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시 스토리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내가 처음 이사카 고타로를 알게 된 것은 <모던타임스>를 읽고 난 후였다. 이미 국내에는 강동원 주연의 영화 <골든슬럼버>의 동명 원작 소설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나는 그의 다른 작품을 먼저 골라 읽었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그 때, 이사카 고타로의 세계에 발을 들였을지도 모른다. 타소설에서 잔혹하게 그려지던 '킬러'라는 직업은 이사카 고타로의 손에서 인간적인 면모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후에 그의 다른 작품인 <악스>에서는 더욱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면모의 킬러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사실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 세계는 그 소설에 빠져들기 이전까지는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그는 자신이 그려내고 싶은 세계를 초반부터 크게 확장시켜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독자들이 궁금증과 호기심을 갖으며 다음 장을 넘길 수 있도록 매우 조심스럽게 자신만의 세계를 열어나간다. 《피시스토리》는 그의 작품 세계가 집약적으로 모여있는 4개의 단편 소설이 담긴 책이다. <동물원의 엔진>, <새크리파이스>, <피시 스토리>, <포테이토칩>은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내 고독이 물고기라면 그 지독한 거대함과 맹렬함 앞에 고래마저도 달아날 것이 틀림없다. "

(p. 139 <피시 스토리> 중에서)

단편 소설집의 제목이 된 《피시스토리》는 소설가의 한 문장이 시공간을 뛰어 넘으며 만든 인연에 대해 노래한다. 의문의 작가가 남긴 소설의 문장은 무명의 록 밴드가 남긴 마지막 노래의 가사가 되고, 또 그 연결고리들의 숨겨진 관계성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인연을 찾아간다. 'fish story(터무니 없는 이야기, 허풍)'이라는 제목이지만, 그 속에서 주인공들이 얽힌 인연들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것이 결코 터무니 없다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떠오르고는 하니까.

사실 《피시스토리》를 읽으면서 가장 강렬하게 인상에 남은 작품은 <새크리파이스>와 <포테이토칩>이었다. <새크리파이스>는 본업은 빈집털이범이며, 부업은 탐정인 구로사와가 의뢰인을 찾아 어느 산골로 찾아오게 되는데, 그곳에서 오래전부터 내려온 풍습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면서 내용이 전개된다. 마치 영화 <착신아리>의 한 장면이 떠오르면서,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서 느낄 수 있는 기묘한 느낌을 풍기는 작품이었다.

공포나 죄책감 같은 거 말이야. 그리고 욕망 같은 거, 그런거야. 그런 것들을 어영부영 얼버무리려고 풍습이라든가 설화라든가. 그런 게 생기는 거 아닐까.

(p. 74 <새크리파이스> 중에서)

제물이 된 누군가의 희생이 강요되는 풍습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 희생은 다른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사카 고타로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희생을 오래된 풍습이라는 소재와 접목시키면서 그 공포감을 더욱 조성하게 된다. 을씨년스러운 소설의 분위기를 따라가다보면 이것이 단편이라는 사실이 너무 아쉬워지기도 한다. <포테이토칩>은 이사카 고타로 작품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사카 고타로의 많은 팬들은 그의 다른 작품에서 등장한 인물들이 종종 그의 차기작에서 주인공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어 다시 한번 등장하는 것에 반가워하고 좋아하는데, <포테이토칩>에서도 그런 그의 세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새크리파이스>의 구로사와가 <포테이토칩>에서 한번 더 등장하면서 독자들은 마지막까지 그의 작품 세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사카 고타로의 장편 소설을 만나기 전, 그의 작품을 미리 엿보고 싶다면 《피시스토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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