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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에 걸친 신부 - 그대가 눈을 뜨면
나카하라 히사시.나카하라 마이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5월
평점 :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기억에 남는 다큐멘터리 한 편이 있다. ‘MBC 휴먼다큐 사랑’의 <너는 내 운명>. 시한부 선고를 받은 신부의 곁을 지키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많은 시청자의 마음을 울렸다. 그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길, 그들의 사랑이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랐다. 그러나 그녀는 하늘의 별이 되어 그의 곁을 떠난다. 사랑하는 이의 아픔을 지켜보며 곁을 오랫동안 지킬 수 있는 힘. 진정한 사랑은 그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일본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보여준 한 연인이 있었다. 《8년에 걸친 신부》는 결혼식을 앞두고 원인불명의 병으로 쓰러진 예비 신부와 그녀의 곁을 한결같이 지킨 예비 신랑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혼수상태에 빠진 신부가 깨어나길 기다린 2년의 시간, 그리고 어린아이의 지능으로 돌아간 신부와 함께 재활한 6년의 시간. 히사시는 마이의 곁에서 8년의 시간을 보내며, 그녀를 향한 진정한 사랑을 보여준다.
언제까지 기다리면 될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계속 잠들어 있는 마이가 눈을 떠주는 날을 저는 그저 기다렸습니다. / p. 80
《8년에 걸친 신부》는 주로 히사시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마이가 깨어나길 기다리는 동안 그는 어떤 심정이었는지에 대해 담담하게 고백한다. 두 사람 사이의 힘든 시간이었던 이 순간을 되돌아보며, 히사시는 그 누구보다 굳은 의지를 보여준다. 히사시도, 마이의 부모님도, 모두 그녀가 깨어날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지고 그녀를 간병한다. 그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히사시는 매일 30분 가까이 걸려 병원을 오간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이의 손발에 크림을 바르고 마사지를 하는 것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었던 그 심정이 이해됐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병원에 계신 할아버지를 매일 방문하면서 나도 마찬가지로 할아버지의 팔, 다리에 크림을 발라드렸다. 건조한 병실에서 쩍쩍 갈라져버린 할아버지의 피부를 말없이 슥슥 문지르는 게 다였다. 너무 아파 말도 못하시는 당신을 보며 그 일이라도 해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마이의 곁을 지킨 히사시의 사랑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더구나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도. 히사시는 결코 이 과정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사랑을 견고하게 만들 수 있었던 순간으로 생각한다. 마이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고, 두 사람의 사랑을 지켜나가기 위한 과정의 일부라고. 그리고 그 사랑은 결국 기적을 만든다.
둘 다 늙어 둘 중 하나가 누구를 보살펴야 할 때는 매일 변화가 없거나 변화가 있더라도 좋지 않은 변화가 많을 겁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조금씩이라도 매일 변화가 있었고 조금씩 전진해주었으니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날들이었습니다. 역시 즐거운 날들이었습니다. / p.117
《8년에 걸친 신부》를 읽으며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모두가 사랑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사랑이라는 것은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기에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래서 시작된 사랑을 지속시키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히사시와 마이는 그들의 방식대로 사랑을 지속시킨다. 어떤 시련이 와도, 쉽게 무너지거나 부서지지 않을 사랑을.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그 이유가 아닐까.
마이의 의식이 없었던 때나, 겨우 눈을 뜨고 갓난아이 같았을 때부터 재활치료를 시작했을 때까지 어쨌든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며 살았어.
지옥 같이 괴롭고 힘든 시련이었지만 지금은 소중한 추억으로 변한 것 같아.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전보다 더 ‘가족’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 p.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