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
바버라 립스카.일레인 맥아들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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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조현병 등의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오롯한 개인의 문제로 여겨지던 정신질환은 어느덧 사회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관심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신질환은 우리에게 낯선 단어로 느껴지며,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체감하기란 다소 어려운 부분이었다. 전문가의 설명이 포함되어 있는 다큐멘터리를 봐도 쉽게 와닿지 않는 부분을 해소하기란 어렵다. 그나마 다행히도 직접 정신질환을 겪었거나 혹은 그 가족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긴 책들을 서점에서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내 뇌는 모두 부서졌고, 빛은 그 틈으로 들어온다.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 과학자입니다》 역시 그런 책이다. 저자 바버라 립스카는 정신질환에 걸렸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30년간 신경과학자로 조현병의 원인을 찾는 데 주목했던 그녀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희생한 쥐들이 복수를 하는 것이라며, 어느 날 자신의 일상을 망가뜨린 뇌 질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투병 생활들을 순차적으로 기록하며 사람들에게 이 병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방향을 제시한다.


내 뇌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으며 그 일이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나의 여정은 내게 뇌의 풍경을 여행할 값진 기회를 주었다. 그 결과 나는 말도 못하게 복잡한 뇌라는 구조무로가 그 뇌의 산물로서 대단히 놀라운 회복력을 지닌 인간 정신에 관해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 p. 22


갑자기 아래를 볼 수 없게 된 오른쪽 눈, 움직이기 힘들어진 팔 등 바버라는 자신이 겪었던 신체적 불편들을 하나씩 언급한다. 뇌종양이 진행될수록 바버라는 점차 가까워오는 죽음의 그림자에 침식되어 간다. 그러나 6년 전 유방암을 극복했던 기억으로 다시금 삶의 의지를 다잡는다. 그녀의 바람대로 금세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좋으련만, 생각보다 호전은 더디며 그 과정에서 그녀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오랫동안 조현병을 연구하며 보냈으므로, 나는 뇌에 문제가 생기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자신의 정신적 결함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뇌에 관한 전문 지식을 쌓으며 보낸 그 모든 세월도 이 순간만큼은 내가 상황을 있는 그대로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니까 나는 정신을 잃어가는 중이고, 인생도 잃어가는 중이라는 것을. / p.235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 과학자입니다》는 마치 소설을 읽는 듯 세세한 묘사력이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각을 과감하게 써 내려간다. “암트랙, 이 망할 것들!”이나 “나더러 고약하다고?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와 같은 표현들은 그녀가 당시에 얼마나 불안하면서 감정적인 하루들을 보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고, 거친 표현을 일삼는 것 역시 정신질환의 증상들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뇌는 그 복잡성과 신비로움으로 우리를 매혹한다. 우리가 꿈꾸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하는 모든 것, 그러니까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모든 것은 뇌에서 온다. 우리는 우리의 뇌다. 병이나 노화 때문에 뇌가 망가져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 바로 우리의 페르소나를 잃게 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정신에 관해, 그리고 언젠가는 설명되고 치료되기를 모두가 소망하는 정신질환에 관해 더 많이 알기를 갈망한다. / p. 333


바버라는 뇌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존재라고 여긴다. 그러니 뇌가 망가지는 것은 우리를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한 정신질환을 겪은 바버라가 투병을 모두 끝마치고 본래의 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 덕분이었다. 가족들이 바버라의 문제로만 여기고, 그녀의 곁에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을 찾아가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었을까? 정신질환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이유는 그들도 충분히 잃어버린 자신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힘이 어딘가에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심이 그들의 힘을 깨우는 열쇠가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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