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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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로부터 살의를 담아'라는 11문자로 이루어진 편지 한 장으로 사건은 시작된다. 프리랜서 작가인 남자친구 가와즈 마사유키는 추리 소설 작가이자 여자친구인 '나'에게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여자친구인 '나'가 의아해하자마자 가와즈 마사유키는 바다에서 시체가 되어 발견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이 미심쩍은 주인공 '나'는 그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했고, 그녀가 죽음의 진실에 가까워질 때마다 그녀 주변의 인물들이 하나둘씩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섯 번째 장편 소설 《11문자 살인사건》이 10년 만에 재출간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창기 작품에 속하는 《11문자 살인사건》은 정통 추리 소설의 특징을 그대로 따라간다. 아가사 크리스티나 아서 코난 도일처럼 추리에 전문적인 탐정이나 형사들을 내세우지는 않아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 소설 작가'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주인공을 사건 전반에 세워 놓는다.

  단순해. 지금까지의 정보를 정리해보면 이런 결론이 나와. 작년에 일어난 보트 사고 말고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났어. 그리고 그 다른 일을 숨기려는 사람이 있어. (p. 133)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주인공 '나'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얽히고설킨 인물 관계를 마주한다. 하지만 과거 사건과 관련이 없는 주인공 '나'를 제외하고 모든 인물들은 선과 악의 경계에 놓여 있어 범인을 찾아내고자 하는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높은 가독성만큼이나 빠르게 전환되는 사건 전개 속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답게 모든 인물들을 향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선과 악의 경계에 놓여 있는 인물 중에서 과연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이제 와서 손을 뗄 수는 없지. 달을 보며 중얼거렸다. (p. 146)




내가 그들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는
단순히 내게서 소중한 걸 빼앗아갔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행위가 자신들의 일방적인 가치관에 의해 이루어졌고,
따라서 그들이 어떤 수치심도 못 느끼고 있다는 데
격렬한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당연한 것이었다고까지 생각한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다고.
인간이라면?
(p. 173)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 전반적으로 많은 떡밥을 뿌려 놓지만 《11문자 살인사건》에서 범인과 범행 동기에 관한 정보는 범인의 독백에서 얻을 수 있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잘 몰랐지만, 마지막 결말까지 보고 다시 독백 부분을 읽다 보면 그가 꽤나 많은 정보들을 숨겨 놨음을 알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11문자 살인사건》을 통해 다수가 여기는 '최선'이 가장 유익한 '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타인의 희생을 감수하고도 모두에게 최선이 되는 결과를 얻게 된다면, 당신은 그것을 선이라고 여기고 따를 것인지에 대해 말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소설 속 인물들이 그 어떤 소설 속의 악인보다 더 악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며 그들을 옹호할 수도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인물들은 물론 독자들마저도 그 경계에 세워 놓는다. 당신은 '선'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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