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봄
오미경 지음 / 하움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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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라는 계절은 따뜻한 기운을 가지고 차디찬 겨울이 지난 후에 찾아온다. 봄이 가진 기운으로 땅속에 웅크리고 있던 생명들이 하나둘씩 움트기 시작한다. 거리 곳곳을 가득 채운 꽃내음을 맡으며 봄을 만끽하다 보면 '이래서 봄이 좋아'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냥 무작정 걸어도, 기분 좋은 곳으로만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봄. 그래서 사람들은 봄의 계절적 특성을 연결 지어 인생의 가장 절정인 시기를 '봄'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봄이 오기 전까지의 겨울이 너무 춥게 느껴지듯이 우리 인생에도 그러한 부분들이 존재한다. 단편적일 수도 있고, 장편적일 수도 있지만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음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해결해 줄 것 같지만, 봄이 오는 과정은 생각보다 더디고 느리게 진행된다. 그래서 봄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겨울을 잘 보내고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는 자세도 필요하다.

  지금 삶이 어떤 세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러니 힘든 것도, 즐거운 것도, 슬픔도, 행복도
  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라는 것.
  (p. 33 '내가 존재해야 세상도 존재한다' 중에서)

  《어느날, 봄》은 저자 오미경이 자신의 힘들었던 시기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낸 에세이다. 힘들었던 시기를 극복해낸 그녀는 《어느날, 봄》을 통해 용기 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자 결심하고 작가라는 봄을 맞이한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해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풀어내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언젠가 다가올 봄을 함께 맞이하고자 하는 소망을 드러낸다. 그래서 그런지 봄처럼 따뜻한 기운이 책을 읽는 내내 고스란히 느껴진다.
  사실 에세이는 독자들이 어떤 때에 읽느냐에 따라 감흥이 달라지는 분야다. 만약 내가 갓 이별을 한 상태라면 당연히 사랑과 이별, 극복에 관한 글에 자연스레 눈길이 갈 것이고 또는 외로움에 허덕여 미쳐가고 있다면 "밥은 잘 먹고 다녀?"라는 짧은 문장만으로도 따뜻한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부정하려야 할 수 없는 취준생이 되어버린 나는 자연스럽게 '취업난'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나 취준생인데, 놀고먹는 사람은 아니야
  나도 일하고 싶고, 내 힘으로 살고 싶어
  그게 그리 큰 욕심인가? 그게 눈이 높은 걸까?

  그러니까 그런 되도 않는 말로 상처주지 말자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야.
  (p. 215 '그래요, 나 취준생이에요' 중에서)

  《어느날, 봄》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내게도 언젠가 봄이 올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봄이 어떤 형태로, 어떤 시기에 찾아올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대로라면 충분히 내게도 봄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언젠가 찾아올 나의 봄날을 위해, 조금 더 참고 견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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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책 읽는 고양이
알렉스 하워드 지음, 이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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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양이나 강아지의 두 눈을 빤히 쳐다보면 가끔 '저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몽상에 빠져든다. 정확한 호불호를 보여주는 우리 집의 개님 덕분에 강아지의 생각이야 그렇다고 대충 얼버무릴 수 있겠지만, '에옹~'하고 우는 고양이의 경우에는 그 속을 알기란 내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랬으니 간식과 밥을 챙겨주고도 길고양이에게 공격을 당할 줄 몰랐던 거겠지ㅠㅠ) 어쨌든 망상의 끝은 언제나 "강아지든, 고양이든 다 귀여워!"로 끝나지만.
  시크하고 도도하고, 때로는 우아하기까지 한 고양이는 "귀여워!"라며 스마트폰을 들이대며 사진 찍는 인간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알렉스 하워드는 《책 읽는 고양이》의 화자를 에든버러대학교 도서관 고양이로 설정한다. 에든버러대학교 도서관에 사는 고양이는 자유롭게 도서관을 노나들며 자신의 일상을 침범하는 인간들을 관찰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때로는 인간인 나보다 더 고차원적인 생각 속에 빠지기도 한다.




에든버러대학교 도서관 고양이 조던은 대부분 고양이들과는 같지 않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고양이계의 데카르트라고도 불릴 수 있는 이 고양이는 에든버러대학교 사제관에서 태어나  생각하는 고양이들의 운명을 따른다. 도서관 고양이는 항상 자고, 생각하고, 관찰하기에 완벽한 장소, 도서관 로비의 청록색 의자에 앉아 있는다. 그리고 관찰이 끝나면 발견한 사항들을 정리해둔다.
  《책 읽는 고양이》는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들을 그려내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히 꼬집어낸다. 도서관 고양이가 관찰한 인간들은 가끔 타인에게 아무런 배려도 보이지 않기도 하며, 타인의 믿음보다 자신의 믿음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또, 때로는 완벽한 것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기도 하고 규칙에 얽매여 즐거움을 빼앗기기도 한다.

  "공공의 이익"이니 "대중"이니 "원자력 센터" 같은 말이 소형 비행선처럼 허공을 가르는 사이, 모두 자기가 옳다는 생각에 갇혀 있었다. 그 현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묘사하는 한 가지 색깔이 있다면, 그것은 빨강이었다. 그리고 도서관 고양이는 빨강을 보면 불안해졌다. 빨강은 그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의 세계는 파랑과 초록색이었다. 어쩌면 갈색도 살짝 섞어서. (p. 40)



 그들은 행복을 보이지 않는 쥐로 만들고 평생 그것을 좇으며 보낸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만족감뿐이다. 잡을 쥐란 애초에 없다. (p. 102)

  도서관 고양이는 인간들을 관찰하면서 고양이와 인간의 다른 점을 짚어낸다. 고양이에겐 있고 인간에게 없는 것. 도서관 고양이는 그것을 '진정으로' 느끼는 만족감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이 가지고자 하는 것들을 목표로 삼고 앞으로 계속해서 전진하는 것처럼 보이던 인간의 행동들은 사실, 고양이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 어떤 만족감도 얻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달리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던 것이다.
  때로는 충분한 결과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하찮게 여기거나 여전히 미숙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종종 '행복해지고 싶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만족감을 얻는 고양이의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쥐를 좇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도서관 고양이가 있는 곳이 대학교여서 그런지 고양이가 이상하게 여기는 학생들의 모습이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그러면서 정말로 놓치고 있던 것이 많았구나,라며 내 일상에서 놓치고 있던 것들을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도서관 고양이 조던을 보러 에든버러대학교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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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보이는 빅데이터 - 새로운 기회와 수익을 만드는 빅데이터 사용법
이종석 지음 / 김영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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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봄, 구글 딥마인드에서 제작한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은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컴퓨터와 인간의 대결이라니. SF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연출될 것만 같았다. 체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경우의 수를 가진 바둑의 경우,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파고는 의외의 결과를 보여주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 언론 전공 수업을 듣던 나는 매 수업 시간마다 이 소식에 대한 동향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언론 기사에서는 ‘4차 혁명 시대의 도래를 언급했고 그에 따라 교수님들은 빅데이터’,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시며 그 중요성을 언급하셨다. 그러나 교수님들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빅데이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2012년 국내에 빅데이터라는 용어와 개념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그런데 빅데이터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현재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빅데이터 도입 초기에 빅데이터는 단어 그대로 거대한 데이터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p. 21)
 
  《돈이 보이는 빅데이터의 저자 이종석 교수는 그동안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빅데이터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빅데이터에 대한 올바른 정의는 물론, 빅데이터에 관한 분석의 당위성, 빅데이터를 통한 머신 러닝과 딥러닝, 그리고 빅데이터를 적용한 기업의 확장과 수익 창출 과정을 자세하게 풀어낸다. 기업에서 인공지능, 머신 러닝, 빅데이터 관련 업무를 하거나 향후 스타트 업을 준비하는 등 관련 업무 종사자 외에도 빅데이터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한다.
 
  곧 닥쳐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기존에 빅데이터를 바라보던 시각을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빅데이터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차원의 저주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던 비즈니스를 다시 꺼내야 한다. 이런 비즈니스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머신 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어떻게 새롭게 만들 것인가 고민하다 보면 기존 경쟁구도를 흔들 만한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p. 48)
 
  많은 언론에서는 4차 혁명 시대의 시작을 언급하면서 빠른 변화를 촉구하고 있지만, 빅데이터 분야는 생각보다 방대하기 때문에 올바르게 알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돈이 보이는 빅데이터에 따르면, 몇몇 글로벌 기업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기업들이 여전히 빅데이터 분야에 접근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저자 이종석 교수는 우리에게 익숙한 알파고와 이세돌 9단 사례는 물론, 이미지 정보를 수집해 무인으로 계산할 수 있는 아마존고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더불어 인공지능이 학습해야 하는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섣불리 그 기술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뒤처지지 않아야 됨을 강조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의 사례에 비해 국내 기업의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이종석 교수는 제6장 <돈이 보이는 빅데이터 가이드라인>에서 '한국어 인공지능 개발의 시급함' 과 더불어 '한국어 인공지능 도입 시 주의사항'들을 언급하며 국내에서도 빅데이터의 활용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바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빅데이터가 실제 업무에 적용되지 못한 이유는 차원의 저주를 풀 수 있을 만한 빅데이터 수집·분석 기번이 충분히 개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셰일오일인 빅데이터를 추출하고 정제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면, 빅데이터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되고 만다. (p. 52)

  이미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기계들은 인간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갈수록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한 곳이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기계가 인간을 대신할 수 없는 분야는 존재한다. 빅데이터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 개인의 직감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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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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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로부터 살의를 담아'라는 11문자로 이루어진 편지 한 장으로 사건은 시작된다. 프리랜서 작가인 남자친구 가와즈 마사유키는 추리 소설 작가이자 여자친구인 '나'에게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여자친구인 '나'가 의아해하자마자 가와즈 마사유키는 바다에서 시체가 되어 발견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이 미심쩍은 주인공 '나'는 그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했고, 그녀가 죽음의 진실에 가까워질 때마다 그녀 주변의 인물들이 하나둘씩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섯 번째 장편 소설 《11문자 살인사건》이 10년 만에 재출간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창기 작품에 속하는 《11문자 살인사건》은 정통 추리 소설의 특징을 그대로 따라간다. 아가사 크리스티나 아서 코난 도일처럼 추리에 전문적인 탐정이나 형사들을 내세우지는 않아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 소설 작가'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주인공을 사건 전반에 세워 놓는다.

  단순해. 지금까지의 정보를 정리해보면 이런 결론이 나와. 작년에 일어난 보트 사고 말고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났어. 그리고 그 다른 일을 숨기려는 사람이 있어. (p. 133)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주인공 '나'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얽히고설킨 인물 관계를 마주한다. 하지만 과거 사건과 관련이 없는 주인공 '나'를 제외하고 모든 인물들은 선과 악의 경계에 놓여 있어 범인을 찾아내고자 하는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높은 가독성만큼이나 빠르게 전환되는 사건 전개 속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답게 모든 인물들을 향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선과 악의 경계에 놓여 있는 인물 중에서 과연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이제 와서 손을 뗄 수는 없지. 달을 보며 중얼거렸다. (p. 146)




내가 그들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는
단순히 내게서 소중한 걸 빼앗아갔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행위가 자신들의 일방적인 가치관에 의해 이루어졌고,
따라서 그들이 어떤 수치심도 못 느끼고 있다는 데
격렬한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당연한 것이었다고까지 생각한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다고.
인간이라면?
(p. 173)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 전반적으로 많은 떡밥을 뿌려 놓지만 《11문자 살인사건》에서 범인과 범행 동기에 관한 정보는 범인의 독백에서 얻을 수 있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잘 몰랐지만, 마지막 결말까지 보고 다시 독백 부분을 읽다 보면 그가 꽤나 많은 정보들을 숨겨 놨음을 알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11문자 살인사건》을 통해 다수가 여기는 '최선'이 가장 유익한 '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타인의 희생을 감수하고도 모두에게 최선이 되는 결과를 얻게 된다면, 당신은 그것을 선이라고 여기고 따를 것인지에 대해 말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소설 속 인물들이 그 어떤 소설 속의 악인보다 더 악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며 그들을 옹호할 수도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인물들은 물론 독자들마저도 그 경계에 세워 놓는다. 당신은 '선'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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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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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앞에 앉아 있던 어린 '나'는 한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에 매료되어 있었다. 시공간을 이동한 여고생이 강아지 귀를 가진 요괴와 함께 깨져버린 구슬 조각을 모으러 다니는 이야기. 90년대에 애니메이션 채널을 꽤나 봤다던 아이들이라면 모두가 알만한 애니메이션, <이누야샤>는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뜻도 모를 '바람의 상처!'를 외치고 다닐 만큼의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공 이누야샤의 바람의 상처 한 번이면 웬만한 요괴들은 모두 떨어져 나가니, '강한 게 최고야!'라고 생각했던 어린아이를 홀리기에는 그만한 애니메이션이 없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그 추억의 애니메이션을 떠올릴 만한 책을 읽게 되었다. 일본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라는 제목을 가진 《항설백물어》는 충분히 이누야샤와 가영(카고메)의 모험 이야기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애니메이션 <이누야샤>가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면, 《항설백물어》는 그것보다 시간이 더 지난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에도를 떠나 백 가지 괴담을 모으러 다니는 이야기 수집가 모모스케는 우연히 여행길에서 한 무리를 만나게 된다. 《항설백물어》는 모모스케가 이 무리를 만나고 난 이후의 사건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낸다. 잔머리 모사꾼 마타이치, 인형사 오긴, 그리고 신탁자 지헤이와 함께 모모스케는 기묘한 소문에 얽힌 사건들을 해결한다.

  지헤이 씨는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어느 시절이라도 괴담은 있는 법이지요. 이것만은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저는 괴담이야말로 이야기의 왕도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아, 저기 그런 까닭에 저는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주술, 미신, 괴이쩍은 소문, 기이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지요. (p. 96)

  비가 내리는 밤이면, 어느 지역의 계곡에서는 누군가의 울음소리처럼 팥을 이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어느 지역에 있는 절에는 스님으로 둔갑해 오십 년을 살아온 여우가 있기도 하고,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싸우다 머리가 잘려도 생을 건너가며 계속 싸우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고, 인간으로 변신해 살아가다 개에게 물려 죽은 너구리가 있기도 하고, 주인에게 잡아먹히고 나서 매일같이 집을 찾아오는 말의 영혼, 억울한 여인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버드나무의 저주, 그리고 옛날 황후의 시신을 버린 곳에 계속해서 나타나는 여인들의 썩은 송장까지 매혹적이고 기묘한 7가지의 이야기들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누야샤와 가영(카고메)가 구슬 조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나 요괴들을 찾아갔을 때, 그들은 욕망에 사로잡혀 오히려 이누야샤와 가영이의 구슬 조각을 뺏으려 한다. 그것처럼 《항설백물어》에도 괴소문에 가려진 진실이 밝혀질 때마다 모모스케와 일행들은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들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은 물론이고, 동생과 처, 자식까지 죽이는 인간의 욕심을 저자 교고쿠 나쓰히코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세상은 참으로 서글퍼. 그 노파만이 아니라고. 너도 나도, 인간은 모두 같아.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면서 가까스로 살고 있는 거라고. 그러지 않으면 살아있지 못해. 더럽고 악취 풍기는 자신의 본성을 알면서도 속이고 어르면서 살고 있는 거야. (p. 502)

  인간의 추악한 본성 앞에 서게 된 이누야샤와 가영이는 바람의 상처를, 모모쓰케와 일행은 "어행봉위!"를 외치며 요령을 짤랑 흔든다. 세상의 모든 인간의 추악한 본성과 욕망이 사라지길 바라면서.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괴소문은 우리 모두가 사악한 마음에 빠져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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