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에서 ‘운명’의 용법에 주의한다. 운명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설명되지 않는 것, 언설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수많은 우연의 소산, 기대와 달리 거꾸로 되어 버린 결과를 말할 때 꺼낸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 운명이 있어 운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단어가 있어 우리 삶을 가까스로 해설하고 있는 것이다. 운명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운명이라는 말만 있으면 우리는 삶을 이해하게 된다. 운명의 존재론은 중요하지 않다. 운명의 효용성이 중요하다. 운명은 이런 점에서 형이상학적이지 않고, 화용론(話用論, pragmatic)적이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그것의 존재성을 넘어서 강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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