다 보게 되는 기록들은 당시의 느낌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널 죽이기 위한 다섯 가지 테스트》를 통해 코즈타 토리는 독자들에게 당신들의 기억을 상기시킬 수 있는 기록들을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내가 어딘가에 저장해뒀을 기억의 기록들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나마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꿈을 계속 갖기 위해 꿈을 꾼다고 생각해."
꿈속에서 아무리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깨어나면 또다시 꿈을 좇는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꿈이 이루어진 기쁨을, 설령 꿈의 내용은 잊어버리더라도 그 감각만은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또다시 그 기쁨을 느끼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고 사요는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