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 1 - 미래에서 온 살인자, 김영탁 장편소설
김영탁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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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시간 고기와 뼈를 진하게 푹 고아서 끓이는 곰탕은 그 자체로 '정성'이 가득한 음식으로 여겨졌다. 한 번 끓인 육수는 버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육수를 섞어 다시 또 오랜 시간 끓여야 하는 곰탕의 조리 과정은 오랜 인내심을 바라야 했다. 그래서 곰탕이라는 음식이 가지는 특유의 따뜻함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진다. 특히나 겨울마다 할머니께서 끓여 주셨던 곰탕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어떤 곰탕 가게를 가도 할머니가 끓여 주신 곰탕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슬픈 일이다.)
  소설 《곰탕》의 저자 김영탁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마흔을 눈앞에 둔 어느 날,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곰탕을 먹으며 아버지가 살아 계시던 때로 돌아가 함께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집필했다고 한다.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곰탕》은 제목과 소재 모두가 그리움과 향토감을 자아낸다. 《곰탕》을 집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김영탁 감독은 주인공 이우환에게 자신의 모든 감정들을 모두 담아낸다.

  맛있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붙드는 맛이었다. 다양한 맛이 느껴지는 것 같진 않은데, 풍부했다. 한 가지 맛으로 깊었다. 고기는 또 얼마나 구수한지. 그 사태였다. 맛있었다. 떠먹고 또 떠먹고 맛보고 또 맛봤다. 밥까지 말아서 바닥까지 떠 넣었다. (p. 39)

  2063년, 몇 번의 쓰나미로 부산은 안전한 윗동네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랫동네로 나뉘게 된다. 그냥 어른이 된 것만 같은 이우환은 식당 보조 일을 하며 사장의 '곰탕' 예찬을 매번 들으며 살아간다. 그러다 사장은 이우환에게 큰 보상을 해줄 터이니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 곰탕 맛을 배워오라고 한다. 목숨을 걸 만큼 큰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시간 여행이었지만, 이우환은 삶에 대해 그 어떤 의욕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이기에 그 제안을 수락한다. 무사히 과거 2019년으로 돌아간 이우환은 사장이 일러준 곰탕 가게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뜻밖의 인물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한편, 우환이 과거로 여행 왔을 즈음 2019년의 부산에서는 알 수 없는 살인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희망이 눈에 띄는 것처럼 절망도 그렇다. 누구나 우환을 보면 그 여행을 권했을 것이다. '죽어도, 괜찮은 거잖아? 굳이 살고 싶은 마음, 없는 거잖아?'라고 묻는 것과 같은 의미로. (p. 159)

  소설이 시작되는 과정은 굉장히 참신하다. 흔히 먹을 수 있는 곰탕의 비법을 얻기 위해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니. 그 참신한 시작으로 소설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사장의 부탁을 받고 과거로 온 우환이 곰탕의 비법을 배워가는 과정을 그리면서도, 또 다르게 원인 모를 살인 사건이 함께 병행되어 그려진다. 그러나 김영탁 감독은 이 모든 과정에서 '(우환이 아닌 타인에게는 현재인) 과거'와 '(우환에게는 현재지만 타인에게는) 미래'의 적절한 연결점을 만들어낸다. 때로는 우환이 그 연결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우환의 아버지로 추측되는 순희가 그 연결점이 되기도 하며 그들의 대립점에 놓여 있는 박종대라는 인물이 그 연결점이 되기도 한다. 모든 인물들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하나하나 생동감 있게 살아있다.

   두고 온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시간 속에서 가능할지도 모르는 행복에 대해서 생각했다.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소년을, 자신의 어머니와 이름이 같은 소녀를, 그리고 그 소녀가 가진 아이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세월을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왜 한 번도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지 생각했다. 왜 이제야 행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지, 생각했다. (p. 301)

  《곰탕》 1권에서는 미래에서 과거로 온 우환의 마음속에 곰탕처럼 따뜻한 기운이 퍼져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랜 시간 진하게 우러나는 곰탕처럼 우환의 마음속에서도 서서히 진하게 행복하고자 하는 욕구가 퍼지기 시작한다. 행복을 위해 과거에 머물기로 마음먹고 미래로 가는 배에서 뛰어내린 우환에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 이 책을 읽다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조차 계속 이 책을 읽는 꿈을 꾸었다. 깨고 나니 너무 뒤숭숭한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독자 후기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알 수 없는 중독성이 가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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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가장 위대한 모험 아폴로 8
제프리 클루거 지음, 제효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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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 7월 16일. 달에 무사히 착륙한 아폴로 11호의 착륙선 이글호에서 두 명의 우주인이 내렸다. 달 표면에 역사적인 발자국을 남기면서, 인류 최초로 달을 밟은 닐 암스트롱은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하얀 우주복을 입은 한 우주인이 펄럭이는 성조기 옆에 서 있는 사진은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게 된다.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는 최초로 지구의 중력을 벗어난 우주선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게 되었을까?
  ≪인류의 가장 위대한 모험 아폴로 8≫에서는 최초로 지구의 중력을 벗어난 우주선 아폴로 8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지구 밖 우주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인류는,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천체인 달로 가고자 마음먹는다. 인류의 호기심은 끊임없는 실패와 성공의 과정을 거쳐내면서 목표에 도달하려는 욕구로 변해간다. 책의 저자 제프리 클루거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모험 아폴로 8≫을 통해 우주인이 되기까지의 과정, 우주인으로서의 임무, 그리고 아폴로 11호가 달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낱낱이 파헤친다.

  로켓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날아갈 수 있지만, 우주라는 새로운 지평으로 건너갈 수 있는 건 오직 인간의 정신뿐입니다. (p.255)

  '인류의 달 탐험'을 주제로 하여 천문학, 우주 물리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모험 아폴로 8≫은 굉장히 흥미롭게 쓰여 있다. 저자 제프리 클루거는 제미니 호와 아폴로 8호의 선장인 공군 출신 프랭크 보먼을 주인공을 하여 마치 하나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며 역사적 사실을 흥미롭게 재구성한다. 보먼이 우주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하게 언급하며 우리에게는 낯선 아폴로 8호의 일등 공신을 소개한다.
  공군과 우주비행사를 넘나들며 여러 테스트를 거치는 보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대중들이 쉽게 알지 못하는 우주비행사가 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들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건강한 신체 조건'이 1순위인 우주비행사의 조건을 맞추지 못해 탈락하거나 비행이 미뤄지는 우주 비행사들의 모습을 보면 함께 아쉬움이 들기도 하고, 우주 비행사가 우주에 나가며 많은 의사들의 실험 과정(배변, 눈물, 땀 및 속옷 채취)을 그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는 함께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만큼 저자 제프리 클루거는 마치 옆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본 것처럼 모든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하는데, 방대한 기록과 심층 인터뷰를 날카롭게 그의 시선으로 엮어 놓은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 누구라도, NASA 관리부에서 승인하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것도 우주선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보먼의 말이었다. 노스 아메리칸 사에서는 보먼이 그 NASA 관리부였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 말을 어기지 않았다. (p.176)

  인류가 최초로 달에 땅을 밟는 과정까지, 아니 최초로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는 과정까지는 실패와 성공이 거듭되었다. 이전의 실패를 바탕으로 다음 우주선을 새롭게 보완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드디어 인류가 최초로 지구의 중력을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과정을 보면서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예측했던 일이었기에 이 성공은 더더욱 빛을 발한다.

  아폴로 8호와 이들의 우주를 향한 모험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실패보다는 성공을,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요즘 사회에서, 아폴로 8호의 도전은 달 착륙이라는 위대한 진전을 위해 묵묵히 수많은 기술적 난관과 희생을 견뎌낸 이들의 노력을 보여 준다. (p. 8)

  달 착륙 이후 50년의 시간이 흘렀고 우주기술은 크게 발전했다. 인류는 값진 경험을 통해서 기술 혁신을 일으켰고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던 모든 과학자와 우주비행사 덕분이 아니었을까. 앞으로 아폴로 11호에 대한 기억 속의 옆자리에는 아폴로 8호가 고스란히 자리 잡을 것 같다. 최초로 달로 도약했던 그 위대한 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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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 - 미세먼지 걱정 없는 에코 플랜테리어 북
정재경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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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일기 예보를 찾아보면서 '미세먼지' 농도를 꼭 확인하게 된다. 깜빡 잊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밖을 나섰다 돌아오면 항상 목이 따끔거리기 때문이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릴 때마다 TV에서는 공기청정기 광고가 쉴 새 없이 나온다. 미세먼지로 환기를 하지 못하니 탁해진 실내 공기를 환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공기청정기는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공기청정기를 구입하자니 주기적으로 청소해줘야 하는 필터에서 나오는 유해물질도 걱정이 되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사용하자니 '전기세'가 신경 쓰이는 등 여간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 정재경은 ≪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을 통해 미세먼지 걱정 없는 에코 '플랜테리어'를 소개한다. 플랜테리어는 Plant(식물)과 Interior(인테리어)를 합성한 말로, 곳곳에 소품으로 식물이나 화분으로 포인트를 주는 인테리어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집 안의 식물들을 두어 공기 정화에 힘쓰자는 말이다. 책의 저자 정재경은 식물이 주는 긍정적 효과 세 가지(①공기 정화 ② 마음 치유 ③ 심미적 만족감)에 집중하여 누구나 쉽게 플랜테리어를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은 실내 생활에 있어서 식물이 필요한 이유를 저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기반을 두어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저자가 직접 꾸민 플랜테리어를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쉽고 재밌게 설명한다. 실용서로 구분될 수도 있겠지만, 식물을 기반으로 한 하나의 에세이처럼 느껴지도록 글을 서술하는 것이 매력적인 책이다. 실제 200개의 화분을 집 안에서 키우는 저자는 자신의 플랜테리어 노하우들을 과감하게 공개한다.




새잎을 밀어내며 생명 에너지를
뿜어내는 싱싱한 식물들과 함께,
일상을 살아갈 긍정 에너지를 가득 충전하시길 바랍니다.



미세먼지 제거에 효과적인 공기 정화 식물들을 따로 분류하여 소개하기도 하고, 자신의 주거 공간을 예시로 들면서 각 주거 공간에 맞는 식물 고르는 법, 그리고 독자들의 특성에 맞는 식물 고르는 법을 설명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누구나 쉽게 플랜테리어를 시작할 수 있도록 기초가 되는 식물 관리 꿀팁을 전수하면서 데드 스페이스(dead space)를 살릴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한다. 실내에 식물들을 가득 채워 넣은 저자 정재경은 작은 텃밭으로도 눈길을 돌려 텃밭 식물 가꾸는 법도 짧게 소개한다.






≪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을 읽다 보면 '나도 플랜테리어를 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조금씩 솟아오른다. 저자 정재경이 대부분이 주거하는 아파트의 형태를 고려하고 그에 따른 데드 스페이스(dead space)를 살린 방안들을 적절히 제시하기 때문이다. 욕실의 수건걸이 선반을 이용하여 화분 거치대를 만든다든지, 창가에 작은 화분들을 나열한다든지의 실천할 수 있을 만한 팁들을 알려준다.
  누구나 쉽게 키울 수 있는,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식물인 스파티필룸, 스킨답서스, 홍콩 야자의 특징과 키우는 방법이나 고무나무나 떡갈나무 등을 이용해 '통일, 비례, 균형, 대칭, 리듬감'등의 요소를 지키며 실내 디자인을 하는 방법들을 자세히 서술한다. 이렇게 자세한 서술은 모두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데, 차근차근 읽다 보면 저자가 얼마나 식물을 사랑하고 아끼는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 마음에서 당장 화원으로 달려가 식물을 구입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꼭 가정이 아니어도 좋다. 건조한 회사 사무실 테이블 위에 작은 화분 하나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상쾌해지는 기분이 들지 모른다.




식물로 가득한 공간에서는 확실히 몸과 마음이 편안합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싱싱한 식물이 가득한 공간들을
더욱 많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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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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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어떤 것을 규정한다. 나에게는 여러 개의 이름이 있다. 나를 부르는 이름은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한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세 글자의 이름 말고 누구의 '딸'로 불릴 때도 있고, '여대생 누구'로 불릴 때도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의 이름은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 여직원, 아줌마, 할머니 등등. 그리고 이 모든 이름들은 '나'를 규정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모든 이름들이 '나'만 규정하지는 않는다.
《82년생 김지영》으로 대한민국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던 조남주 작가는 《그녀 이름은》이라는 새로운 소설집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그녀 이름은》의 화자들은 모두 '여성'이다. 아홉 살 어린이부터 예순아홉 할머니까지 육십여 명의 여성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쓰인 이 소설집은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흔하게 일어나지만 분명 별일이었고 때로는 특별한 용기와 각오, 투쟁이 필요한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자체로 의미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특별하지 않고 별일도 아닌 여성들의 삶이 더 많이 드러나고 기록되면 좋겠습니다. 책을 펼치며 여러분의 이야기도 시작되리라 믿습니다. (p.7 '작가의 말' 중에서)

"특별히 해줄 말이 없는데", "내가 겪은 일은 별일도 아닌데"라며 덤덤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여성들처럼 《그녀 이름은》의 소설들은 하나의 일상처럼 느껴진다.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나의 '엄마'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나의 '할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숨 쉬고 잠자고 밥 먹는 것처럼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야기 속에는 어떤 이름으로 규정된 여성들이 등장한다. 마치 핀에 꽂혀 더 이상 날지 못하게 된 박제된 나비처럼 여성들은 그 이름으로 규정되어 멈춰있다.

"결혼해. 좋은 일이 더 많아. 그런데 결혼해도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가 되려고 하지 말고 너로 살아." (p. 90 '이혼일기' 중에서)

《그녀 이름은》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은 '엄마'였다. 나보다 더 많은 이름을 가진 우리 엄마. 내가 더 어렸을 때, 엄마는 나에게 문득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나마 엄마가 직장을 다니니까 내 이름 석 자로 불리는 거지."라고. 결혼을 생각하지도 않았던 엄마는 할머니의 소원이라는 말에 결혼을 택했다. 엄마에게는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리고 나와 동생이 태어나니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도 생겼다. 그 이후로 엄마는 본인 이름 석 자보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일이 더 많았다.

"나는 엄마가 자랑스러워. 항상 그랬고 지금도 그래." (p. 244 '큰딸 은미' 중에서)

나를 표현해주는 이름이 생기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만큼 나를 더 알릴 수 있으니까. 그러나 때로는 '나'의 이름이 나를 옭아매는 것 같아 불편하다. 진짜 내 이름을 덮어버리고 그 이름으로 박제되어 살아야 할까 봐 불편하다. 《그녀 이름은》에는 수많은 여성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소진, 나리, 은순, 지혜, 민아, 유경, 은미, 수빈…… 나는 '나'의 이름이, 그리고 '그녀'들의 이름이 계속해서 불렸으면 좋겠다. 온전한 제 이름으로 불렸으면 좋겠다.

십삼년 전 삼순은 말했다.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서른을 앞둔 은순에게는 여전히 두근거리는 일들이 많다. 매장에 나갈 때도 교육을 받을 때도 남자친구를 만날 때도 그렇다. 좋은 영화를 보고 예쁜 옷을 입고 상쾌한 향수를 뿌릴 때도 그렇다. 심장이 딱딱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촌스러운 이름, 버거운 일상, 불안한 미래, 하지만 계속 두근거릴 줄 아는 김은순으로 살고 싶다. (p.61 '내 이름은 김은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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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그들에게 사면초가 1~2 (완결) - 전2권
소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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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한 번쯤은
인기가 폭발하는 시기가 찾아온다는데.
나는 그 시기가 지금인 것 같다.

 

  잠시 시간이 나지 않아 웹툰을 챙겨보지 못하던 사이에 그들에게 사면초가가 완결이 났다. 그동안 꾸준히 챙겨보던 웹툰이기에 결말까지 보고 나서도 그 여운이 남아 아쉬워하던 차에 단행본 출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스마트폰으로 볼 때는 한 회, 한 회 매주 기다리면서 봐야 했지만, 이렇게 단행본으로 한 번에 만나니 좋았다.

 

 

 

  ≪그들에게 사면초가는 평범한 여고생 여주에게 갑자기 매력 넘치는 네쌍둥이가 고백을 하면서 생기는 일들을 그려낸다. (네쌍둥이의 고백에 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여주의 마음을 '사면초가'라고 표현한 제목이 너무도 재치 있다!) 차분한 매력의 일남, 대책 없이 돌진하는 츤데레 이남, 연애를 책으로 배운 순수한 삼남, 귀여운 연하남 같은 사남까지! 44색의 매력을 가진 남자 주인공들이 여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지는 웹툰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0000> 시리즈가 여자 주인공의 남편 찾기에 집중하여 전개되는 것처럼 그들에게 사면초가≫는 '여주의 남친 찾기'에 집중한다. 
  과연 여주의 남친은 누가 될 것인지, '어남일(어차피 남친은 일남이)'일 것인지에 대해 집중하다 보면 절로 네쌍둥이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네이버 웹툰에 일남이 파, 이남이 파, 삼남이 파, 사남이 파로 구분되어 달린 댓글들을 읽는 것도 사실 하나의 재미 포인트다!) 그 밖에도 여주와 일남이의 과거 이야기, 이남이의 꿈 속 이야기, 삼남이의 고독한 짝사랑, 사남이와 여주 친구 나비와의 관계 등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귀엽고 발랄하게 그려져 언제든지 즐길 수 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본 적이 없었다.
그치만이제 달라지고 싶어.

 

  작가 소이는 '첫사랑', '첫 연애'처럼 설레고 풋풋한 감정과, 한편으로 고등학교 청소년 시절의 예민하고 민감한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여주의 닫힌 마음에 대해 그려내면서, 그것을 네쌍둥이와의 관계로 이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그래서 그들에게 사면초가를 보는 내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누구 하나 미운 캐릭터가 없는 게 이 웹툰의 장점이다! (물론 내용 초반에 여주와 나비의 마음이 맞물리면서 살짝 삐걱하지만 그것도 잠시, 소이 작가님은 모든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변화 시켜주신다ㅎㅎ) 사랑스러움이 느껴지는 웹툰 그들에게 사면초가: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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