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마흔 고독한 아빠
이시다 이라 지음, 이은정 옮김 / 살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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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다들 약하다고 생각해. 자신이 진짜 곤란에 처해있거나 고민이 있으면 아무한테도 말 안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거든. 그러니까 아슬아슬할 때까지 참다가 어느 날 갑자기 툭하고 부러져버려. 40~50대 남성의 자살 원인은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라 외톨이에다가 마음을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다고 생각해.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가까이 있는데 말이야. (p. 341)

중년 가장의 삶은 어떨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빠의 삶을 옆에서 보곤 하지만 전혀 내색하시지 않으니 그 속을 쉽게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죽하면 뉴스 기사 제목에서도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외로운 중년 가장들'이라는 타이틀이 너무도 당연시하게 나타날까. 가족을 부양하겠다는 가장들의 부담은 그들을 집이 아닌 일터에 머물도록 만들었고, 그들의 자녀들은 어느새 자라버리게 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는 한숨을 쉬며 집으로 돌아온 가장들에게 외로움이라는 부담을 또 지어주곤 한다.

《텅 빈 마흔 고독한 아빠》는 '가장'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를 주인공 고헤이를 통해서 그려낸다. 10년째 차세대 소설가라는 주목을 받아온 고헤이는 4년 전 아내를 잃고 아들 가케루와 단둘이 살아가는 싱글대디이다. 곧 마흔을 앞둔 그는 가케루가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도록 성심성의껏 그를 돌본다. 아들에게 더 좋은 것을 해주기 위해 성공을 꿈꾸지만, 그의 성공은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런 넓고도 좁은 출판계의 한 귀퉁이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만 쓰며 생활할 수 있다. 크게 성공할 일은 없겠지만 그런대로 행복한 인생이라고, 고헤이는 자신의 작가 생활을 그렇게 정의했다. (p. 12)

사회의 일면을 묘사하기로 유명한 이시다 이라는 주인공 고헤이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표현하고자 한다. 고헤이의 직업적인 면을 따라가다 보면, 점차 줄어드는 출판계 시장에서 소설가가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인고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수상 하나에 자신의 작품쇄량이 결정된다는 사실은 회사원, 공무원과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불안정한 수입을 야기하며, 가장인 고헤이를 볼품없고 작은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 칫치가 질투하고 말았어. 이 책은 나도 쓸 수 있었어. 하지만 분명 나라면 이 정도로 좋은 책은 완성하지 못했을 거야. 벌써 10년이나 작가 일을 하고 있고 다음 책은 열다섯 권째가 돼. 그런 지금에 와서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서 정말 괴로워. 친구를 질투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증오스러웠어. 그러면서 점점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p. 75)

그러나 그의 곁에는 항상 아들 가케루가 있었다. 싱글대디의 삶을 그린 이치카와 다쿠지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속 노란 우비의 유지를 연상케한다. 물론 나이는 가케루가 더 많은 것으로 나오지만. '아빠'가 처음인 그들에게 두 아들들은 언제나 그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말을 건넨다. 아빠라는 무거운 무게를 홀로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며, 늘 그들의 어깨를 토닥여준다. 무심한 듯 던지는 이 말 한마디들은, 아들을 키우는 두 싱글대디들에게 내일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겠다고 다짐하도록 한다.

위대한 소설을 낳는 위대한 시대는 동시에 고난의 시대다. 위대하지 않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쓸 수 있는 평범한 시대를 사는 편이 훨씬 좋다. 고헤이는 가케루의 아버지로 매년 계속되고 있는 디스플레이션 속에서 출판계에 데뷔했다. 작가로서의 욕심은 거의 없다. (p. 147)

그럼에도 누군가 말했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는 강하다. 4년이 지나 아내의 죽음을 이해하고, 그녀의 빈자리를 채워가며 아들 가케루에게 해줄 것이 많은 고헤이는 아들을 위한 소설을 쓰고자 한다.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고헤이의 소설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잔잔한 듯하면서도 따뜻한 《텅 빈 마흔 고독한 아빠》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퇴근하시고 오는 아빠에게 건넬 한마디가 떠올랐다. "오늘도 고생하셨고, 사랑해요."

하지만 마맛치가 죽고 나서 칫치는 혼자서 집안일도 하고 저를 돌보고 일도하고 있어요. 칫치가 많이 힘들 거예요. 칫치는 제게는 최고로 좋은 아빠예요. (p.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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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뿐인 미래 - 얼어붙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살림 YA 시리즈
소피 크로켓 지음, 김경숙 옮김 / 살림Friends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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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찾아오고, 인류를 지탱해 온 모든 삶이 얼어붙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그 겨울의 원인이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목재 도매상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 소피 크로켓은 자신의 첫 장편 소설인 《겨울뿐인 미래》를 집필한다. 추운 겨울이 찾아와 모든 것이 얼어버린 겨울을 배경으로, 하루 아침에 모든 가족을 잃어버린 한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소피 크로켓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있지는 않은지 질문한다.

윌로는 일명 '이탈자'라고 불리는 무리로, 도시를 떠나 산 속에서 가족들과 살아간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모두 떠나게 되고 홀로 남게 된 윌로는 가족을 찾아 집을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전체적으로 추운 겨울이 찾아온 윌로의 삶의 터전에서, 윌로가 믿을 수 있는 것은 그의 머리 위에 얹혀진 '울프'뿐이다. 길을 떠난 윌로는 한 오두막 집에서 아빠를 찾는 어린 소녀와 동생을 만나게 된다. 윌로는 가족들과 함께 살 때 누군가를 도와줬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기억을 떠올리면서 소녀를 무시하기로 마음먹지만, 이내 자신의 뜻에 따라 소녀를 돕고자 한다. 소녀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주겠다는 약속을 한 윌로는 그녀를 도시로 데려다주고자 한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얼어붙은 그 곳의 도시는, 이전의 광명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곳이 되어버린지 오래였다. 과연, 소년과 소녀는 이 추운 겨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는 무릎을 꿇고 앉아 차가운 손을 모았다. 따뜻한 바람이 포근히 감싸주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배고픈 것도, 피곤한 것도 잊었다. 이 성가신 메리와 단 둘만 남았다는 사실도 잊었다. 그 기분은 내 마음에 새겨져 영원히 머물 것이다, 정말로. (p. 140)


《겨울뿐인 미래》은 무분별한 발전과 화석 연료 사용으로 전지구적 이상기후가 발생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보여준다. 추운 겨울에서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기차 이야기를 그린 <설국열차>를 떠올리게 하는 배경적 설정은 SF 종말문학으로 자리잡게 도와준다. '겨울'이라는 배경이 주는 한없이 차가운 이미지는 소설을 읽는 내내 곳곳에서 느껴진다. 도시에 들어선 윌로의 코트를 탐하는 자들, 그리고 추운 겨울로 인해 잘 먹지 못하는 사람들, 배고픔에 굶주리다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잃어버린 모습들은 또 다른 종말이 시작되었음을 암시한다.

도시와 빈민촌에 들어선 윌로를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레 디스토피아 문학의 대표작인 <헝거게임>을 떠올리게 만든다. 가난한 자들끼리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조성하며, 세계를 지배하는 자들의 눈을 피해 살아가는 모습은 《겨울뿐인 미래》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새로운 세상을 꿈꾸지만, 그것이 어렵다 속단하며 가만히 머물러 있는 모습은 너무나도 익숙하게 느껴진다.  소피 크로켓은 이 전반적인 분위기 속에서 주인공 윌로가 세상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깨닫도록 유도한다.


나는 정말이지 궁금했다. 어른들이 말해 주었던 모든 이야기가 사실이기는 한지. 예전에 살았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게 가능하기는 할지. 이제 사람들이 선해지는 걸 잊어버린 게 아닌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아빠와 마을 노인들이 불가에 둘러앉아서 들려준 이야기는 거짓말이었는지도 모른다. 희망의 횃불 운운하며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들이 모두 거짓이었는지도 모른다. 패트릭은 그걸 '설교'라고 했다. (p. 237)


《겨울뿐인 미래》와 비슷한 디스토피아 문학을 자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이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 어떤 희망의 불씨조차 찾을 수 없었던 이 암담하고 삭막학 세상에서 유일하게 희망이 생겨나는 그 순간. <헝거게임>의 캣니스가 희망의 불씨가 되어 이 반란의 끝을 보고자 결심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겨울뿐인 미래》의 윌로는 자신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그리고 메리와 그가 더이상 이 겨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배'를 좇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항상 말했다. 나무가 초록색일 때는 태우려고 해 봤자 소용이 없다고. 나무가 단단하게 자라서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지금 내가 그런 기분이다. 점점 마르고 단단해지는 기분. (p. 313)


어른들의 생각을 곱씹던 윌로는 드디어 자신에게 늘 힘이 되어주었던 '울프'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겨울뿐인 미래》은 단순히 SF 종말문학이 아니다. 언제가 우리에게 닥쳐올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경고를 담아내며, 한 소년의 아픈 성장통을 통해 우리가 이 현대에서 스스로 희망의 횃불을 꺼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를 동시에 담아낸다. 만약, 우리에게 추운 겨울이 닥쳐온다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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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 스토리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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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처음 이사카 고타로를 알게 된 것은 <모던타임스>를 읽고 난 후였다. 이미 국내에는 강동원 주연의 영화 <골든슬럼버>의 동명 원작 소설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나는 그의 다른 작품을 먼저 골라 읽었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그 때, 이사카 고타로의 세계에 발을 들였을지도 모른다. 타소설에서 잔혹하게 그려지던 '킬러'라는 직업은 이사카 고타로의 손에서 인간적인 면모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후에 그의 다른 작품인 <악스>에서는 더욱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면모의 킬러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사실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 세계는 그 소설에 빠져들기 이전까지는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그는 자신이 그려내고 싶은 세계를 초반부터 크게 확장시켜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독자들이 궁금증과 호기심을 갖으며 다음 장을 넘길 수 있도록 매우 조심스럽게 자신만의 세계를 열어나간다. 《피시스토리》는 그의 작품 세계가 집약적으로 모여있는 4개의 단편 소설이 담긴 책이다. <동물원의 엔진>, <새크리파이스>, <피시 스토리>, <포테이토칩>은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내 고독이 물고기라면 그 지독한 거대함과 맹렬함 앞에 고래마저도 달아날 것이 틀림없다. "

(p. 139 <피시 스토리> 중에서)

단편 소설집의 제목이 된 《피시스토리》는 소설가의 한 문장이 시공간을 뛰어 넘으며 만든 인연에 대해 노래한다. 의문의 작가가 남긴 소설의 문장은 무명의 록 밴드가 남긴 마지막 노래의 가사가 되고, 또 그 연결고리들의 숨겨진 관계성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인연을 찾아간다. 'fish story(터무니 없는 이야기, 허풍)'이라는 제목이지만, 그 속에서 주인공들이 얽힌 인연들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것이 결코 터무니 없다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떠오르고는 하니까.

사실 《피시스토리》를 읽으면서 가장 강렬하게 인상에 남은 작품은 <새크리파이스>와 <포테이토칩>이었다. <새크리파이스>는 본업은 빈집털이범이며, 부업은 탐정인 구로사와가 의뢰인을 찾아 어느 산골로 찾아오게 되는데, 그곳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온 풍습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면서 내용이 전개된다. 마치 영화 <착신아리>의 한 장면이 떠오르면서,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서 느낄 수 있는 기묘한 느낌을 풍기는 작품이었다.

공포나 죄책감 같은 거 말이야. 그리고 욕망 같은 거, 그런거야. 그런 것들을 어영부영 얼버무리려고 풍습이라든가 설화라든가. 그런 게 생기는 거 아닐까.

(p. 74 <새크리파이스> 중에서)

제물이 된 누군가의 희생이 강요되는 풍습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 희생은 다른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사카 고타로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희생을 오래된 풍습이라는 소재와 접목시키면서 그 공포감을 더욱 조성하게 된다. 을씨년스러운 소설의 분위기를 따라가다보면 이것이 단편이라는 사실이 너무 아쉬워지기도 한다. <포테이토칩>은 이사카 고타로 작품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사카 고타로의 많은 팬들은 그의 다른 작품에서 등장한 인물들이 종종 그의 차기작에서 주인공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어 다시 한번 등장하는 것에 반가워하고 좋아하는데, <포테이토칩>에서도 그런 그의 세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새크리파이스>의 구로사와가 <포테이토칩>에서 한번 더 등장하면서 독자들은 마지막까지 그의 작품 세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사카 고타로의 장편 소설을 만나기 전, 그의 작품을 미리 엿보고 싶다면 《피시스토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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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 김은희 대본집 킹덤 김은희 대본집
김은희 지음 / 김영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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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본 후 대본집을 읽으니 방송되지 않은 부분들로 하여금 미처 보지 못한 면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시즌2가 더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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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 김은희 대본집 킹덤 김은희 대본집
김은희 지음 / 김영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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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기다림 끝에 그 베일이 걷혀졌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킹덤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외국인들에게 열풍을 불어 일으키며 부산행을 시작으로 신선함을 안겨주었던 한국형 좀비물에 대한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개인적으로 미국 AMC<워킹데드> 시리즈를 재밌게 본지라 한국형 좀비물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높아있던 상태였다. 명절을 맞이하여 조금은 지루한 시간들을 달래려다 이틀에 걸쳐 시즌 1을 모두 보게 되었고, 그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채 킹덤의 대본집을 집어 들었다.

 

달빛에 비친 기괴하고 크게 늘어진 그림자, 그 걸음걸이가 여느 사람과의 몸짓과는 사뭇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와 함께 냄새를 맡는 듯 킁킁거리는 소리, 으르렁, 크르르 하는 목이 막힌 듯한 기괴한 소리와 심한 악취. 그런 그림자를 바라보는 창의 눈빛, 놀람으로 굳어진다. 도대체 저게 뭐지..? 숨이 멎을 듯 놀라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문 옆에 놓인, 들어열개문을 고정시키는 긴 쇠로 만들어진 걸쇠를 잡는다. (p. 38)

 

김은희 작가의 집필 방식을 최대한 반영하여 반점, 온점 등의 표기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킹덤대본집에는 김은희 작가가 집필 당시에 가진 생각, 마음이 담겨있다. ‘조선시대라는 시대 배경과 백성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한 김은희 작가는 끝내 킹덤이라는 대작을 완성시키고자 한다. 그의 마음에 <터널>의 김성훈 감독도 함께 동참하게 된다. 그가 이 작품을 맡게 된 두 가지 큰 이유 중 하나가 김은희 작가였을 만큼 그들은 조선을 배경으로 베일에 쌓인 역병의 음모를 그려내기 시작한다.

 

왕이 두창으로 쓰러진 뒤, 영의정 조학주와 그의 딸 중전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강녕전으로 들어설 수 없게 된다. 세자 이창은 아버지의 안위가 걱정되어 몰래 강녕전에 잠입하게 되고, 그곳에서 기괴한 소리를 내고 심한 악취가 나는 어떤 괴물과 문 하나를 두고 마주하게 된다. 창은 아버지에게 일이 생겼음을 직감하고, 그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아버지를 진료한 의원이 있는 동래(옛 부산의 지명)로 호위무사 무영과 떠나게 된다.

동래에 도착한 창은 의원이 있다는 지율헌으로 향했고, 음산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그곳에서 서로 얽혀있는 48구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48구의 시신이 지율헌 밖으로 나오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지율헌의 의녀 서비와 영신을 만난다. 이윽고 해가 저물고, 죽은 줄 알았던 48구의 시신들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김은희 작가는 조선 왕실을 중심으로 얽힌 갈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킹덤의 시즌 1은 이 거대한 이야기의 서막에 불과하다. 시청자들은 물론, 대본집을 읽는 독자들까지 아직 역병이라고 치부되는 그들의 존재가 쉽게 와닿지 않는다. 세자로서 이창이 가진 고민과 두려움, 왕실을 흔들 수 있는 권력을 얻기 위해 무엇이든지 하는 탐욕스러운 조학주와 중전, 그리고 전란 이후에 황폐해진 백성들의 암담한 삶을 중심으로 보여준다. 그러기에 이제 점차 퍼지는 역병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시청자와 독자들은 이것이 어떠한 나비 효과로 다가올지 두려우면서도 궁금해진다.

   


 

영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들을 대본집에서는 ‘()’를 통해서 표현하는데, 마치 인물들의 속마음에 이입한 것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표현들로 하여금 킹덤을 집필하는 김은희 작가의 모습이 상상되어 조금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세자 이창의 섬세한 감정 묘사들과,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들이 담겨 있어 훨씬 더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그의 마음을 엿볼 수가 있었다. (드라마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이며, 더욱 차분한 느낌이 드는 이창이었다.)

사실 드라마를 보면서 제일 궁금했던 영신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단서는 대본집에서도 얻을 수 없어 조금은 아쉬웠다. 아마 시즌 2가 다가오면 그의 비밀이 조금씩 밝혀지지 않을까. 그 어떤 캐릭터보다 몸을 잘 쓰고, 조총도 잘 다루는 전투력이 높은 캐릭터이기에 자연스레 그에게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시즌 2을 기다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또 긴 기다림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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