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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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명예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장이다.

한 가지 주제가 현재 주류 경제학계의 논의를 지배하고 있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이는 현실 때문이기도, 공포 때문이기도 하다.

먼저 현실을 보자. 물가상승률이 높아지고 있다. 4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2퍼센트로 올랐다.

영국은 보수당이 선호하는 계산치에 따르더라도 곱절로 뛰어 1.5퍼센트가 됐다.

각국 중앙은행은 화페를 발행해 은행에 투입하는 이른바 양적완화 조처를 써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지 않도록 했다. 극단적 신자유주의자들인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측해 왔지만, 현재까지 그들의 예측은 계속 빗나갔다. 이는 화폐수량설이 틀렸기 때문이다. 화폐수량설은 화폐 공급에 초점을 맞추지만, 카를 마르크스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 모두가 주장했듯, 중요한 것은 화폐에 대한 수요다.

재난지원금
계좌에 돈을 넣어줄 수는 있다. 미국 정부가 자국민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돈을 쓰지 않고 저축해 둘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양적완화가 투자 증대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윤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이 핵심 이유다. 기업 경영진은 자사주를 매입해 자기 재산을 늘리는 것을 선호했다.

이로 인한 스태그네이션 때문에 각국 정부는 과격한 정책을 취해야 했는데, 최근에는 이른바 “부채의 화폐화”라는 것이 생겨났다.

각국 정부들은 기업과 가계를 지원하기 위해 재정 지출을 크게 늘렸다. 이들은 이 지출을 감당하려고 국채를 추가 발행했다. 이렇게 발행한 국채는 대부분 중앙은행들이 매입한다. 사실상 중앙은행이 정부가 지출하는 돈을 추가로 찍어내는 것이다. 그 결과 화폐 공급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이른바 “임금·물가 상승의 악순환”이다. 즉, 노동자들이 물가 상승에 대응해 임금 인상을 쟁취하면, 자본가들은 이윤을 지키기 위해 물가를 더 올리는 것이다.

1960~1970년대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현재는 그럴 징조가 아직 없지만, 고용주들이 채용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는 보도는 많다. 수많은 사람들이 해고되거나 휴직 상태인데도 말이다.

흥미롭게도 조 바이든은 걱정하지 않는다. 일전에는 이렇게 말했다. “기업의 수익은 수십 년 이래 가장 높고, 노동자 임금은 70년 이래 가장 낮다.

“소비자 물가를 올리지 않고도 임금을 올릴 여지가 충분하다.”

불평등을 완화해 미국의 정치적 안정을 회복하려는 바이든의 어젠다를 반영한 말이다. 그러나 많은 사용자들의 뜻이 그와 같지는 않을 듯하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7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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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주의와 민족해방 투쟁
https://wspaper.org/m/25692

한국의 ‘단군 신화’를 포함해 민족마다 그 민족의 오랜 기원에 관한 신화들이 있다. 그러나 민족과 민족(국민)국가는 비교적 최근의 발명품이며, 유럽에서 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했다.

자본주의 이전의 계급 사회도 국가를 통해 조직됐지만 그 모습은 오늘날과 매우 달랐다. 지리적으로 넓은 범위 내에서 단일한 또는 두세 가지 언어를 공통으로 사용하는 인구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보통 아예 언어가 달랐고, 일정 지역을 벗어나면 언어의 차이로 의사소통이 금세 어려워졌다. 동일한 법과 조세, 제도가 적용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처음에는 얼마간 자생적으로 진행된 이런 과정은 머지않아 의식적 목표가 됐다. 특정 방언이 국가의 공식 언어로 선포되고, 일정한 지역의 지배자들과 피지배자들을 ‘민족’이나 ‘국민’으로 묶는 이데올로기들이 개발됐다. 이 과정이 다소 자의적일 때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지배자들과 피지배자들을 결속시키는 끈을 만들어 내고 자본주의적 착취와 축적을 뒷받침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자본주의적 국민국가가 발전하면서 국민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몇몇 국가들은 제국주의 열강으로 성장해 국경 바깥 지역을 점령하고 거기 살던 사람들을 종속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제국주의 강대국의 지배를 받았고, 그들의 공통된 언어·전통·문화는 천대받거나 아예 불법이 되기도 했다. 이런 억압에 대한 대응으로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민족주의가 나타났다. 식민 조선에서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민족주의가 형성됐다.

이런 민족주의 운동을 이끈 자들은 중간계급일 때가 많았다. 이들은 대자본가처럼 옛 지배계급이나 제국주의 지배자들에게 양보나 떡고물을 얻어 낼 수 없었고, 사회의 후진성과 민족 억압으로 출세 기회도 막혀 있었다. 이들은 자기 민족 나름의 자본주의를 발전시킬 독자적 국민국가 건설을 해결책으로 봤다.

민족 억압으로 고통받는 농민과 신생 노동계급은 언제나 이런 운동의 동맹자였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농민·노동자 대중의 투쟁은 기존 착취자뿐 아니라 새로운 착취자에 맞선 투쟁으로도 번지기 쉬웠다는 점이다. 그래서 민족주의 운동 지도자들은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이들의 투쟁을 억제하려 했다. 심지어 그러다가 민족적 대의에서 이탈하게 되더라도 말이다.

룩셈부르크는 사회주의자들이 폴란드 독립을 슬로건으로 채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당시 폴란드는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룩셈부르크가 폴란드인들이 받는 억압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본의 국제적 경쟁이 심화하는 시대에 민족 독립 요구는 무의미하다고 봤다. 오히려 그런 요구는 폴란드 노동자들과 러시아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데에 일조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여기에 반대하고, 모든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 요구를 지지했다.

단순히 경제적 측면으로만 자결권 문제를 바라본 룩셈부르크와 달리, 레닌의 관점은 정치적이었다. 즉, 민족 자결권 지지가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에 미칠 영향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 사회주의자들의 임무를 세심하게 구분했다.

자결권 지지가 곧 무조건 분리·독립 지지와 같은 것은 아니다. 억압 국가 내에서 자결권 지지는 반동적 이데올로기에 맞서 싸우는 한 방편일 수 있지만, 동시에 피억압 국가의 사회주의자들은 구체적 상황에 따라 실제로 분리하는 것을 반대할 수도 있다. 마치 이혼권이 부부에게 같이 살지를 말지를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열어 두듯이 말이다.

그러나 중간계급이나 자본가가 주도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피억압 민족의 운동이 국제 노동계급 투쟁에 도움이 되는 상황이 있었다. 식민 지배에 맞선 반란이 식민 모국을 약화시키고 식민 모국에서의 반란을 촉진할 수 있었다. 그런 경우 억압 민족 노동자들은 어떤 세력이 주도하는가와 별개로 그 운동을 지지해야 한다고 레닌은 역설했다.

룩셈부르크가 폴란드 내에서 민족주의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민족주의와 투쟁을 벌인 것은 어떤 면에서는 옳았지만, 억압 민족에 속한 러시아 노동자들에게까지 폴란드 해방을 지지하지 말라고 한 것은 일면적이었던 것이다.

한편, 레닌은 피억압 민족의 사회주의자들에게는 그런 해방 운동의 일부가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주도권
그러나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더 나아가려면, 동시에 혁명가들이 그 운동을 이끄는 자본가나 중간계급에게서 정치적으로 독립적이어야 한다고도 레닌은 경고했다. 이들을 정치적으로 비판할 수 있어야 하고, 노동계급이 투쟁의 주도권을 쥐게 할 수 있는 독자적인 전술·전략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주의 운동 지도자들이 질색할 방법이겠지만, 대중 파업이나 군대 내에서 사병 반란을 고무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일 수 있다.

트로츠키는 레닌의 접근 방식을 더욱 발전시켜 연속혁명론으로 완성시켰다. 후진국의 민족 해방 투쟁은, 노동계급이 주도권을 장악해 끝내 노동자 권력 획득과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키고 그것을 국제적으로 확산시킬 때에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 연속혁명론의 핵심이다.

식민지의 반란이 제국주의 질서에 타격을 주고 더 큰 반란을 촉발할 것이라는 레닌의 전망은 이후 사건에서 옳음이 입증됐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성공과 식민지 해방은 전 세계에서 혁명의 물결을 고무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혁명이 국제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혁명 러시아는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변질됐다. 스탈린은 민족해방 투쟁들을 소련 체제를 지키는 데에 이용하려 들었고, 종종 노동계급이 그런 투쟁에서 정치적 독립성과 주도력을 갖지 못하게 했다. 그 결과 많은 투쟁들이 좌절되거나 민족해방을 성취하긴 했어도 새로운 종류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물론, 그 후에도 민족해방 투쟁은 지배자들에게 종종 중대한 위협을 안겨 주곤 했다. 1960년대 베트남 민족해방 전쟁이 바로 그런 사례일 것이다. 이 전쟁은 미국 지배자들에게 심각한 정치 위기를 안겨 줬고 세계적인 대중 반란을 촉발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 또한 중동 전체의 제국주의 질서를 뒤흔들 잠재력이 있다.

오늘날 민족 문제는 더 복잡해진 측면이 있다. 민족 억압의 유산이 아직 남아 있는 가운데 일부 민족(국민) 국가들은 그 위상이 변하기도 했다.(한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가 단순히 ‘억압 민족 대 피억압 민족’의 구도로 제기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민족 문제에 관한 레닌의 통찰은 이런 복잡한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게 해 주는 나침반을 제공해 준다. 그것은 제국주의를 강화하는 행동에는 반대하고, 그 체제를 약화시키는 모든 이들의 투쟁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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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the 21st Century Holocaust: The Plight of the Uyghur People in Modern China (Paperback)
Ian Evans / Independently Published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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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청소년이 신장에서 겪은 고통을 조사해서 쓴 소책자.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처럼 위구르족의 고통에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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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타오른 1917 - 만화로 보는 러시아 혁명
존 뉴싱어 지음, 팀 샌더스 그림, 김원일 옮김 / 책갈피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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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2월 혁명과 10월 혁명 사이에 러시아에서 일어난 일들을 혁명에 참가한 노동자와 병사의 관점에서 잘 묘사되었습니다.

👉 서평 《붉게 타오른 1917: 만화로 보는 러시아 혁명》: 쉽고 재미있는 러시아 혁명 입문서
https://wspaper.org/m/18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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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 Russia's Red Year (Paperback)
John Newsinger / Bookmarks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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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2월 혁명과 10월 혁명 사이에 러시아에서 일어난 일들을 혁명에 참가한 노동자와 병사의 관점에서 잘 묘사되었습니다.

👉 서평 《붉게 타오른 1917: 만화로 보는 러시아 혁명》: 쉽고 재미있는 러시아 혁명 입문서
https://wspaper.org/m/18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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