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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에서의 기억


아픈 기억이 많아 잊으려 했는데, 최근 화산 폭발 소식을 들으며, 이 상황이 콩고 주민들에게 끼칠 영향 등을 생각하니 다시 그곳의 일들이 걱정과 함께 떠오른다.

지친 심신으로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 가, 이런저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밴쿠버 남쪽 화이트락에서 약간 평안하게, 그리고 적당히? 봉사하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며 살고 있었다. 

한국에는 이명박의 폭정이 있었고, 염려하고 기도했었다.

조국은 어려운데, 나름 평안을 누리고 사는 것이 죄스럽고 무거워지던 즈음, 친구가 찾아와서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직접 가서 보고 판단을 하자 해서, 밴쿠버-서울-홍콩-요하네스버그-루붐바시-콜레주-키산카라 등을 거쳐서 아마도 키산푸라라고 불리는 코발트와 구리를 채굴하는 광산마을에 도착했다.

광산 입구에 물과 함께 쌓여있는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과 거기서 뒹굴며 무엇인가를 먹고 있던 돼지들. 호텔 간판을 따라 들어가 보니, 값싼 비닐로 사방을 가리고 하늘은 뚫려 있던 호텔방. 많은 이질적인 상황이 지속되던 중, 광산 후문 근처에서 팔이 하나만 있는 장애 여성이 불편한 몸으로 마대 자루 속 뭔가를 강물에서 씻고 있었고, 근처에 메케한 담배를 피우던 자는 한 손에 코발트 중량 체크를 하는 GUN을 들고 있었다. 

광산에서 코발트를 채취하면, 좋은 광물의 경우, 3~7% 정도 코발트 비중이 나오는데, 수작업으로 마대 자루에 광물을 넣고 흐르는 물에서 계속 흔들어 씻으면 중량이 가벼운 물질은 물에 씻겨가, 그 작업을 길게 할수록 코발트 비중이 올라간다고 했다.(많은 양은 기계식 세척기를 이용한다.) 여기서 모아진 마대들을 건조시켜 1톤 자루에 넣고, 수십 톤 용량의 덤프에 실어 잠비아 국경, 인도인들이 운영하는 거대한 황산 저수조로 이동하고, 수일간 아주 독한 산으로 세척해 코발트 비중을 20% 중반으로 올려 탄자니아 등을 거쳐 중국 상해 남부 도시에서 재가공하고, 국내기업의 몇 차례 공정이 추가되면 테슬라 등의 전기차 배터리의 주요 소재로 바뀌게 된다.

다시 담배 피우던 자의 GUN으로 돌아가면, 그것은 아무리 노동자가 강물에 세척을 오래한다 해도, 비중이 높아지지 않도록,(비중이 높으면 가격이 올라간다.) 거의 최저로 체크되도록 야바위 짓을 해두었다. 여러 가지 열악하고 기만적인 상황을 보고서, 아! 아프리카 광산마을에 와있으면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으로, 밴쿠버로 돌아가 가족들의 반대를, 국내에 들어와 형제들과 친구들의 반대를 뒤로한 채, 천당 직전의 소위 999당이라 불리는 벤쿠버에서 어쩌면 인간 세계 중 가장 열악한 삶의 장소로 들어갔다.

우선 현지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던 미국인과 협의해서 광산 입구에 두 개의 컨테이너를 구했고, 의사를 채용해 병원을 개설했고, 매달 2,500불 정도의 약을 사서 무료 진료와 무료 처방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우여곡절 끝에 상당액을 들여서 광산을 인수하고, 인수 반대를 하는 노동자들과 협상을 해서 체불임금과 고용승계 등을 해결하고 광산 재가동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전기차 등의 대용량 배터리 소요가 적었고, 핸드폰 등 충전해서 사용하는 형식의 2차 전지 소재로 쓰이던 시절이어서 런던 광물시장 등의 코발트 국제 시세는 낮았다. 광물공사와 자원개발 기업들이 몇 차례 현장을 다녀갔고, 광산의 평가금액이 크게 올라가니 어려움이 찾아왔다. 언제나 돈 되는 자리와 돈 있는 현장은 또 다른 아픔이 온다. 콩고 남단 키산푸라 광산도 그랬다. 무능하고 낭만적이던 사장은 돈과 건강 잃고, 크게 망가진 상태로 그 흔한 표현,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인류 조상의 출현지 아프리카는 오랫동안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언어와 감정과 습관이 있다. 헌데, 유럽의 제국주의 시대 비스마르크 등이 편의적으로 국경을 분할해서 열강의 식민지로 각국에게 분배한다. 광복 후 한반도의 인위적 분단이 그랬듯이, 인위적 국경 분할이 아프리카 현대사에 숱한 전쟁의 촉발점이 되기도 했다. 거기에는 비용 지급이 필요치 않을 정도의 값싼 노동력이 있고,(광산에서 3달러를 받는 1일 노동이 있다 하면 교사는 아이들의 수업을 포기하고 광산에 간다.) 자원과 생태가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 따라 홍콩을 출발해서 아프리카를 가던 비행기는 만석이었지만, 돌아오는 비행기는 텅 비었던 장면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을 듯하다. 유럽이 그리고 미국이 지금은 중국이 더 깊숙한 오지 더 낮은 바닥 시장까지 점해가고 있다.

그 당시, 아프리카의 유일신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첼시 소속의 드록바라는 아프리카 출신의 선수였다. 드록바가 출전하면 아프리카는 숨을 멈춘다. 드록바가 골을 넣으면 온 마을, 온 도시가 괴성과 장단과 경적을 울리며 춤춘다. 그 조심스럽고 소박한 큰 눈에 두려움을 담고 살던 이들이 미친 듯 열광적인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보며 공감도 되고, 두렵기도 했었다. 

여성 장애 노동자의 코발트 비중을 체크하던 GUN은 문명인가? 수탈의 도구인가? 우리가 쓰는 핸드폰을 비롯한 재충전해 쓰는 편리한 도구들은 그들의 눈물과 땀이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비행기를 바꿔 타고 콩고민주공화국 루붐바시 공항에 내리면, 광산에서 채굴된 코발트를 잠비아 국경의 인도인 소유의 황산 세척장으로 옮기는 덤프트럭 회사의 영국군 출신 관계자들이 나와서 르완다에 인접한 북동부 고마 인근의 고산지대에서 채취한 커피를 끓여 주곤 했었다. 콩고를 재입국할 때는 두려웠지만, 고마의 커피가 주는 천상의 맛은 마약처럼 두려움을 떨치게 했다.

지금 그 고마 인근에서 화산이 폭발했고, 많은 주민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픔 위에 아픔이 더해진 이들을 염려하고 기도한다.

길목인, 여는 글을 숙제로 안고 있다가 콩고의 화산 폭발 기사를 보고 아프리카 시절의 단상을 쓰려고 기억 소환을 위해 콩고, 코발트 등을 검색해 보니, 코발트 시세는 비트코인 보다 더 올랐고, 세계 1위인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기업이 코발트 광산 지분을 인수한다는 기사가 올라온다. 아픔을 겪어서 그런지, 가족과 형제와 공동체가 있는 곳이 좋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프리카의 아픔을 적지 않은 기간 목도했고 그 아픔이 아른거린다. 세상은 어디든지 각양의 아픔을 안고 구르는 것 같다. 

모두에게 평안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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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에도 중국과의 군사 긴장은 계속될 것이다





2001년 9.11 테러 후에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미국은 최근까지 탈레반 등 급진 이슬람주의자 세력 제거 명목하에 미군을 주둔시켜왔다. 또한, 신장에서 영어 강사로 위장했던 전직 CIA 요원 카터스 이안 아메스(Carter Ian Ames)의 『신장의 CIA(The CIA In Xinjiang)』에 의하면 CIA는 아프가니스탄 기지에서 출발한 ‘드론’을 통해서 자신에게 자금 등 여러 물자를 지급했다고 한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타이완을 둘러싼 중국과의 위협 및 경제적 위상이 커지면서, 올해 9월 11일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할 예정이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보안군 등 반탈레반 군대에 봉급을 지급하는 등, 간접 지원하기 위해 미군을 아프가니스탄의 주변 국가인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 등 중앙아시아 지역에 미군 주둔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시도는 쉽지 않을 것이다. 소련 해체 이후 독립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헌법 개정으로 ‘땅, 나라’라는 의미의 ‘스탄’이라는 단어를 국명에서 제거) 공화국들은 중국과 상하이협력기구를 통해서 경제적, 군사적 교류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소련 시절에 러시아가 제공하지 못하는 소비재 산업 등을 소련 해체 이후에 신장위구르자치구를 통해서 수출하고 있다. 그 결과, 본인이 2015년 우즈베키스탄 단체 여행을 갔을 때 이용했던 차량이 ‘중국제’이고, “중국인과 한국인 관광객들을 가장 좋아한다.”고 환대한 우즈베키스탄 식당 주인을 볼 정도로, 중국의 중앙아시아 국가에 대한 경제교류는 러시아보다 더 많아지게 되었다. 그 대가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소련 시절 중국에서 이주해온 위구르족들을 탄압하는 중국에 협력하면서 현지 위구르족들은 다시 해외로 이주해야 했다. 심지어 키르기스처럼 지극히 예외적으로 두 차례나 대통령을 퇴진시킨 국가에서조차 현지 중국 기업의 반노동 행위를 비판하는 시위도 사실상 금지되어 있다. 또한 중국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 접경지역인 타지키스탄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따라서 아프가니스탄에 철군하는 미군이 키르기스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에 주둔하려고 하는 시도는 분명히 현재 중앙아시아에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가 밀접한 중국과 여전히 중앙아시아 국가 출신 이주노동자들과 유학생들을 받는 러시아의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그런데도 반중 성향의 전문가들과 노동자, 민중들이 규정하는 것과 달리 중앙아시아 국가는 옛 소련 시절처럼 러시아의 식민지가 아니다. 동시에 실제 ‘식민지’ 신장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경제적 식민지’라고도 규정해서도 안 된다. 비록 이들 국가의 지배계급들은 옛 소련 공산당 관료 출신들이기는 하지만, 독립 후에는 “러시아 지배와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레닌과 마르크스 동상을 철거했다. 소련 시절과 달리 러시아어 대신 각국의 민족어 사용(선거 출마 등 공직을 맡을 조건이기도 하다)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 주도하에 역사 속에서 자국의 영웅을 미화하는 영화인 ‘몽골’(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은 ‘칭기즈칸’을 카자흐인이라고 주장한다.)과 고대 페르시아 제국 키루스 황제의 침입을 막은 고대 유목민인 스키타이의 여왕 ‘토미리스(우즈베키스탄)’ 등 영화를 만들고 있다. 심지어 카자흐스탄은 스탈린 시절 소련의 ‘핵실험’으로 한 지역의 마을이 사라지는 내용인 ‘<스탈린에게 바치는 선물>이라는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비록 2001년 ‘테러와의 전쟁’ 당시 미군에게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을 허용한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는 이후에 미군을 철수시켰다.



따라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지배계급들은 미군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못지않게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기초해서 판단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리든,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의 민중들에게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격화되고 있는 경제위기와 제국주의적 긴장의 피해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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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 왜?
https://wspaper.org/m/25684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명예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장이다.

한 가지 주제가 현재 주류 경제학계의 논의를 지배하고 있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이는 현실 때문이기도, 공포 때문이기도 하다.

먼저 현실을 보자. 물가상승률이 높아지고 있다. 4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2퍼센트로 올랐다.

영국은 보수당이 선호하는 계산치에 따르더라도 곱절로 뛰어 1.5퍼센트가 됐다.

각국 중앙은행은 화페를 발행해 은행에 투입하는 이른바 양적완화 조처를 써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지 않도록 했다. 극단적 신자유주의자들인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측해 왔지만, 현재까지 그들의 예측은 계속 빗나갔다. 이는 화폐수량설이 틀렸기 때문이다. 화폐수량설은 화폐 공급에 초점을 맞추지만, 카를 마르크스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 모두가 주장했듯, 중요한 것은 화폐에 대한 수요다.

재난지원금
계좌에 돈을 넣어줄 수는 있다. 미국 정부가 자국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돈을 쓰지 않고 저축해 둘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양적완화가 투자 증대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윤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이 핵심 이유다. 기업 경영진은 자사주를 매입해 자기 재산을 늘리는 것을 선호했다.

이로 인한 스태그네이션 때문에 각국 정부는 과격한 정책을 취해야 했는데, 최근에는 이른바 “부채의 화폐화”라는 것이 생겨났다.

각국 정부들은 기업과 가계를 지원하기 위해 재정 지출을 크게 늘렸다. 이들은 이 지출을 감당하려고 국채를 추가 발행했다. 이렇게 발행한 국채는 대부분 중앙은행들이 매입한다. 사실상 중앙은행이 정부가 지출하는 돈을 추가로 찍어내는 것이다. 그 결과 화폐 공급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이른바 “임금·물가 상승의 악순환”이다. 즉, 노동자들이 물가 상승에 대응해 임금 인상을 쟁취하면, 자본가들은 이윤을 지키기 위해 물가를 더 올리는 것이다.

1960~1970년대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현재는 그럴 징조가 아직 없지만, 고용주들이 채용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는 보도는 많다. 수많은 사람들이 해고되거나 휴직 상태인데도 말이다.

흥미롭게도 조 바이든은 걱정하지 않는다. 일전에는 이렇게 말했다. “기업의 수익은 수십 년 이래 가장 높고, 노동자 임금은 70년 이래 가장 낮다.

“소비자 물가를 올리지 않고도 임금을 올릴 여지가 충분하다.”

불평등을 완화해 미국의 정치적 안정을 회복하려는 바이든의 어젠다를 반영한 말이다. 그러나 많은 사용자들의 뜻이 그와 같지는 않을 듯하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7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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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주의와 민족해방 투쟁
https://wspaper.org/m/25692

한국의 ‘단군 신화’를 포함해 민족마다 그 민족의 오랜 기원에 관한 신화들이 있다. 그러나 민족과 민족(국민)국가는 비교적 최근의 발명품이며, 유럽에서 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했다.

자본주의 이전의 계급 사회도 국가를 통해 조직됐지만 그 모습은 오늘날과 매우 달랐다. 지리적으로 넓은 범위 내에서 단일한 또는 두세 가지 언어를 공통으로 사용하는 인구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보통 아예 언어가 달랐고, 일정 지역을 벗어나면 언어의 차이로 의사소통이 금세 어려워졌다. 동일한 법과 조세, 제도가 적용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처음에는 얼마간 자생적으로 진행된 이런 과정은 머지않아 의식적 목표가 됐다. 특정 방언이 국가의 공식 언어로 선포되고, 일정한 지역의 지배자들과 피지배자들을 ‘민족’이나 ‘국민’으로 묶는 이데올로기들이 개발됐다. 이 과정이 다소 자의적일 때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지배자들과 피지배자들을 결속시키는 끈을 만들어 내고 자본주의적 착취와 축적을 뒷받침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자본주의적 국민국가가 발전하면서 국민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몇몇 국가들은 제국주의 열강으로 성장해 국경 바깥 지역을 점령하고 거기 살던 사람들을 종속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제국주의 강대국의 지배를 받았고, 그들의 공통된 언어·전통·문화는 천대받거나 아예 불법이 되기도 했다. 이런 억압에 대한 대응으로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민족주의가 나타났다. 식민 조선에서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민족주의가 형성됐다.

이런 민족주의 운동을 이끈 자들은 중간계급일 때가 많았다. 이들은 대자본가처럼 옛 지배계급이나 제국주의 지배자들에게 양보나 떡고물을 얻어 낼 수 없었고, 사회의 후진성과 민족 억압으로 출세 기회도 막혀 있었다. 이들은 자기 민족 나름의 자본주의를 발전시킬 독자적 국민국가 건설을 해결책으로 봤다.

민족 억압으로 고통받는 농민과 신생 노동계급은 언제나 이런 운동의 동맹자였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농민·노동자 대중의 투쟁은 기존 착취자뿐 아니라 새로운 착취자에 맞선 투쟁으로도 번지기 쉬웠다는 점이다. 그래서 민족주의 운동 지도자들은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이들의 투쟁을 억제하려 했다. 심지어 그러다가 민족적 대의에서 이탈하게 되더라도 말이다.

룩셈부르크는 사회주의자들이 폴란드 독립을 슬로건으로 채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당시 폴란드는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룩셈부르크가 폴란드인들이 받는 억압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본의 국제적 경쟁이 심화하는 시대에 민족 독립 요구는 무의미하다고 봤다. 오히려 그런 요구는 폴란드 노동자들과 러시아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데에 일조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여기에 반대하고, 모든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 요구를 지지했다.

단순히 경제적 측면으로만 자결권 문제를 바라본 룩셈부르크와 달리, 레닌의 관점은 정치적이었다. 즉, 민족 자결권 지지가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에 미칠 영향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 사회주의자들의 임무를 세심하게 구분했다.

자결권 지지가 곧 무조건 분리·독립 지지와 같은 것은 아니다. 억압 국가 내에서 자결권 지지는 반동적 이데올로기에 맞서 싸우는 한 방편일 수 있지만, 동시에 피억압 국가의 사회주의자들은 구체적 상황에 따라 실제로 분리하는 것을 반대할 수도 있다. 마치 이혼권이 부부에게 같이 살지를 말지를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열어 두듯이 말이다.

그러나 중간계급이나 자본가가 주도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피억압 민족의 운동이 국제 노동계급 투쟁에 도움이 되는 상황이 있었다. 식민 지배에 맞선 반란이 식민 모국을 약화시키고 식민 모국에서의 반란을 촉진할 수 있었다. 그런 경우 억압 민족 노동자들은 어떤 세력이 주도하는가와 별개로 그 운동을 지지해야 한다고 레닌은 역설했다.

룩셈부르크가 폴란드 내에서 민족주의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민족주의와 투쟁을 벌인 것은 어떤 면에서는 옳았지만, 억압 민족에 속한 러시아 노동자들에게까지 폴란드 해방을 지지하지 말라고 한 것은 일면적이었던 것이다.

한편, 레닌은 피억압 민족의 사회주의자들에게는 그런 해방 운동의 일부가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주도권
그러나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더 나아가려면, 동시에 혁명가들이 그 운동을 이끄는 자본가나 중간계급에게서 정치적으로 독립적이어야 한다고도 레닌은 경고했다. 이들을 정치적으로 비판할 수 있어야 하고, 노동계급이 투쟁의 주도권을 쥐게 할 수 있는 독자적인 전술·전략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주의 운동 지도자들이 질색할 방법이겠지만, 대중 파업이나 군대 내에서 사병 반란을 고무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일 수 있다.

트로츠키는 레닌의 접근 방식을 더욱 발전시켜 연속혁명론으로 완성시켰다. 후진국의 민족 해방 투쟁은, 노동계급이 주도권을 장악해 끝내 노동자 권력 획득과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키고 그것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킬 때에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 연속혁명론의 핵심이다.

식민지의 반란이 제국주의 질서에 타격을 주고 더 큰 반란을 촉발할 것이라는 레닌의 전망은 이후 사건에서 옳음이 입증됐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성공과 식민지 해방은 전 세계에서 혁명의 물결을 고무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혁명이 국제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혁명 러시아는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변질됐다. 스탈린은 민족해방 투쟁들을 소련 체제를 지키는 데에 이용하려 들었고, 종종 노동계급이 그런 투쟁에서 정치적 독립성과 주도력을 갖지 못하게 했다. 그 결과 많은 투쟁들이 좌절되거나 민족해방을 성취하긴 했어도 새로운 종류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물론, 그 후에도 민족해방 투쟁은 지배자들에게 종종 중대한 위협을 안겨 주곤 했다. 1960년대 베트남 민족해방 전쟁이 바로 그런 사례일 것이다. 이 전쟁은 미국 지배자들에게 심각한 정치 위기를 안겨 줬고 세계적인 대중 반란을 촉발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 또한 중동 전체의 제국주의 질서를 뒤흔들 잠재력이 있다.

오늘날 민족 문제는 더 복잡해진 측면이 있다. 민족 억압의 유산이 아직 남아 있는 가운데 일부 민족(국민) 국가들은 그 위상이 변하기도 했다.(한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가 단순히 ‘억압 민족 대 피억압 민족’의 구도로 제기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민족 문제에 관한 레닌의 통찰은 이런 복잡한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게 해 주는 나침반을 제공해 준다. 그것은 제국주의를 강화하는 행동에는 반대하고, 그 체제를 약화시키는 모든 이들의 투쟁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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