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가 적대적인 시선과 가공할 만한 검열의 위협 속에 살고 있다. 그 결과, 다른 사람에게 관계되는 일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만 관계되는 일에 대해서조차, 개인이나 가족을 막론하고, 자신이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 자기 성격과 취향에 맞는 것은 무엇인지, 또는 어떻게 해야 자신의 타고난 최고 · 최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고 최대한 키울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자신의 위치에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와 비슷한 신분의 사람, 또는 경제적 여건이 비슷한 사람이 주로 무엇을 하는지, (심지어는) 자기보다 높은 위치의 사람이 즐겨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 한다

중략

관습적인 것을 빼고 나면 그들에게는 따로 자기 고유의 기질이라는 것이 아예 없다. 정신 자체가 굴레에 묶여 있는 것이다. 재미삼아 하는 일도,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먼저 살피고서 따라하고, 군중 속에 묻혀 들어가기를 좋아한다. 선택도 그저 사람들이 흔히 하는 것 가운데서 고르는 데 국한된다. 독특한 취미나 유별난 행동은 범죄처럼 기피 대상이 된다. 자기 자신의 타고난 성질을 따르지 않다보니 마침내 따라야 할 각자 고유의 성질까지 없어지게 된다. 그들이 지닌 인간 능력들은 시들고 죽어버린다. 그 어떤 강력한 소망이나 자연적 쾌락도 느끼지 못한다. 한마디로 자기만의 생각이나 고유한 감정 또는 그 무엇이든, 자기만의 것이 없어진다.

자, 이를 인간에게 바람직한 상황으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나쁜 상황이라고 해야 좋을까?

-알라딘 eBook <자유론 - 책세상 문고 고전의 세계 043> (존 스튜어트 밀 저 / 서병훈 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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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 행복을 주장한 밴덤에 비해 질적 행복을 강조한 밀. 이 ‘자유론‘은 그가 가장 정성 들여 쓴 책이라 한다.

위 마지막 문장에 대한 나의 답은 당연히 ‘나쁜 상황‘이다. 그러나 쟝 칼뱅 (존 칼빈, 장로교에서 떠받드는 종교개혁자이고 고문기술자이기도 함)의 답은 ‘바람직한 상황‘이란다. 그가 인간의 의지와 능력을 부정하고 인간이 신에게 절대 종속됨을 주장하는 것과 관련있다. 나는 칼빈의 생각에 반대할 수 밖에.

중략 앞의 글을 읽다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하는 ‘골프‘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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