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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출판 24시
새움출판사 사람들 지음 / 새움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서점의 따뜻한 조명 아래 있는 책의 모습만 생각했었는데……. 누군가에게는 한 권의 책이 삶의 치열한 현장이었겠구나.’
문제집을 사기 위해 서점에 들렀던 어린 소녀는 그 곳이 너무도 좋았다. 책장 가득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서 마음에 안정을 얻었다. 문제집을 고르는 것보다 책장에는 어떤 책들이 꽂혀있고, 어떤 내용을 담겨 있는지 궁금해 했다. 문득 ‘서점 주인이 된다면 매일 책들을 읽으며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그 어떤 삶보다 재밌는 삶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녀가 어른이 되어가는 중에, 서점은 문을 닫고 말았다.
취업준비생인 나에게 사람들은 어디에 취업하고 싶냐는 물음을 던진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 물음에 ‘출판사’에 들어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모두들 같은 대답을 한다. “출판사 배고플 텐데. 야근도 많을 테고. 굳이 들어가려는 이유가 있어?” 이런 질문과 대답들을 반복적으로 듣고 있다 보니 이 길이 맞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새움 출판사에서 출간된 《소설 출판 24시》를 읽게 되었다.
어디서 봤더라. 누가 그러던데. 다양한 책이 다양한 독자들을 만나, 행복한 독서의 경험을 선사해줄 때 비로소 세상은 조금 더 재미있고 다채로워지지 않겠냐고. 자기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출판 마케터가 되고 싶다고.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그럴싸하지 않냐? 물론 뜬구름 잡는 얘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도 그런 사명감이랄까?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재미있게 일하다 보면 경쟁에서 지고 있다고 기죽을 필요 없고, 일도 오히려 더 잘 풀리지 않을까 싶다. (p. 248)
‘유사 이래 최고 불황’이라는 출판 시장은 매년 위기를 맞고 있다. 책이 아니더라도 즐길 거리가 많아지자 자연스럽게 출판 시장에는 위기가 찾아왔다. 전반적인 경기침체에 더해 이북이라는 전자책 시장이 확대되었고, 종이책의 미래를 쉽게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소설 출판 24시》는 수비니겨 출판사의 사람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낸다. 편집자, 마케터, 작가, 서점 MD, 북디자이너까지 책 한 권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신인 작가 조현기의 <트레이더> 원고를 읽은 수비니겨 출판사의 사장 정서는 그의 원고에 푹 빠지게 된다. 이내 그의 작품을 출간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편집장 해윤에게 원고를 건네게 된다. 시간에 쫓겨 가며 이전의 원고들을 수정하길 반복하던 해윤은 이내 현기에게 연락을 취하고, <트레이더>의 출간을 준비한다. 출간 준비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윤식은 마케팅 방법을 열심히 강구하지만 늘 한정적인 예산에 부딪히게 된다. 어색한 표현과 오탈자가 없는지 끊임없는 확인, 독자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기 위한 카피 문구 작성 등 책 한 권이 독자 한 명을 만나기까지의 노력들은 과연,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책이 많다고는 해도 해윤이 좋아했던 도서관과는 달랐다. 대형 서점은 도서관보다는 오히려 저마다의 물건을 사라고 사람들이 소리 지르는 시장, 아니, 내가 제일 잘났다고 뽐내는 각각의 물건들이 가득한 백화점에 더 가까워 보였다. 해윤은 깊어지는 생각을 접으며 친구와 함께 서점 문을 나섰다. 그렇게 편집자의 주말이 가고 있었다. (p. 66)
출판사 서포터즈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출판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자주 뵙게 되었다. ‘책’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분야를 통해서 만나게 된 분들이라 너무도 소중했다. 자연스럽게 출판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편집자, 마케터들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책을 대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논픽션인지 모를 《소설 출판 24시》의 이야기가 더욱 와 닿았다. 편집자, 마케터들의 솔직하고 당당한 고백처럼 보일 정도로, 이 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래서 더 집중해서 읽으려고 노력했다. 특히 사람들에게 ‘이 책 좋아요~’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확실한 눈도장을 얻기 위해 매일 머리를 쥐어짜는 윤식의 모습에 짠했다. 그건 아마 내가 ‘출판 마케터’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100원짜리 동전에 <트레이더> 책의 정보가 담긴 스티커를 붙여 여의도에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고, 서점을 찾아가 <트레이더>가 더 눈에 띌 수 있도록 서점 직원에게 부탁하는 윤식의 모습은 인상 깊었다.
왜 이런 말을 길게 하냐 하면 무엇보다 책의 판매는 독자 몫이라는 겁니다. 사재기니 광고니 어떤 것도 독자들 일부는 속일 수 있지만 전부를 속일 수는 없어요. 누구보다 먼저 독자들이 진짜의 가짜를 가려내요. (p. 235)
출판 마케터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왜 출판 마케터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어떤 출판 마케터가 되고 싶은가?’라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서점이 좋았던 소녀는 책장에서 책 한 권을 집어든 순간을 잊지 못한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났던 책 한 권을 잊지 못한다. 그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그 세계에 머물 수 있다는 게 너무도 즐거웠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책으로 하여금 다양한 세상을, 다양한 시간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중간다리 역할을 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기억에 오래 남을 소중한 순간들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설 출판 24시》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그렇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이 책을 빠르게 읽은 것에 대해 후회했다. 단순히 책 한 권이라고 여기기엔 누군가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 담겨 있었으니까. 이 책을 만들기까지 보냈던 누군가의 시간을, 조금은 더 곱씹어 보아도 좋았을 텐데 하고. 그리고 이런 책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이 길에 서서 읽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