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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생각은 사양합니다 - 잘해주고 상처받는 착한 사람 탈출 프로젝트
한경은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1월
평점 :
누구에게나 생의 과업이 있다. 저마다 짊어져야 할 고통이 있고, 완수해야 할 삶의 주제가 있다. 그들의 외로움과 공허를 채우고 자신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나를 사용하도록 내버려 둘 순 없다. 그건 그들의 몫이다. 애초부터 내가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타인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타입이다. 더해서 내가 타인에게 부탁하는 것도 조금 불편해하는 타입이다. 웃기게도 이 두 상황에서 나는 나의 어떤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거절하는 법도, 부탁하는 법도 조금씩 배워가고 있지만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웬만큼 말은 한다!) 여전히 거절과 부탁 앞에서 나는 수없이 많은 시나리오들을 머릿속에 그려낸다. 물론 거절의 상황이나 부탁의 상황에서 내가 쓴 수십 가지의 시나리오 중 가장 최악은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나 최악까지 생각하길래? 스스로도 궁금하다.)
'상대'가 나의 거절이나 부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하는 것이 좋은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으로 끙끙 앓는 나를 종종 발견하곤 한다. 내 감정보다 '죄책감, 미안함'이 먼저인 사람들에게 《당신 생각은 사양합니다》은 사이다 같은 시원한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일명 착한 사람 탈출 프로젝트.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힘들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해 심리상담사인 저자 한경은은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방법들을 이야기한다.
남은 내가 될 수 없다. '우리가 남이가?'라고 물으면 '남이지 그럼!' 하고 답해야 한다. 나 외에 모든 존재는 남이다. 부모도 자식도 모두 '타자'이다. 그러니 남의 일에 내 마음을 쏟으며 남의 인생에 얹혀갈 요량을 내다 버려야 한다. 나에 관한, 내가 원하는,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주목하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에 관한 것밖에 없다.
우리는 타인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조건부 칭찬을 받는 것도 싫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시험 치듯 살며, 아등바등하는 게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동안 미련하도록 착해서 고달팠고, 이제는 정말 힘에 부친다. 그리고 외롭다.
우리는 왜 스스로가 아닌 타인의 감정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걸까? 그 질문에 대한 궁금증을 저자는 자신에게 상담을 받았던 내담자들의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더구나 한경은 작가는 어머니와 자신의 관계를 통해 '착한 사람'이 되고자 했던 자신의 경험담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어렸을 때는 '착하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그 한 단어에 내 모든 것들이 가려지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한 발자국씩 더 큰 사회로 나아가면서 이 말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착하다'라는 말이 가져온 틀에 어떻게든 들어가려고 스스로를 욱여넣고 있었고, '그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서는 안된다'라는 더 작은 틀까지 들어가려고 했다.
《당신 생각은 사양합니다》는 이 과정 속에서 사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한다. 특히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죄책감은 그 누구보다 스스로를 냉담하게 대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그래서 한경은 작가는 작가는 죄책감을 털어낼 수 있는 방법들을 차근히 제시한다. 가장 근본적으로 내 속에 숨겨진 '진실된 감정'과 마주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를.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감정을 묻고 마주하려고 했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도록 만든다. 다른 사람을 떠나 나 스스로 내 감정에 솔직했던 적이 있는가?
비난 받는 것이 두려워 절절맸던 자신에게, 사실 가장 큰 비난을 쏟아부은 건 남이 아니라 자신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두 번째로 잘 사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던 건 칭찬받고 인정받는 삶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 한다.
'착하다'라는 말의 틀이 나를 옥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누군가에게 "착하다"라는 말을 들으면 그 말에 쉽게 응하지 않는다. 때로는 싫어하는 말이라고 단호히 이야기하기도 한다. 《당신 생각은 사양합니다》을 읽었다고 해서 바로 내 감정과 마주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왠지 모를 쑥스러움이 가득했다. (나는 나와 내외하는 사이였나 보다.) 하지만 스스로 감정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모든 것을 멈추고 "그래서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으려 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아껴가는 방법을 알아가기를 바라면서. 아,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내 마음에 쏙 들 때도 있다. 그저 그런 세상에서, 그저 그런 나 자신과 친하게 지내보자. 친하다는 건 내 허접한 속내도 보여주고, 그 인간의 실수도 받아주는 거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단비가 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