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을 믿지 않는 마술사 안톤 씨
라르스 바사 요한손 지음, 배명자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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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에는 몇 가지 법칙이 있었다. 마법의 숲, 숲에 사는 마녀, 그리고 숲에 들어온 외지인에게 내려지는 저주. 물론, 저주의 원인은 외지인이 마녀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성격이 고약하고 못되기로 소문난 외지인이 마녀의 앞이라고 예의 바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동화의 결말은 두 가지로 정해졌다. 저주에 걸린 외지인은 개구리나 소, 도깨비 등이 되어 평생 외롭게 살아가거나 또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저주를 풀고 착하게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마법을 믿지 않는 마술사 안톤씨≫는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작가 요나스 요나손과 ≪오베라는 남자≫의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뒤를 이을 작가 라르스 바사 요한손의 첫 소설이다. 스웨덴에서 가장 인기 있는 TV 시리즈와 장편 영화의 대본을 쓴 시나리오 작가인 그는 ≪마법을 믿지 않는 마술사 안톤씨≫를 통해 스웨덴의 깊은 숲과 신화의 매력을 뽐낸다. 수많은 전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그 배경 속에서 숲에 살고 있는 숲의 여왕(변덕 신)과 눈물 신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마술을 보여드릴 수 있어 대단히 영광입니다. 이 카드에는 트란실바니아의 어느 성에서 벌어진 미스터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자, 이제 이 카드로 비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다이아몬드 잭이 스페이드 퀸의 돈을 훔쳤다는 걸 하트 킹이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걸 알려면 먼저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자, 카드 한 장을 뽑아주세요. (p.193)

  하지 축제를 앞둔 어느 날, 생일을 맞이한 안톤 씨는 차 안에 홀로 앉아 초를 불고 케이크를 먹는다. 반대편에 앉은 행복한 한 가정의 모습이 보이고,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남자 역시 생일을 맞이한다. 지방 공연을 위해 다시 움직인 안톤 씨는 방문한 양로원에서 보호사와, 공연이 끝난 뒤의 머물게 된 호텔에서는 데스크 직원과 말씨름을 하게 된다. 더구나 앞으로 잡힌 마술 공연이 더 없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언짢았던 안톤 씨는 그대로 호텔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어두운 도로를 달리던 안톤 씨는 도로 한가운데에 놓인 빨간 가죽 소파를 들이 받고 티베덴 숲에서 길을 잃게 된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숲속을 걷던 중 한 소녀가 나타나 꽃을 꺾어달라고 부탁하지만, 안톤은 단박에 거절한다. 숲속에 사는 노부부는 그 일로 안톤이 불운에 시달리다 죽게 될 저주에 걸렸음을 알려준다. 노부부는 안톤에게 저주를 풀기 위한 방법으로, 숲의 여왕의 시험을 통과해야 된다고 일러준다.

 

 

 

 

 

 

 

  옛날에 티베덴 주민들은 눈물 신을 돌려보내기 위해 아스팔트 보행자를 제물로 바쳤대. 자기만 알고 투덜대기만 하는 이기적이고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 눈물 신이 지하 왕국으로 데려가도 아무도 걱정하지 않을 그런 사람을 골라서. (p.361)

  자기만 알고 투덜대기만 하는 이기적이고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 티베덴 주민들은 눈물 신을 돌려보내기 위해 제물로 안톤 씨를 선택했다. 하는 일마다 꼬인다고 생각했던 안톤 씨는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의 의미를 파악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죽음의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숲의 여왕이 시키는 세 가지 시험을 수행하던 안톤 씨는 자신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45번째 생일을 홀로 보낼 때까지, 왜 자신의 곁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지에 대해서 생각하던 안톤 씨는 타인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진심' 이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곁을 내주지 않는, 진심 어린 말을 하지 않았던 안톤 씨는 스스로 자신을 고립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숲의 여왕의 시험을 하면서, 안톤 씨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를 갖는다. 심지어 자신들을 제물로 눈물 신에게 보낸 노부부조차도 친구라고 여기면서. 꽃을 꺾어달라는 숲의 요정의 부탁을 단박에 거절한 안톤 씨에게 요정은 그에게 타인을 배려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를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이마에 검은 얼룩을 남기는 저주를 통해서. 

  나는 언제부터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모르겠다. 나는 언제부터 나만 생각하고 투덜대며 외롭게 살았을까? 모르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그러나 내가 이때부터 땅콩 크런치를 싫어하기 시작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안다. (p.371)

  ≪마법을 믿지 않는 마술사 안톤씨≫를 읽으면서 동화 같은 분위기에 심취했다. 이제는 마법, 마녀, 그리고 신에 대해서 믿을 나이는 지났지만, 여전히 동심은 남아 있었나 보다. 마법도, 마녀도, 그리고 신의 이야기가 모두 흥미롭게 다가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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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심리학 - 너의 마음속이 보여
송형석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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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나뉜다. 사람의 심리상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만 이야기하고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만, 현실상 불가능하다. 싫어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순간순간 끓어오르는 분노에 관계가 살짝이라도 틀어질 기미가 보이면 다시 원상태로 돌리기까지의 과정은 너무나 지친다. 편하게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없을까?
  MBC 예능 <무한도전>에 출연해 무한도전 멤버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행동 패턴까지 정확하게 예측하면서 지금까지도 무한도전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의 기억에서 회자되고 있는 정신과 의사 송형석은 《위험한 심리학》을 통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제시한다. 관계를 유지하기에 앞서 사람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대처 방법을 세우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위험한 심리학≫은 심리학 이론에 따른 성격 분류에 앞서, 먼저 사람을 파악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첫인상에서 우리가 타인을 파악하는 방법과 그것에서 오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모든 사람들을 그 방법에 맞게 대할 수는 없지만, 타인과의 좋은 관계를 시작하기에 앞서 어떤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가야 할지 갈피를 잡도록 도와준다. 이후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심리학 용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준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대상관계이론, 자기 심리학 등 흔히 알려진 심리학 용어를 이용해 사람들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들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바탕으로 이제 사람들을 심리학 이론에 따른 성격 분류를 시작한다.

 

 

 

 

 

 

저자 송형석은 심리학 이론에 따라 크게 사람들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처음부터 명령하듯 대하는 사람, 늘 대화의 중심이어야 하는 사람 등을 포함하고 있는 관심에 목마른 사람들, 로봇 같은 사람, 뜬구름만 잡는 사람 등이 포함된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타인과 눈도 못 마주치는 사람, 일이나 생활에 융통성이 없는 사람 등을 포함한 타인에게 자신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람들로 구분한다. 저자 송형석이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환자들이나 주변 인물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상 인물들이라고는 하나, 현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저자 송형석은 단순히 그들을 분류함으로써 우리가 단순히 타인들을 대하는 방법만을 얻게 하지 않는다.

  타인은 자기 자신을 보기 위한 거울 같은 존재들이다. 타인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과 감정을 충분히 이해해야만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지, 나아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p.13)

  타인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늘 '겸손함'을 간과하게 된다. 타인에게 멋대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서 ≪위험한 심리학≫은 독자들에게 질문한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 많은 유형 중에 나도 어딘가에 해당되지 않을까? 스스로 나를 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비추다 보면, 여러 유형들에 한 번씩은 포함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성격은 너무 복잡하고 다양하기에 어떤 한 유형에 딱 들어맞는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위험한 심리학≫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그나마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단순한 책은 아니었던 것이다. 혹시나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내가 그런 모습을 보임으로써 나도 타인이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성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은 매우 위험하다. 부끄러운 나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책이기 때문이다. 글쎄, 이 책으로 나의 마음속이 다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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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다닐 거면 나부터 챙깁시다 - 매일같이 털리는 직장인에게 필요한 멘탈 스트레칭 에세이
불개미상회 지음 / 허밍버드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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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을 다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멘탈이 탈탈 털리기 마련이다. 밀려 드러오는 방대한 양의 업무로 야근은 일상이 되어 버리고, 한번 시작한 회의는 누군가의 반대로 2시간은 훌쩍 넘겨버리고, 그렇다고 딱히 좋은 대안이 없으면서 왜 이렇게 고집 피우는지. 고달픈 직장인의 삶이란. 회사 일에 버둥대다 보면 늘 '나' 자신은 뒷전이 되어 버린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오늘도 존버(X나 버티자)정신!'을 외치는 직장인들에게 잠시나마 유쾌하게 웃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 나왔다.

  《어차피 다닐 거면 나부터 챙깁시다》는 내 이야기 같아서 안쓰럽고, 내 이야기 같아서 웃프고, 내 이야기 같아서 통쾌합니다. 억지 위로나 어쭙잖은 교훈은 없습니다. 그저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웃길 바랍니다. _프롤로그 중에서

  《어차피 다닐 거면 나부터 챙깁시다》는 디자인 회사 불개미커뮤니케이션의 이름을 딴 불개미상회의 직장생활 툰이다. '현실은 일개미일지라도, 툰만큼은 신나는 베짱이처럼!'이라는 모토답게 직장인의 슬픈 애환들을 굉장히 재밌고 센스 있는 유머로 승화시킨다. 그 센스감에 놀라며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책이 끝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굉장히 생동감 넘친다. 우리가 흔히 직장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등장해 익숙한 성격의 캐릭터들은 굳이 어떤 부연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꼰대 기질을 보여 뒷담화의 타깃이 되는 캐릭터, 이상한 아재 개그를 날려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캐릭터, 열심히는 하지만 상사에게 늘 퇴짜 맞는 캐릭터, 매일 정시 퇴근을 노리며 눈치 보지만 결국 야근하게 되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한 번쯤은 만날 수 있는 캐릭터기에 그 무엇보다 금세 이해된다.
  그리고 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직장은 언제나 다이내믹하다. 오늘은 제발 무사히 퇴근할 수 있도록 빌어보지만, 현실은 항상 우리를 쉽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직장생활을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낙인 월급. 어제 퇴사를 꿈꿨지만 오늘 들어온 월급 때문에 사직서를 다시 서랍에 집어넣는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월급은 직장생활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물론,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갈 뿐이지만. 그 과정을 《어차피 다닐거면 나부터 챙깁시다》에서는 인간 탈곡기라며 귀여운 그림과 함께 센스 있는 해시태그로, 직장인들의 눈길을 확 끌어당긴다. 재치 있는 언어유희적 제목은 더욱 이 책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직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해본 적은 없지만 《어차피 다닐거면 나부터 챙깁시다》를 읽으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녔던 학점 연계형 현장실습 때가 떠올랐다. 4주라는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매일 아침 지옥철을 타고 출근하면서 나는 오늘만 사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만 버티자!'라는 다짐을 가지고 출근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다.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퇴짜 맞는 건 기본이었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 최종안을 보냈음에도 돌아오는 건 재수정이었던 생활이었지만 모든 실습이 끝나고 통장에 들어온 돈을 보고 뿌듯하고 기뻤다. 직장생활은 이 일이 한 달에 한 번씩, 퇴사할 때까지 끊임없는 루틴으로 이어진다니 너무도 끔찍하다. 지금도 열심히 야근과 당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선배 일개미 분들께 응원을 보낸다! 선배님들, 파이팅입니다! 저도 곧 대열에 합류하겠습니다! (...합류하고 싶어요ㅠㅠ)

  직종을 막론하고 어떤 회사도 한 사람만의 힘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여러 사람의 머리와 힘과 능력이 모여 굴러가는 곳이 바로 회사와 사회라는 곳이다. 지금 당장은 당신이 없으면 안 돌아갈 것 같고, 그래서 어쩐지 불안하고 초조하겠지만… 걱정 마시라. 내가 없어도 이상하게 잘 돌아간다. 그러니 걱정 말고, 그렇게 모든 걸 짊어지려 하지 말고, 때가 되면 쿨하게 떠나라. 돌지 말고, 뒤돌지 말고. _'그래도 지구는 아니, 회사는 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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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 제18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홍희정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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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달라고.

   이보다 더 발칙한 고백이 어디 있을까. 제목부터 가슴 설레는, 풋풋하면서 수줍은 소설이 더 있을까.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 달라니. 좋아해 달라고 이야기하는 앞에 붙은 '시간 있으면'의 가정은 너무나 씁쓸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당돌함이 느껴지는 이 고백은 이유 모를 따뜻함이 스며들어 있다.
  제18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홍희정 작가의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는 청춘들의 사랑을 그려낸다. 'N포세대'로 불리는 요즘 세대들의 모습을 대표하는 이레는 갓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취준생이다. 취업에 신경 쓰다 보니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건 포기한 지 오래다. 혹시나 잘못 꺼냈다 아예 관계가 틀어질까 걱정되는 것도 없지 않아 있고. 생동감 있는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를 읽다 보면, 남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말이 뻔히 보이는 성장 소설임에도 그 인물들에 나를 투영해 설레는 감정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갓 대학을 졸업한 이레는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잇달아 면접에서 탈락하며 마냥 놀 수는 없다는 조바심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이면, 율이가 있는 개미 슈퍼로 놀러 가 그와 논다. 손가락에 꼬깔콘을 끼고 하나씩 빼먹으며 뒹굴뒹굴하는 율은 이레가 6년째 짝사랑하는 남자다. 오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율은 어렸을 적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을 것 같지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생계를 도맡는 바람에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랐다. 한편으로는 어머니에 대해 적개심을 품고 있지만, 또 돌아서면 어머니 걱정뿐인 율이다.
  중학교 때 부모님 두 분을 여의고 할머니와 살아가던 이레는 할머니의 암 선고 사실을 듣는다.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레는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던 중, 이레는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하게 된다.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회사에 들어가게 된 이레는 회원들에게 매일 10분씩 전화통화를 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날 이후로 나는 가슴이 설레는 일이 생길 때면 그것이 오래가지 못하고 처참히 끝나버릴까봐 불안해하곤 했다.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때의 경험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아슬아슬한 어둠 속에서 느꼈던 섬뜩한 차가움, 할머니의 젖은 얼굴에 함부로 흔들리며 들러붙던 검은 머리카락. 모든 축제는 결국 끝나버린다는 공포감, 결국 아무도 남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에 나는 몸을 떨었다. 모든 것은 떠나버린다, 시들어버린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징어를 질겅거리는 율이의 옆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너도 언젠간 나를 떠나겠지. 하지만 내가 고백하지 않으면 결코 그럴 일은 없을 거야. (p.59)

 

 

 

 

  이레의 고백을 방해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중학교 때 부모님을 여읜 이레는 할머니의 암 선고 소식을 듣자 할머니 역시 자신의 곁을 떠나갈까 봐 걱정한다. 할머니마저 자신의 곁을 떠나고 나면 자신의 곁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결국, 이레가 두려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혼자 남을 자신의 '외로움'이었다. 모든 것이 자신을 스쳐 지나간 뒤에 남을 외로움. 혹시나 율이도 그렇게 자신을 스쳐 지나가 정말로 완전한 고립을 느낄까 두려운 이레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레만의 개인적인 두려움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느꼈고 누군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었다. 이레가 새롭게 구한 아르바이트 '들어주는 사람'의 회원들 역시 이레처럼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인사로 듣고 싶은 멘트를 적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위한 준비를 마련한다. 이레는 사장의 지시에 따라 어쭙잖은 충고는 하지 않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의사를 밝힌다. 그들의 감정에 "그랬었군요. 안타깝네요."라는 등의 공감하고 있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회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음에 안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쉽사리 내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건, 그것으로 하여금 외로움이라는 상처가 남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지만 한편으로 나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그 외로움을 충족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 달라는 고백처럼 씁쓸하면서도 달콤하다.

  소중한 것을 잃고 마음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느낌, 퉁퉁 부은 눈을 하고서도 '아무 일도 아니에요'라고 미소짓는 느낌, 저 멀리 언덕을 넘으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손을 흔들며 나타날 것 같은 느낌, 그 사람이 웃어주는 것만으로 우주의 모든 애정을 받는 것 같은 느낌, 꼭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모아 밤새 태산이라도 쌓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에 흠뻑 젖는 시절을 마음껏 누려야 돼.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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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칼이 되어줘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김진석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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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아 쓰는 편지의 힘은 그 어떤 매체보다 강하다. 타자로 쳐내어 너무 바르게 쓰인 글씨에서 딱딱함이 묻어 나오는 이메일이나 장문의 메시지보다 나의 감정을 타인에게 전하기에 효과적이다. 단어 하나 고르는데 고심하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그렇게 차마 타인의 두 눈을 보고하지 못할 말들을 편지를 통해 전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너에게 이 생각을 이렇게 전하고 싶다'라는 나의 바람은 종이 위 동글동글한 나의 손글씨들로부터 조금씩 뭉개져 나온다.그동안 내가 말하지 못했던 진짜 '나'의 모습을.
  ≪나의 칼이 되어줘≫는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로 2017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다비드 그로스만의 작품이다. 그는 9개월의 시간 동안 오로지 편지만을 통해 대화하는 남녀의 모습을 그려낸다. '편지'의 특성상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매체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소설 방식에서는 두 사람의 감정선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교차로 진행하여 독자들의 혼란을 경감시키는 데에 반해 ≪나의 칼이 되어줘≫는 기존의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구성 방식을 취한다. <1부>는 야이르가 밀리엄에게 쓴 편지만으로, <2부>는 밀리엄의 일기로, <3부>는 야이르와 밀리엄의 전화 통화로 이루어진다. 야이르의 편지만을 읽으면서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 있지만, 밀리엄의 일기와 두 사람의 전화 통화까지 모든 페이지를 다 읽는다면 그 혼란스러움은 조금씩 가라앉는다.

  야이르는 모임에서 처음 만난 미리엄에게 이유 모를 이끌림으로 그녀에게 편지를 쓴다. 자신의 이름도, 주소도, 전화번호도 언급하지 않은 채 편지를 쓰던 야이르는 미리엄에게 오는 답장에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그는 아내 마야에게도, 아들 이도에게도 말하지 못한 자신에 대하여 미리엄에게 모두 털어놓는다. 야이르가 미리엄에게 편지를 쓰는 동안만큼은,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 야이르는 부모님의 무관심으로 스스로 고아라고 여겼던 자신의 어린 시절로부터 오는 외로움과 불안, 결혼생활에서 오는 답답함에 대해 미리엄에게 이야기한다. 동정과 연민으로 시작된 미리엄의 답장에서 야이르는 자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완전히 낯선 두 사람이 그 낯섦 자체를, 이질성이라는 강력하고 뿌리 깊은 원칙을, 우리 영혼에 깊숙이 자리 잡은 모든 비대한 권력들을 극복하게 해달라고요. 우리는 진실의 혈청을 주사 맞은 사람처럼 마침내 지실을 털어놓게 될 거예요. 난 스스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해요. "난 그녀와 함께 진실의 피를 흘렸다"라고. 그래요, 내가 바라는 건 바로 그거예요. 나의 칼이 되어주세요. 그럼 맹세코 나도 당신의 칼이 되어 줄게요. 예리하지만 연민이 깃든, 내 것이 아닌 당신의 단어들로요. (p.19)

 

 

 

 

처음 읽을 때는 무슨 말인지 정말 이해를 못 했어요. 단어 하나하나에서 굉장히 눈부신 빛이 환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니까, 당신도 '나'라는 글자의 깊이를 헤아려본다면 이해하는 순간이 있을 거예요. 그 글자의 중심에서 거무스름한 어둠 같은 것이 퍼져 나오며 나를 그 속으로 빨아들이죠. (p.16)

  당신의 문장, 그 문장의 조각들이 마치 오랜 기차 여행을 마치고 난 뒤의 여음처럼 머릿속에서 윙윙거려요. 외워서 당신에게 들려줄 수 있을 정도로요. 물론 당신이 얼마쯤 잊어버렸다면 더 좋을 거예요. 대체로 난 우리 관계가 말 때문에 가로막히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저 단순히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p.344)

  편지를 통해 서로의 단어와 문장을 탐닉하던 야이르와 미리엄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들의 사랑은 인간이 타인에 대해 흔히 가질 수 있는 감정인 동정과 연민으로부터 출발했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넘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야이르는 어린 시절의 어두운 기억으로 자신을 몹시 비난하지만, 미리엄은 그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에 대해 답을 함으로써 야이르가 그 상처에 다시 대면하도록 도와준다. 한편, 미리엄을 모임에서 보았을 때 야이르는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그녀의 내면의 슬픔을 알아차린다. 아픈 친구의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미리엄은 야이르보다 더 현실적인 고민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는데, 야이르는 그녀를 잠시나마 그 고민으로부터 벗어나고 자유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두 사람은 서로의 칼이 되어 스스로를 괴롭혀 왔던 불완전한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떼어내어 마주한다.
  그러나 미리엄에게 편지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던 야이르는 어느 날, 자신이 보고 싶어 찾아온 미리엄에게 질색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않겠다며 선언한다. 미리엄을 통해서 나 자신을 마주했지만, 혹여나 미리엄에게 진짜 '나'의 모습을 보일까 한없이 두려워하는 야이르의 모습은 약해 보인다. 미리엄에게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지만 야이르가 가명을 쓴 것도, 주소와 전화번호를 밝히지 않았던 이유는 그에게는 자신의 상처가 타인의 두 눈에 그대로 비칠까 두려웠던 것이었다. 야이르는 그 두려움에 의해 편지 쓰기를 멈췄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미리엄에게 전화를 건다. 미리엄을 극적으로 만나게 된 야이르는 빗속에서 벌거벗은 채 괴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미리엄의 이름을 부르며 그는 자신 내면의 상처에 대한 울분을 터뜨리며 불완전한 자신의 자아를 받아들인다.

  세세한 것들은 정말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얼마나 많은 직업을 전전했고 얼마나 많은 실수를 저질렀는지는 당신에게 말한 적이 없어요. 그래도 결국에는 천직을 찾았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다루고,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애지중지했던 이야기를 되찾아주는 일이니까요. 어떤 일이 이보다 더 내게 적합할까요? 분명히 말은 틀렸어요. 난 현재 상황에 겨우 만족할 뿐이에요.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책들을 얼마나 혐오하는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어째서 나를 둘러싼 수천 권의 책들조차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그 어떤 것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요.
  그리고 그 어떤 책도 당신의 편지가 내게 전한 것들을 주지는 못했어요. (p.336)

  타인을 통해 불완전한 나를 바라보고 그것을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은 조금 아프다. 그럼에도 누군가 나의 말을 들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에는 한없이 기쁘고 감사하다. 오늘도 종이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써 내려가며 불완전하지 못한 나를 보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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