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 등 저항세력 전사들이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사건은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는 물론 미국의 정보기관 CIA마저 예상 못한 사건이란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중동 주민은 물론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이름으로 팔레스타인을 학살하는 것에 반대하는 유대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이 이러한 하마스의 공격을 열렬히 환호했습니다.
나도 팔레스타인의 승리를 기원하는 다양한 글을 SNS에 게시했습니다. 그런데 박노자(Vladimir Tikhonov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이하 존칭 생략)는 지난 10월 13일 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문장 ˝팔레스타인에게 승리를! 이스라엘에 죽음을!!!˝을 공유하고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이스라엘이 해체된다고 칩시다. 그러면 부유한 나라 (구미권) 출신의 유대인들이 아마도 본국에 귀환할 수야 있겠죠? 한데 가난한 나라 출신 유대인들이요? 아랍권 출신 유대인들이요? 아니면 이스라엘에서도 차별을 받고 사는 에티오피아 출신의 유대인?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은요? 푸틴이 운영하는 군국주의 독재 국가로 돌아가란 말씀이신가요? 그 억압 속으로요? 아니면 하마스 같은 독재 권력 밑에서 하나의 소수자 집단으로 살으란 말씀인가요? 그걸 하마스가 허용할는지 아마도 먼저 물어봐야 할 것 같고, 허용할 뜻을 아직 내비친 적도 없었습니다.
“저도 좌파입니다. 한데 이런, 생각없이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구호만 외치는 사람들과 같은 ˝좌파˝ 대열에 서고 싶지 않습니다. 좌파의 목표는 폭력과 억압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면 좌파가 내거는 구호들도 최소한 그 목표에 걸맞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나는 “유대인의 죽음”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시온주의 테러국가”의 해체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 지금까지 “유대인만의 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시온주의’의 이름으로 “75년” 동안 중동의 이슬람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고, 팔레스타인인의 생존권을 짓밟은 인종차별주의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번 하마스의 유대인 납치 및 살해와 같은 행위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75년’ 동안 팔레스타인 마을을 공격하고, 팔레스타인의 선출된 의원들을 납치하고, 예루살렘의 이슬람성지인 알 아크사 사원에서 예배 중이던 아랍인에 이스라엘 “방위군”의 공격(하마스가 이번 기습을 감행하게 된 계기) 등을 일삼은 것에 비하면 사소한 잘못일 뿐입니다. 따라서 일부 아랍인들과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 국가와 “유대인”을 증오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비록 마르크스주의자는 명백히 아랍과 유대인 노동자계급의 분열을 낳을 수 있는 “유대인에게 죽음을!” 같은 구호를 지지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따라서 나는 성서 속 아브라함의 후손인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이 서로 증오하는 것을 잠시라도 멈추게 하기 위해서라도 대안은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이 공존하는 한 국가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랍 내에서도 가장 세속적인 지역이었던 팔레스타인에서 급진 이슬람주의조직 하마스가 민중의 지지를 받게 된 계기가 1993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이스라엘이 합의한 ‘두 국가’ 방안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박노자의 글이야말로 “좌파”가 아닌 “엘리트주의적인 시온주의자의 글”로 보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이 해체된 이후에 하마스 같은 독재 권력 밑에서 살으란 말씀인가요?”는 정말 문제적입니다. 이는 하마스가 팔레스타인인에 의해 선거에서 지지받은 정당이란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마스 같은 자들도 “모든 유대인”을 적대하지 않는다. 예컨대 하마스는 자신들이 2017년에 개정한 헌장에서 “자신들의 적을 ‘유대인’이 아니라 ‘시오니스트 침략자들’이라고 명확히 명시”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스라엘 해체 이후에 어떤 국가를 만들지는 전적으로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이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박노자처럼 “이스라엘의 해체는 곧 하마스 독재체제로 귀결”된다고 결론짓는 태도야말로 팔레스타인인을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긴다는 점에서 잘못되었습니다.
이는 지난주 일요일 서울 이태원에서 열린 한국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참가한 팔레스타인인들이 “세속적인 분위기의 집회”를 선호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팔레스타인인의 저항은 과거 19세기 러시아 지배하의 폴란드인의 민족해방운동이 그러했듯이, 전세계 좌파와 피억압 대중의 운동에 저항의 영감을 줬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는 내가 석, 박사 학위 논문을 쓴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족이 다수인 중국 공산당 관료의 지배에 저항하는 신장의 위구르와 비한인 소수민족들도 “민족해방”을 위해 팔레스타인인의 저항을 연구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중국정부는 위선적이게도 팔레스타인인의 편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좌파이자 “성서 속의 이스라엘”을 오늘날 “팔레스타인인”이라고 믿는 기독교도라면, 팔레스타인인의 투쟁을 분명히 지지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박노자가 주장한 것처럼 진정 이 세계에 “폭력과 억압”을 종식시키는 운동이 전진하는 데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