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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외로 읽는 한국 현대사
정운현 지음 / 인문서원 / 2018년 11월
평점 :
[서평후기] '호외로 읽는 한국 현대사'
- 속보와 이슈로 읽는 한국 현대사 15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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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정운현
발행처 : 도서출판 인문서원
펴낸날 : 2018년 11월 26일 초판1쇄
도서가 : 20,000원
우리의 근대사는 보통 강화도 조약을 그 시작점으로 보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갑신정변이나 동학농민운동, 갑오경장이라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개항을 통해 국제질서에 편입된 해인 1876년을 근대의 시발점으로 보는 견해가 다수설이라는 것이죠. 그럼 한국 현대사는 언제부터 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같이 1945년 해방된 날을 그 기점으로 보는게 통설이랍니다. 이번 읽은 책은 <호외로 읽는 한국 현대사)란 책으로 제목과는 달리 근대사가 시작된 사건, 강화도 조약에서부터 최근 있었던 북미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각종 호외들을 통해 86가지의 역사적 사건들을 살펴보는 도서였습니다. 호외라... 실물을 본 적이 있는지 조차 기억이 잘 나질 않는, 지금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일상에선 보기 어려운 매체이죠. 그런데 책 내용 중에 호외가 판매되었다 나오는데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신문배달 소년들이 길거리 뛰어가며 "호외요. 호외~"라고 외치면서 뿌리던 모습은 사실이 아닌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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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대학 졸업후 신문사에 입사하여 20여 년간 기자로 활동한 분입니다. 참여정부 시절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위원회' 사무처장도 지냈고, 현재는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재직 중이랍니다. 집필,출간 도서목록을 보니 이 분 성향이 어떠한지 좀 알 것도 같습니다.
책은 <머리말>과 <짧게 읽는 호외사>, <1. 강화도조약(1876-02-27) ~ 86.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2018-06-12)>로 구성, 편집되어 있습니다. 주요 근현대사의 사건들은 거의 다 망라하고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원래 호외란게 긴급한 소식를 빠르게 전하기 위한 것이기에 아무래도 기분 좋은 사건들보다는 안타깝거나 울화가 치미는 그런 사건사고 호외들이 많을 수 밖에 없기에 책에서도 역시 그런 내용들의 호외가 다수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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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호외는 무엇일까요? 책에서는 미국 최초의 신문 <보스톤 뉴스레터>가 1704년 6월 30일 해적 6인의 처형 사실을 보도한 것이 첫 호외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1868년 5월 16일 <중외신문>이 발행한 '별단중외신문'이 일본 최초고, 우리나라는 1894년 친일계 신문인 <조선신보>가 청일전쟁이 임박했단 내용으로 발행한 것이 최초랍니다. 순한글판으로는 언더우드가 창간한 <그리스도신문>에서 1897년 8월 22일 발행한 고종황제 탄신 기념 호외가 최초이지만 내용상 부록에 가깝고, 호외의 성격에 부합하는 최초의 순한글판 호외는 1898년 2월 19일 <독립신문>에서 미군함이 하바나항에서 폭침된 내용을 기사로 발행한 것이 최초라고 합니다.
호외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생겨났답니다. 호외는 '신문사가 긴급한 뉴스를 속보로 전하기 위해 정기 간행 이외에 임시로 발행하는 인쇄물'로 정의되는데, 해외 신문사에는 'extra'라고 지칭한다고 합니다. 이 형태를 일본인들이 들여오면서 여러가지 유사한 용어, '별호', '별지', '별보', '별단판', '부록', '부전번외', '별배달' 등으로 혼용되어 발행해 오다가 1876년 10월 29일 <조야신문>에서 처음으로 '호외'란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는군요.
보통 호외는 단일 기사를 다른 본판보다 작은 크기의 전단식의 형태로 발행되는데, 독특하게도 본판과 동일한 규격으로 발행되는 경우가 있답니다. 신문은 하루에 호수를 두번 부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날 발간된 신문과 다음날 발간된 신문 사이에 발행되는 기사는 '호외'로 밖에 발행할 수가 없답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나라는 일제시대에 특히나 많은 호외가 발행되었다는데요. 그것은 이미 호수가 매겨져 발행된 신문일지라도 일제의 검열 과정에서 압수되거나 배포 금지되는 경우 이미 발행된 본판과 동일한 규격의 신문을 문제가 된 기사만을 삭제한채 호외의 형태로 다시 발행하였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이런 형태의 호외는 항일 민족 신문에서만 그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다는군요. 책에서는 이에 대해서 자세하고 설명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사례로는 수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책에서 설명하는 호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1876년 3월 2일자 강화도조약 체결을 내용으로 한 것으로 일본 마이니치신문의 전신인 <도쿄니치니치신문>에서 발행한 것이랍니다. 여기에는 '호외'라는 용어 대신 '부록'이란 용어를 쓰고 있단 특징이 있다는군요. 우리나라 신문에서 발행한 것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1894년 7월 23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급습해 명성황후 정권을 몰아내고 대원군을 옹립한 사건을 내용으로 한 <조선신보>에서 발행한 호외로 이것이 우리나라 신문에서 발행한 최초의 호외랍니다. 우리나라 신문에서 가장 최근에 발행된 것으로는 2018년 4월 27일 <문화일보>에서 발행한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을 내용으로 한 호외가, 가장 최근 발행된 호외 사례로 일본 <요미우리신문>에서 2018년 6월 12일 발행한 사상 첫 북미회담을 내용으로 한 호외가 사례로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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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사건 발생과 동시에 전세계 언제 어디서든 핸드폰 단말기를 통해서 그 내용을 알 수 있기에 호외란게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중매체가 출현하기 이전 시대에서는 호외만이 긴급한 소식을 신속하게 알려주는 기능을 했을 것 같습니다. 기술이 발전되어 라디오와 TV가 탄생하면서부터 점차 그 기능이 퇴색되어 가던 호외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출현하면서부터 거의 유명무실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긴급한 소식을 전달하는 기능을 이러한 매체들에게 넘겨주게 된 지금에 와서도 호외는, 아날로그적 감성인 것 같습니다만, 명맥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간간히 발행되고는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LP판이나 무선호출기(삐삐)처럼 특정 분야 같은데서 그 나름대로의 존재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저자 역시 호외는 속보 매체로서의 기능은 떨어지지만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있기에 천연기념물과 같은 존재로 남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