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
야마자키 나오코라 지음, 정유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연애의 방식과 형태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연애의 과정은 비슷하다. 서로를 향한 호감이 사랑이 되고, 그렇게 시작된 사랑이 너무도 익숙하고 편안해져 식을 때까지의 과정. 타인이 말하는 연애에 대해 맞아, 그게 연애지.’라고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비슷한 연애의 과정을 겪기 때문이 아닐까.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 이렇게 파격적인 제목이 또 어디 있을까. ‘사랑이라든지, ‘연애라든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가 아닌 섹스라니. 그러나 이 자극적인 단어는 그저 단어에 불과하다. 야마자키 나오코라는 이 단어에 타인의 사랑과 연애, 그 모든 것을 이 한 단어 속에 포함시키고자 한다.

 

, 너 좋아해. 알고 있었니?”

? 그게 그러니까…… 알고 있었는지도…….”

수업 중에도 자주 쳐다봤었는데. 좋은 얼굴이네, 하고.그리고 어깨 라인이랑 팔꿈치 모양도 좋아. 손가락 관절도.”

그래요? ……관절이요?”

게다가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

그런가요?”

“‘이소가이 미루메란 이름도 좋고.” (p. 13)

 

미술을 전공한 유리는 자신의 출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유리의 제자인 는 친구들과 함께 유리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서른 아홉 살과 열 아홉 살인 그들의 사랑은 유리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된다. 유리의 그림을 위해 몇 번 모델이 되어주던 는 그녀와 섹스를 하게 되고, 이내 두 사람의 연애는 시작된다. 유리에게는 남편이 있었기에 그들은 주로 그녀의 아틀리에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새해가 되는 날, 유리는 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야마자키 나오코라는 열 아홉 살의 남학생을 화자로 내세운다. 타인이 보기에 두 사람의 연애는 조금 부정적으로 느껴진다. 남편이 있는 서른 아홉 살의 여성과 그녀의 열 아홉 살 제자의 연애 이야기라니. 독자 입장에서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이 관계는 또 생각보다 불타오르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섹스를 할 뿐이다. 이에 대해 야마자기 나오코라는 적나라한 묘사도 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그들의 관계를 열 아홉 살의 화자를 통해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외로워서 누군가를 만지고 싶다는 건 바보 같은 소리다. 상대를 소중히 여기고, 확실히 관계를 쌓아가면서, 애무는 천천히, 다양하게, 정성껏, 동시에 에로틱하게, 상대의 반응을 살피면서 해야 하는 것이다. (p. 53)

 

가을에 시작된 그들의 사랑은 겨울동안 지속된다. 자신이 어떻다고 생각하는 유리가 나약해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는 그녀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의 생각일 뿐이다. 오로지 그의 입으로만 이야기가 전해지기 때문에 이 연애를 하고 있는 유리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독자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랑을 해보면 이상형이라는 게 따로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모습에 마음이 빨려들고 만다. 그런 것이다. 내 이상형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 있는 그 사람의 모습에 내 마음이 빨려들고 마는 것이다.

그 투박함이 날 참을 수 없게 만든다. 잊을 수 없게 만든다. (p. 54)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를 읽다 보면 어느새 그들은 다른 연애와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걷게 된다. 사랑이 식고, 관계는 끝난다. 함께 마음이 맞아 시작한 연애는 이제 한 사람의 일방적인 통보로 끝을 맺게 된다. ‘의 입으로 전달되던 그들의 연애에서 무엇이 문제일까, 라고 생각할 새도 없이 유리는 그의 곁을 떠나게 된다.

 

새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생각도 하지만, 아직 젊으니 언젠가 생기겠지, 하는 생각은 들어도, 지금 당장 다른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는 힘이 내게 남아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유리로부터 받은 머플러를 두르고 외출할 때면, “올해는 직접 뜬 머플러를 주겠다고 약속했으면서하는, 미련투성이의 수심에 잠겼다. (p. 105)

 

결국 그들의 연애도 타인의 연애와 다를 것이 없다.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는 마치 타인의 연애에 대해 우리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연애에 대해 옳고 그름이 어디 있겠냐고. 그저 그 연애를 해 나가는 두 사람만이 그 연애가 어떤지에 대해 생각하고 말할 수 있을 뿐.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그 누군가의 연애에 대해 말할 자격은 없다. 그저 타인의 연애도 나의 연애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만 깨닫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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