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소수민족과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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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5월 17일에 같은 제목으로 열린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영상 보기)의 발제문이다. 이 토론은 기획 시리즈 ‘당신이 알아야 할 현대 중국의 모든 것 – 마르크스주의 관점’의 열 번째 시간이었다.

중국 정부의 위구르인과 티베트인 억압은 국제 정치의 중요한 쟁점입니다. 물론 서방 정부들이 중국의 민족 억압을 비난하는 것은 악어의 눈물일 뿐입니다. 그들은 중국을 깎아내리려고 ‘인권’ 운운하는 것일 뿐입니다. 게다가 일부 통계적 오류와 확증편향이 담겨 있어서 서방 정부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중국 정부가 의심쩍게도 신장 지역에 매우 억압적인 수용소를 수십에서 수백 곳이나 건설해 운영한다는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중국 공산당은 과거에 서방 제국주의를 몰아낸 민족해방 혁명을 이끌었고, 지금까지도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위구르인과 티베트인 등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인정하지 않고 이토록 억압할까요?

소수민족 지역의 경제적·지정학적 중요성
먼저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오늘날 중국에서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은 전체 인구의 8퍼센트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중국 전체 면적의 63퍼센트에 이릅니다.

물론 중국 정부는 티베트나 신장 지역 등 일부 소수민족 지역을 명목상 자치구로 지정했습니다. 그러나 자치권을 실제로 보장한 적은 없습니다. 자치구는 중앙 정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아야 하고, 실권은 대부분 현지 한족 관리들 손에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처음부터 소수민족을 차별하고 억압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921년에 창당된 중국 공산당은 앞서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킨 볼셰비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소수민족의 분리독립을 포함한 자결권을 무조건 옹호했습니다.

하지만 1925~1927년 중국 노동자 혁명이 패배한 후, 중국 공산당은 도시에서 농촌 벽지로 도망갔습니다. 이후 중국 공산당의 성격은 노동자 정당에서 농민 정당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데올로기도 혁명적 사회주의에서 한족 민족주의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1949년 혁명으로 대륙 전체를 장악할 무렵에는 기본 입장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어떤 지역도 중국에서 분리될 수 없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의 태도 변화
중국의 민족 정책은 시기에 따라 그 구체적 양상이 조금씩 변해 왔습니다. 이 변화는 중국의 여러 국내 사정, 그리고 제국주의 경쟁 상황과 관계 있습니다.

1949년 권력 장악 후 잠시 동안 중국 공산당은 형식적이나마 자치구를 설정하고, 독자적 문화와 언어를 보장하고, ‘한 자녀 정책’의 적용에서 면제해 주는 달래기 정책을 폈습니다.

그러나 1958~60년의 대약진운동과 1966~76년의 문화혁명 기간에는 그 알량한 자치권마저 축소되거나 사라졌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내놓은 명분인즉, 소위 “사회주의 사회에서 민족적 차이는 없어져야 할 구분이며 종교에 기반한 자치도 변화시켜야 할 계도(啓導) 대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유화 조치가 시행됐습니다. 하지만 1991년 소련 붕괴로 중국의 인접국들인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이 독립하자 중국 공산당의 태도는 다시 강경해졌습니다.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의 독립이 위구르인과 티베트인 등을 자극해서 소련 해체 같은 일이 중국에서 벌어지는 것은 한사코 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2000년대에는 그나마 있던 당근책들마저 거둬들이고, 표준 중국어 교육을 강요했습니다.

최근에는 대(大)중화주의 사상을 널리 퍼뜨리며 동화 정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첨단기술을 이용해 위구르인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며 조그마한 저항조차 초강경 탄압을 합니다.

소수민족의 저항을 모두 “분리주의 책동”이라고 비난하며 “준엄한 타격”이라는 기조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2021년 8월 시진핑은 7년 만에 중앙민족공작회의를 열었습니다. 중앙민족공작회의는 소수민족 정책을 다루는 중국 공산당 내 최고위급 회의입니다. 그 회의 석상에서 시진핑은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을 수립하고 국가 통일과 민족 단결을 이루는 사상적 만리장성을 구축해야 한다.”

소수민족의 민족주의와 저항
중국에서 한족 민족주의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억압에 반발하며 생겨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중국 내 소수민족들의 민족주의도 외세의 억압 속에서 형성됐습니다. 예를 들어, 1920년대에만 하더라도 위구르인 정체성은 신장 주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12~1949년 중국 군벌 정권의 지배를 받으며 민족주의 정서가 강해졌습니다.

티베트에서 불교는 티베트인들이 중국 지배에 대한 반대를 표현하는 주요한 통로가 되면서 더 강화됐습니다.

위구르인, 티베트인, 몽골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적·문화적·종교적 전통이 중국 정부에 의해 훼손되고 침해받을 뿐 아니라 경제 발전에서도 소외돼 있다고 여깁니다. 그들이 주로 거주하는 신장위구르 자치구, 티베트 자치구, 네이멍구 자치구 세 지역의 경제 수준은 중국의 32개 행정구역 가운데 최하위에 속합니다. 이 지역들로 이주한 한족을 제외한다면 1인당 소득 수준은 더 끔찍할 것입니다.

그래서 세 지역의 소수민족들은 중국 정부의 민족 억압에 반대해 저항을 벌여 왔습니다.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지지해야
중국 정부가 위구르인과 티베트인 등의 자결권을 인정하지 않고 억압하는 문제는 결국 제국주의 문제입니다. 중국 국가도 서방 국가들처럼 자국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위해 소수민족을 억압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 세계 사회주의자들과, 특히 한족에 속하는 중국 좌파는 중국 공산당 당국의 소수민족 억압에 반대하고 분리독립을 포함한 소수민족 자결권을 무조건 옹호해야 합니다.

비록 티베트 민족 운동을 전근대적인 정교일치 사회를 지향하는 겔룩파 불교가 주도하고, 위구르인 저항의 중심에 이슬람주의자들이 있더라도, 억압받는 민족의 저항은 제국주의 지배자들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의 사회주의자들은 중국 제국주의에 맞선 소수민족의 해방을 지지해야 합니다.

중국의 한족 노동자들이 소수민족 자결권을 지지하는 것이야말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지배에서 벗어나서 민족에 따른 분열 시도에 맞서 싸우는 데에 결정적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한족과 비한족 대중의 연대와 단결이 가능할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신장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아파트 화재 사고에 분노한 한족과 소수민족이 함께 ‘백지 시위’를 벌인 것이 그런 가능성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한족과 소수민족 대중의 이런 연대와 단결 투쟁은 중국이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훌륭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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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세상을 보는 눈 - 통합학문의 모색 암곡학술총서 2
최무영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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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다 읽었습니다. 짧지만 핵심이 잘 드러나네요. 인문학과 사회과학과 자연과과의 융복합 학문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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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지정학 아틀라스
델핀 파팽 지음, 권지현 옮김 / 서해문집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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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우크라이나전쟁은 명확한 친서방적 관점이다. 러시아의 호전성, 푸틴의 권력욕이 일으킨 내용으로 말이다. 그래도 도표와 그림으로 지금까지의 세계 여러 지역에서의 러시아와 주변 국가들의 관계를 잘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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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중구 서울시의회, 덕수궁 주변에 모여 있다. 밤에 사람 적은 서울시 중구가 북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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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강인한 우크라이나 여성들!!! 군대 지원해도 안 받아준다? with 나나/구잘TV, https://m.youtube.com/watch?v=qg8yBWvmLRI&feature=share

을 보고

명목상 ‘여러 공화국들의 자유로운 연합체‘였지만 사실상 ‘러시아 제국‘이었던 소련이 해체되기 6년 전에 태어난 구잘은 공용어가 러시아어였기 때문에, 우즈베크어보다 러시아어를 더 잘한다(우즈베키스탄 초대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도 우즈베크어보다 러시아어를 잘 구사했다.) (관련 영상: 한국으로 귀화한 저는 어느나라 사람인가요?| 구잘TV
https://www.youtube.com/watch?v=0e5zH53kwNE)

오랜만에 고향 타슈겐트에 방문했을 때, 한 우즈베키스탄인이 ˝러시아에서 왔느냐?˝는 말을 듣고,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났다.˝고 반박하는 영상도 있다.

그는 사실상 ‘러시아인‘, 아니 ‘소련인‘이라고 할 수 있다.

소련이 해체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러시아는 물론 옛 소련의 일부였던 여러 국가들에는 ‘소련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구잘의 ‘유튜브‘인 구잘 TV를 보니, 구잘은 ˝어떻게 같은 슬라브민족끼리 전쟁을 하겠냐˝며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전까지,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내가 본 중국 CCTV에서도 우크라이나인들도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냐˝고 기자와 인터뷰하기도 했다. 구잘만 그런 것 같지 않다.)

(관련 영상: ˝저희 가족은 아직 우크라이나에 있어요˝ | 구잘TV
https://youtu.be/QWnB815XIU4 )

그리고 구잘은 전쟁이 실제로 일어난 이후에는 진심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푸틴에 분노하고, 자신의 우크라이나 친구에게 위로의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구잘이 만난 우크라이나인도 평화를 바라고 자신이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다면, 입대할 생각까지 있는 것 같았고, 구잘도 동의하는 것 같았다. 둘다 ‘유명 코미디언‘으로만 여겼던 젤렌스키를 존경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미제국주의가 주도하는 군사기구인 ‘나토‘와 아류제국주의 한국의 무기 지원을 받아서 러시아에 맞서는 우크라이나에 입대해서라도 싸우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워낙 상황이 급박하고, 비록 소련 해체 이후 소련의 ˝공식 맑스주의˝에 대한 좌파적 반박을 할 좌파들이 취약한 탓에 구잘과 이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우크라이나 군의 승리˝를 바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영상을 보면서 희망도 봤다(이것이 이 영상을 공유한 이유다.). 우크라이나인은 유튜브 채팅창에서 ˝만약 러시아인을 만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같은 사람이고, 러시아인들 중에도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러시아인을 증오하지 않는다고 답변한 것이다. 이러한 발언이 정말 감동적이었다.

나는 종종 러시아인과 푸틴을 구분하지 않는 우크라이나인 이야기를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한 지인이 우크라이나인에게 ˝러시아어˝로 인사했다가 ˝내가 러시아인으로 보이냐˝는 말을 듣고, 따귀를 맞은 사례나, 집 근처 러시아 대사관에서 집회를 한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인들이 한국에서 계속 일하는 것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러시아인들은 모두 푸틴의 꼭두각시다˝라고 발언한다든지, ˝우크라이나인들은 소련 지배에 대한 분노로 인해, 나치를 더 좋아했다.˝는 이야기 등등.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우크라이나 반전집회가 더 강화될 필요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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