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생기는 감정이 따분함이라면 사람들에 둘러싸여 분주한 가운데 찾아오는 텅 빈 것 같은 진공상태가 권태다. 권태의 감정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중간 감정이다. 분주하게 일을 하는 듯 보이지만 한가하며, 즐거운 듯 보이지만 지겹고 따분해하는 감정이다.
게으름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행동의 부재라면, 따분함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자극이 부재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반대로 지루함은 너무 많은 일과 행동의 틈새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다. 전근대에는 뭔가 자극적인 사건이나 정보가 부족해서 탈이었다면, 현대는 자극과 정보의 과부하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지루함은 자극적인 사건과 정보가 포화된 상황에서 우리가 꾸역꾸역 게워내는 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